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에 해당되는 글 58건

  1. 허스토리: 크리스탈 바워삭스 2010.12.29
  2. 위로의 손길: 잉그리드 마이컬슨 2010.11.24
  3. 굿바이 타격달인: 필 콜린스 2010.10.14
  4.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닐 다이아몬드 2010.09.15
  5. 콸콸콸콸 콸콸콸: 로드 스튜어트 2010.08.20
  6. 다재다능 캡틴 잭: 존 바로우맨 2010.07.15
  7. 큐티 마돈나: 케이티 페리 2010.06.24
  8. 올드 패션드: 올 포 원 2010.05.12
  9. 희노애락 알파라이징: 코린 베일리 래 (3) 2010.04.15
  10. 천국의 눈물: 스티븐 커티스 채프먼 2010.03.26
  11. 버킷 리스트: 로잔느 캐쉬 2010.03.05
  12. 아이 캔트 언러브 유: 캐리 언더우드 (2) 2010.02.22
  13. 러브 어 클락: 존 메이어 (4) 2010.01.29
  14. 자이트가이스트: 그린 데이 (4) 2010.01.11
  15. 히트 앤드 런: 켈리 클락슨 (4) 2009.12.17
  16. 종심소욕불유구: 케니 로저스 (4) 2009.11.23
  17. 물오른 재담꾼: 브래드 페이즐리 (4) 2009.09.07
  18. 마이 파더: 제이콥 딜런 2009.08.10
  19. 그래도 언니는 간다: 마티나 맥브라이드 (2) 2009.07.21
  20. 블랙 라이크 힘: 다리우스 루커 2009.07.01
  21. 나의 살던 고향은: 보이즈 투 멘 (2) 2009.06.18
  22. 위대한 유산: 제임스 테일러 2009.06.11
  23. 청춘의 스텝프린팅: 에이미 맥도날드 2009.06.01
  24. 실버 폭스의 위험: 테일러 힉스 (14) 2009.04.25
  25. 육십갑자 리치상: 라이오넬 리치 (8) 2009.04.15
  26. 희망의 나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 2009.04.02
  27. 엽기적인 그녀: 릴리 알렌 2009.03.19
  28. 미스 에스프레소: 아델 (2) 2009.02.25
  29. 미스터 크리스마스: 브라이언 맥나잇 (2) 2008.12.23
  30. 팔십년대 쇼: 배리 매닐로우 (4) 2008.12.15

허스토리: 크리스탈 바워삭스

Crystal Bowersox 의 첫번째 앨범 <Farmer's Daughter>
2010년 12월 (Jive/19)

  컴페티션 쇼의 매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잖아도 모든 걸 경쟁으로 치환하는 시대인데 거기에 오락적 속성까지 더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쇼'의 측면에서 흥미를 극대화하는 기술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잘 만들어진 컴페티션 쇼의 미덕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참가자들을 'Winner와 그 나머지들'로 분류하는 대신, Runner-Up, 3rd Place, 4th Place, 5th Place, 심지어 initial Audition 참가자까지 모두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여 확인시켜줘야 재미있는 컴페티션 쇼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결국은 스토리다. Winner만이 아니라 모두가 스토리를 지닌 개별 존재로 존중되어야 쇼가 흥한다. 컴페티션은 컴페티션일 뿐, 어차피 광고팔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쇼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도 세상 이치와 똑같다. 사람을 남겨야 진짜 남는 장사다. 최근 시장주의와 자유주의 전도사를 자청하며 랩퍼로 데뷔했다는 자유기업원장(타이틀곡: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은 아마 박터지는 경쟁 그 자체를 숭고히 여기지 않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래봐야 그의 랩은 전혀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데. 아마 사이먼 코웰이 그의 랩을 듣는다면 이런 평을 내놓지 않을까.

- You have to have a talent to progress it. I don't believe you has a talent.
You're completely wasting your money. Sorry.


  <아메리칸 아이돌> 아홉번째 시즌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를 지녔던 참가자를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탈 바워삭스. 어영부영 불안하게만 보였던 리 드와이즈가 막판 꽃미남 폭풍 성장기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표를 긁어가는 바람에 밀리기는 했지만, 캐릭터로 보나 재능으로보나 시즌 내내 흥미를 동하게 했던 참가자는 그녀 쪽이었다. ① 오하이오 시골 출신 농부의 딸, ② 약간의 히피 끼와 4차원 성향, ③ 루츠-록 싱어 송라이터 - 그러나 1985년생, ④ <아메리칸 아이돌> 비시청자임의 간증 등. 물론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눈에 확 띄는 존재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노래야 잘하긴 했지만 '아메리칸 아이돌' 쇼 자체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인상을 주던 시절이라 그런지, 이제 십년 가까이 쇼가 진행되면서 어지간한 대물은 다 나와버린 상태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의 Top 11. 빌보드 넘버 원 히트를 주제로 그녀가 로저 밀러의 'Me and Bobby McGee'를 불렀던 순간, 아!

그녀를 사랑, 아니 지지해야 할 것만 같은 강렬한 의무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케니 로저스, 제니스 조플린, 윌리 넬슨, 돌리 파튼에서부터 올리비아 뉴튼존을 거쳐 리앤 라임즈까지,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떠나보내고 골드웨이브를 사용해 그녀가 노래하는 장면의 소리를 따내어 아이팟에 집어 넣었다. 일주일 후 그녀는 'Midnight Train to Georgia(글래디스 나이트 앤 핍스, 1973)'를 골라 무대에 섰고 나의 열병은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리 드와이즈가 우승하거나 말거나.

  그때부터 그렇게 스튜이 그리핀이 마일리 사이러스 연모하는 심정으로 기다려온 그녀의 데뷔 앨범이다.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For What It's Worth(1967)'를 커버한 두번째 트랙, 카라 디오가디와 채드 크루거의 협업물인 여섯번째 트랙을 제외한 모든 곡을 작곡했고 단 두 곡만이 공동작곡이다. 백업 없이는 안되는 취미형 송라이터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명 프로듀서 데이비드 벤데스의 손길을 감안해도, 제법이다. 앨범 컨셉트는 전형적이나 스물 다섯의 음악이라는 점이 신선하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르 특유의 묵은 냄새를 살려낼 줄 안다는 점이 꽤 신기하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는 28위로 데뷔했고 첫 한 달 동안 10만장 남짓의 세일즈를 기록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배출한 스타들의 첫 앨범 평균 성적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겠지만, 장르적 핸디캡과 최근 아이돌 프리미엄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을 놓고보면 그리 심각한 성적은 아니라 하겠다. (201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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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손길: 잉그리드 마이컬슨

Ingrid Michaelson 의 네번째 앨범 <Everybody>
2009년 08월 (Cabin 24 Records)


  뉴욕 출신의 인디 싱어 송라이터 잉그리드 마이컬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TV 시리즈 <그레이스 아나토미>다. 이 쇼에서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온 순간이 어림잡아 기억나는 것만 셈해도 열 번쯤. 어쩌면 그 이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원 트리 힐>, <스크럽스>, <어글리 베티> 등 BGM 유행을 주도하는 여러 TV 시리즈에서 그녀의 노래를 가져다 썼지만 유독 <그레이스 아나토미>에서의 삽입 빈도가 유독 높았음은 분명 주목할만한 일이다. 제작자 중에 그녀의 친인척이나 광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어딘가 쇼와 절묘하게 궁합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 그리 되었을 터.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면 찰떡 궁합은 찰떡 궁합이다. 가령 <하우스 M.D.>의 마지막 5분에 가장 잘 어울렸던 노래라면 제프 버클리의 'Halelluah(1집, 1994)' 혹은 라이언 아담스의 'Desire(3집, 2002)'가 떠오른다. 또한 <스크럽스>의 마지막 5분에 가장 잘 어울렸던 노래라면, 더 프레이의 'How to Save a Life(1집, 2005)' 혹은 맨 앳 워크의 'Over Kill(2집, 1983)'이 떠오른다. 반면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마지막 5분이라면? 물론 상기 열거된 곡들도 이미 삽입된 경력이 있거나 (메디칼 시리즈 용 BGM 족보라도 있는 것인가) 삽입되면 잘 어울릴 선택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역시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The Chain'이다. 그 다음으로 한 곡만 더 골라야 한다면 역시 그녀의 'Keep Breathing'이 좋겠다.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노래엔 분명 독특한 매력이 있다. 다이앤 버치처럼 대책없이 발랄하지도 않고 리사 해니건처럼 과도하게 조숙하지도 않다. 사라 바렐리스의 점탄성이나 레지나 스펙터의 장난기도 없다. 가볍고 향기롭고 살짝 취하며 금방 날아간다. 이 대목에서 라이트 바디 와인을 운운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듯 하다. 와인이란 비유는 너무 고급스러운 나머지 범상해서 사랑스러운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섬유탈취제 정도가 적당하지 않은가 싶지만 어쩐지 대놓고 그렇게 잘라 말하기엔 조금 미안하다. 귀를 사로잡는 듯 마는 듯, 코를 간지럽히는 듯 마는 듯, 색을 입힌 듯 마는 듯, 투명한 물기를 담아 감도는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노래는 영상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가볍게 앉았다 향기를 풍기며 날아간다. 특히 미숙한 존재들이 미숙한 사건들 안에서 미숙한 관계 맺음을 반복하는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경우, 그 적절한 거리두기가 훌륭한 위로의 손길로 조화로이 기능한다는 느낌이다. 역류하는 호르몬을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데뷔 때에 비하자면 환골탈태라고 해도 좋을만큼 달라진 인상만큼이나 잉그리드 마이컬슨의 위치 또한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빌보드 앨범차트 18위까지, 싱글차트도 37위까지 올라가 봤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등지에서의 인기는 그 이상이다. 몇 년 전부터 월드투어까지 뛰고 있다. 앨범을 거듭하면서 잔지 미숙했던 부분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며 그녀만의 견고한 스타일로 완성되고 있으며 차트 퍼포먼스와 판매량도 상승세다. TV 시리즈 외에도 영화와 광고 삽입곡으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굳이 인디라는 틀로 규정할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체 제작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후 겨우 5년이 흘렀을 뿐이고,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지도 이제 겨우 3년째일 뿐이니.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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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타격달인: 필 콜린스

Phil Collins 의 여덟번째 앨범 <Going Back>
2010년 09월 (Atlantic)


  한때 전국을 풍미했던 <필노래방>. 그것 참 신기하지.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같은 이름이 유별나게 많은 걸까? 그 이름의 연원을 두고 많은 가설이 농담처럼 오고갔었던 때가 있었다. 가요팬들은 대개 조용필의 '필'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고 팝송팬들은 대개 필 콜린스의 '필'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겠냐고 반박했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국어라는 언어의 특수성을 고려하자면 아무래도 전자쪽이 더 설득력있다 말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이 반진담 반농담 해프닝 속에 숨어있는 필 콜린스의 위상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한물 간 옛날 발라드 가수'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The Billboard Hot 100 Top All-Time Artists'에서 22위에 랭크되어 계신 몸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딱 세 사람 밖에  없다는 <밴드 커리어에서 1억장, 솔로 커리어에서 1억장>의 기록 보유자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더라도 이 양반 커리어 하이 찍을 당시 국내에 몰고 온 파장이 적지 않다. 이후 가요에서 이상하게 업계 평균보다 세련되고 업계 평균보다 섹시한 음악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필 콜린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우리가 사랑했던 옵하들이 대부분 이 옵하 팬이었던 셈. 월트 디즈니가 영화음악가 아닌 대중가수에게 지휘권을 넘긴 경우도 엘튼 존을 제외하면 필 콜린스가 유일하다. 이에 자극받은 드림웍스가 비슷한 시너지를 기대했던 '스피릿(켈리 애스버리 & 로나 쿡, 2002)'의 사운드 트랙을 브라이언 아담스가 너무 안일하게 자기 EP처럼 ('한스 짐머의 경음악 선물로 더욱 빛나는' 따위의 카피가 달려 있을 법한!) 만들어버렸던 경우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그렇다. 정말 '타잔(케빈 리마 & 크리스 벅, 1999)'은 작품 자체는 그냥 그랬어도 음악만큼은 디즈니 역사상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만큼 일품.

