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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4/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12 11:07

      홀리는 생전의 많은 것을 기억했다. 일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더러 실제와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니다. 사실 그 대목에서 '기억을 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생전'이라는 말도 잘못되었다. 내 앞에 있는 것은 진짜 홀리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였으니까.   

    - 난 그때 내가 보았던 것이 메리 제인의 효과라고 생각했어요.

    - 아냐. 넌 그때 윌슨 오페라 호텔 12층 스위트룸에서 스피드볼을 하다가 그랬던 거야. 마리화나가 아니라.

    - 그랬나요? 아무튼 굉장히 아름다운 총천연색 무지개를 봤었죠. 마치 만화경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어요. 만화경 안에 또 만화경이 있고, 그 안에 또 만화경이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은 입력된 정보 그대로를 출력할 수는 있다. 혹은 조금 더 진보한 수준이라면 입력된 정보에 바탕한 적절한 조합을 결과로 출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입력된 적이 없는 정보가 출력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홀리가 사망하기 몇 분 전에나 경험했을 주관적 경험 - 환각을 컴퓨터가 떠올린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넣었단 말인가? 총천연색 무지개라고? 만화경 속의 만화경이라고?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프로그래밍의 결과물인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죠.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난 허공에 둥둥 떠 있었고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는데…… 신기한 부분은 미세한 방향 감각 같은 것은 있었던 거죠. 난 뭔가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 멀리에서 눈부신 빛의 출구를 보았어요. 순간적으로 알았죠. 저기를 통과하면 지금까지 내가 지내던 세계와는 영원히 작별이구나. 싫진 않았어요. 왜냐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건 마치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을 듣는 것 같았다. 홀리의 프로그램 어딘가에 이런 내용이 저장되어 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누군가 의도하지 않고서는 말이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이 방을 나가면 당장 앤더슨씨를 찾아가 따질 생각이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팽이가 프로그래밍을 했으며 그 지시가 어디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냐고.

    - 그때 샘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샘이 날 애타게 찾고 있는 것 같았죠. 마음이 아팠어요. 사실 내가 샘을 많이 힘들게 했잖아요. 말썽부리고 사고친 기억이 영화의 장면들을 잘라낸 것처럼 지나가더라고요.

     

      물론 그건 그랬다. 마지막까지 그 애와 나는 날 선 신경전을 벌였으니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십대 스타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들은 빛나는 재능과 때묻지 않은 영혼으로 성공에 다다르지만 이윽고 어느 순간엔가 살짝 맛이 간다. 예외가 없다. 이 바닥의 생리? 외상 후 트라우마? 외계인 납치? 어느 쪽이 정답인진 모르겠지만 항상 그렇다. 딱 한 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이상한 짓을 시작한다. 아주 먼 옛날 브리트니 스피어스, 린제이 로한, 마일리 사이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 그때 마음이 흔들렸어요. 샘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더라고요. 거의 빛의 출구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이었는데 다시 까마득한 나락으로 되돌려졌어요. 내 몸에 묶인 밧줄 같은 것이 있어 끌려가는 느낌이었죠.

       나는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스스로를 세뇌시키려는 듯이. '이건 진짜 홀리가 아니야. 단지 정교하게 설계된 유사 의식이 단순히 수십만개 픽셀 위를 부유하는 것 뿐이야' 라고. 다시 한 번 나는 다짐했다. 정말로 이 미친 짓거리의 담당자가 누군지 찾아내서 요절을 내주리라. 

    - 엉클 샘, 날 용서해줄 수 있어요?

      스크린 위에 투영된 홀리의 얼굴은 눈물을 흘렸다. 

    -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냐.

    - 고마워요. 내일 또 찾아와 줄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B-1룸과 나란하게 자리한 B-2룸은 '프로젝트 홀리(가칭)'에 투입된 전문가들의 작업실이었다. 부활한 홀리의 B-1룸 메인 스크린 픽셀 수만큼의 전문가들이 하얀색 랩 코트를 입고 분주하게 오갔다. 크기며 시설만 보면 백악관의 '시츄에이션 룸'을 방불케했다. 차이가 있다면 사방의 벽면이 24인치 정도의 작은 모니터로 도배가 되어 있단 점이었다. 각각의 화면들은 인터넷에 업로드되었거나 앞으로 업로드될 예정인 화면들을 출력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홀리는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고, 패션 컨셉트에 대한 회의를 했으며, 새로운 곡을 녹음했고, 새로운 광고에 출연하였으며, 유튜브에 올릴 비디오 로그를 녹화했고, 세계 각지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마드리드, 시드니, 도쿄…… 그 애는 여기 있었지만 그 모든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했다. 내가 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말이다. 신기술의 놀라움에 경탄하면서도 한편으로 회의감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스타성이라는 가치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는 희소성이다. 우리가 스타와의 직간접적 접촉에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들이 길 거리에 널린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바로 그 희소성을 훼손한다. 짙은 밤하늘에 단 하나의 별이 밝게 빛나는 순간은 경외롭다. 헌데 그 별이 눈길 주는 곳마다 널려 있다면 과연 어떻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젊고 경력이 일천했을 때는 에이전트라고 순수하게 에이전트 역할만 할 처지가 아니었다. 로드 매니징까지 겸한 적도 많아 직접 스타를 데리고 발로 뛰는 일도 허다했다. 그 시절에는 산타모니카에서 롱비치까지 겨우 몇십 킬로미터 거리의 스케쥴을 맞추려고 레이싱 영화 몇 편을 찍어야 할 처지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2038년 여름이었다. 그 저능아 놈들 - 그 빌어먹을 4인조 보이 밴드 <스위트 카르마>를 두고 하는 말이다 - 공연 시간을 맞춰주느라고 하루에 신호 위반 딱지를 다섯 개나 끊은 날이었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은 그 날의 공연이 <스위트 카르마>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잉카 개구리를 숭배하는 신흔 종교에 빠져 벌어들인 돈을 모두 교주님에게 바친 그들은 다음 날 78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루이지애나 촌구석의 한 농장에서 집단 자살로 영생에 이르는 길을 택했다. 다시 곱씹어봐도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저능아'라는 말도 그 개자식들에게는 아깝다. 뭐? 지들이 21세기의 <듀란 듀란>이 되겠다고?     

