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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특별한 플레이리스트를 가진 소녀

낙농콩단/Season 16-20 (2016-202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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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짝 퀴즈! 다음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사실은 뭘까요? 가끔 사람들이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점? 아니면 그 노랫소리가 내게는 들린다는 점? 아니면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감스럽게도 음치라는 점? 


  말해 입 아프지만 셋 다 문제랍니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남자들이 안드레아 보첼리나 조쉬 그로반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란 말이죠. 대개는 들어주기 힘들 정도예요. 아주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는 에미넴과 손드하임 뮤지컬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처럼 괴상하게 들리거든요. 물론 인정합니다. 우리 여자들이라고 상황이 조금 나은 것도 아니긴 하죠. 그래도 여자들은 대개 실제로도 넓은 음역을 커버할 수 있다 보니 속으로 부르는 노래도 옹알이에 웅얼거림과 거리가 멀기는 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음치의 분포는 꼭 성별을 가리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우리 여자들의 특유의 문제가 있죠. 이름하여 ‘디바 병.’ 이런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나 셀렌 디온에 다이얼을 맞추고 시작한다는 사실이 첫 번째 문제고 이미 자기 음역대를 이탈한지 오래임에도 그 기구절창할 오버드라이브를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 번째 문제예요. 실제 밖으로 소리 내어 노래를 할 때처럼 자기 귀로 듣지 못하니 얼마나 심각하고 형편없고 들어주기 힘든 상태인지 모르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제 귀에는 들려요. (아마도) 제 귀에만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 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할 노릇인 거예요.


  이 능력은 어느날 갑자기 나를 찾아왔어요. 코믹북에 나오는 것처럼 거미에 물린다거나 번개에 맞았다던가 방사능에 노출된다던가 등의 우연한 계기 따위는 없었어요. (음…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요.)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릴 때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그게 영향이 있을진 모르겠네요. (몬테소리 교육 경험이 있는 분들의 많은 제보 바랍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부터 다른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처음 인지한 시점은 열네 살 혹은 열다섯 살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엔 그냥 어디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학교 수업 시간에 확실히 알았죠. 라디오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다가 제가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고요. 그중에 난생처음 듣는 노래를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나중에 알고 보니 ‘브라이언 하일랜드’의 ‘이치 비치 티니 위니 옐로 폴카-닷 비키니(Itsy Bitsy Teenie Weenie Yellow Polka-Dot Bikini)’라는 노래더군요 - 정말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답니다.) 비로소 저에게 비밀스러운 능력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물론 마지막으로는 남들 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해 했었지요. 저는 현실에서 저와 비슷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어요. TV에서는 본 적이 있어요. 제 이름도 조이인데 저는 J를 쓰는 조이거든요. 그 TV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이 조이인데 Z를 쓰는 조이였고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노래로 들을 수 있었어요 (註1). 과연 이것을 능력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능력이 뭐 별 거인가요. 남들에게 없는 걸 제가 갖고 있으면 그게 바로 능력이죠. 

 

*

 

  처음엔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어요. 물론 그렇죠. 다른 사람들의 속내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잖아요. 가족들이나 친구들 앞에서야 조금 죄책감이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출퇴근 길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어요. 아직도 그래요. 자, 한 번 보여드릴께요. 저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의 중심 유니언스퀘어를 지나가는 중이에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어디 봅시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에는 집중해서 타겟을 정해야 해요. 말하자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비슷하죠. 저는 스톡턴 스트리트를 따라 메이시스 방향을 보고 섰어요. 복동쪽에서부터 걸어오는 신사분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요. 저 앞에 약 25 피트 정도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저 사람 말이에요. 나이는 대략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요. 약간 곱슬인 붉은빛 머리칼은 이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고 수염도 깔끔하게 다듬었네요. 옷차림을 보면 브룩스 브라더스 캐시미어 코트 안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아래에는 검정색 울 플란넬 트라우져를 입었고요. 어머, 구두도 좋은 거예요. 조지 클래버리의 해리 마이클 블랙 옥스포드 슈즈로군요. 어쩌면 남자분들은 궁금하실 거예요. 어떻게 그걸 다 찾아내지? 600만불의... 아니 소머즈처럼 시력이 좋아서 상표가 보이기라도 하나? 하지만 이건 슈퍼능력이 아니에요.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할 수 있어요.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능력이 아니죠. 하지만 남들이 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서는 저 밖에 없죠. 그러니 이건 능력입니다. 잠시만요. 남자가 부르는 노래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가까워지면, 옳지, 15 피트, 10 피트… 뭐지? 퍼프 대딘가? 메탈리카? 아, 알았어요.


  앤 머레이의 ‘I Just Fall in Love Again’이네요.