  80년대 폭풍처럼 전설을 쌓아올린 후 90년대 이르러 <Both Sides>, <Testify>와 같은 준척급 음반을 내고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며 일선에서는 밀려났지만 <제네시스>의 일원으로, 또 영국이 자랑하는 싱어 송라이터 필 콜린스의 이름을 걸고 월드 투어는 계속되는 중이었다. '타잔'의 성공에 힘입어 '타잔'의 브로드웨이 버전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오른쪽 귀 청력을 읽은 후 현저한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에는 척추 탈골로 수술까지 받으며 더 이상 드럼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태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은퇴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8년만에 신보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자신의 음악에 자양분이었던 60년대 모타운과 소울 스탠다드를 컨셉트로 밥 배빗, 에디 윌리스, 레이 모네트의 조력을 더해 30곡 이상을 녹음하고 그 중 18곡을 추려내는 거대한 작업을 이뤄낸 것이다. 트랙 리스트를 딱 보는 순간, 무릎을 치며 "이거야 말로 교과서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위대한 선곡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녹음 또한 교과서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감탄스러울만치 고전의 백미를 잘 살려 이루어졌다. 비록 드럼을 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데는 어려움을 느낄지 몰라도, 그의 보컬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과 별 차이가 없는 활기와 감성이 묻어 난다. 좋은 앨범이고, 교과서적인 앨범이고, 굳이 '의외로 머리 숱이 풍성했던 열 세살 때의 사진'이 실려있지 않더라도 여러 모로 의미가 적지 않은 앨범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인다. 이미 몇몇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작업을 하지 않을 것임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은퇴선언이다. 또 한 시대의 영웅이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추억과 경의를 담아 간직할 필요가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연주라기보다는 차라리 타격에 가까웠던 그의 경이적인 드럼 신공을 기억하며!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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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닐 다이아몬드

Neil Diamond 의 스물네번째 앨범 <Home Before Dark>
2008년 5월 (Columbia)

  닐 다이아몬드의 통산 스물네번째 정규앨범 'Home Before Dark'가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밟은 것은 2008년 5월의 셋째주였다. 이때 그의 나이 67세하고도 3개월. 그는 종전 65세 밥 딜런이 가지고 있던 최고령 앨범차트 1위 기록을 경신했다. 당시 빌보드 앨범차트는 5월 둘째주까지 마돈나와 머라이어 캐리가 경합을 벌이는 중이었다. 5월 넷째주부터는 얼터너티브 밴드 <데스 캡 포 큐티>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신기한 것은 취미삼듯 플랜티넘 앨범을 줄줄이 발표했던 70년대에도 밟아보지 못한 앨범차트 정상이라는 사실이다. 정규 앨범으로는 3위가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괴물처럼 팔아치웠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앨범 세일즈 기록과 싱글차트 1위를 비롯한 탑 텐 넘버의 수를 계산하자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도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는데 <스쿠터>와 <더 팅팅즈> 등 젊은 스타들 사이에서 정상을 밟으며 빛나는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역시 영국에서도 앨범차트 정상에 올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최고령 앨범차트 정상 기록은 일년만에 다시 깨졌다. 밥 딜런이 2009년 다음 앨범으로 67세 11개월에 다시 정상을 차지하자 불과 8개월 차이로 밀려나게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41년생 두 레전드가 벌인 이 엎치락 뒤치락은 팝 역사의 소중한 한 순간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올 가을로 예정된 그의 다음 정규 앨범은 69세 7개월에 발표하는 앨범이다. 또다시 기적이 가능할까? 작년 홀리데이 시즌에 그리 영양가 높지 않은 캐롤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 때문에 다소 불안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켜볼 일이다. 확실히 확률은 밥 딜런이 나중에 스스로 자기 기록을 경신하거나 8년쯤 후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도전하게 되는 쪽이 높아보이지만, 어쨌든 이 자체로도 분명 의미는 있다. 이런 게 다 역사고 기록이다.

  비록 90년대를 힘겹게 보내기는 했지만 닐 다이아몬드는 팝 역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이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싱어 송라이터 중 한 사람이다. 구글님에 채용 사이트 '사람인'을 치면 신승훈의 노래 '내 사람인 것 같아서'가 연관 검색으로 함께 나오듯이, '다이아몬드'만 쳐도 연관 검색어로 '닐 다이아몬드'가 함께 제공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커리어가 있어서다. 엘튼 존, 바브라 스트라이전드에 이어서 '가장 성공적인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3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특히 이 작품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방대한 골든 레파토리를 리뷰하고 또 리뷰하던 시기를 지나 다시금 전성기의 음악 생명력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던 반향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실버 시대의 개막이다. 예기치 못한 돌풍은 전 앨범인 2005년작 '12 Songs'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명 프로듀서 릭 루빈을 데려왔고 다시 전곡을 작사 작곡하여 열두 곡의 신곡을 실었다. 반전 계기가 필요한 아티스트에게 신선한 활력을 충전시켜주는 묘한 재주가 있음이 증명된 릭 루빈이다. 명불허전이라고 그 결과 좋은 작품이 탄생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중이 그 참신한 노력에 뜨겁게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아직까지 공연 매진을 몰고 다니는 슈퍼 스타라도 따지고 보면 정규앨범이 차트 10위 안에 마지막으로 오른 것이 스필버그의 'E.T.(1982)'가 개봉하던 해. 그렇게까지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호응을 모두 잡게 될 줄은 아마 본인도 콜럼비아 레코드도 몰랐을 것이다. 이어 그는 이 다음 앨범인 이 작품 <Home Before Dark>를 통해 릭 루빈과의 두 번째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더 좋은 결과물로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생애 첫 빌보드 앨범차트 1위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의 성공과 그 역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되어야 마땅하다. ① 일흔이 다된 나이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노장의 반짝반짝 눈이 부신 창작력. ② 캐즘 극복에 힘을 보탤 베테랑 프로듀서의 존재. 나아가 동이처럼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아도 좋은 조력자들과 조우할 수 있는 풍성한 뮤직 인더스트리 환경. ③ 유행에 상관없이 아티스트가 절치부심하여 훌륭한 작품을 내면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알아봐주는 훌륭한 감식안의 대중들.

  커리어의 마지막 챕터를 눈부시게 수놓는 노장의 분전에 경의를 표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반 세기를 거쳐 다듬어 온 명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반갑고, 미묘하게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 또한 낯설지만 적잖이 의미롭게 다가온다. 회춘보다는 회고에 가깝지만 미련보다는 미래에 가깝다. 노인의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만물이 더 이상 'Sweet Caroline' 시대 같을 수야 없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싱어 송라이터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요 포스 아니겠는가. (201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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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콸콸 콸콸콸: 로드 스튜어트

Rod Stewart 의 스물다섯번째 스튜디오 앨범 <Soulbook>
2009년 10월 (J Records/Sony)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새벽 두시였고 밖에는 비가 내렸다. 택시타고 늦게 퇴근하다가 편의점에 들려 받은 택배를 뜯어 앨범을 꺼냈다. 로드 스튜어트 특유의 앨범 표지 사진 복사 신공(컨트롤+C, 컨트롤+V)이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며 CD를 꺼내 오디오에 걸었다. 혹시나, 어쩌면, 만약에, 이번만큼은 새로 찍은 사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이만큼 얼굴 각도를 돌려서 합성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러 돈 주고 숙련된 기술자를 데려오느니, 차라리 귀찮아도 카메라 앞에서 “치즈” 한 번 하시는 편이 싸게 먹히지 않겠는가.

  기본적으로 ‘Just My Imagination(더 템테이션스, 1971)’과 ‘It’s the Same Old Song(포 탑스, 1965)’, 그리고 ‘Tracks on My Tears(더 미라클스, 1965)’가 함께 담겨있는 앨범이라면 따지지 말고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봐야 옳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보이즈 투 멘>의 히츠빌 앨범도 먼저 지르고 나중에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세 곡 중 두 곡만 들어가도 누가 불렀느냐에 따라 심각하게 영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지도는 낮아도 앤디 아브라함만큼 (커리어는 짧아도 나이는 조지 마이클) 달콤하게 불러준다면 땡큐 베리 감사다. 그런데 로드 스튜어트. 추가로 제니퍼 허드슨과 함께한 ‘Let It Be Me(에버리 브라더스, 1960)’, 메리 제이 블라이지가 함께한 'You Make Me Feel Brand New(더 스타일리스틱스, 1974)', ‘Love Train(오'제이스, 1972)’, 'Wonderful World(샘 쿡, 1960), 그리고 스티비 원더가 직접 재림한 ‘My Cherie Amour(스티비 원더, 1971)’까지. 정말 망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 할아-오빠에게는 26살 어린 모델과 같이 산다는 원죄, 그리고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 시리즈로 쌓아온 카르마가 있기는 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카수가 커버했는데 이상하게 싱겁더라는, 그 알 수 없는 미스테리 말이다. 그에 비하면 모타운 클래식과 소울 명곡을 망라한 이번 앨범은 꽤 마음에 든다. 깊이가 부재하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럭 저럭 배합이 맞는 편이다. 60년대에서 70년대를 관통하는 곡 본연의 흥과 활기가 로드 스튜어트 특유의 고지방 고콜레스테롤 목소리와 반응하여 활발한 유흡착 및 유처리를 일으키니 과히 나쁘지가 않다. 그 다음부터는 콸콸콸콸 콸콸콸이다. 45년 커리어가 짤짤이해서 얻은 것은 아닌만큼 결코 허툴지는 않다. 양놈들에게는 '소울 겉핥기'로 들릴런지 몰라도 이 정도면 꽤 즐거운 앨범이다. 춥고 외로운 비오는 새벽, 덕분에 힘들고 우울한 기분을 많이 위안 받을 수 있었다.  (20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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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music, Rod Stewart

다재다능 캡틴 잭: 존 바로우맨

John Barrowman 의 두번째 팝앨범 <Music Music Music>
2008년 11월 (Epic/Sony Music)

  조국(서울대 교수 아님)의 대중문화계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예능과 CF가 인기의 척도가 되어 본업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그렇고, 엄격히 경종을 울려줘야야 할 수용자이자 소비자들이 오히려 한 술 더떠 극성을 부리고, 업계에 기준이나 윤리가 잡혀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상당히 해괴하다. 하긴 그게 어디 대중문화계뿐이겠는가. 형태는 다를지언정 이 나라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작동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노래도 못해요, 연기도 못해요, 말재주도 시원찮아 진행도 참 못봐요, 그래도 순간적인 인기 몰이만 가능하면, 약관의 나이에 '가수 겸 배우 겸 MC'가 될 수 있다. CF 스타는 당연히 챙겨야하는 인센티브. 소위 '멀티테이너'라는 찬란한 타이틀이다. 한국 같은 현실에선 특히 '멀티테이너' 신드롬이 위험하다. 쏠림 현상이 유독 강한데다가 관습과 관행은 있어도 상식과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꼭 멀티테이너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멀티테이너라고 칭송받을 이유도 없다. 재능에 가중치가 더해지지도 않는다. 좌타든 우타든 한쪽으로 3할 치는 타자가 굳이 스위치 히터로 변신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멀티테이너도 있다.

  잭 바로우맨은 2005 버전의 ‘Doctor Who(BBC, 1963~1989; 2005~ )’와 ‘Torchwood(BBC, 2006~ )’에서 캡틴 잭 하크니스 역할로 널리 알려진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겸 가수 겸 뮤지컬 배우다. 웨스트 엔드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오가면서 명성을 쌓았고 'Doctor Who'를 계기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을 했다. 최근에는 ‘Desperate Housewives(ABC, 2004~ )의 여섯번째 시즌에 미스터리 인물 패트릭 로건으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 남자의 강점은 역시 좋은 목소리. 목소리빨만으로도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더니 2003년 드디어 단독 앨범을 발표했고, 뮤지컬 다시 부르기와 스윙 다시 부르기를 거쳐 사실상 2007년 팝 가수로의 사실상 겸업을 선언하는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이 통산 두번째 팝 앨범이 되겠다. 커버 앨범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선곡을 싫어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프랭키 밸리의 'Can't Take My Eyes off You(1967, 빌보드 2위)', 배리 매닐로우의 'I Made It Through The Rain(1980, 빌보드 10위)',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1966, 빌보드 4위)', 리처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1989, 빌보드 1위)', 빌리 조엘의 'Uptown Girl(1983, 빌보드 3위)', 조니 미첼의 'Both Sides, Now(1968, 빌보드 8위)', 사라 맥라클란의 'Angel(1998, 빌보드 4위)','베트 미들러의 'From a Distance(1990, 빌보드 2위)'. 여기까지만 해도 누군가 내 아이팟 선호도 순위를 훔쳐본 것 같은 느낌인데, 여기에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 중 하나인 'I Know Him So Well(1985, UK차트 1위)'가 두 가지 버전으로 등장한다. 이 노래만 여덟 가지 버전으로 들어있는 아이팟의 주인으로 좌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 모든 명곡이 캡틴 잭의 살살 녹는 목소리로!

