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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5/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14 11:53

      그 날 이후 나는 다시 크툴루 레코드에 가지 못했다. 앤더슨씨가 더 이상은 나를 부르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부활한 홀리를 상대하는 것이 두려웠던 부분도 있었다. 자연히 나는 은퇴와 에이전시의 처분 문제에 집중하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홀리에 대한 소식은 각종 음악지와 연예지를 통해서만 간간히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내 예상대로 유령 가수들의 신드롬은 채 일 년을 가질 못했다. 재조합이 가능한 컨텐츠는 한정되어 있었고 갈대와 같은 대중들은 쉽게 식상해하였기 때문이다. 11월이 되자 존 덴버의 새 앨범은 빌보드 앨범차트 69위로 내려갔다. 짐 모리슨은 87위까지 떨어졌으며 나머지 유령 가수들은 모두 차트에서 사라졌다. 메이져 레이블들도 다시 관망세로 돌아서 마이클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 등 진행 중이던 대형 프로젝트를 보류했다. 12월을 목표로 앨범을 준비중인 홀리에게는 역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오늘 머리를 감았었나? 잘 기억나지가 않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머리칼은 바짝 마르고 푸석푸석하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어김없이 머리 위에는 제비집이 큼직하게 자릴 잡았다. 제길……. 에이전시를 정리하고 나서도 여전히 이 모양이다. 그땐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이따금 까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아니었는가 보다. 할 일이 없는 백수 신세인 지금도 나는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머리를 감았는지, 양치질을 했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가스를 잠궜는지, 빨래는 돌렸는지, 화장실 물을 내렸는지…… 등등. 아무래도 원래부터 성격의 일부였던 게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평생에 걸쳐 남의 인생과 커리어를 챙겨주는 일을 해왔던 사람이 정작 자기 인생을 돌보는 데는 놀랄만큼 서투르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고 머리를 숙여 샤워기 아래에 들이 밀었다.

     

    *

     

      홀리의 3집 앨범 <Broken Doll>은 그 해 12월 5일에 발매되었다. 빌보드 앨범차트 57위로 데뷔를 했고 첫번째 싱글 ''이 빌보드 싱글차트 94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역대 유령 가수들 중 가장 나쁜 성적표였다. 2주차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앨범차트 89위로 밀려났고 싱글차트에서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진 않았지만 내겐 여전히 감이라는 게 있었다. 시장의 반응이 이렇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프로젝트 홀리(이 가제를 아직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죽은 가수들을 다시 소환해내는 유행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분석이 많았다. 처음에나 신기할 뿐 이내 쉽게 식상해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홀리의 사례에 국한을 하자면 대다수가 전략적 실패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롤링스톤'의 기고가인 팀 애쉬모어는 다음과 같은 아티클을 통해 "한 마디로 타이밍을 놓쳤다"라고 주장했다. 

     

    '(전략) 업계의 관행처럼 죽은 가수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 미처 사그라들기 전에 베스트 앨범을 냈다면 이렇게 참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워너와 크툴루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홀리를 인터넷 속에서 되살리는데 8백만 달러와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그 엄청난 비용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믿기 어려울만큼 생생한 컨텐츠야 물론 높이 평가한다. 단지 여기서의 패착은 한 가지 요약 가능하다. 홀리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대중들이 망각하게 되었단 사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음악 팬의 43%가 홀리의 사망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36%는 질문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 애가 인터넷 생태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음을 복기하자면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앨범 발매 전 3~4개월 동안 우리는 어느 웹사이트에 들어가도, 어느 인터넷 방송에 접속해도, 그 앨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의 결과는 그 과도한 노출의 역효과라고 볼 수 있다. (후략)'  


      12월 18일에는 세부 장르 차트에서조차 홀리의 이름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덕분에 내 마음도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한 영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부디 진짜 그 애만을 기억해주기를!) 다른 한 구석에서 분명 안타까움의 감정도 느끼고 있었다. 두 가지 마음 중 어느쪽이 더 옳다거나 더 강하다고는 쉽게 말할 순 없는 문제였다. 나는 그 애를 친손녀를 대하듯이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던 그 애는 렌더링 캐릭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홀리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구독 버튼도 눌렀다. 나라도 응원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홀리의 영상들은 시장의 차가운 반응을 이미 반영하고 있었다. 그 애는 눈에 띄게 초췌해졌다. 마치 앨범의 실패가 미치는 영향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듯 했다. 가만, 이게 말이 되나? 저 애는 진짜 홀리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하지 않은가. 렌더링된 캐릭터 따위가 앨범 판매량이나 공연 수익이나 트위터에 몇 번 언급되었는지를 신경쓰진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저 스스로의 우울감에 빠져 마르고 병든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맙소사! 이 또한 한낱 연출된 쇼다.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워너뮤직그룹은 과연 이를 통해서 무얼 얻으려는 걸까? 동정? 연민? 멸시? 분노? 고통? 조롱? (계속)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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