  자, 아셨죠? 정말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셨죠? 남자들이 속으로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괴상하게 들리는지. 메탈리카와 앤 머레이 사이에는 아마존 강의 가장 넓은 폭만큼의 거리가 있지 않겠어요? (참고로 가장 넓은 구간의 폭이 약 7 마일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구분에 애를 먹었다는 것만 봐도 마음의 노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 수가 있는 거죠. 남자는 이제 저를 지나쳐 갔어요. 점점 노랫소리가 크고 분명해지다가 이제 서서히 멀어지고 있어요. 제 곁을 지나갈 때 다가왔던 좋은 향기도 함께 멀어지고 있고요. 아마 딥디크의 ‘롬브르 단 로(L’Ombre Dans L’Eau)’인 듯 해요. (이 또한 슈퍼 능력과는 무관해요. 그냥 알 수 있는 거예요.) 아무튼 잘 꾸미고 다니는 남자분이네요. 지금 흥얼거리는 노래가 본인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의외이기는 했어요. 너무 여성적이고 또 감상적인 노래이고… 또 겉모습으로 보아 예상하기 힘든 선곡이잖아요. 아마 1970년대 후반쯤의 노래일텐데… 예, 맞네요. 지금 검색해보니 1979년 곡이라고 나오네요. 아마 저 남자분 태어날 때쯤 노래일 것 같은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제 친오빠는 1980년생인데 프랭크 시나트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꿰고 있거든요. 몇 년도 앨범이 어쩌고 저쩌고, 녹음 중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고, 누구랑 친했고, 어떤 호텔을 좋아했고, 어떤 술을 즐겨 마셨고… 뿐만 아니라 그 시절 함께 활동했던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속속들이 알아요. TV 시리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에 보면 배우 에릭 스맨다가 연기한 그렉 샌더스가 그런 설정의 캐릭터이잖아요. 자기보다 앞선 세대의 라스베가스의 역사에 해박한 걸어다니는 랫팩피디아.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음악 취향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 한 번 더 해봅시다. 이번에는 애플 스토어 방향으로 약 40 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어오는 숙녀분이 궁금해졌어요. 와, 멀리서 봐도 빛을 내는 느낌이라 골랐어요.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여자가 봐도 정말 아름다워 반할 것 같아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예전에 제가 여자와도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데… 아무튼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으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아무튼 저 아가씨는 20세기 단편소설 스타일로 표현하면 ‘수줍으면서도 쾌활한 인상이다’이고요. 21세기 단편소설 스타일로 표현하면 “화려하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아마 이 근처가 직장이고 회사에 출근하는 길인 것 같아요. 어깨에 프라다 워크백을 메었는데 아마도 사피아노 가죽으로 된 모델이 아닐까 싶어요. 옷차림은 연한 터키 옥색 긴 소매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목 부분에 독특한 반 뼘 크기의 카라가 있어요. 그리고 소매 끝에는 손목 부분에 단이 들어가 살짝 잡혀 있고요. 아래에는 발목 위로 살짝 더 올라오는 길이의 검정색 스트레이트 팬츠인데 아마 울과 엘라스테인 소재인 것처럼 보여요.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이네요. 무려 이 거리에서도 알아보겠어요. 무척 고급스러운 검은색 힐인데 아랫면으로 선홍색으로 되어 있어서 뒤에서 보면 너무 예쁜 거 있잖아요. 저도 너무 갖고 싶어 몸이 다 떨리네요. 자, 잠시만요. 이제 충분히 가까워져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들릴 것도 같은데 주위에 잡음도 있고 혼선도 있고. 조금 더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옳지, 15 피트, 10 피트… 뭐지? 고음 롤러코스터가 이어지는데? 캘리 클락슨? 비욘세? 아, 알았어요.


    바로 ‘Dance Me to the End of Love’ 이네요. 레너드 코헨.


  자,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랑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매칭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답니다. 그리고 또 제 말이 맞죠? 레너드 코헨이 비욘세처럼 들린다니. 이처럼 여자분들이 속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래와 장르와 상관없이 파워 발라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니까요. 다 경험자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요.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을 속으로 흥얼거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점점 더 피치를 올리다보니 끝내 휘트니 휴스턴 뺨을 후려치더라고요. (아… 생각해보니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네요.) 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며 노래도 향기도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음악 취향도 훌륭하고 (물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출근길에 ‘Dance Me to the End of Love’를 흥얼거리는지 의문은 있지만) 구두도 훌륭하지만 향기도 훌륭하네요. 이건 에르메스의 ‘트윌리 오 드 퍼퓸(Twilly d'Hermès)’이에요. 백 퍼센트 확신합니다. 저도 있거든요. 진저, 튜베로즈, 샌들우드. 어느 패션잡지에선가 올해의 향수 중 하나로 꼽았더랬죠. 맙소사, 따라가서 작업이라도 걸고 싶은 마음이에요. 점점 멀어저가는 선홍색 구두 밑창의 잔상에 마음이 다 아픕니다. 하지만 참아야죠. 지금 저는 얼마 전에 남자 친구와 멀어지면서 지금 일종의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거든요. 정신적으로 회복해야 하는 시기라 무리하면 안 될 것 같네요.