  이그지빗 A. 'I Know Him So Well'은 뮤지컬 <체스>에서 두 여성의 듀엣곡으로 등장한다. 당연히 이 노래는 여성과 여성이 함께 부르게끔 되어있다. 간혹, 정말 아주 간혹 남성이 백업을 하는 격으로 불려진 적은 있었지만, 아마 남성이 셀프 듀엣으로 부른 경우는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그지빗 B. 뮤지컬 <새장 속의 광대>에서 조지 헤른이 부른 'I Am What I Am(1983)'은 성적 지향에 관한 프라이드가 담긴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노래다. 그리하여 결론. 이렇게 멋지고 잘생기도 다수적으로 호감가는 분들이 알아서 소수자로 나서주시는 건 상당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로즈 양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홀딱 반할 정도이니 당연한 이치인가 싶기도 하고. 지구의 왜곡된 성비 균형을 바로 잡는다는 차원에서 <대한민국수호국민연합>, <대한민국수호원로회의>, <선진화기독교연합>,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 등의 해괴한 단체들도 이제 심보를 고쳐 먹을 때가 되었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리는 건 다른 이의 행복에 잣대를 들이대고 함부로 간섭하는 사람들이지 나와 다른 삶의 방식, 삶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18년째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이 꽃미남에게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니 제발 좀 철 좀 듭시다. '윌 앤 그레이스'와 '닐 패트릭 해리스'의 이름으로, 아멘, 아니 로켓멘. (201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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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마돈나: 케이티 페리

Katy Perry 의 첫번째 앨범 <One of the Boys>
2008년 06월 (Capitol)


  똘똘하다. 가수로, 작사가로, 또 작곡가로, 뭐가 먹히고 뭐가 안 먹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재능을 가졌다. 머리도 아주 비상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수보다 배우에 더 가깝기도 하다. 자기 노래를 연출할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을 그 노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낼 줄 안다. '에브리 맨'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공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을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에브리 맨'의 관심을 사로잡는 식이다. 단연 쇼맨십이다. 본능적으로 주목받는 법을 안다. 아주 뛰어난 보컬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데 (몇몇 라이브 콘서트 자료를 보면 사실 재앙에 가까운 순간이 있다), 자기가 쓴 노래에 필요한만큼의 적절함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가녀리게 혹은 우렁차게, 정숙하게 혹은 요염하게, 부드럽게 혹은 딱딱하게, 발랄하게 혹은 심각하게, 진지하게 혹은 경박하게, 사랑스럽게 혹은 그악스럽게, 흐름에 따라 순간마다 감쪽같이 변신한다. 이건 타고난 재능보다도 머리가 잘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다. 필요한 영역 안에서 자기 능력을 적절히 배분 활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녀의 영리함에 대해서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을 것이다. 2008년 '팝계 최고의 수확'으로 뜨거운 인기를 몰고다니며 지구의 평균 온도를 1도쯤 올라가게 만든 케이티 페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원색 위주의 이질적인 독특한 패션, 대담하고 직설적인 노랫말, 재능 그리고 스타성. 좋게 보면 21세기가 원하는 마돈나처럼 보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웬 스테파니와 패리스 힐튼의 조합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고난 금발을 굳이 검게 염색했다는 것부터가 이 딜레마를 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마돈나 시대의 마돈나는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지금 그녀는 소위 '레드 오션' 안에 위치할 뿐이다. 이미 존재하던 컨셉의 업그레이드 버젼으로 겹치는 포지션이 너무 많고 경쟁도 좀 지나치다 싶게 치열하다. 과거라면 첫 앨범의 기록적 성공이 어느 정도 안전 장치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인기 사이클이 짧은 시대에는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첫 끗발이 짐이 되고마는 경우마저 허다하다. 때문에 올 가을에 나올 다음 앨범이 그녀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아마도 자극의 강도를 한층 높이는 쪽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지만, 가급적 그 안에서도 아이덴티티를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껍데기를 따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직설적이고, 더 대담하고, 더 엽기적인 컨셉도 요즘 같은 경쟁 구도에서는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것은 음악적 아이덴티티다. 2009-2010년 그래미 어워드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에 2년 연속 노미네이트, 2009년 브릿 어워드 'International Female Artist' 부문 수상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그녀의 스타성이 아니라 그 이면의 빛나는 재능과 감각이었을 것이다. 비단 한 순간 빛나고 사그라들 찬란함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 이제부터 그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사실 이 앨범은 케이티 페리의 첫번째 앨범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2001년. 본명 케이티 허드슨(케이트 허드슨 아님)으로 발표한 크리스쳔 록 앨범이 있었다. 목사 부모 아래서 가스펠만 들으며 자라 CCM으로 음악계에 데뷔한 아가씨가 7년 후 가장 대담하고 도발적이고 문제적인 팝 아이콘으로 변신해 성공을 거두다니, 이래서 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 흡사 베트 미들러의 잭팟 앨범 표지 사진을 연상시키는 결과다. 혹은 시드니 셀던 소설 소재로나 어울릴 법한 일이다. (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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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패션드: 올 포 원

All-4-One 의 일곱번째 앨범 <No Regret>
2009년 09월 (Peak Records)


  돌아올 것은 돌아온다. 사랑도, 유행도, 물론 부메랑도, 사라졌던 동이도, 택근브이 타율도, 마찬가지로 올드패션드 음악도 언젠가는 클럽 음악의 홍수를 뚫고 돌아올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새로운 극장용 에니메이션에서 오래간만에 브로드웨이 스타일 뮤지컬을 부활시키겠노라 선언했다. 재앙과도 같았던 '아틀란티스(게리 트러스데일 & 커크 와이즈, 2000)' 이후 십여년만의 일인데, 그것도 랜디 뉴먼, 알란 멘켄, 한스 짐머 등 거장들로 줄줄이 라인업을 짜며 칼을 벼리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TV용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케니 오테카, 2006~2008)' 시리즈도, 올해 FOX TV 최고의 히트작 'Glee(라이언 머피, 2009~ )'도 따지고 보면 틴에이지 감성과 올드패션드의 적절한 매쉬-업이다. 중산층의 추억과 최신 수용체를 버무리는 이와 같은 작업은 그들 음악 감수성의 뿌리, 다시 말해 종래에 돌아갈 곳이 어디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행과 방법은 바뀌어도 근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대중음악을 소프트웨어적으로 대하는 나라와 하드웨어적으로 대하는 나라의 차이일런지도 모른다. 본래 뿌리도 없었거니와, 한 가지 유행이 전염되기만 하면 정권교체에 역성혁명이라도 하듯 불판이 싹 갈려버리는 우리 현실은 아무리 봐도 답이 안 나온다.

  90년대 초반 중창 전쟁을 대표했던 보컬 그룹 두 팀이 작년 가을 비슷한 시기에 컴백했다. '보이즈 투 멘'은 2년만에 아홉번째 앨범을 발표했고 '올 포 원'은 5년만에 여섯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두 팀 모두 완연한 하락세와 여러 궂은 일로 어려움을 겪었고 최근 십여년간의 트렌드 공세에 이렇다한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팀 모두 나름 회심의 반등을 준비한 기색이 역력한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두 팀의 전략이 완전히 반대라는 사실이다. '보이즈 투 멘'이 클래식 러브송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한층 노련해진 호흡과 공력을 자랑하는 반면, '올 포 원'은 신곡 위주의 앨범을 통해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와 최신 트렌드를 모두 섭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케미스트리는 최고였던 팀들인 만큼 어느쪽 앨범에도 딱히 불만을 가질 부분은 없으나, 다만 '올 포 원'의 경우 너무 오래간만의 신보인데다가 오리지널 송을 공격적으로 배치한만큼 조금 더 마음이 써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그룹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구성도 인상적이고, 전자음 윤색 등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자기 파괴 또한 신선하다. 게다가 '포 리얼'의 'You Don't Know Nothin(1994)'과 '웨스트라이프'의 'If Your Heart's Not In It(2001)'을 재해석한 트랙은 원곡 이상의 인상적 결과물이다. 물론 유행이 변해도 그들에게, 혹은 이런 스타일의 남성 중창 그룹들에게 다시 영광의 나날이 찾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는지도 모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보를 위해 드물게 방송 출연까지 감행했음에도 차트 성적은 시원찮고, 평단의 반응 또한 그럭 저럭 수준을 넘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이들의 화음이 만들어낸 1994년의 추억과 감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I Swear'와 'So Much in Love'를 빼고 1994년의 음악을 말하라는 것은 박지성과 이청용을 빼놓고 국가대표 축구팀 라인업을 짜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그 시절을 살았던 세대는 영원히 그 기억을 간직할 것이다. 이들이 아니어도 다른 세대에 의해 그 감성은 새롭게 갈음되어 전수될 것이다. 방법은 바뀌어도, 포장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 3의 시기를 보내는 방법이다. (20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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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 알파라이징: 코린 베일리 래

Corinne Bailey Rae 의 두번째 앨범 <The Sea>
2010년 01월 (EMI Records)


  코린 베일리 래의 노래. 대강 그림은 그려지는데 설명이 안된다. 현상은 있는데 인과를 부여할 수가 없다. 자잘한 말의 무더기는 별무리처럼 스쳐가지만 이내 그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 나른한 모호함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사전을 뒤지고 뒤지고 또 뒤졌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사전에는 이 미묘함을 정확하고 간명하게 압축한, 소위 클러치 능력이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광고의 조어(造語)를 빌려왔다. 알파라이징 - 혼합, 조합, 통합, 궁합, 결합, 정합, 반합, 변합, 유합, 교합, 화합, 중합을 모두 포괄하며 심지어 음양오행의 이치까지 싸그리 설명할 수 있는 이상 독특 야릇한 말이다. 경제, 국익 따위처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아무데나 필요에 따라 가져다 비빌 수 있으니 과연 편리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 인지체계를 종으로 관통하는 그녀의 신비로움을 기술하기에도 유용한 면이 있단 말씀.

  그녀의 음악은, 긍정과 부정의 알파라이징이다. 외면과 내면의 알파라이징이다. 기쁨과 슬픔의 알파라이징이다. 미소와 눈물의 알파라이징이다. 희망과 절망의 알파라이징이다. 기대와 실망의 알파라이징이다. 사랑과 이별의 알파라이징이다. 현실과 몽환의 알파라이징이다. 우울과 몽상의 알파라이징이다. 부력과 중력의 알파라이징이다. 정적과 소란의 알파라이징이다. 흐름과 거역의 알파라이징이다. 유음(流音)과 비음(鼻音)의 알파라이징이다. 쇠고기, 해삼, 홍합과 찹쌀이 알파라이징하면 삼합미음(三合米飮)이 만들어지듯, 알앤비, 재즈, 소울에 그녀가 알파라이징하면 ‘코린 배일리 래’라는 신종 삼합장르가 탄생한다. 이 마술적 미묘함을 몇 마디 부박한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봄에도 싸락눈이 쏟아졌는가 보다. 그녀의 노래가 신기한 것은 쓰린 상처에 알콜솜을 문지르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뿐히 휘발되며 마른 자리를 깊게 남기는 슬픔. 결코 눅눅하지도 결코 질척하지도 않다. 깊게 기뻐하지도 깊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너른 긍정과 관용과 성숙이 없이는 불가능한 슬픔이다. 사실 속세지사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 190만장, 세계 400만장의 앨범 세일즈를 올리며 단번에 거의 모든 주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영광의 스물 여덟, 남편 제이슨 래를 잃고 실의와 좌절에 빠졌던 비탄의 서른, 그렇게 어렵게 돌아와서도 이런 슬픔, 이런 기쁨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가 어렵다. 데뷔 앨범에서 이미 완성기에 접어들었단 의문의 물음표는 기어이 경탄의 느낌표로 변모한다. 진작에 완성이었음에도 그녀는 더 나아갔다. 깃털보다 가벼워졌고 바다보다 깊어졌다. (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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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눈물: 스티븐 커티스 채프먼

Steven Curtis Chapman 의 열다섯번째 앨범 <Beauty Will Rise>
2009년 11월 (Sparrow Records)

  크리스천 뮤직에도 슈퍼스타는 있다. 다름 아닌 스티븐 커티스 채프먼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89년 데뷔하여 지난 20여년 간 두 장의 플래티넘 앨범과 여덟 장의 골드 앨범을 포함하여 통산 텐 밀리언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그가 얼마나 사랑받는 아티스트인지야 말에 입 아픈 것일테다. 채프먼은 다섯 차례 그래미 수상 경력이 있으며, 크리스천 뮤직 시상식인 GMA(Gospel Music Association, 인텔과는 상관없음) 도브 어워드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무려 11개 부문에 걸쳐 통산 56개의 트로피를 선사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GMA에서 ‘Artist of Year’로만 일곱번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자체로 역사다. 가장 사랑받는 크리스천 뮤지션 목록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다. 채프먼은 믿음을 고스란히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선 단체를 설립하여 고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공연 수익을 기부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국제 아동 문제 관련 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과시하기 위한 선행이 아니다. 아내 메리 베스 채프먼과 중국인 고아 셋을 손수 입양하여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 남자가 얼마나 언행으로, 행동으로, 음악으로 삼박자가 일치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확인 가능하다.

