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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3/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10 12:20

      습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날이었다. 허공에 손을 뻗어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을 비비면 물방울이 부스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땀은 이마를 적시고 뺨을 타고 흘러내려 와이셔츠의 칼라를 축축하게 적셨다. 2068년 8월의 어느 날. 나는 유타주와 네바다주의 경계 근처 어딘가에 있는 고속도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햄버거에선 쇠맛이 났고 에어컨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불쾌지수가 말도 못할 정도로 높았다. 그리로 날 불러내었던 사람이 앤더슨씨였다. 당시 나는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21세기의 <듀란 듀란>이 되어보겠다던 저능아들이 초대형 사고를 벌인 이후 나의 에이전시 사업은 부침도 없이 추락만 거듭했다. 한 때 열 명이 넘던 직원을 다 내보내고 나니 회사라기도 쑥스러운 지경이었다. 그때 크툴루 레코드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들은 어린 여자애를 데뷔시키려고 이미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업계에서 드문 일이었다. 부동산에 비유하자면, 잡을 살 사람과 팔 사람이 거래를 끝내놓은 다음에서야 중개인을 찾는 격이랄까? 처음에 나는 제의를 고사했다. 너무 지쳐 여력이 없었던 탓이었다. 되려 그런 날 설득했던 것도 앤더슨씨였다.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그게 홀리였다.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던 것은 반쯤은 잘한 일이었는데 어린 홀리가 난파한 내 커리어의 마지막 챕터를 화려하게 칠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말 그대로 정말 반쯤만 잘한 일이었다. 이제와서 결국 또 다시 타블로이드지의 가쉽 기사를 도배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종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저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한 겁니까?    

      앤더슨씨의 굴절된 미소는 두꺼운 안경 위를 어른거렸다.

    - 물론이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전적으로 자네의 선택에 맡길 생각이야. 다만…….

    - 다만?

    - 자네가 하든 말든 홀리는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될꺼야. 그리고…….

    - 그리고요? 

    - 솔직히 자네 입장에서도 계속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거야. 세상에 에이전트 사정 봐줘가며 사고를 치는 클라이언트들은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맡는 클라이언트마다 자살하게 만드는 에이전트도 없지. 현실을 직시해. 이 바닥에서 자넨 이미 '007 살인면허'로 통하게 생겼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홀리까지 더하면 다섯 명째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살아서 헤어진 가수가 없다. 물론 그 숫자는 <스위트 카르마>, 또는 네 놈의 저능아들로 알려진 잡것들이 단체로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죽은 아이를 돈벌이를 위해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 돈을 번다는 건 말야. 결국 '남의 돈'을 번다는 거야. 모든 돈벌이가 남을 이용해서 가능한 거지. 음반 업계에서는 죽은 가수들의 베스트 앨범을 곰탕 끓이듯이 우려내고 있는데 그건 괜찮다고 생각하나?

    -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그 애를 생각하면 뭐가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 샘, 우리는 그 애를 이용하려는 게 아니야. 되살리려는 거지. 물론 다만 인터넷 안에서만 살아 있는 거야. 사실 큰 상관 있나? 요즘 세상에 인터넷 안에 살아있으면 살아있는 거고 인터넷 바깥에 있으면 살아있어도 죽어 있는 거야. 그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야. 다들 유튜브나 트위터나 그런데 뭐가 올라오는지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뭐라 대꾸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스크랩 기사의 큼직한 헤드라인에 다시 시선이 가서 박혔다. <워너의 선택은?>

    - 생각해 봐. 이건 우리 업계의 모범적인 미래야. 모두가 죽은 가수들의 재능을 그리워하잖아. 그들이 영원히 활동할 수 있다면 모두가 좋아할꺼야. 게다가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지. 이제 그들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아. 프로그래밍된 그대로만 동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치지 않을꺼야. 멍청하게 오버 도즈의 헤로인을 밀어넣다 호텔방에서 뒈지는 일 따윈 없을 거라고. 물론 페리에도 지들 손으로 꺼내 먹겠지.

    - 페리에를 꺼내 먹는다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솔깃했다. 홀리가 페리에 타령을 할 때마다, 디톡스 쥬스 넘버 나인 타령을 할 때마다, 글루텐-프리 샌드위치 타령을 할 때마다 솔직히 난 돌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 아니, 물론.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프로그램 따위가 어찌 정말로 페리에를 마시겠어? 

     

    *

     

      처음 은퇴 결심을 했을 때 앤더슨씨는 어린 고아 홀리를 내게 맡겼다. 그리고 두번째 은퇴 결심을 한 지금 앤더슨씨는 죽은 홀리(를 되살린 무언가)를 내게 다시 맡기려고 한다. 다시금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나는 확신이 없었다.