  한 라운드 더 가볼까요? 여긴 샌프란시스코 시내이고 특히 유니온스퀘어 부근이잖아요. 노숙하시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단 뜻이죠. 그 분들의 인생 사연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이 궁금할 뿐이에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세요?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늘어져 계신 저 남자분을 보죠. 노숙하시는 분들의 음악 취향을 궁금해할 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가장 편한 점은 그분들이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위치를 잡고 주파수를 맞추기가 상당히 간편하죠. 어디 보자, 저 아저씨는… 옙, 주무십니다. 아무것도 안 들리네요. 그러면 반대쪽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에게 가보죠. 꽤 따뜻한 날씨인데도 두툼한 점퍼를 입으셨어요. 밤에 기온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여 대비를 하신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저 분이 지금 속으로 부르고 있는 노래는 어디보자… 옙, 이 분도 주무십니다. 앉아서 주무시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분만 더 가보죠. 꽤 젊은 남자분인데 머리칼에는 노란 빛이 돌고 수염은 몇 달은 깎지 않은 듯 무성해요. 지저분한 붉은 체크 무늬의 셔츠에 펑퍼짐한 군청색 스웨트팬츠를 입었어요. 저 분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확실해요. 왜냐하면 도너츠를 한 손에 들고 있거든요. (아마 도너츠를 먹으면서 자는 사람은 없겠죠?) 좋아요. 조금 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드럼 롤 플리즈. 그래서 저 분이 지금 흥얼거리는 노래가, 크리스마스 캐롤 같기도 하고 버거킹 징글 같기도 하고… 아, 알았어요. 아…


  하이든 교향곡 103번이네요. (고로 드럼 롤은 여러분이 주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註2)  

 

*

 

  사실 몇 년 전만해도 이렇게 인파로 북적이는 공간을 돌아다니는 건 제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어요. 사람들 각자의 마음 속 노래가 저에게로 넘어 들어와 몹시 고통스러웠거든요. 급기야 오랫동안 상담 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날려먹은 돈만 모았어도 어쩌면 시내 중심가 가까운 쪽에 렌트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유니언 스퀘어? 당연히 옛날에는 근처에도 오지 않았어요. 특히 여기서부터 피어 39를 거쳐서 골든 게이트 브릿지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잖아요. 온전히 정신을 불잡고 있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요즘 노래, 옛날 노래,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미국 노래, 영국 노래, 프랑스 노래, 이탈리아 노래, 그 밖의 다른 언어로 씌여진 노래, 온갖 것들이 제 머릿속을 파고들어서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다만 옛날엔 그런 부분은 있었어요. 그 시기에 유행하는 노래가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 번은 애비뉴 하나를 따라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똑같은 노래를 생각하고 있던 적도 있었답니다. 마치 돌림노래처럼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두가 같은 행복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대도 나름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 시절 같으면 TV에 나오는 Z로 시작하는 조이처럼 누군가 속마음을 어떤 노래로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모두가 함께 반응할 수도 있었겠죠. 주위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받아 같은 노래를 합창하고 맨디 무어가 정해준 예쁘고 섬세한 안무에 따라 동시에 연기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죠. 지금은 취향이라는 것이 마이크로 단위로 나누어져서 단 두 사람만 모여도 각자 듣는 노래가 다르잖아요. 사람이 열 명이 있으면 열 명 모두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가 다르죠. 아시다시피 여기에는 기술적 진보도 한 몫을 했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수천만곡의 카탈로그와 수백만 개의 플레이리스트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잖아요. 이제 사람들은 그 시점에 가장 사랑받는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 자기가 가장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요. 심지어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좋아할만한 노래를 추천해주기까지 하고요.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실은 제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거든요. 특히 구체적으로는 고객의 미래 필요를 예측하고 적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저희 회사가 개발하는 서비스는 알고리즘을 통해 소울 메이트를 찾는 어플리케이션이에요. 다들 아시다시피 ‘틴더(Tinder)’니, ‘범블(Bumble)’이니, ‘그라인더(Grindr)’니, ‘힌지(Hinge)’니, ’이하모니(eHarmony)’니 기타 등등 가벼운 연애 상대를 찾는 앱은 많지요. 하지만 저희의 접근 방향은 조금 달라요. 진정으로 통하는 친구를 앱으로 찾아보자는 거죠. (물론 좋은 친구가 최고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 뭐 언젠가 데이팅 앱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대신할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저 순수하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을 찾아 서로 연결해주는 거죠.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인종과 국적과 경제력과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 않고. 맞아요. 그래서 저희의 가장 큰 고민은 정보 수집에 대한 거예요.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정직한 동물은 아니잖아요. 유저에게 직접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도록 권유하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쓰는 법이 없어요. 알고 하는 짓이든, 모르고 하는 짓이든, 자기 원하는 패가 나오도록 부정한 카드 덱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그래서 설문지를 쓰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어요. 백 퍼센트 솔직하게 답하는 일이 드물죠. 따라서 설문의 난이도와 양에서 전문 심리 검사를 방불케하는 수준으로 올리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에요. 결국 유저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어 나오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최대한 그러모아야 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누가 그걸 엿보고 접근하게 해주겠어요?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무슨 옷을 입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무슨 물건을 사는지, 어떤 글을 읽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심지어 무슨 향수를 쓰는지... 이 모든 걸 다 알아야 저희가 하려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거대 테크기업을 건드리지 않고, 또 유저의 프라이버시 이슈를 만들지 않으면서 과연 가능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정말 많습니다. 당장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 저희는 프로파일러처럼, 때로는 도박장 딜러처럼, 때로는 카니발 심령술사처럼 유저를 어림잡아 읽어내는 방향으로 계속 우회를 하고 있는 거고요. 그러다 한계에 부딪히면 40% 특별 할인 코드를 뿌리는 중이에요. 저는 앞으로가 정말 걱정이 되는데 이 회사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태평천하인지 모르겠습니다.