  이렇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을 것만큼 좋은 일만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닥친다는 것은 정녕 불가해한 세상의 이치. 지난 2008년 채프먼은 다섯살 된 막내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진다. 한때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느꼈던 것은 물론, 음악활동까지 접으려는 결심까지 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마리아를 잃고 난 이후, 나는 더 이상 곡을 쓸 수 있을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심은 그런 감정을 노래에 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다시 천천히, 나는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註1)

  열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열다섯번째 정규앨범인 <Beauty Will Rise>는 그런 고통 끝에 탄생한 앨범이다. 씻어낼 수 없는 회의와 의문의 수사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통을 말하는 순간에도 기적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절망을 노래하던 순간에도 희망의 찬란함을 품고 있었던, 과거 채프먼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산 꼭대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벌리고 선 앨범 표지의 사진은 그가 이 작품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압축하여 보여준다. 지금 천국에 있을 딸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메시지, 그리고 이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을 방치한 절대자의 의지에 던지는 무언의 항의. 짙은 밤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얼굴을 한 하늘 아래서 그는 새로운 극복의 의지를 노래한다. (“하지만 당신의 영광으로 세상의 빈 곳이 빠짐없이 채워지는 날을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모든 암이 사라진 세상/ 모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이 주어진 세상/ 잠들 곳 없는 고아들이 더는 없는 세상/ 모든 외로운 마음이 진정한 사랑을 찾은 세상/ 더 이상의 슬픈 안녕이란 없는 세상/ 더 이상의 부족함은 없는 세상/ 더 이상의 싸움이 없는 세상.”) 결국 싱어 송라이터가 할 일을 싱어 송라이터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 것이다. 아픔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희망까지 나눔으로써 그는 자신을 위안하고 세계를 위로한다. 눅눅하게 고립된 슬픔을 넘어 아름답고 따뜻한 내일을 함께하길 기대하는 희망의 전언. 그 어느 때보다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슴에 묻어둔 그의 눈물이 배어나는 작품이다. (2010/03/26)



(註1) Excerpts from Steven Curtis Chapman's Interview, Official Hompage,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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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로잔느 캐쉬

Rosanne Cash 의 열두번째 앨범 <The List>
2009년 10월 (Manhattan/EMI)

  포크 대부는 정작 진짜 아들과는 소원한 관계였다지만, 컨트리 대부는 진짜 딸에겐 비교적 자상한 아버지. 물론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살았던 아버지이니 실제로 어땠는지야 부모 자식만이 아는 일이겠지만, 십대 딸을 위해 손수 컨트리 필청 100곡을 골라주었더라는 훈훈한 일화 등으로 보자면 서로 내외하는 많은 레전드 부자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쟈니 캐쉬의 장녀 로잔느 캐쉬가 말하는 ‘리스트’. 바로 열두번째 앨범 <The List>의 탄생을 가능케한 원천이다. 지난 앨범 <Black Cadillac>이 아버지(+친어머니/양어머니)를 기리고 추억하는 앨범이었음을 감안하자면 그 다음 순서의 작업으로 아주 적절한 셈이다. 열여덟에 아버지와 함께 공부했던 노래를 이제 쉰넷의 중년이 된 그녀가 다시 부른다. 거장의 안목이 반영된만큼 무게감있는 클래식 송들이 대거 반영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지미 로저스와 빌 핼리의 명곡 ‘Miss the Mississippi and You’로 시작하여 ‘Motherless Children(개리 데이비스, 1927)’, ‘Sea of Heartbreak (돈 깁슨, 1961)’. ‘Take These Chains from My Heart(행크 윌리암스, 1953)’, ‘I'm Movin' On (행크 스노우, 1950s)’, ‘Girl from the North Country (포크 대부, 1963)’, ‘Heartaches by the Number (가이 미첼, 1959)’, ‘Long Black Veil (레프티 프리젤, 1959)’, ‘She's Got You (페스티 클라인, 1962)’, ‘500 miles(핸디 웨스트, 1961)’, ‘Silver Wings(멀 해거드, 1969)’, ‘Bury Me Under the Weeping Willow(카터 패밀리, 1950s)’등 열두곡이 이어진다. 선곡부터 만만치가 않은데 브루스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 제프 트위디, 루퍼스 웨인라이트까지 참여하여 그녀와 호흡을 맞췄다. 그래미급 남편인 존 레벤달도 변함없이 그래미급 프로듀서로 자리를 지켰다. 어메이징 송, 어메이징 게스트, 어메이징 프로듀서. 이쯤되면 작품의 가치를 논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고 봐야한다.

  이 작품은 빌보드 앨범차트 22위, 컨트리 앨범차트 5위까지 올라갔다. 발매 후 다섯 달이 지났음에도 아마존 포크 부문 세일즈에서도 여전히 2위를 달리고 있다. 90년대 이후 그녀의 커리어를 감안하자면 분명 기대를 뛰어넘는 성적이다. 음악 전문지들 또한 별을 듬뿍 수놓아가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9년 가장 뛰어난 앨범 열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평단은  ‘소(小) 딜런’을 말할 때와는 다른 이유에서 항상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다. 즉, 아버지를 닮아서 (물론 마초, 무법자, 카리스마, 이혼소송 따위의 요소를 제거한 버전의 아버지). 과연 포크적 정서와 블루지한 감성이 적절히 용해되어 있는 그녀의 음악에서는 과연 쟈니 캐쉬의 향기가 난다. 사실 이 작품은 그녀 본인에게도 의미가 적지 않다. 2007년 아놀드-카아리 증후군으로 인해 뇌수술을 받은 후 회복되어 처음으로 발표한 앨범인만큼 소회 또한 남달랐으리라 생각한다. 양동이를 걷어차고 다시 시작하는 그녀의 오늘이다. 의욕적으로 재개한 전국 투어를 해 넘겨 이어오고 있으며, 스티븐 킹과 존 멜렌켐프의 뮤지컬 프로젝트에 참여할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올해 그래미에서는 스프링스틴과의 듀엣곡 ‘Sea of Heartbreak'이 <Best Pop Collaboration With Vocals>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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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트 언러브 유: 캐리 언더우드

Carrie Underwood 의 세번째 앨범 <Play On>
2009년 11월 (Arista Nashville)

  이 아가씨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은 없는가보다. 며칠 전에는 꿈에도 나왔다. 캐리는 내게 무반주 생 라이브로 불러줄테니 딱 한 곡만 골라보라고 했다. 앨범 석 장짜리 가수에게 리퀘스트 넣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 빌보드 넘버 원에 빛나는 ‘Inside Your Heaven(1집, 2005)’과 랜디 트래비스의 히트곡을 커버한 아름다운 컨템포러리 발라드 'I Told You So(2집, 2007)'를 두고 고민하다가, <하트>의 ‘Alone(1987)’을 불러달라고 했다. <아메리칸 아이돌> Top 11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다. 이어서 2007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불렀던 <이글스>의 ‘Desperado(1973)’까지 청해 듣고나서 잠시 광고 듣고 오시……, 아! 이게 아니지. 그건 그렇고 아이스하키 선수하고 사귀는 게 사실이냐고, 아이스하키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세번째로 야만적인 스포츠인데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맥퍼슨 기타를 들어 내 머리를 후려 친다. 오! 영광일지어다. 평생 언제 또 맥퍼슨 기타로 얻어 맞아 보겠는가. 허나 아쉽게도 그 순간 덜컥 꿈에서 깨어버렸다.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균일한 앨범이다. 2집 <Carnival Ride>의 성공을 일궈낸 마크 브라이트가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고, 맥스 마틴이 전혀 의외의 순간에 참여해 고객 맞춤형의 깜찍한 곡 'Quitter'로 절묘한 차별성을 일궈냈다. 힙합 프로듀서로 유명한 마이크 엘리존도와 컨트리 작곡가 브랫 제임스와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퍼스트 싱글 'Cowboy Casanova(빌보드 싱글차트 1위, 빌보드 컨트리차트 1위)'도 흥미로운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현재까지 캐리 언더우드의 성공에 적지 않은 비중으로 기여해왔던 작곡가 힐러리 린제이와 스티브 맥이완 역시 좋은 곡들을 대량으로 풀었고, 'Before He Cheats(1집, 2005)'을 작곡했던 조쉬 키어, 크리스 톰스킨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캐리 역시 일곱 곡의 작곡에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를 존재케 한 일등 공신들과 새로운 조력자들의 분전 속에 앨범은 특유의 활달함과 부드러운 호소력을 적절히 배합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프로모션용으로 지난 10월에 공개되었던 'Mama's Song'이나 세컨 싱글로 커트된 'Temporary Home(빌보드 컨트리차트 8위)' 등에서 보듯, 전작들에 비해 언플러그드적 감성을 충분히 표현해낼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 반응은 전작과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흠잡을만한 부분이 있지도 않을만큼 앨범 자체는 준수하다. 수잔 보일의 예기치 못한 일격으로 앨범차트 넘버 원 자리를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음에도 통산 세번째 플래티넘 앨범 역시 무난하게 달성했다. 물론 항상 좋은 시절만 있지야 않을 것이고 크게 성공한만큼 크게 지워진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롭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디, 지금 모습 그대로 부침 없이 오래 오래 남아 <아메리칸 아이돌>의 꼬리표 따윈 가뿐히 떼어버리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컨트리 팝의 상징으로까지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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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어 클락: 존 메이어

John Mayer의 네번째 앨범 <Battle Studies>
2009년 11월 (Columbia Records)

  1977년생이 벌써 이만큼 대우받기도 쉽지 않다. 가능성이나 보여줬으면 다행일 나이 서른에 이미 원숙의 경지에 올라섰으니 ‘준비된 거장’이라는 이른 호들갑이 나올 만도 하다. 역시 2006년작 세번째 앨범 <Continuum>이 결정적이었다. 트리오의 앙상블은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의 열풍으로 신세기 오피니언 리더로의 자격마저 공고히 다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21세기 신데렐라’ 혹은 ‘유망한 기타리스트’에서 그 이상의 존재로 등급 또한 상향조정되었다. 천주교 성인처럼, 그러나 천주교 성인과는 다른 이유로 오라를 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물론 진작부터 그는 항상 좋은 결과물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왔다. 이미 2003년부터 그래미에 불려다녔다. 그때마다 전혀 아쉽지 않을만큼의 사랑과 환호를 거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처럼 신속 명확하게 레벨 상승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듯 중요한 분기점에서 필살의 공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것도 아티스트의 중요한 능력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가망없는 희망을 노래하며 짙은 몽롱함을 부유하던 단계를 넘어 이제 존 메이어는 맞서 싸우겠단 의지를 천명한다. <Battle Studies>라는 제목부터 적잖이 의미심장하다. 여전히 정갈한 선율을 빌어 그가 말하려는 것은 사랑의 비탄이다. 그녀와 서로를 상처입히며 충돌을 반복했고, 심장의 반쪽은 내 말을 듣지 않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작별 밖에 없고, 끝내 친구도 연인도 아닌 Nothing이 되었고, 그래서 온전히 외롭고, 역시 삶은 전쟁과도 같은 것이고, 뭐 그런 얘기다. 사랑은 폐허가 되어 끝났을지언정 그의 의지만큼은 어느 때마도 또렷해보인다. 비록 지금은 결과가 좋지 않지만 절망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이 악물고 전진하겠단 선언이랄까. 그래서인지 채도는 과연 그대로이되 명도엔 미세하나마 변화가 왔다. 어쩌면 가장 대중적인 앨범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Heavier Things'를 덜어낸 경량한 버전의 메이어에 아쉬움을 표할 여지는 분명 남아있다. 로버트 존슨의 명곡 ‘Crossroad’를 완판 뉴타입으로 갈음해낼 수 있을 내공을 지닌 그가 고작 유약한 비트, 순량한 리프 위에서 연애 때문에 애끓는 단장이나 노래하고 있음이 못마땅하단 반응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만 한 것이다. 가사 또한 제니퍼 러브 휴이트, 제시카 심슨, 그리고 특히 제니퍼 애니스톤 등 J로 시작하는 이름의 여배우들과의 화려한 연애 편력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다. 과거엔 순수 성실 청년의 이미지였는데 언제부턴가 짜리시 가쉽 기사의 단골 손님이 되면서 빚어진 부작용이다.

  존 메이어의 데이트 상대 중 하나였던 제니퍼 러브 휴이트는 일찍이 비키니 차림에 하이힐까지 신고 테니스를 치는 훈훈한 묘기를 보여주었던 바 있는데, 테니스에서는 0점을 다름 아닌 ‘러브’ 라고 부른다. 즉 여기서 말하는 러브는 0이고 Nothing의 의미다. 사랑의 실패도 따지고보면 하나의 인생 스터디. 0시 00분. 이젠 지난 상처를 쓰리게 닦아낼 시간(러브, Rub o'clock)이라는 것이다. 가쉽이고 나발이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모든 걸 말하는 법.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제 서른 셋. 아직은 청춘과 사랑과 방황을 얼마든지 노래해도 좋을 나이고, ‘준비된 거장’이 ‘거장’으로 진화할 수 있을 시간도 충분히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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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John Mayer, music

자이트가이스트: 그린 데이

Greenday 의 여덟번째앨범 <21st Century Breakdown>
2009년 3월 (Reprise/Warner Music)

  오래 들어 익숙한 밴드의 경우 고정된 기대치가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이 친구들의 영역이고 한계로구나, 하는 것을 대강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곡보다는 구곡이 좋고 신보를 들으면 대개는 만족하지만 안 들어도 간절히 아쉽지는 않은 그런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 <그린 데이>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에 데뷔했으니 이미 뭐 속속들이 충분히 피차 알건 다 아는 사이고, 어차피 펑크는 펑크요 그린데이는 그린데이였다. 심지어 놀자판 음악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왔던 그들이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04년의 7집 <American Idiot>. 그냥 저냥 듣고 넘기던 <그린 데이>의 그들이 어느 샌가, 이제 모두 용사되어 오! 돌아온 것이다. 장대한 록 오페라 'American Idiot'의 뜨거운 무대를 딛고 선 남자들은 예전의 그 철부지 악동이 아니었다. <U2>와 나란히 무대에 올라도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이 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시의 삽질이 이들의 각성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자고로 고담시이기에 배트맨도 탄생하는 법. 하지만 억압과 통제에 천착하고 지구 평화에 일절 도움이 안되는 자칭 보수 성향 정권이 반드시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근래 들어 특별히 대오각성한 밴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기하급수로 증가한 걸 그룹 멤버만 무려 99(+a)명. 아무래도 우리는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벨리나의 나라' 이탈리아에 가까운 나라가 아니겠는가. 아이돌 제외하고 현 정권 들어와서 포텐 터진 케이스는 SK 와이번즈 외야수 박 정권 뿐이니 말이다.

