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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낙농콩단 머리말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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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제 소개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서울 출생이고 혈액형은 AB형입니다.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다'라는 멍청한 속설과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과 경향을 좌우한다는 싸이월드적 믿음과 평생을 맞서 왔습니다.) 별명은 '오타의 마법사'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의 오타율 때문에 주위의 놀림과 핀잔과 질책을 벗어날 날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서강대학교 화학공학과/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 진학하여 화공생명공학(세부전공: 나노바이오공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연구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사실 어릴 적 꿈은 과학이나 공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LG 트윈스 주전 유격수 (1990년 어린이 회원, 1994년 청소년 회원); ② 'The Simpsons (FOX)' 혹은 'Saturday Night Live (NBC)'의 헤드 라이터; ③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터; ④ FBI 스페셜 에이전트 ('The X-File''의 영향);  백악관 부부부수석 ('The West Wing'의 영향);  달변의 변호사 ('The Practice'의 영향); ⑦ 하루에 빵을 세 번 굽는 베이커리 주인 (아마도 세 번이 중요함); ⑧ 제다이.

  당연히 그중 어느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대신 고약한 화학약품들이나 만져가며 당최 눈에 뵈지도 않는 나노 타령이나 하고 있습니다. 나노고 나발이고! 멀쩡히 눈에 보이는 세상도 똑바로 살기 어려운데 심지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니! 실로 딱하고 한심한 일 아닙니까. 게다가 어렸을 적의 꿈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에 좌절감이 들었고 그러다 홧김에 쓰게 된 것이 콩트입니다. (코미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나노과학자가 되었다면 어쩌면 꿈을 이룬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루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나서 크고 작은 글 장난에 골고루 손을 대어 보게 되었습니다. 낙서와 농담과 콩트와 단편 (낙농콩단)'이라는 이름으로 이 블로그에 쏟아내고 있는 잡문들이 바로 그 애물단지들입니다. 


  먼저 용어의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낙서>란 낙서 축에도 끼지 못한단 뜻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농담>이란 농담 축에도 들지 못한단 뜻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콩트>란 그저 콩트에 근접하길 노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단편>이란 단지 꿈처럼 아득한 희망이란 뜻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낙농콩단>이란 낙농업과는 무관하며 당연히 공업단지와도 무관한 것입니다.

  재주가 없다. 내력도 없다. 배운 적도 없다. 조잡하다, 산만하다, 문장에 너무 장난을 친다 등의 평가로부터 한 번도 자유롭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저도 조잡하지 않게 쓰고 싶습니다. 산만하지 않게 쓰고 싶습니다. 이래 봬도 본래 꽤 진지한 사람이라 장난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데 막상 써놓고 보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니 미칠 노릇입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도 십 수 번 읽어봤고, 비슷한 내용의 다른 서적도 닥치는대로 섭렵을 했으며, 심지어 한약까지 먹어봤는데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도 안되니 아무래도 이쯤이 한계인가 합니다. 다만 스스로 문제를 알고 있으니, 그건 그나마 다행은 다행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재주 없음을 모르면 참 그 꼴 또한 흉할 것이 분명할 테니까요. 하여간에 워낙 수준이 낮고 형편없어 읽는 이에게 오한, 발열, 기침, 가래, 구토, 흉통, 발진, 건선, 습진, 두통, 치통, 관절통, 근육통, 소화불량, 식욕부진 등을 유발한 가슴 아픈 전례마저 있습니다. 낙서가 진짜 낙서가 되고, 농담이 진짜 농담이 되고, 콩트가 진짜 콩트가 되고, 단편이 진짜 단편이 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 블로그의 방향은 (TV 키드답게) 몇 가지 TV 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로드 스털링의 'The Twilight Zone (CBS, 1959~1964; 1985~1989),' 레슬리 스티븐슨의 'The Outer Limits (ABC/Showtime/SyFy, 1963-1965; 1995~2002),'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Amazing Stories (NBC, 1985-1987)'같은 느낌을 내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작품들은 모두 코미디, 사이언스 픽션,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등 여러 장르가 뒤섞인 앤솔로지 시리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시즌 단위 발행 형식이나 장르 구분 역시 전술한 작품들에 기준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이 블로그의 메뉴판이 있고요. 기타 제가 사랑하는, 그리고 제가 글을 쓰는데 영향을 미친 문화적 레퍼런스들 또한 별도의 목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블로그가 일종에 서커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자에겐 각자만의 서커스 방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서커스 말입니다. '태양의 서커스, 퀴담' 같은 거창한 서커스가 아니라 작은 마을과 더 작은 마을을 돌며 허름한 천막을 치고 공연하는 유랑극단의 서커스말입니다. 마술도 하고 차력도 하고 만담도 하는. 곡예를 하고 춤도 추는. 분칠을 한 어릿광대를 내보내 애교스레 모자를 뒤집어 내밀어 동전을 구걸하게 하는. 그 모든 행위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듯이 나를 팔고 볼 거리를 팔아 유랑의 원천을 마련하는 것이 블로그라고 생각합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뭐 별 거 아니라는 얘기겠지요.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블로그의 정의' 따위를 두고 몇 년씩이나 싸워가며 논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게 뭐 심각한 거라고 '블로그에 글 쓰는 법' 따위가 몇 년 내내 메타 블로그에서 통하는 글감이 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그저 재미있는 서커스일 뿐입니다. 그저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 일이 없다면 내일도 어느 곳엔가 말뚝을 박고 천막을 세우며 아코디언 생소리로 덩실덩실 흥을 돋울 겁니다. 매일 좋은 날만 이어지진 않겠지만 아무렴 뭐 어떻습니까. 하는 데까지 한 번 해보는 거죠.

 

(2000년 07월)

최초 작성: July 27, 2000

1차 수정: July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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