*

 

  사실 직장에서 저의 능력을 쓰는 것은 조금 불편한 일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매일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죄책감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그게 또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 무심코 들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경우 완전한 개인 취향을 읽어낸 것이 아닐 확률도 있어요. 누구나 어떤 노래에 갑자기 꽂혀서 한동안 계속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반면에 직장 사람들은 매일 여러 번 마주치기 때문에 조금 더 정확하게 취향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우리 회사 하드웨어팀 기술고문 고바야시 마루(Kobayashi Maru) 박사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이 백발의 일본계 할아버지는 워낙에 무뚝뚝하고 말씀이 없으셔서 직원들이 모두 어려워합니다. 늘 장비 테스트 룸에 혼자 계셔서 그 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분의 사무실 앞을 지나가다가 그 분이 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었단 말입니다. 맨 처음에는 그냥 장비 돌아가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두아 리파의 ‘IDGAF’란 말입디다. 발음이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분명히 그 노래가 맞았어요. 두아 리파라고요? IDGAF? OMGWTF! 제 늦둥이 남동생이 이 사실을 알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부머가 두아 리파를 안다고? 좀 짱인데?” 하지만 이 분이 두아 리파만 아시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어떤 날은 찰리 XCX, 어떤 날은 도자 캣, 어떤 날은 메건 더 스탤리언, 어떤 날은 할시, 어떤 날은 카디 비의 히트곡을 흥얼거리고 계십니다. 그게 문제라는 뜻은 아닌데 어쨌든 연세가 일흔이 넘으셨다는 점잖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들이라기에는 조금 의외잖아요. 젊은 사람들도 부르기 쉬운 노래들이 아닐 것 같은데 가사를 틀려가면서 열심히 (속으로) 따라 부르는 모습에 약간의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기는 했어요. 그 사실로 그 분에 대한 저의 평가가 달라졌다던가 하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이런 방식으로 그 분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조금 다른 느낌의 사례도 있어요. 저희 CEO 드류 P. 위너 (Drew P. Wiener)씨 말이에요. 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는 샌프란시스코이고 저는 테크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회사 사장님들과는 다르게 괴짜들이 많단 뜻이죠. 하루 종일 전동 스케이드 보드나 이륜 보드를 타고 회사를 돌아다닙니다. 그렇게 회사가 넓냐고요? 천만에요. 채 2천 제곱미터도 안됩니다. 그런데 가장자리는 모두 곡면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자기가 스케이드보드를 타려고요. 자기 방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요. 벽면을 타고 올라가 곡예를 부르다가 자빠지면 벽면 가까이에 위치한 직원 누군가의 책상 위로 엎어지겠죠. 그런데 엎어지면 털고 일어나서 또 타요. 헤헤헤 웃으면서 같은 짓을 반복해요. 완전 철딱서니 없지 않나요? 우리 회사 직원들이 하는 말이 있죠. “위너 씨는 바트 심슨의 몸뚱이와 스튜이 그리핀의 주둥이를 합친 남자다.” 요약하자면 입만 살아있는 어린애라는 거죠. 이런 남자의 속마음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물론 궁금하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일단 이런 행동으로 보면 음악 취향이 어느 쪽에 가까울지 대충 짐작이 가기는 하잖아요. 반항적인 십 대를 보내고 저항적인 이십 대를 보낸 이들. 이제 자기들이 말하던 ‘기성세대’의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자신들이 젊고 또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을 하는 이들. 저희 막내 삼촌이 딱 이 프로파일에 맞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위너 씨가 자신의 십 대 시절을 함께한 70년대-80년대 록을 좋아할 거라 짐작했지요. 저희 막내 삼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학창 시절 록밴드를 하겠다고 설쳤던 유형’이었어요. 지금은 군인처럼 짧게 깎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꼬불꼬불한 머리칼이 무려 엉덩이까지 내려왔었거든요. 일 년 365일 가죽점퍼 아니면 야구점퍼를 입고 다녔고요. 동네 친구들을 모아다 밤늦게까지 차고에서 연주를 했고요. 벽에는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보스턴(Boston),’ ’포리너(Foreigner),’ '배드 잉글리쉬(Bad English), ‘REO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 ’파이어하우스(FireHouse),’ ’키스(Kiss)’ 중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브로마이드를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 머리를 한 가죽점퍼 차림의 남자 대여섯 명이 오밀조밀 모여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그림의) 걸어 놓고 살던 세대이기도 하고요. 위너 씨에게도 그런 느낌이 있단 말이에요. 베이 에어리어에서 좌충우돌하다 자수 성가하였고, 미혼에 화려한 여성 편력에 평생 피터 팬처럼 살고 싶어하고, 직장 사무실 안에서 전동보드를 타고 다니고… 견적이 대충 나오잖아요. 