  일단 전작과 이번 작품 <21st Century Breakdown>을 통해 그들은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는 밴드임을 증명했다. 분명 의미있는 성과다. 황량한 현대사회를 한 편의 서사시로 빚어내겠다는 야심, 결과를 떠나 그런 패기만만함이 참 마음에 든다. 미국사회의 부패를 노래했던 'American Idiot'의 다음 스테이지로도 더없이 적절한 작업이다. 이야기는 크리스챤과 글로리아라는 젊은 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3막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각각의 막이 분노-환멸-허무의 싸이클로 구성되는데, 일단 전 곡의 작사를 맡아 지휘한 리드 보컬 빌리 조 암스트롱의 눈부신 재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다음 상찬은 그 탁월한 연출을 가능케 한 밀도 있고 재기 넘치는 사운드의 힘에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확실히 연출력이 좋다. 열정적인 폭주 뿐만이 아니라 이젠 힘의 배분까지도 자연스럽다. 전작에서의 성과가 당시에 혹시, 잠깐, 어쩌다 미쳤었던 건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급기야 69분의 숨가쁜 질주가 끝나고나면 긴장이 탁 풀리고 온 몸에 힘이 쫙 빠질 지경. 과연 듣는 것만으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로써 <그린 데이>는 한 때의 악동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보다 단단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대표 앨범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201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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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Green Day, music

히트 앤드 런: 켈리 클락슨

Kelly Clarkson 의 네번째 앨범 <All I Ever Wanted>
2009년 03월 (Sony BMG)

  켈리 클락슨과 캐리 언더우드. 장르는 다를지언정 이 아가씨들에게는 몇가지 공통 분모가 있다. ① FOX TV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졸지에 신데렐라가 된 시골 소녀. ② 압도적인 포스로 우승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따라다니는 꼬리표. ③ 하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이 아니었어도 어떤 도정을 통해서라도 가수가 되었을 빛나는 재능 ④ 드물게 첫 끝발이 용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확실히 가수로 자리 잡고 경쟁 중이라고 느껴지는 몇 안되는 아이돌, ⑤ 팝을 근본 골조로 하되, 언뜻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첨가물(록의 기운, 컨트리의 유산)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적 영리함.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모. 만약에 둘 중 한 사람만 골라 데이트할 기회가 생긴다면 날을 하얗게 새어가며라도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춘추시대 오자서처럼 하룻밤 새에 머리까지 하얗게 세어버릴지도 모르는 일.

▶ 첫째,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빠진 지난 앨범 <My December>이 남긴 이상 야릇한 여운.
▶ 둘째, 이 앨범의 머릿곡으로 흡사 ‘Since You Been Gone’을 떠올리게 만드는 맥스 마틴, 닥터 루크 콤비의 다이너마이트 팝 ‘My Life Would Suck Without You’. 

  이 두가지로부터 사실 오해는 시작된다. 즉, 2집 <Breakaway>의 성공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로 하여금 네번째 앨범에 이르러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이 앨범을 설명할 수 있을까? 흔히 오해되는 것과는 달리 이번 앨범 <All I Ever Wanted>은 3집 <My December>에 비해 많은 세일즈를 기록하지 못했다. 흥행에서 'Never Again'을 빼고 죽을 쑤었음에도 엄연히 <My December> 또한 플래티넘 앨범이었고, 지금 추세로라면 <All I Ever Wanted> 역시 전작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뿐만 아니다. 주요 대중음악전문지들의 평가를 보면 전작이나 본작이나 큰 편차가 없는 수준이다. 해당 매체의 색깔, 선호, 경향, 특성에 대한 변수를 소거하자면 그냥 켈리 클락슨 앨범은 켈리 클락슨 앨범이라는 얘기다. 완성도에 있어 조금 못미더운 도전적 앨범이나 덜 도전적이되 보다 나은 완성도를 보인 앨범이나 최적의 배합비를 찾아내기 위한 일종의 연습과 도정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단 한 곡을 만든 맥스 마틴과 닥터 루크의 역할을 그렇게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All I Ever Wanted'을 포함 세 곡을 합작한 샘 월터스-루이스 비앙카니엘로 콤비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또한 케이티 페리와 라이언 테더가 소위 요즘 뜨는 친구들이라는 점을 부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단지 앨범에 추진력을 실어줄 회심의 한 방을 위해 그들 손을 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앨범을 그저 유턴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이제 겨우 에누리 없이 스물일곱. 이 정도 진폭쯤은 충분히 수용할만한 젊음과 패기를 지닌 시대의 아이콘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 한 방. ‘My Life Would Suck Without You’의 히트 앤드 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렬했다. 'A Moment Like This' 이후 7년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감격을 선물했다. 게다가 노래마냥 아래 위 없이 폭주하는 96계단 점프로 차트 신기록을 수립했다. 뿐만 아니다. UK차트를 점령한 최초의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가수가 되었다. (20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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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 케니 로저스

Kenny Rogers 의 서른두번째 스튜디오앨범 <Water & Bridges>
2006년 03월 (Nashville)

  케니 로저스의 2006년 신보 <Water & Bridges>는 빌보드 앨범차트 14위까지 올라갔다. 컨트리 차트에선 5위다. 처음으로 커트된 싱글 ‘I Can't Unlove You’가 컨트리 차트 17위까지 올라갔고 비교적 오랜 시간 50위 안에 머물렀지만 앨범은 채 50만장이 나가지 않았다. 언뜻 별 의미 없는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남자가 1938년에 태어나 1958년에 데뷔한 일흔살 할아버지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데뷔 50주년을 기념해야 할 마당에 내쉬빌 레코드와 계약하고 오롯이 신곡으로 채워진 서른두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의 면면 또한 결코 지지부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정도일 ‘I Can't Unlove You’는 그의 본령인 컨트리 팝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과거와 다름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박력있는 보컬을 자랑한다. 어쩌면 목소리만큼은 전성기보다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인류가 멸망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새롭게 지구를 지배하게 된 생물들이 퇴적층 아래에서 그의 박스 세트를 찾아낸다면 이번 앨범이 'Lucille(1977)'과 'Coward of the County(1979)', 그리고 'Lady(1980)' 보다 30여년이나 늦게 나온 음악임을 아마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앨범은 CMA(Country Music Association, 종합자산관리계좌 아님)에서 2007년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이렇듯 여전히 그는 엄연한 현역 가수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 걸러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 투어로 변함없는 티켓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통산 1억2천만장의 레코드 세일즈 기록을 가지고 있는 레전드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현재 서른세번째 앨범을 녹음 중이다. 2008년 10월, A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새 앨범에 포함될 ‘I'm Still Here’라는 곡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 곡은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입니다. (아마도 존 자이젤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의미하는 듯 하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고요. 그 옛날 딸은 미숙아로 태어났답니다. 집중 치료실에서 딸의 작은 손가락을 잡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I'm Still Here, I'm Still Here.” 세월이 흘러 딸은 자라고 노인이 된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립니다. 늙고 병든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으며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I'm Still Here.”

  음악은 감동(touch)이라는 것이 평생을 걸쳐 지켜온 노장의 지론. 그저 음악으로 터치(touch) 폰이나 광고하기에 바쁜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니겠는가.

*

  케니 로저스가 남긴 유산은 비단 고향인 미국이나 (컨트리 싱어로는 드물게 인기 몰이를 했던) 영국에 국한되어 머물지 않는다. 실명을 밝히긴 껄그럽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 작곡가가 불후의 명곡 ‘She Believes in Me(1979, 빌보드 5위)’와 ‘Through the Years(1982, 빌보드 13위)’의 코드 진행을 거의 똑같이 흉내낸 발라드만 대략 이십여곡쯤 양산하여 여러 가수에게 골고루 배포하며 한 시절 곡값을 벌었던 것을 기억하자면 분명 그렇다. 그를 꼭 꼬집어 흉보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케니 할아버지가 세기의 명가수라는 이야기다. (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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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재담꾼: 브래드 페이즐리

Brad Paisley 의 여섯번째 앨범 <American Saturday Night>
2009년 06월 (Arista Nashville)

  대외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차츰 하향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시점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非)라이센스 음반을 구매하기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 틀림없다. 꼭 라이센스반이 아니라도 어지간한 앨범은 수입반이라도 들어오던데, 여전히 몇몇 아티스트의 앨범만은 예외다. 국내에 수요가 많지 않은 포크, 컨트리 쪽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그럼 방법은 구매 대행 사이트 등을 통해 직접 길을 뚫는 것 밖에 없는데, 그 결과 겨우 9.9불짜리 앨범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배송비 포함 우습게 3~4만원이 넘어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월급쟁이 입장에선 짜장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정말 이러다간 나라경제와 민생경제가 동반으로 파탄나는 수가 있지 않겠나.

*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태초에 엄밀한 장르 구분이 있고 그에 기준하여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음악들이 인기를 얻다보니 수요가 발생하고 자연히 공급도 늘어나게 되어 끝내 일개의 집단군을 이룬 것이 소위 말하는 <장르>인 것이다. 일단 굵직한 흐름이 이루어지면 리딩 히터 역할을 하는 스타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당대 장르군 전반에 활기를 불어놓으며 인기를 주도하는 동시에, 시장을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나아가 파이를 키우는 데도 기여하는 슈퍼스타다. 가령 남성 컨트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80년대 초반은 조지 존스와 <앨라배마>의 시대였다. 80년대 중반의 리딩 히터는 조지 스트레이트와 행크 윌리엄스 주니어, 그리고 랜디 트래비스였다. 90년대로 넘어오자 앨런 잭슨과 빈스 질, 가스 브룩스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금세기 초에는 케니 체스니와 팀 맥그로우가 뒤늦게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카우보이는 과연 누구인가? 재론의 여지 없이 브래드 페이즐리일 것이다.

  1972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브래드 페이즐리는 1999년 신인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석 장 앨범 연속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한 곡씩은 꼭 빌보드 컨트리 싱글 1위에 올려놓던 그는 2005년작 <Time Well Wasted>에서 화끈한 쐐기를 박으며 격이 다른 슈퍼 스타로 본격 자리 매김을 시작했다. 컨트리 싱글 차트 정상에 세 곡을 올려놓은 것은 물론,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에서도 2위까지 올라갔다. 상복이 터진 것 또한 이 즈음부터의 일이다. 5집 <5th Gear>을 통해 컨트리 시상식에 가장 많이 불려다니는 가수 중 하나가 되었고, 드디어 작년에는 그래미와 AMA에서도 영광을 맛보았다. 브래드 페이즐리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을 셋만 꼽으라면 역시 'Whiskey Lullaby(2004)', 'Alcohol(2005)', 'All I Wanted Was a Car(2007)'이 아닐까. 컨트리 본연의 아기자기한 흥겨움에 팝 록의 패기가 절묘하게 용해된 것이 대중과 평단을 아우르는 인기의 비결이다. 니콜 키드만의 두번째 남편으로 유명한 키스 어반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 비해 페이즐리쪽이 배합비가 좋다. 재치있고 능청스러운 가사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 "(열여섯 때) 오직 내가 원했던 건 자동차뿐이었어요" 라며 차 한 번 가져보기 위한 그 시절 소년들의 요절복통 에피소드를 노래하는 것. 바로 그게 페이즐리의 음악이다.

  6집 <American Saturday Night>은 그런 페이즐리의 진가가 발휘된 앨범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원래 리딩 히터의 위치에 오른 가수들은 스스로 좋은 흐름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안 되는 집은 뭘 해도 안 풀리고 되는 집은 뭘 해도 잘 되는 것처럼, 이미 8부 능선을 넘어서 정상으로 향하는 도정에 있는 스타들은 앨범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뭔가 되는 분위기다. 이번 앨범이 그렇다. 첫 트랙 'American Saturday Night'부터 미드템포 발라드 'Then'을 거쳐서, 비장의 킬러 타이틀 'Welcome to the Future'에 이르기까지 짜임새가 워낙 좋다. 가장 떨어지는 트랙조차도 만듦새가 과히 나쁘지 않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감히 페이즐리에게 기대하는 모든 에너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한계에 다다른 기색 역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기세가 당분간은 이어질 거란 긍정도 가능한 것이다. 이 역시 대표적인 되는 집만의 분위기다. 평단은 브래드 페이즐리에게 항상 호의적이었다. 심지어 재능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던 순간에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당분간 이 유쾌한 남자의 고공비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이 물 오른 재담꾼의 두 어깨에 남성 컨트리계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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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파더: 제이콥 딜런

Jakob Dylan 의 첫번째 솔로앨범 <Seeing Things>
2008년 06월 (Columbia Records)


  과연 음악적 재능은 유전인가? 종종 마주하는 난제다. 스탠더드 팝의 검은 황제 냇 킹 콜의 딸이 나탈리 콜인 것을 보면, (끄덕끄덕) 수긍이 간다. 밥 말리의 다섯 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레너드 코헨의 아들 아담 코헨도 있다. 라비 샹카라의 딸은 노라 존스다. 스페인과 중남미의 맹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는 아버지의 느끼함을 백이십퍼센트 초월 이식 받았다. 팀 버클리의 아들이 다름 아닌 제프 버클리라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소름마저 돋는다. 헌데 또 한편으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줄리안 레논이 존 레논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나, 니콜 리치가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라는 사실을 보면, 음…… 꼭 유전이라고 보긴 어려운 사례도 분명 있군요.