     

      당시의 자살 사건은 언론의 큰 이목을 끌었다. 녀석들에게는 (780여명의 다른 신도들에겐 아마 없었을) 열렬한 소녀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리포트>와 <더 선>이 <뉴스위크>와 <르몽드>가 되는 기적의 체험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스타가 멍청한 짓을 하거나 그 결과로 뒈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두 명 이상의 멤버가 한 날 한 시에 뒈지는 일은 (아무리 엔터테인먼트 업계라고 할지라도) 교통 사고를 빼면  극히 드물다. 에이전트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놈들의 몰살 (거친 표현이지만 당시 내 마음 속의 회오리를 정확히 반영한 단어는 이것이었다)은 소녀팬들의 덜 여문 영혼에 큰 울림을 남겼다. 전국에서 모방 자살(Copycat Suicide)이 이어지며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여고생 수십명이 문제의 루이지애나 농장에서 사이비 종교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해서 다시 한 번 <헐리우드 리포트>와 <더 선>이 <뉴스위크>와 <르몽드>의 반열에 올랐다. 역시 에이전트로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 있어 홀리의 경우엔…… 모방 자살이 없기는 했지. 십대들의 불완전한 인식 능력으로 판단하기에도 죽음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킬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애의 죽음에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었어요'식의 말랑한 감수성이 개입할 구석이 없었단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밝고 명랑한 이미지의 소녀 팝스타가 호텔에서 마약을 하다가 (정확히는 스피드볼을 맞다가) 다시 깨어나지 못하다니. 헐리우드 전문 픽서(Fixer)들을 대동하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내가 목도했던 충격적 광경. 젖은 빨래처럼 널부러진 그 애의 공허한 눈동자. 그 앞뒤로 있었던 너저분한 사이드 쇼들이 언론에 나가지 않도록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끈을 동원하여야 했지만 그럼에도 전후맥락은 누구의 눈에도 그리 아름답게 보일 그림은 아니었다. 

     

    - 홀리와 이야기는 잘 나누었나?

      앤더슨씨가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 그랬습니다. 다만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더군요. 

    - 이상한 말?

    - 사고가 있던 그 날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사체험자 같은 소리를 하고 있고요. 미세한 방향 감각? 눈부신 빛의 출구? 까마득한 나락? 그 애가 그런 표현을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 이 친구야. 그 앤 죽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옆 방에 있는 건 그냥 컴퓨터 프로그램이야. 스스로를 홀리라고 믿고 있는. 자넨 지금 프로그램의 목소리가 진짜 홀리의 영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이상하단 건가?

    - 아니 그건 그렇다고 쳐도…… 당신들이 '저 애'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굳이 저렇게까지 만들 이유가 있느냐는 겁니다.

    - 별 걸 다 신경 쓰는군. 일종의 설정이고 스토리야. 저 앤 자기가 홀리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홀리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지 않겠나. 논리 오류를 피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거야.

    - 존 덴버를 비롯해 다른 유령 가수들도 그렇답니까?

    - 나야 모르지. 궁금하면 유니버셜이나 소니 BMG에 가서 물어보게나.

     

      돌아서 나왔다. 더 이상의 이야기가 의미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앤더슨씨가 따라 나와 내 팔을 잡았다.

    - 샘, 내 말을 들어보게. 잠깐 같이 걷지. 워너뮤직그룹에서는 이 프로젝트에 굉장히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홀리가 9회말 역전 홈런이 될 거라고 생각해.

    - 그럴지도 모르겠죠. 인터넷 컨텐츠의 복제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분명 20세기 가수들을 다루는 것보다 유리하긴 할 겁니다. 재료가 월등히 많으니까요. 하지만 9회말 역전 홈런이요? 에이, 그 정도까진 아니죠.  

    - 아니, 그 이상이야. 모르겠나. 잘 생각해봐. 죽은 레전드를 되살려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저 애로는 할 수 있어.  

    - 전 좀 회의적입니다. 어차피 이 유행도 일시적일 것이고요. 결국엔 다시 살아있는 가수들이 주도권을 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두꺼운 안경 안에서 다시 한 번 희미하게 미소지었고 그 늙고 주름진 손으로 나의 늙고 앙상한 손을 잡고 흔들었다.

    - 머지 않아 자네도 알게 될꺼야. 위에서 저 애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품는 이유를 말이야.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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