  
  저는 호기심이 많은 소녀이기 때문에 궁금한 건 참지 못해요.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안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괜히 복사를 하는 척하면서, 혹은 시리얼 바에 간식을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예, 맞습니다. 복지 차원에서 사내에 시리얼 바가 있습니다) 일부러 (에어팟 없는 상태로) 위너 씨의 방 앞이나 그가 사용하는 회의실 앞을 지나다니고는 했어요. 혼자 있을 때, 아니면 회의 중일 때, 그가 속으로 흥얼거리는 ‘More Than a Feeling’이나 ‘Can't Fight This Feeling’나 ‘We Built the City’가 들려오기를 기대하면서요. 아! 맞다. ‘저니(Journey)'도 있죠. 그 시절에는 무슨 전염병이라도 돌았는지 그 세대 남자분들은 ‘'Don't Stop Believin’의 전주만 나와도 몸이 달아오르더군요. (윌 슈스터 선생님처럼요.) 위너 씨 역시 책상 위에 올라가 입 연주와 에어 기타로 'Anyway You Want It'을 열창하며 자기만의 세상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상상을 하고도 남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제가 여러 번 캐치해 낸 이 남자의 속마음 플레이리스트도 전혀 의외였어요. (이제 다들 짐작하시겠죠? 이 이야기에서 계속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잖아요. 이쯤 되면 패턴을 읽어주셔야 합니다.) 그가 방에 혼자 있을 때 속으로 부르는 노래는 ‘Send In the Clowns,’ 아니면 ‘Not While I’m Around’였습니다. 혹은 비슷한 유형의 노래들이요. 오! 주여! ‘주둥이만 살아있는 어린애’의 마음 속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Broadway Album>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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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남자친구와 자주 헤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능력 때문이었어요. 경험에 따르면 남자들은 데이트 하는 동안에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남자의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나름 결정적인 로맨틱한 순간이었는데 남자는 머릿속에 라디오를 틀어 놓았더라는 사실이 제게는 받아들이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대도시로 건너와 이런 , 저런 만나보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만났고 (중간에 차례의 크고 작은 냉각기를 거쳤지만)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초콜렛 광고에 나올 법한 남자아이였어요. 곱슬거리는 금발에 종종 발그레 물드는 뺨을 가진 장난꾸러기였어요. 아이의 목에 코를 가져다대면 진저에 베르가못을 인퓨즈한 향기가 났죠. 직업도 저런, 플로리스트에요. 자기가 직접 매만진 꽃다발을 가져다주며 수줍어할 때는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저의 손등 위를 자기 손으로 가만히 감싸 덮어줄 순간 아이의 마음속 플레이리스트를 제가 들을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쩌면 우린 진작에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죠. 처음 제가 발견한 노래는 이런 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옛날 유로그룹스냅!’ ‘I’ve Got the Power’ 중간 중간에 삽입되더군요. 영화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캐리의 권능이 발현되는 순간에 등장하던 노래 말이예요.

매번 나는 빌어먹을 그 방으로 올라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놈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
어머 대박 돈다발 봐. 빗자루라도 있어야겠어.
싹 다 죽여버리고 무덤 안에 던져 넣어.
올라, 올라, 올라, 올라, 그 방으로 올라가.
놀라, 놀라, 놀라, 놀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
머니, 머니, 머니, 머니, 빗자루로 쓸어 담아.
넣어, 넣어, 넣어, 무덤 안에 던져 넣어.

  처음엔 혼선인 알았습니다. 그는 몹시 다정하고 섬세한 남자라 (아 글쎄, 일도 취미도 꽃꽂이라니까요) 이런 유형의 노래를 들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아주 조용한 곳에 둘이 있을 때에도 비슷한 노래들을 들을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된 브라운관 TV 안테나 신호를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괜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확인을 해보았지만 결코 혼선은 아니었습니다. 키스를 때면 더욱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렸지요. 남자의 마음속 플레이리스트 대부분이 송이었어요. 그것도 평범한 랩 송이 아니라... 갱단이 마약상을 쏴죽이고, 돈을 챙겨 도망가다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고,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다 마약에 취하고, 그러다 여자들을 때리거나 겁탈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도망가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수백 단어짜리 가사에 내용은 잘 모르겠, 맞아요. 각자의 취향이 있는 건데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분명히  취향은 아니었고요. 남자와 계속 무사히 데이트를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해할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부모님도 만나 같이 식사를 했었거든요. 대학 교수이고 문화적 교양도 대단한 분들이었어요. 가장 감정적으로 고양된 순간에 밖으로 새어나오는 노래가 푸치니나 베르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리아라면 다했죠.