  피를 물려 받는다는 것은 결코 본인의 의지에 달린 일은 아니다. 물려받은 피에서 염색체가 발현되게 하는 것 역시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더러는 영웅 아버지의 존재 아래서 비참해하고, 더러는 주위의 기대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나가 떨어진다. 그래서 제이콥 딜런의 경우가 흥미롭다. 피를 물려받았음은 물론 엄연히 재능까지 발현되었음에도, 그는 아버지의 존재에 무심하여 자유롭다. 그냥 뭐 그런 양반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태도랄까. 제이콥의 아버지는 전설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밥 딜런. 어쩌면 이제까지 위에서 언급한 아버지들 중에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닐 인물이다. 저런! 적어도 학교 다닐 때 누가 건드리는 일은 없었겠군. 제이콥이 69년생이니 아버지의 그 유명한 명작 <Nashville Skyline>만큼의 나이를 먹은 셈이다. 아버지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직후 태어났고, 아버지의 전성기에 유년을 보냈던 그다. 그가 밴드 <월 플라워스>로 정식 데뷔하던 1992년에도 아버지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제이콥은 단 한번도 “밥 딜런의 아들”이란 마케팅을 시도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찬란한 후광 속에 등장한 적도 없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은 <월 플라워스>의 성공 후에도 한참 뒤에나 밝혀졌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존경이나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그냥 뭐 그런 양반 있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태도다. 나란히 방송 3사의 토크쇼와 예능프로그램을 섭렵하고 돌아다니는 우리나라의 부자(父子) 가수들과는 사뭇 다른 광경 - 사이가 과히 좋은 편은 아니라던 소문이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롤링 스톤지는 제이콥 딜런의 음악을 두고 “엘비스 코스텔로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버전” 이라는 평을 내렸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워낙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양반이라 연도와 작품을 전제하지 않고 함부로 정의하기가 어려우므로 일단 접어두더라도, 과연 그의 음악은 외관상 아버지 밥 딜런보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쪽에 가깝게 들린다. 다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이 서민과 노동자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 주체적으로 그들을 이끄는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반하여, 제이콥 딜런의 음악은 단지 멀찍이서 그들을 응시하고 관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1인칭의 순간에도 꼭 3인칭처럼 느껴진다. 가령 2교대 노동자의 애환을 묘사하는 이번 앨범의 ‘All Day All Night’은 전형적인 브루스 스프링스틴 소재이자 작법에 가까움에도 뜨거운 독려나 날 선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세밀하고 담담한 스케치다. 롤링스톤지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버전”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차이를 가리킨 것임에 틀림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차이가 한편으로는 제이콥 딜런의 핏줄을 입증한다는 사실이다. 대부(代父), 대모(代母)는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일지언정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밥 딜런이랄까.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역시 가사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가사는 직설이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가볍고 간단한 비유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제이콥 딜런은 비교적 상세한 묘사와 시적인 은유를 구사한다.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밥 딜런의 뿌리를 숨길 수가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 작품에는 이렇다 할 기술적 구성이 없다. 제이콥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는 물론 약간의 베이스까지 도맡아 연주했고 그 이외의 악기는 일체 배제되었다. 코러스도 최소한만 삽입하려고 노력한 모양이다. 곡을 쓰고 부르는 이외의 모든 것을 조타(操舵) 능력이 뛰어난 프로듀서 릭 루빈에게 일임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작품의 남다른 응집력의 비결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세상의 어두운 절반을 노래하는 영웅의 아들. 거칠되 체온을 품은 그의 목소리는 엄연히 실재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들을 넘어 ‘Something Good This Way Comes’의 보다 나은 세계를 희망하고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를 전설적 아버지와 비교할런지 모른다. 허나 그는 이제 겨우 서른아홉이다. 또한 솔로 커리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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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언니는 간다: 마티나 맥브라이드

Martina McBride 의 열번째 앨범 <Shine>
2009년 03월 (내쉬빌 레코드)

  데뷔 전의 캐리 언더우드가 마티나 맥브라이드의 음악을 즐겨들었다는 것은 과연 우연에 불과했을까. 그러니까 이는 즉 코드의 문제다. 정통 트래디셔널 컨트리에서 갈라져나온, 한층 보컬 팝의 강점이 가미된 신주류 컨트리. 물론 샤니아 트웨인도 있고 리앤 라임스도 있고 페이스 힐도 있겠지만, 역시나 오랫동안 큰 부침없이 시장을 최전선에서 주도해왔던 '리딩 히터'라면 마티나 맥브라이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 따라붙는 반짝이는 닉네임만 살펴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던 컨트리의 여왕”, "내쉬빌의 안방 마님", “컨트리계의 셀린 디온”, 이쯤되면 심심풀이 로또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찬사는 아니다.

  마티나 맥브라이드의 강점은 역시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힘있고 매혹적인 보컬에 있다. 컨트리 특유의 쉽고 정감가는 선율과 가장 좋은 궁합의 보이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리앤 라임즈보다 힘이 넘치고, 샤니아 트웨인보다 정교하며, 페이스 힐보다 원숙하다.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시켜 나가는 친근감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장르적 기원으로부터 이탈하여 시원스러운 한 방을 날려주는 노련한 클러치 능력까지 갖췄다. 한 마디로 그녀는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보컬에게 요구되는 모든 요소를 가진 몇 안되는 가수다. 두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포함하여 총 여덟장의 플래티넘 앨범을 기록했던 그녀가, 지난 2007년 발표했던 아홉번째 앨범 'Waking Up Laughing'에서는 14년만에 골드 앨범에 그쳤으니 자존심도 적잖이 상하였을만 하다. 새벽 두시에 고교팀 운동장을 빌려 특타(特打)까진 하진 않더라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랜 동료이자 영광의 명반들을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 폴 월리를 다시 데려오는 대신에 댄 허프를 프로듀서로 초빙했다. 댄 허프라면 <자이언트>의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레바 맥엔타이어와 캐시 마테아, 페이스 힐 등의 앨범에 참여했던, 바로 그 댄 허프다. 워렌 형제, 힐러리 린제이 등이 변함없이 포함된 송라이터들의 라인업이 전작과 크게는 다르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역시 '프로듀서 폴 월리'와 '프로듀서 댄 허프'의 차이가 본작의 성격을 규정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싶다. 탈-컨트리의 기수이자 "컨트리계의 셀린 디온"으로 지금의 마티나 맥브라이드를 있게한 장본인이지만, 사실 프로듀서 폴 월리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컨트리 본연의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흥겨움을 최대화하는 쪽에 가까운 편에 가까웠다. 가령 <딕시 칙스>의 전성기에 일조했던 것처럼. 반면 댄 허프는 크리스찬 록으로 시작했던 기타리스트 답게 강렬하고 인상적인 보컬 라인을 명확히 살려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자연히 이제까지와 비슷한 공기이면서도, 뭔가 미묘하게 다른 면모가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시 첫 싱글 'Ride'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빗대는 이 곡에는 분명 기계적 완성도 이상의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어느 누가 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맛을 내기에는 결코 쉽지가 않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역시 그 원천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온 그녀만의 노련미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헌데 이 곡 하나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끈끈하면서도 유려한 'Wrong baby Wrong'에서 흥겨우면서도 구성진 'You're Not Leaving Me'까지, 또한 힘있고 열정적인 업 템포 'Ride'에서부터 미드 템포의 감미로운 사랑가 'I Just Call You Mine'까지, 다름 아닌 컨트리 음반임을 감안하자면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이고 결코 만만치 않은 낙차다. 물론 이 중 몇몇 곡에 한해서는 그녀보다 더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젊은 가수들이 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곡을 이렇게 노련하고 능숙하게 섭렵할 수 있는 가수는 아직까진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가능한 "모던 컨트리의 여왕”이란 영광의 수사다.

  그녀에게 대체로 호의적이었던 평단은 이번에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대체로 호의적'이라는 말은 이번 작품이 큰 흠 없이 알맞은 격으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제까지 이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 마흔두살인 그녀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리라는 단단하고 호기로운 전언임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평가다.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언니는 간다. 아홉수를 넘겨 열에 이른 이 터닝 포인트 앨범이 언니의 또 다른 도약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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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힘: 다리우스 루커

Darius Rucker 의 두번째앨범 <Learn to Live>
2008년 09월 (캐피탈 내쉬빌)

  다리우스 루커는 굉장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① 록밴드의 리드 싱어 겸 기타리스트로 출발했고 데뷔 앨범에서 다섯 곡을 히트시키며 1,600만장의 앨범 세일즈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듭한 끝에 나이 마흔에 솔로 데뷔를 선언했다. ② "나이가 드니 어째 잔잔한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어요" 라는 코멘트와 함께 이지 리스닝 계열로 옮겨가야 하는 시점이었음이 명명백백함에도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지미 코지어, 비달 데이비스 등과 협력하여 R&B앨범을 발표한다. ③ 판은 예전만큼 못 팔았다지만 평단으로부터 소정의 성과를 인정받은 시점에서 그는 다시 한번 깜짝 전업을 시도한다. 바로 내쉬빌과 손잡고 컨트리 앨범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는 빌보드 컨트리 앨범차트의 정상을 밟는다. ‘Don't Think I Don't Think About It(싱글차트 35위, 컨트리 싱글차트 1위)’, ‘It Won't Be Like This for Long(싱글차트 36위, 컨트리 싱글차트 1위)’의 원투펀치가 통했다. 더욱이 이는 새로운 기록이기도 하다.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데뷔 앨범이 1위에 오른 동시에 데뷔 싱글과 세컨 싱글이 모두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사상 두번째의 일이다. 조지 스트레이트, 앨런 잭슨, 가스 브룩스 등 컨트리계의 슈퍼 스타들도 누려보지 못했던 영광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신기한 이력인데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졌다. 바로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컨트리와 흑인이라니! 마치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 센스>에 준할 반전이 아닌가.

  물론 흑인 컨트리 가수가 무슨 대단한 '레어 아이템'이라도 되는 양 과장하고자 함은 아니다. 컨트리가 본래 백인의 음악이고 백인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탓에 성공하기가 어렵고, 설사 성공했어도 그 여파가 고스란히 앨범 세일즈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종종 등장하기는 했었다. 게다가 다리우스 루커가 과거 어떤 록음악을 했었는지를 기억한다면 이는 그렇게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 그가 이끌었던 밴드 <후티 앤 더 블로피쉬>의 매력이란 그의 결코 숨길 수 없는 까만 음색에 있었고, 결코 적지 않게 복고적인 취향이 물씬 묻어나는 몇몇 곡은 컨트리라고 주장해도 되겠다 싶은 음악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1995년, 바로 그 해의 명곡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챙이 넓다란 ‘텐갤런 햇(Tengallon hat)’을 쓰고, 소가죽 재킷에 타이트한 블루진을 입고, 네커치프를 목에 두르고, 징이 박힌 웨스턴 부츠까지 갖춰 신은 복실복실 콧수염이 난 카우보이, 그러나 민둥머리 흑인”이라는 짠한 반전의 묘미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은 까만 컨트리가 주는 ‘퓨전 아닌 퓨전’의 미묘한 흥취다. 분명 아련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전형적 복고 선율인데, 거칠고 까만 울림이 엄연히 공존한다. 분명 독특한 정서임에도 기존의 관습적 정서를 허물어뜨리진 않는 기이함. 바로 그것이 다리우스 러커의 성공 비결이다. 조지 스트레이트나 랜디 트래비스의 노친네 앵앵대는 음색이나, 혹은 앨런 잭슨이나 쟈니 캐쉬의 더없이 전형적으로 무겁고 윤기없고 중후한 ‘칸츄리’한 음색에 동의하지 못하여 컨트리를 멀리해 온 청자들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볼 법한 절충형 아티스트다. 바로 그것이 그가 지닌 의외의 시장성의 원천이었으며 1988년 이후 무려 20년만에 흑인 컨트리 가수가 탑 20에 진입하고 1983년 이후 무려 25년만에 넘버 원을 차지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세번째로 커트한 싱글인 ‘Alright(싱글차트 55위, 컨트리 싱글차트 9위)’의 성적 또한 나쁘지 않고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 ‘Learn to Live’ 또한 싱글로 커트되었다면 라디오에 불이 났을 흥겨운 노래다. 이 기세를 발판으로 아마 그는 굳히기에 들어갈 것이라 예상된다. 사반세기만에 컨트리 차트를 점령한 흑인 영웅이 나온만큼 후발 주자들의 데뷔 또한 조심스럽게나마 이어질 것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흑인 컨트리 가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찰리 프라이드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는 피부 따위에 거리끼지 않는다. 내게는 어떤 색깔도 없다. 다만 나는 인간, 찰리 프라이드다.” 마흔 다섯의 컨트리 신성, 다리우스 러커는 그렇게 '제 2의 찰리 프라이드'라는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0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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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보이즈 투 멘

Boys II Men 의 일곱번째 앨범 <Motown: A Journey Through Hitsville USA>
2007년 11월 (Universal/Decca)