     

      그 사이 메이져 레이블들의 유령 전쟁 2라운드가 이어졌다. 소니 BMG가 재니스 조플린을 부활시켰다. 유니버셜은 짐 모리슨으로 응수했다. 롤링스톤지에 다시 특집 기사가 게재되었다. <히어로즈 리본(Heroes Reborn): 최후의 승자는 히로(Hero)인가 히로인(Heroin)인가?>. 다음 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27 클럽의 Reunion이 멀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엠바고까지 깨가며 터뜨렸다. 다른 27 클럽의 요절 가수들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부활시켜 ‘따로 또 같이’ 활동을 펼칠 계획을 세우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업계의 야심을 발빠르게 보도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워너 뮤직 그룹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워너 산하의 레이블들에 소속되었던 전설적인 20세기 가수들의 이름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물론 나는 내막을 알고 있었다. 워너의 선택이 조금 다른 방향이 될 거라는 사실을.

     

      크툴루 레코드의 앤더슨씨는 집요하게 일을 추진했다. 그의 말마따나 '내가 있든 말든'이었다. 물론 워너 뮤직 그룹의 보이지 않는 전폭적 지원이 있었겠지만.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스스로를 열아홉살의 팝 스타라고 믿고 있는 이상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홀리의 모든 기억과 기록을 입력시켜 네트워크 내에 풀어놓았다. 그 애는 이제 세상 어디에나 존재했고, 또 복수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었다. 홀리의 전 생애에 걸쳐 인터넷에 남겨진 글과 사진과 음성과 영상이 수집되었다. 그리고 그 양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아예 특별전담팀이라도 꾸려질 판이어서 일손도 심각하게 모자랐다. 적어도 워너의 방향이 한 가지에서는 옳았다. 20세기 가수의 데이터 베이스는 21세기 가수의 그것과 양적인 면에서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불과 3년 남짓 활동한 홀리였지만 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데이터는 앞서 등장한 유령 가수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백 배 이상 많았다. 작곡가들이 새로 곡을 썼고 테크니션들은 저장된 기존의 영상과 음성을 세밀하게 쪼개어 재조합했다. 누군가에 설명에 따르면 '오직 필요한 건 맞는 세그먼트를 제 위치에 어셈블링하는 것' 뿐이었다. 

    - 홀리는 매일 자기 비디오 로그에 팬들에게 보내는 일상을 올리고 있어.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인스타그램이 멀쩡히 살아있는 가수들보다 더 잘 관리되고 있는 걸 자네도 봤을거야.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노래와 뮤직비디오도 발표할 수 있네. 세계 각지에서 공연한 영상을 만들어 (실제로 공연을 했는지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가?) 유튜브에 업로드 할 수도 있지. 그래서 다시 묻겠네. 홀리는 살아있는 건가? 살아있지 않은 건가?

     

      나는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그렇다면 '살아있다'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어떻게 정의내려질 수 있는가? 어떤 면에서 앤더슨씨의 말은 더없이 옳았다. 우린 흔히 셀러브리티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그들의 일부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매체가 전달해주는 정보의 양이 어떤 면에서는 그 셀러브리티의 생명지수인 셈이다. 나는 홀리와 매일 대면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와 교감의 부재를 느끼고 있지만, 일반 대중들의 입장에서라면 오히려 살아있을 때의 홀리보다 지금의 홀리가 더 그들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 그 애를 만나볼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앤더슨씨의 표정은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

     

      예전의 그 애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을 기억한다. 라임향 페리에를 홀짝이면서.

    - 엉클 샘, 나는 영원히 빛나는 인기를 누리고 싶어요. 


      그럴때면 아무 말 없이 웃어주고는 했다. 그 웃음은 '얘야,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구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홀리가 내게 그런 말을 한다면 나는 그때처럼 웃어줄 자신이 없었다. 

    홀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애는 이제 크툴루 레코드사 지하 슈퍼컴퓨터실 B-1룸의 커다란 스크린 안에 존재했다. 방의 네 면을 가득 메운 슈퍼 컴퓨터와 사방으로 연결된 어지러운 케이블, 그리고 난해하게 점멸하는 표시등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실감하게 했다. 창백하고 핏기없는 열아홉 살의 홀리. 내가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주었다가 다시 한 순간에 앗아가버린 우리의 슈퍼 스타. 쌔근거리는 그 애의 숨소리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생명의 기운이었다.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당연히 다른 한 편으로는 소름끼치는 마음이 일었다. 앤더슨씨가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 헤이, 스위티. 이제 그만자고 일어나야지? 누가 왔는질 봐. 아주 반가운 얼굴일꺼야.

      화면 속의 홀리가 가만히 눈을 떴다. 

    - 엉클 샘? 정말 엉클 샘이에요?

      그 목소리는 분명 홀리의 것이었다.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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