 

  이쯤해서 고백할 일이 있어요. 능력은 (I’ve Got the Power!) 대부분이 수동적인 개념 위에서 동작합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은 능동적으로 움직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이의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를 수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플레이리스트를 다른 이의 마음 속으로 밀어넣는 것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이언스 픽션 영화를 보면 간혹 미래에는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방송이나 광고가 맞춤형으로 전송되는 광경이 나옵니다. 어느 작품에서는 그걸니들캐스트(Needlecast)’라고 불렀다지요. 그런 것과 상당히 비슷해요. 아주 능숙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해볼 있거든요. 물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시도한 다음에는 온 몸에 진이 빠진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당연히 이때에도 상대의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상대의 취향과 거의 상극에 있는 노래를 밀어 넣으면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힐 있거든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음악 취향이 있고 반대로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도 있잖아요. 어쩌면 면역과 비슷한 개념이라고도  있어요. 면역이 없는 유형의 노래가 억지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대개 데미지를 받아요. 심하며 먹은 토하고 초록색 위액에까지 토하기도 해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저는 연약한 남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아주 살살 접근하고 있어요. 남몰래 아이의 마음 속으로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살짝 살짝 심어주면서요. 가령 메러디스 윌슨이 ‘Till There Was You’ 조지 거쉬인이 ‘Someone to Watch Over Me’ 같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들. 혹시 아나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극적으로 전향하게 될지. 하지만 정말 쉽지는 않더군요. 우리가 막힌 하수구를 뚫으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만만하게 쇠꼬챙이를 가지고 때만 해도 누구나 낙관적인 결말을 생각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일단 잘못 건드려 한 번 역류가 시작되면 뼈저린 후회가 시작됩니다. 조금 불편해도 그냥 참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그랬어요. 밀어넣는데 거꾸로 역류해서 저한테 넘어오니까 거꾸로 제가 데미지를 입는 거예요. 속이 메스껍고 울렁울렁거리더라고요. 급기야 해롤드 교수와 디제이 칼리드가 듀엣을 하는 듯한 공명 현상이 시작되자 저도 버티기가... 먹은 걸 다 코하고 초록색 위액까지 토하고나니 자괴감이 정말 말도 못해서 펑펑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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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다들 아셨을 거예요.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저의 비밀스러운 능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대한 겁니다. 누가 능력을 노리냐고요? 글쎄요. 아닌 능력이기는 한데 그래도 노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러니까 박사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박사는 제가 고등학교 아르바이트를 했던 <78 RPM>이라는 레코드 가게의 주인이었어요. 40 중반 정도의 남성이었고 다양한 음악에 상당히 박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직업이 직업이니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거든요.) 박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하프 프레임 안경이에요. 안경테의 위쪽 프레임이 유난히 두꺼웠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어요. 눈썹만 가려져도 사람의 표정이 얼마나 쉽게 가려지는지 그땐 몰랐답니다. 생각 나는 그의 옷차림이었어요. 항상 드레스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출근을 했거든요. 동네 레코드 가게에.

 

  저는 3 정도 남자의 가게에서 일했어요. 능력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어요. 시끄럽게 배경 음악이 틀어져 있는 편이 차라리 힘들기도 하였고 제가 일할 이어폰을 끼고 있는 두고 박사는 크게 탓하지 않았어요. 그냥 이명 현상이 심해서 그렇노라고 설명하니 더는 따져 묻지 않더라고요. 제가 <78 RPM>에서 탁월한 세일즈 재능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말해 아프겠네요. 저한테는 그대로 식은 먹기였습니다. 약간의 집중력과 시간만 있으면 손님이 원하는 음악을 금방 찾아서 권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박사는 저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처음 면접에서 저의 음악 취향을 물었을 저는 딜런, 빌리 조엘, 브루스 스프링스틴, 조안 바에즈, 그리고 캐롤 등을 언급했고 그는 저에게 훌륭한 취향을 가졌다고 말했었어요. 저는 박사의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 읽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어요. 3 저는 UC 데이비스 컴퓨터공학과로 진학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후로는 적이 없었는데 2020 어느 여름날에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서 만난 거예요. 거의 십년만이었죠. 