  물론 남성 보컬 그룹이라는 포맷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시들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90년대 초중반 열광의 정점에 이르렀던 기억에 비춰보자면 초라하고 궁색한 면마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하여 자리를 메우고 있는 오늘의 인기곡들이 당시에 견줄 정도로 뜨겁고 아련하냐면, 글쎄. 함부로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중창의 묘는 인간의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인류 최초의 악기이자 인류 최후의 악기요, 동일한 성격과 음색과 특장점이 둘은 없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독창적인 악기. 기계산 대중음악에게 잠식당하지 않았던 마지막 시절로 기억될 지난 세기의 마지막 십년은 성대를 울려 마음을 움직이는 그 근원적인 에너지가 정점에 이른 순간이었다.  <올 포 원>, <컬러 미 배드>, <조데시>, <서피스>, <포트레이트>등의 컨템포러리 R&B 보컬 그룹들이 앞다투어 등장하여 조화의 정수를 보여주었지만, 나름의 색깔과 지향점을 가졌던 그들에게 덜컥 ‘짝퉁’이란 불미스런 꼬리표를 붙여버린 네 남자(네이선 모리스, 완야 모리스, 숀 스톡맨, 마이클 매커리), 그 이름도 찬란한 <보이즈 투 멘>의 존재를 빼고는 아마 90년대 남성 보컬 그룹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가스 브룩스에 이어 빌보드지가 선정한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4위 - 관록의 가스 브룩스지만 ‘월드 스타’ 소리는 못 듣는다는 점(‘월드 스타’란 수식어에 목숨 거는 건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뿐이 아니겠나), 충분히 ‘월드 스타’ 소리를 듣는 셀린 디온(5위)과 마돈나(6위), 그리고 휘트니 휴스턴(8위)이 존심 상하게 그들 밑으로 깔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더욱 인상적인 결과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다섯 곡을 비롯하여 탑 텐에 열두 곡을 올린 이들의 통산 앨범 세일즈는 약 4,200만장(정규앨범 3,500만장)에 이른다. 90년대 동안 단 세 장의 정규앨범 밖에 발표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믿을 수 없을만큼 급격한 하락세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정말 놀랍도록 짧고 굵은 기록이다.

  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Motown: A Journey Through Hitsville USA’은 그들의 고향인 모타운에 바치는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모타운의 전설적 명곡들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전작인 ‘Throwback, Vol. 1(2004)’ 또한 커버 앨범이었으니, 사실상 그들이 오리지널 송으로 승부했던 것은 저음 파트를 담당하는 마이클 매커리가 탈퇴하기 전인 2002년이 마지막인 셈이 된다. 이후 그들은 아리스타를 떠나 독립 레이블로 옮겨 나름의 타개책을 모색했고 아시아 팬들을 위해 일본 공략용 앨범을 따로 내기도 했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월드 스타'가 돌연 아시아 시장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는 것 부터가 사실 어느 정도는 쇠락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번엔 자신들의 레이블을 통해 발표했던 ‘Throwback’ 시리즈의 Vol. 2가 아니다. 유니버셜 그룹 산하의 데카레코드와 계약했고 테마는 모타운 히트송이다. 다시금 메이져 레이블과 손잡고 황금기를 재연할 의지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고 사실상 그들 커리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모타운에서의 6년을 그리워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트리뷰트 앨범'이라는 컨셉트에서 짐작이 가능하듯 아리스타 시절의 과감한 업 템포 R&B도 요즘 시장을 뒤흔드는 너절한 클럽용 잡종 R&B도 아닌 그들의 본령, 직계 정통파 영역으로의 귀환이다. 그렇다고 마냥 무임승차라 따져 묻기도 어렵다. 템테이션즈의 ‘Just My Imagination(1971, 빌보드 1위)’, 포탑스의 ‘It's the Same Old Song(1965, 빌보드 5위)’, 마빈 게이의 Mercy Mercy Me(1971, 빌보드 4위)’와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빌보드 8위)’, 미라클스의 ‘The Tracks of My Tears(1965, 빌보드 16위)’, 배럿 스트롱의 ‘Money(1959, 빌보드 23위)’ 코모도스의 ‘Easy(1977, 빌보드 4위)’, 스티비 원더의 ‘I Was Made to Love Her(1967, 빌보드 2위)’, 'Ribbon in the Sky(1982, 빌보드 54위)', 드바지의 All This Love(1982, 빌보드 17위), 마이클 잭슨의 ‘Got to Be There(1971, 빌보드 4위)’ 웨드윈 스타의 ‘War(1969, 빌보드 1위)’, 그리고 브라이언 맥나잇과 함께한 자신들의 명곡 ‘End of the Road(1992)’까지. 적게는 7회에서 많게는 30여회까지 재창작된 이력이 있는 클래식 넘버들임에도 다시 듣는 재미가 결코 적지 않다. 과감하지만 날카로운 요즘 음악이 주는 피로를 말끔하게 녹이고도 남는 구식의 승리다. 이 앨범에 프로듀서로 전격 참여한 랜디 잭슨의 존재 때문에 <아메리칸 아이돌>의 '라스베가스 오디션 라운드 2'쯤으로 결코 폄하되어선 안될 것이며, 향후 위 프로그램의 본선에 오르고자 하는 아이들은 마땅히 랜디의 궁극적 이상과 합격 기준이 배어있는 이 앨범을 교재로 삼아 감각과 하모니를 연마해야 마땅할 것이다 (농담이다). 제 5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이 앨범은 '베스트 R&B 앨범' 부문에, 아카펠라로 탄생한 'Ribbon in the Sky'는 '베스트 R&B 퍼포먼스' 부문에 각각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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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의 열여섯번째앨범 <Covers>
2008년 9월 (Hear Music)

  물론 올해 최악의 앨범 자켓 중 하나로 선정된 이 야릇한 몽타주에 찬성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할아-오빠(61세)가 전성기 지난 슈퍼스타가 어떻게 지고한 아티스트의 반열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모범답안을 화보 아닌 음악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적 싱어 송라이터의 사상 최초의 커버 앨범, 그 이름도 심플한 ‘Covers’의 상큼한 가치는 그렇게 입증된다. 자신이 꾸준히 공연에 포함시켜오던 명곡 레퍼토리를, 그리고 평소 아껴오던 고전 명곡을 모아서 고유의 정갈함으로 재구성한 이 앨범으로 그는 가뿐하게 명반 위에 명반을 한장 더 얹었다. 대중들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평단은 그래미 2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노장에게 화답했다.

  제임스 테일러라면 언뜻 태어나 채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그렇게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연인품듯 안고서 나긋하고 낭랑하게 속삭이는 컨트리/포크 계열의 부드러운 노래만 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의외로 그에게도 록삘로 충만한 질풍노도 낙장불입의 청년기가 있었다. 애플 레코드에서 발매된 그의 1968년도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찐해서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청춘’과 같은 느낌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말 참 쑥스럽고 송구하지만 그것이 노장께서 평생 유일하게 말아 잡수신 앨범이다. 이후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변신한 그는 정규앨범으로만 플래티넘을 열 장을 기록했다. 심지어 1977년의 ‘Greatest Hits’앨범은 히트곡 컴필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100만장이나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정규앨범과 컴필레이션, 그리고 라이브 앨범을 모두 합치면 앨범 세일즈가 3,300만장에 이른다. 평생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안에 든 곡이 통산 네 곡이고 넘버 원 싱글이 ‘You've Got a Friend(1971)’ 달랑 하나임을 감안하자면 인기에 비해 차트 퍼포먼스가 저조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실속이 만점이라고 해야할까. 그만큼 그는 꾸준히 오랫동안 부침없이 사랑받은 영웅이다.

  "무엇이 그런 영광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부질없다. 5년도 10년도 아닌 무려 40년을 이어온 기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순간의 기록에서는 한번도 천하를 제패하고 호령해 본 적이 없을지언정 그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레전드이고 한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다. 사실 찬란하게 빛났던 영웅들이 그만큼 빛도 빨리 잃어갔던 것에 비해 그의 시장 점유율 상실은 유난히 더딘 편이다. 여전히 판이 무섭게 팔린다. 팬 베이스가 '센추리 딕셔너리(Century Dictionary)'만큼 두껍다는 얘기겠지만 이 또한 가히 반 센추리에 가까운 시간동안 쉼 없이 꾸준히 현역에서 땀흘리며 뛰어온 노장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무엇이 그런 영광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역시 부질없지만 오늘의 이 앨범에 이르러 참 많은 것을 깨닫게도 만들어준다. '제임스 테일러=이지 리스닝'이 일반화된 생각이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Easy한 수준의 보컬만으로 평가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고로 그의 보컬을 꾸미는 수사는 '평이한'이 아니라 '적절한'이 되어야 옳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나머지는 조화의 힘일 것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제임스 테일러의 오늘은 비단 그 혼자 일구어낸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속해있는 씬,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받은 시간의 세례가 함께 담겨진 결과물이라고 봐야 옳을런지도 모른단 뜻이다. 특히 이 앨범 'Covers'의 경우 1950~1960년대의 명곡들을 평균 연령 55.3세의 노련한 세션맨들과 함께 재해석하는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미를 반하게 한 머릿곡 'Wichita Lineman(지미 웹, 1968)'을 비롯, 'Why Baby Why(조지 존스, 1955)', 'It's Growing(템테이션즈, 1965)' 등에서도 확인 가능하듯 이렇게 천부적 감각과 기술적 정교함을 겸비한, 찰진 궁합의 수준작은 결코 근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재료부터가 그 자체로 '유산'이나 다름없는 명곡들이었음 사실이지만, 그 시절의 공기와 호흡을 기억하는 프로 음악가들의 숱한 세월과 경험에 바탕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런 환상적 결과물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 앨범은 일개 수준작이기 이전에 문자 그대로 '위대한 유산'의 반열에 올려야 마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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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스텝프린팅: 에이미 맥도날드

Amy Macdonald 의 첫번째앨범 <This Is the Life>
2007년 07월 (Vertigo)

  우리 가요판에서 <성숙>만큼 왜곡되어 사용되는 표현도 드물 것이다. <성숙>이란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를 외치던 발랄한 소녀들이 까만 가죽 자켓을 입고 “뜨거운 너의 품에 쉴 수 있게/ 꿈꿔왔던 satisfaction” 따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숙>이란 ‘하늘색 꿈’이 ‘성인식’이 되는 것도, ‘성인식’이 다시 ‘봄 여름 그 사이’가 되는 사뭇 김기덕스런 순환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본디 <성숙>이란 세계와 인간을 사유하는 입체적 시각을 체득했느냐의 여부로 가늠되어야 한다. 고로 대중음악에 있어 <성숙>이란 그런 산고를 깨친 결과물로 음악이 탄생되었을 때 비로소 꺼낼 수 있는 표현인 것이다. 관건은 신체적 성징의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 문제다.

  신예 에이미 맥도날드를 두고 <성숙>하다는 말을 꺼내려는 이유는 남성 저음역에 가까운 그녀의 음색 때문도, 1987년생 치고는 대단히 노숙한 ‘아델’적 외모 때문만도 아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 자수성가형 싱어 송라이터 아가씨에겐 나이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노래할 줄 아는 독특한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뜻 철부지 소녀의 흥청망청을 노래하는가 싶었던 ‘This is the Life’는 알고보니 21세기 청춘의 방황을 내밀하게 묘사하는 근래 가장 훌륭한 텍스트로 완성된다. 특히 반복되는 “Where you gonna go?/ Where you gonna go?/ Where you gonna sleep tonight?”의 부분 - 이 후렴구에 녹아있는 것은 날카로운 격정이 아니다. 자조에 가깝다. 창백하다. 왜 길을 잃었는지, 왜 잠들 곳이 정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지만 그걸 문제의식으로 체계화 할 의지를 발견하지는 못한 상태다. 단지 “모르겠다”는 것 뿐이다. 과연 그렇게 들린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이 노래는 더욱 심오하게 들린다. 곡의 빠른 템포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가사가 그런 몽환적 효과에 촉매로 작용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배경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전경처럼 그녀는 노래한다. 어느 순간 왕가위의 '스텝 프린팅'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만큼 불안하고 예민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다른 싱글 히트곡 ‘Poison Prince’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랑 이야기를 동년배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썼다면 아마 ‘White Horse’쯤에 가까웠을 것이고 케이트 내쉬가 썼다면 아마 ‘Foundation’쯤에 근접했을 것이다. 사실상 비슷한 멜랑콜리에서 출발한 서사인데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정서의 층위가 다른 까닭은 미묘한 표현력의 차이 때문이다.

