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대권을 둘러싼 지형도가 심상치 않다.
돌이켜보면 90년대까지는 단연 디즈니가 대권을 쥐고 있었고 폭스가 견제하면서 간간이 간을 보는 양상이었다. 00년대 컴퓨터 애니메이션 시대로 넘어오면서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간의 양자대결이 이어졌고 여전히 폭스 역시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를 제작한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 덕분에 넘버 3의 위치에서 2~3년 주기로 계속 간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은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복잡해졌다. 00년대 후반부터 새로 시장에 뛰어 들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으나 간신히 체면차리기도 어려웠던 회사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먼저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클라우디 위드 어 챈스 오브 미트볼스 (필 로드&크리스 밀러, 2009)’과 ‘더 스머프 (라자 고스넬, 2011)’ 성공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유니버셜과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가 뛰어 들어 의외의 대박을 터뜨렸다. 바로 그 작품이 ‘디스피커블 미 (피에르 코팽&크리스 리노드, 2010)’였다. 제작비는 근 5년간 타사 애니메이션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수익은 성공작들의 평균을 상회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크게 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이제 10년대는 기존 디즈니/픽사나 드림웍스가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한 해에 메이져 배급사의 작품만 다섯 편 이상 개봉하고, 5개사의 어느 스튜디오에서라도 그 해의 넘버 원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는 등 확연한 다자대결의 모양새다.
그렇기에 올해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대형 사고'는 더욱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미니언들의 귀환 - ‘디스피커블 미 2’로 디즈니/픽사의 ‘몬스터즈 유니버시티 (댄 스캔론, 2013)’와 드림웍스의 ‘더 크루즈 (커크 드 미코, 2013)’를 따돌리는 이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2주 간격 개봉으로 맞짱을 떴음에도 '몬스터즈 유니버시티'를 압도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9월 30일까지의 집계만으로도 이 작품은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 7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다. 불과 3년전 첫 편이 기대 이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개봉한 디즈니/픽사의 ‘토이 스토리 3 (리 언크리치, 2010)’와 드림웍스의 ‘슈렉 포에버 애프터 (마이크 미첼, 2010)’의 벽을 넘지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괄목할만한 성과다.
한계가 뚜렷한 스토리에도 불과하고 이 작품의 파괴력이 상당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티브 카렐의 코미디는 여전히 유효하고 작업장으로 돌아온 천방지축 미니언들의 대공세는 놀라울 정도다. 이 아이들. 3년 전에는 그냥 저냥 넘겼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쳐버릴 지경이다. 요즘 똘똘한 미니언 몇 놈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다. 캐릭터 상품도 모으고 있다. 아마존에서 해외 배송 검색도 해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맥도날드에서 장난감 때문에 해피밀을 주문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애써 용기를 냈는데 품절이라 하기에 얼굴이 귀 밑까지 붉어졌다. 난처한 표정의 맥도날드 직원이 "미니언이 품절이라 재고 장난감으로 '라이즈 오브 가디언즈 (피터 램지, 2012)'의 주인공 장난감을 대신 드릴 수 있다"고 하기에 내 나이가 얼마인지도 잊고 "미니언즈가 품절이면 해피밀 주문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가디언즈 됐고 미니언이나 가져와!) 드림웍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굴욕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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