 

  그 날 저는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며 상대 남자와 같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어요. 게어리 스트리트에 있는 메이시스 8층에 위치한치즈케이크 팩토리에서요.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라고 있느냐면 사실 그건 아니죠. 일단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고로 부모들도 많아요.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가격적인 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어요. 각자 원하는대로 주문하고 칵테일을 곁들일 있기 때문에 (물론 제가 사랑하는 클래식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즐겨 찾는 곳이었어요. 혼자였으면 돈을 아끼려고파네라 브래드(Panera Bread)슈퍼두퍼 버거스(Super Duper Burgers)우노 도스 타코스(Uno Dos Tacos)같은 곳에 갔겠지요. 팁으로 주는 비용도 아낄 수 있고요. 그래도 블라인드 데이트이니 나름 마음을 먹은 거예요. 플로리스트 남자친구가 사실을 알면 안되기 때문에 (“싹 다죽여버리고 무덤 안으로 던져넣어.”) 그가 가지 않을만한 식당으로 고른 것이기도 했습니다. , 어째서 아이를 두고 다른 남자와 블라인드 데이트를 하느냐고요? 아이의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에서 납득할만한 선곡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저의 능력으로 그의 취향 바꾸어 보려고 하다가는 제가 초록색 위액까지 싹  토해버렸고요. 그렇다고 이렇게 그냥 지내기에는 불안하고요. 그러다보니 저로서는 일종의 출구 전략을 생각하지 않을 없었어요.

 

  아무튼 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답니다. 남자는 근사했어요. 젠틀하고 매너있고 유머감각도 뛰어났어요. 아주 생긴 얼굴이라기보다는 개성있는 타입인데 일단 체격이 다부지고 옷맵시도 좋더라고요. 취미가 운동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같습니다. 하나의 취미는 요리라고 하였는데 특히 디져트 패스트리에 대한 지식이 상당했어요. 하나, 눈에 튀는 부분은 귀였어요. 유난히 크고 뾰족한 . 데이트의 결과와 상관없이 남자의 귀모양은 잊지 못할 같더라고요. 여러분 모두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물론 저는 남자의 플레이리스트를 읽어보려고(I’ve Got the Power!) 노력을 하였습니다. 역시 타인의 취향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이 아닙니다만 솔직히 고백하면 저에게는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간신히 마일리 사일러스와 리아나의 곡을 읽어낼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총기 난사와 경관 폭행에 대한 송이나우(Now)’맥스(Max)’ 컴필레이션 분량으로 들어있는 남자를 한 번 만나고 나니 어지간한 일에는 그저 감사하게 되는 같았습니다. 이 이상  이상 바라면 욕심 아니겠어요?  

 

  그럭저럭 분위기가 좋았는데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갑자기 남자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별 생각 없었죠.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거예요. 저는 남자 화장실에라도 들어가보아야 하나 싶어서 일어났는데 그제야 남자가 냅킨 아래 끼워 놓은 쪽지가 보이더군요.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옥상으로 올라오세요. 기다릴께요.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요? 물론 당황스러웠죠.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좋은 뜻일까요? 아니면 나쁜 뜻? 꽤 좋은 메모지에 멋들어지게 필기체로 적었더라고요. 살짝 향기도 났어요. 은은한 바닐라와 달콤한 시나몬. 어쩐지 로맨틱한 느낌에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옥상에서 기다린다고요?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기대 불안 반을 안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밤 공기가 제법 차가웠습니다. 멀리 상점가와 피어의 불빛들이 아른거렸습니다. 두리번거리면서 남자를 찾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나왔어요.

 

- 오랜만이네.
  그 사람이 바로 박사였어요. 저는 깜짝 놀랐죠.
- 닥? 정말 닥이에요? 당신도 샌프란시스코에 있어요?
- 아니, 너를 찾아왔지.
- 제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그는 눈짓으로 제가 들고 있던 쪽지를 가리켰습니다. 아! 뾰족귀.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 뭐 하는 남자예요? 아는 사람이에요?
- 백 달러 주고 고용했지. 모르는 사람이야. 시나본에서 찾았어.
  아, 그래서… 은은한 바닐라와 달콤한 시나몬… 저도 모르게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 에어팟은 빼고 이야기하지. 옛 정이 있잖아.
  잠시 망설이다가 저는 가만히 에어팟을 빼어 케이스에 집어 넣었습니다. 
- 조이,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이 있겠지?
- 벌컨 족을 믿지 마라?
-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그때랑 똑같아.


  박사는 조용히 미소지었습니다. 트렌치 코트에 손을 바짝 찔러 넣고 멀리 피어 39에서 아른거리는 불빛을 응시하더군요. 그의 옆머리를 보았을 때 반짝거리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보였습니다. 그만큼 세월이 지났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박사를 다른 지역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물론 저희 고향에서 샌프란시스코 시내까지는 바트(BART: Bay Area Rapid Transit)로 겨우 50분 거리입니다만) 상상도 하지 못했죠.
- 조이, 지금 나는 포티파이(Potty-Fy)와 일해.
- 스포티파이요?
- 아니, 포티파이.
- 그게 뭔데요?
- 쉽게 얘기하면 스포티파이랑 비슷한 거야.
- 포티(Potty)랑 상관이 있나요?


