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80 Days, 2004) B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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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80 Days, 2004) B평

by 김영준 (James Kim)

  어쨌든 성룡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헐리우드의 스타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수많은 홍콩의 스타들이 태평양을 건너서 헐리우드로 진출했으나 성룡만큼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는 드문 것 같다. '러시아워 (브랙 레트너, 1998)''상하이 눈 (톰 듀이, 2000)'을 통해 헐리우드에 안착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변방의 무비스타가 세계영화의 중심으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과정 말이다. 헐리우드 진출 초기 그의 작품은 서양 배우와 짝을 이룬 버디 영화였다. 하지만 이후 연속된 히트로 입지가 보장되면서 차츰 단독으로 영화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완성된 장르물에 성룡을 집어넣어 융합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전통적인 첩보 액션물에 성룡을 더한 '턱시도 (케빈 도노반, 2002)'가 그 본격적인 시작이었다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보다 구체화된 성룡표 미국 영화의 시작이다. 이 작품의 등장은 성룡이 헐리우드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이 작품은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 익숙한 이야기의 틈바구니에 성룡이 끼어 들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신선함보다는 성룡의 존재 자체에 강박하느라 말아먹는 부분이 훨씬 많다. 본디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매력을 말하자면 꼬장꼬장한 FM 영국 신사와 왕립 학술원 사람들의 자존심 대결로 시작되어 세계 각국의 풍물과 관습을 관통하며 모험하는 독특한 분위기에 그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장점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상태다. 성룡을 등장시키고자 대대적으로 변용한 설정이 원작과 스토리와 잘 융합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1억 1천만 불이나 들여 다듬어놓은 화려한 포장 때문에 저렴한 패러디물로 속 편히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십호(十虎)와 흑전갈단에 맞서 날아다니는 성룡을 보면, 왜 굳이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 원전을 두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부터 사실 의문스럽다.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필리어드 포그 경(스티브 쿠건)과 명색이 여주인공이라는 모니크(세실 드 프랑스)이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확실히 이 작품의 제목은 '80일간의 세계일주'보다는 '성룡의 세계일주' 쪽이 더 어울린다. 성룡의 팬으로, 혹은 성룡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성룡을 향한 애정을 담아 만들어 낸 하나의 픽션에 가깝달까.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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