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존 카니라는 작자의 나이다. 음악과 비즈니스를 막연한 대립항으로 몰고가는 설익은 치기와 지뢰처럼 배열된 오글거리는 대사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중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이 분명한데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헌데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이 아일랜드 남자가 8년 전에 '원스(Once, 2006)'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니었냐는 말이다. 그럼 셈을 해보면 그때는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이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흠... 사실이라면 조금 무서운 일이다.


  솔직히 썩 잘 만든 작품이라기는 어렵다. 보통 뻔하면 이상하지는 않기 마련이나 이 작품은 뻔한데 이상하기까지 하다. 생각보다 좋은 부분을 찾아내기가 훨씬 힘들다. 처음 30여분 동안 그레타 (키이라 나이틀리)와 댄 (마크 러팔로)의 만남을 관점을 바꿔가며 반복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식상한 것보다는 그때마다 그레타의 지하철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괴로웠다. 그 칙칙폭폭 노래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댄의 프로듀서로의 감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그가 뒷골목 소극장의 주정뱅이 주인이 아니라 음반 업계의 네임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 번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드물게 산뜻하고 활기 넘치는 중반 이후 도심 속 쌩 라이브 녹음 장면의 연출은 괜찮은 편이지만, 이내 그레타의 전 남친 데이브 (애덤 리바인) 이야기와 뒤섞이면서 다시금 눅눅하고 피로해지고야 만다. 물론 그 파국에는 애덤 리바인의 요한묵시록급 연기도 한 몫을 한다. 노래하는 그는 섹시하지만 연기하는 그는 조금도 섹시하지 않다.


  새롭지 않음이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다. 나이브한 세계 인식도 때로는 필요한 위로일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과 감성적인 노래의 결합이 즐거움을 준다면 그 또한 훌륭한 상품의 요건이요 영화로의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의 속성이 등장 인물들의 태도와 혼선을 빚는다면 그건 문제의 여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댄과 그레타는 꼭 무슨 거대한 불의에 맞서 통쾌한 한판 역전승을 일궈낸 하이스트 무비의 주인공들 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이 레코딩 비용 및 마케팅 방안을 마련한 방법과 상당히 모순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개운치 않은 면모는 이 작품을 둘러싼 상황과 관련되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뉴욕으로 온 원스'라는 과감한 선언이 예고하는 바와는 달리, 이 작품은 존 카니가 미국으로 건너와 헐리우드 스텝들의 지원아래 A급 개런티 배우들 플러스 인기 팝스타를 내세워 만든 신작이기 때문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상업적인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전술에 제 발 저려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2014/10/11)



WRITTEN BY
김영준 (Y.J. Kim)
Founder, Publisher, and Editor-in-chief
Reverse Fictioneering Laboratory
Pulp Fiction Center at Twilght Zone
(https://cliche0303.weeb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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