  그는 대답을 피했고 나는 고개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과거의 레코드 가게 주인이 지금은 일종의 음악 스트리밍 회사에서 일한다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말이 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더군요.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 예전처럼 같이 일하자. 조이. 
- 어떻게요?
- 사람들에게 음악을 추천을 해주는 거지. 예전에 우리가 <78 PRM>에서 했던 것처럼.
- 닥, 저는 이제 완전히 다른 일을 해요.
- 넌 지금 데이트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잖아. 그건 다른 일이 아니야.
- 아니에요, 제가 하는 일은 달라요. 일단 데이트가 아니라 진정한 소울 메이트를 찾는 앱이고요. 두 번째로는 제가 하는 일은 ‘치팅’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거라고요.
  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였습니다.
- 좋아. 그렇다고 치자. 너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얼마나 될까? 샌프란시스코에, 여기 베이 에어리어 전체에. 하지만 나랑 일한다면? 그건 이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특별한 될꺼야.


  저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죠. 이 동네에 널리고 널린 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데, 베이 에어리어에서 높은 건물에 올라가 돌을 던지면 (물론 두 번에 한 번은 관광객이 맞겠지만) 테크회사 종사자가 맞을 확률도 상당히 높은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을 두고 나를 찾아왔을까? 내가 그렇게 인정받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나? 답은 하나였죠. 박사는 남의 음악 취향을 빠르게 읽어내었던 예전 저의 모습이 필요했던 겁니다.
- 지금 연봉에 두 배를 줄께. 그리고 보디가드도 고용해 주고.
- 무슨 가드요? 그게 왜 저한테 필요하죠?
- 너를 쫓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 왜요?
-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 누군데요? 누가 저를 쫓는데요. 
- 스포티파이 사냥꾼.
- 왜요?
- 왜겠어?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데 스포티파이에 사냥꾼이 있어요?
- 이봐, 왜 이래. 조금 전 치즈케이크 팩토리에도 놈들이 있었어. 너희 자리 오른쪽으로 세 테이블 건너서.  
- 혹시 애플 뮤직은 절 스카웃할 생각이 없대요? 닥도 알겠지만 저는 애플 팬보이, 아니 애플 팬걸이잖아요.
- 그런 소문은 처음 듣는데? 애플이 왜 널 스카웃하겠어.


  이거 참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과거 <78 RPM>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저는 박사의 '마음 속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했었습니다. 몇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I’ve Got the Power!) 하지만 끝내 알 수가 없었죠. 마치 검은 장막에 가려져 있는 느낌이더군요. 이번에 대화를 나누면서도 슬며시 들여다보았지만 옛날과 다르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새어나오지 않었어요. 이래서야 박사가 머릿속으로 특정 노래를 집어 넣어 그를 제압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악물고 덤벼봐야 제가 먼저 먹은 걸 다 토하고 심지어 초록색 위액까지 토하고 지쳐 나자빠지는 결과로 이어지겠죠. 그럼 일단 꼬리를 내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 생각은 해볼께요. 당장 이 자리에서 확답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재킷 안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서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출구 방향으로 향하다가 
잠시 멈추고 돌아서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 플로리스트 남자친구 귀엽더라. 계속 귀엽게 두자고.


  박사는 꽤 오랜 시간 저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플로리스트 남자친구의 정체를 아는 거고 그 아이가 있음에도 그 날 블라인드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도 아는 거겠죠. (그런데 
방금 그 말은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 거기서도 박사라는 남자가 나오지 않았나?) 어쨌든 박사는 귀여운 플로리스트가 어떤 남자인지 잘 모르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싹 다 죽여버리고 무덤 안으로 던져 넣어.”) 어쩌면 웃음이 날 것도 같은데 그래도 웃음이 나오지는 않더군요. 약간 두려운 마음도 들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졌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I’ve Got the Power?) 저는 거미줄을 쏘지도 못하고, 번개를 부르지도 못하고, 방사능을 막아내지도 못해요. 저는 드래곤 타투도 없고, 불을 가지고 놀지도 않고, 벌집을 발로 차지도 않는 걸요. 단지 우라지게 특별한 플레이리스트를 가졌을 뿐이지.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저 한숨이 나왔어요. 저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포티파이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정말 있더군요. 회사 홈페이지가. 거짓말은 아니네요. 화장실에서 편안함을 주는 개인 맞춤형 뮤직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회사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거 봐!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포티'랑 상관이 있었던 거죠. 직접적으로 그런 이야기는 없지만 이 서비스를 통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암시가 가득했습니다. 넘버 원이나 넘버 투. (아마도 넘버 투가 주력이겠죠?) 끝까지 그 부분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웹사이트 구성을 보니 폐가 '이치 비치 티니 위니 옐로 폴카-닷 비키니' 간지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단한 회사가 머지않아 머니, 머니, 머니, 머니를 빗자루로 쓸어 담겠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멈출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2020년 12월)

 

# Inspired By Connie Willis

 

(註1) 'Zoey's Extraordinary Playlist (NBC, 2020~ )'은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노래로 들을 수 있는 주인공 조이 클라크의 이야기를 다루는 TV 쇼이다. 

(註2) 하이든의 Symphony No. 103에는 'The Drumroll'이라는 닉네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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