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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 프로젝트 베르테르 (6/6)
    낙농콩단/Season 16 (2015) 2018.12.16 12:07

      12월 23일에는 새로운 영상이 전달되었다. 파격적으로 외모를 바꾼 홀리의 모습이었다.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던 사랑스러운 빨간 머리칼을 천하다시피 노골적인 파란색으로 염색하고 귀가 드러날 정도로 짧게 잘랐다. 언뜻 보면 과격한 운동을 하는 남자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몸은 앙상해서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조차 불안해 보였다. 홀리는 쇼파 위에 기대어 있었다. 아! 눈이 풀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눈동자. 테이블 위가 롤링 페이퍼와 비닐 백과 파이프 따위로 지저분한 것도 당연했다. 그 뒤로 넓고 쾌적한 거실과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보였다. 나는 그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꿈에서라도 잊을 수가 없었다. 파리의 윌슨 오페라 호텔. 홀리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그 장소. 아주 센 주먹에 턱을 한 대 얻어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넋이 나간 듯 영상을 바라보다가 크툴루 레코드에 전화를 걸었다. 앤더슨씨를 바꾸라고, 당장 그 자식을 대령하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통을 쳐도 시원찮을 판에 나도 모르게 저자세가 취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앤더슨씨의 비서는 당당하게 말했다. 사장님은 출타 중이시라고.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무는 내 눈 앞에서 홀리는 비틀거리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해 시원찮은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겠노라 선언했다. 짐 모리슨의 'Light My Fire'였다.

     

    You know that it would be untrue 

    You know that I would be a liar 

    If I was to say to you 

    Girl, we couldn't get much higher 

     

    Come on baby, light my fire 

    Come on baby, light my fire 

    Try to set the night on fire  

     

      멋지군! 유니버셜과 협약을 맺어 '진짜' 유령 짐 모리슨까지 깜짝 출연 시킨다면 정말 역사상 최고의 크리스마스 이브 이브가 되겠어.

     

      바로 그 순간에 영상 속에서 한 남자가 홀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물론 짐 모리슨은 아니었다. 나이가 꽤 들어보였다. 사실 노인이었다. 그는 소변색 액체로 가득찬 주사기를 꺼내서 테이블 위의 다른 주사기와 바꿔치기를 하였다. 한 눈에 봐도 꽤 많은 양이었다. 이미 이것 저것 좀 잡다하게 섞어 피운 탓인지 제 정신이 아니었는지 주사기가 바뀐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의 히로인은 그게 그냥 헤로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게 스피드볼임을. 노래를 멈추고 몽롱한 표정으로 팔에 고무줄을 묶었다. 주사기 속의 액체가 부드러운 살을 뚫고 그 애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잠시 후 그 애는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발작을 하고 발작을 하다가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 짓을 13분 동안 반복했다. 그 사이에 영상의 뷰어 수는 13만 명에서 2,956만명으로 늘어났다. 트위터 따위를 타고 '꽤 볼만한 게 있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5초 후 뷰어는 다시 4억 5,697만명까지 늘어났다. 이 행성에 존재하는 사람들 스물 다섯명 중 한 명 꼴로 이 영상을 보고 있단 뜻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더 선>이 <뉴스위크>, <르몽드>가 되는 건 여기에 비하면 기적도 아니었다. 이윽고 홀리는 물 속에서 막 건져낸 미역처럼 축 늘어졌다. 눈을 뜬 채로 말이다. 텅 빈 눈동자 속에 의미없이 샹들리에가 반사되어 맺혔다. 나는 정확히 그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 되어버릴 그 장면을, 정확히 그 자리에서 목격한 사람은 나와 내가 대동하여 데리고 갔던 전문 픽서들 밖에 없었다.

     

      노인을 적당한 난장판을 유지한 채 자신의 흔적만을 정리했다. 방금 홀리가 부르다가 만 바로 그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면서. 'Girl, we couldn't get much higher……, higher, higher.' 나는 그 노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더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감지 않은, 혹은 감는 걸 잊어버려 사방으로 뻗친 머리. 방금 자다 일어나 침대에서 바로 나온 것 같은 부시시한 머리. 매일 아침 출근 길에 남들 인생을 챙겨주기 위해 집을 나서며 엘레베이터 거울 안에서 항상 발견하게 되는 그 빗질 안된 머리.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유령 가수 홀리의 3집은 재평가를 받을 것이다. 23일과 24일 양일간 총 69억명이 문제의 영상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유례없는 빌보드 역주행이 시작될텐데 어쩌면 2주 안에 앨범차트 10위 안에는 가뿐하게 들어갈지 모른다. 싱글차트에서 관건은 정상을 정복하느냐의 여부일 뿐 최상위권 랭크는 당연할 것이다. 플래티넘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홀리는 존 덴버도 버디 홀리도 아니었지만 3일 후 부활했을 때는 어쩌면 그들보다 더 유명한 전설이 되어있을 것이다. 짐 모리슨과 재니스 조플린을 합쳐도 이만큼 강력한 상징은 아니었다. 내 경력과 명예를 걸고 장담한다. 더 이상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진 않았지만 내겐 여전히 감이라는 게 있었다. 시장의 반응이 이렇다는 건 정말 정말 정말 좋은 징조다. (끝)


    시즌 16, 에피소드 194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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