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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4)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4.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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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이브. 빈 방에서 홀로 외로운 저녁을 먹으며 즐기기에 적절치 못한 영화들이 많겠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신작 '비하인드 더 캔들라브라 (한국 개봉명: 쇼를 사랑한 남자)'만한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감히 장담하자면 고든 게코와 제이슨 본이 사랑을 속삭이는 영화보다 연말연시에 더 어울리지 않는 영화가 있다면 '님그강' 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 (註1)

 

  이쯤해서 리버라치의 화려한 쇼맨쉽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기를 달궈주길 소망했던 것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고백해야 하겠다. 아마도 나는 무슨 NBC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송하는 '마이클 부블레의 크리스마스 인 뉴욕'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대 위의 리버라치가 아니라 무대 뒤의 리버라치를 조명한다. 널리 알려졌던 그의 모습 대신에 숨겨진 감춰진 연인의 회고를 따라간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리버라치의 젊은 연인 - 스콧 토슨이라는 남자가 바로 이 작품의 원작이 된 'Behind the Candelabra'의 작자인데,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작품의 무게 중심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던 시대적 제약으로 인해 리버라치가 이중 생활을 영위했어야 했다는 부분에 실린다. 극적 흥미를 돋우는 소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리버라치와 스콧의 러브씬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고든 게코와 제이슨 본의 컴비네이션이다!) 루즈한 암시만으로도 충격이 상당하다 (註2). 사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기도 힘들다.

 

  전반적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답게 정교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역시 가장 놀라운 것은 두 배우의 연기다. 강인하고 진중한 이미지가 강했던 70세 노배우 마이클 더글라스가 화려한 쇼 엔터테이먼트의 황제로 분한 것은 놀랍고 또 놀랍다. (그가 션 헤이즈 뺨 치는 능청으로 웃고 떠들고 노래할 수 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註3) 연인의 곁을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맴도는 맷 데이먼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 작품에서 맷 데이먼은 소년에서 청년을 거쳐 중년까지 연기하며 얼굴이나 몸매가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방부 상태라고 해도 좋을만큼 내내 그 모습인 슈퍼스타 리버라치의 모습과 극적인 대비가 된다. 흡사 젊은 스콧에게만 자연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출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가 결코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요소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관계의 변천과 그 과정에 수반되는 감정의 기복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발산하거나 서서히 감쇠한다. 셀러브리티의 가쉽과 이중생활이라는 밝고 소란스럽고 화려한 요소에 작품이 함몰되어 버리기 쉬운 순간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의 단단한 연기는 이 또한 시간이 사랑을 좀먹어가는 이야기들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2014년 12월)

 

(註1) 올리버 스톤의 1987년작 '월스트리트'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했던 주인공. 이 작품으로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註2)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은 스물 여섯살 차이지만 실제 리버라치와 스콧 토슨은 마흔 살차이였다고 한다.

(註3) NBC의 히트작 'Will & Grace'의 캐릭터 중 하나인 잭 맥파랜드를 연기한 배우. 동성애자의 스트레오타입과 같은 잭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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