  일전에도 지적했지만 문화적 자생력을 상실한 우리의 20대와는 달리 영미권의 20대들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자신들만의 지분을 얻어내고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20대가 창작한 20대의 이야기를 20대가 향유할 수 있는 구조다. 에이미 맥도날드가 열다섯살에 썼다는 또다른 곡 'Youth Of Today'은 비록 참신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으나 20대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말하죠/ '우리땐 너희처럼 행동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더이상은 당신들의 시절이 아니에요/ 우리가 바로 오늘의 청춘이죠/ 우린 매일 머리 모양을 바꿔요/ 우리가 바로 오늘의 청춘이죠/ 우린 하고 싶은 말은 해요/ 우리가 바로 오늘의 청춘이죠/ 당신들의 강요 따윈 신경쓰지 않아요." 이제 겨우 스물한살로 마이스페이스에 목숨걸고 트래비스에 열광하는 '오늘의 청춘'인 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가씨는 그렇게 깜짝 놀랄 결과를 일구어냈다. 고향인 영국을 비롯,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등에서 앨범 차트 1위에 벨기에, 스페인, 그리스에서 차트 2위에 오스트리아, 독일에서 차트 3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차트 6위를 기록하며 전유럽에서 무려 250만장의 앨범 세일즈를 기록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십대 소녀의 취미형 습작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프로페셔널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려면 성장이 이대로 멈춰서는 곤란할 것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만큼 더욱 진하고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유망주들이 그쯤에서 빛을 다하고 사라졌다. 허나 그녀에게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을 구체화할 에너지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수야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겠지만, 그녀는 내일은 또 '내일의 젊음'이 되어 또다시 씩씩하게 노래하리라.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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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폭스의 위험: 테일러 힉스

Taylor Hicks 의 세번째 앨범 <The Distance>
2008년 03월 (Arista/Modern Whomp)

  아이돌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한때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것으로 예상되던 그들이 막상 진짜 커리어에서는 갈피를 못잡고 휘청거리는 사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폭스 텔레비전의 ‘아메리칸 아이돌’이 CBS의 ‘CSI’와 ABC의 'Desperate Housewives'를 누르고 시청률 정상에 올라섰을 때만 하더라도 전국의 재능있고 신선한 아이들을 모아 모아서 펼치는 이 토너먼트 쇼가 일종의 유망주 팜(Farm)이 될 수 있으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매주 수억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년동안 뜨거운 경합의 드라마를 펼쳤으니 지역구 아닌 전국구급 인지도도 확보했겠다, 사이먼 코웰을 위시한 독하고 까탈스러운 놈들의 갈굼 속에 실력도 검증이 되었겠다, 우승자는 물론 준우승, 3등, 4등까지도 음반 내자는 제작자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겠다, 언뜻 탄탄대로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헌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아래는 말할 것도 없이 시즌 우승자와 준우승자들조차 결승전에서 터뜨린 대박 신곡 이후에는 앨범 세일즈와 차트 퍼포먼스에 있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예외라면 첫번째 시즌의 우승자 켈리 클락슨과 네번째 시즌의 우승자 캐리 언더우드 정도. 두번째 시즌 우승자인 루벤 스터다드의 경우 데뷔작으로 180만장 플래티넘, 앨범차트 1위, 싱글차트 탑 텐 2곡의 기염을 토해놓고, 이후로는 탑 텐 싱글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앨범 세일즈도 두번째 앨범에서 50만장, 세번째 앨범에서 20만장으로 점점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네번째 시즌의 우승자 판타지아 배리노도 비슷하다. 데뷔작으로 180만장 플래티넘을 찍고 앨범차트 8위,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이후로는 서서히 차트 퍼포먼스와 앨범 세일즈가 떨어지는 중이다. 두번째 시즌 준우승자 클레이 에이킨의 경우엔 그나마 이제까지 석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그럭저럭 앨범차트에서는 고른 성적을 보여주고 있고 뜨거운 인기도 여전하지만, 역시 싱글차트에선 탑 텐곡을 못내고 있으며 세일즈도 2년을 반감기로 계속 토막나고 있는 중이다. 다섯번째 시즌의 준우승자 캐서린 맥피는 사실 데뷔작부터 결과가 신통치 않았으며 (솔직히 어떻게 얘가 파이날에 올라갔는지 모르겠습디다), 다섯번째 시즌의 3위 엘리엇 야민과 4위 도트리는 일단 첫 끗발의 단맛을 보았으나 아직은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할 처지다. 그리고,

그 치열했던 다섯번째 시즌의 찬란한 우승자, 테일러 힉스가 있다. 사실 그의 성적 부진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돌들의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는 사실 우리가 방송의 효과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탓일 수 있다. 이미 검증받은 곡으로 매주 텔레비젼에 나와 눈도장을 찍는 것과 기존 시장에 편입되어 상품으로 선택되는 것은 엄격하게 다른 차원의 게임임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아무리 잘나도 더 잘난 놈이랑 포지션이 겹치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하자면 "진짜 음반시장은 TV쇼처럼 나와바리를 정해놓고 '웰컴 투 헐리우드' 하는 게 아냐, 이것들아" 정도랄까. 매력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을 뚫어야 한다. 켈리 클락슨과 캐리 언더우드의 공통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니치 마켓의 공략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실버 폭스' 테일러 힉스는 시작부터 차별화된 시장을 가질 수 있는 남자였다. 소울에서 펑크, 그리고 블루스에 이르는 그의 포지션이 일단 또래 시장에선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보여준 진지하고 열정적인 가창은 진작에 도전자 중 으뜸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올드 넘버들을 소화하되, 그는 결코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훈련된 타이밍에 의존하여 완급을 조절하지 않았다. 평소 꾸준히 애창해오던 몸에만 배어있을 수 있는 익숙한 자연스러움이었고, 오직 그런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물적 감각이었다. 변태 사이먼 코웰이 "천상 코러스나 할 목소리"라며 지겹도록 갈궜지만 테일러는 사이먼 코웰이 픽업한 어떤 가수들보다도 노래를 진실되게 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러니 그의 부진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안 먹히지? 데뷔 싱글이자 넘버 원 히트곡 'Do I Make You Proud' 이후 지난 3년간 그는 빌보드 100위 안에 그의 싱글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첫 앨범은 함량이 충분하지 못했던 면도 분명 있었으니까 - 그래서 모셔왔다. 에릭 클랩튼의 절친 사이먼 클라이미가 프로듀서로 나섰다. 그의 포지션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경우의 수다. 확실히 곡의 때깔도 앨범의 안정감도 달라졌다. 첫 싱글 'What's Right Is Right'부터 쫄깃쫄깃 찰진 재미가 각별하다. 납량특집도 아닌데 소름이 일게 만드는 'Indiscriminate Act of Kindness' 역시 과거 그의 열정적 퍼포먼스를 떠올리기에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번에는 평단도 호의적인 쪽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이번 역시 발매 후 두달이 다 되어가는데 반응이 뜨뜨미지근하다. 심지어 켈리 피클러(다섯번째 시즌 6위)도 두번째 앨범에서 이보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200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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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갑자 리치상: 라이오넬 리치

Lionel Richie 의 아홉번째 앨범 <Just Go>
2009년 03월 (Island)

  드디어 이순(耳順)이다. 육십갑자의 한 세월을 돌며 노병은 눈부신 성공과 눈부신 쇠락을 고루 경험했다. 워낙에 과작이어서 그럴까. 통산 아홉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그의 음악에선 환갑상을 받아놓은 노인의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감각적 자켓 사진은 마치 한창 인기에 물이 오른 최신의 힙합 스타라고 해도 믿을 정도고 반짝반짝 눈이 부신 눈빛은 이팔 청춘도 울고 갈 정도다. 우리가 섬으로 돌아가 ‘달마 이니셔티브’의 일원이 되어버린 그를 만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회춘이 가능한 것인가? 역시 비결은 끊임없는 수혈일 것이다. 록의 황제 레니 크레비츠와 떠오르는 신예 다니엘 배딩필드를 불러모아 젋은 패기를 충전했던 일곱번째 앨범 'Just for You(2004)'. 스타게이트와 저메인 듀프리의 지원사격으로 최신의 감각을 이식받았던 여덟번째 앨범 'Coming Home(2006)'. 그리고 이번 앨범에 이르러 그는 스타게이트에 크리스토퍼 스튜어트, 에이콘, 니-요의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스타게이트(에릭 허멘슨 & 미켈 에릭슨)가 누구인가. 니-요의 넘버원 싱글 'So Sick'과 비욘세의 세계적 히트곡 'Irreplaceable'등의 작곡에 참여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팀이 아닌가. 크러스토퍼 스튜어트는 또 누구인가. 리아나의 'Umbella'와 머라이어 캐리의 'Touch my body'를 히트시킨 요즘 가장 잘나가는 프로듀서가 아닌가.

  그러고보니 라이오넬 리치의 새로운 전략은 근래 머라이어 캐리의 그것과도 닮아 보인다. 물론 같은 아일랜드 레코드 소속이기도 하고, 크리스토퍼 스튜어트, 저메인 듀프리, 스타게이트, 더 드림, 존타 오스틴 등의 총출동을 봐도 그렇고,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고유의 영역을 버리고 힙합/알앤비의 젊음 기운을 한껏 끌어올려 승부를 벌인다는 점에서 80년대 최고의 남성 아티스트와 90년대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의 오늘날 생존법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재기한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와 비교할 수야 없겠지요. 허나 라이오넬 리치 또한 화려했던 80년대만큼은 아니어도 약간씩 뜨거운 조짐이 돌아오고 있다. 과연 여덟번째 앨범 'Coming Home(2006)'은 10년만에 미국에서의 골드 앨범으로 기록되었고 무려 20년만에 노장에게 앨범차트 탑 텐 진입을 선물했던 바 있다. 이번 앨범 또한 전반적으로는 전작의 공식이 되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류에 정조준한 뻔한 송라이터들의 뻔한 트랙들조차 과히 나쁘지가 않다. 예순이 넘었지만 얀 웬리의 일점맹공보다도 강렬한 왕년의 곡해석력이 건재하다는 증거다. 예컨대 아홉번째 트랙 'Think of You'를 보라. 몸서리치게 마음에 드는 곡인데 혹시라도 니-요가 불렀더라면 애당초 듣기도 전에 거부감부터 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예컨대 첫번째 트랙 'Forever'를 보라. 거칠게 비유하자면 나훈아 아저씨가 빅뱅류의 노래를 부르는 셈인데(요즘 빅뱅 얼라들이 누구 노래를 열심히 커닝하는지를 복기하자면 무척 적절한 비유다)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아직도 짱짱하신지. 허나 노장이 노장인 건 아직 은퇴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숱히 전장을 누비며 쌓은 상처와 연륜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기에 여전히 노장으로 일컬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고전적 라이오넬 리치표 발라드와 크리스토퍼 스튜어트식 트렌디 팝이 화려하게 융합한 'Good Morning'이 물론 좋은 예가 되겠지만 진짜 걸출한 트랙은 꼭꼭 숨겨져있는 열두번째 트랙의 듀엣곡 'Face In The Crowd'과 열네번째 트랙의 'Eternity' - 갑자, 을축, 병인, 정묘, 애들은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육십갑자 리치상의 내공 대폭발이다. 모두 일어나 노병의 귀환을 경배하라. (200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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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나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 의 열여섯번째 앨범 <Working on a Dream>
2009년 01월 (Columbia)

  보스(The Boss)의 귀환이다. 언제 떠났냐는듯 초연하게 돌아오는 모습이 눈부시게 멋지다. 사실 부르스 스프링스틴은 미국적인 가수의 표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미국적인 가수로 스프링스틴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2003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앨범> 설문조사에서 비틀즈와 U2의 걸작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앨범 또한 그의 1975년작 ‘Born To Run’이다. 말인 즉슨 미국 록의 자존심이 그에게 달렸다는 얘기다. 물론 스프링스틴이 ‘미국적인 가수’란 말은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라는 뜻이기보단 ‘미국을 상징하는 가수’라는 뜻에 가깝다. 여기서 ‘미국을 상징한다’라는 표현은 그들의 국가적 자부심과 궤를 같이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류의 소름끼치는 찬양의 뉘앙스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게 우리와 그들의 감각 차이다.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자부란 유형의 사실 근거(예컨대 국가 대항 프로 스포츠 경기등을 통해)를 통해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하는 것임에 반해, 그들에게 국가적 자부란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엄연히 실재하는 ‘정신(Sprit)’에 가깝다. 스프링스틴의 음악은 바로 그들의 그런 정서 위에서 뜨겁게 공명하는 것이다.

  그를 둘러싼 오해는 여기에서 빚어지는데 바로 스프링스틴이 추구하는 가치가 보수 집단의 이해와 합치할 것이라는 편견이다. 실제 그의 노래가 악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허나 그의 노래가 환기하는 바는 (굳이 따지자면) 제 5공화국 주도하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던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보다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에 내용적으로 가깝다. 무게 중심이 가치가 아닌 가치의 붕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착취, 노동의 한계, 전쟁과 폭력, 좌절과 소외, 인간성의 붕괴, 이처럼 가치의 붕괴를 노래함이 “이제 과연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역할을 하기에 비로소 가치를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봐, 우리 그런 나라 아니잖아” 라는 생각에 그들은 스프링스틴의 노래를 애청하고 그의 존재와 음악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나라 사랑과는 경로가 정반대인 셈이다. 예컨대 NBC의 인기 시트콤 ‘The Office’에서 종이 회사 지방 소도시 지점의 하급 관리자 주인공 마이클 스캇(스티브 카렐)이 그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은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설정인가.

  절망을 노래하기에 희망을 그릴 수도 있다는 노장의 마술은, 황량하고 메마른 절망의 계보와 저 멀리 오아시스처럼 아른거리는 희망의 계보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근래 그의 디스코그라피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새 앨범 ‘Working on a Dream’이 다시 더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격동의 반세기를 경험한 1949년생 이 관록의 노장은 조금도 늙지 않은 것처럼 무대에 섰고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노래한다. “나는 그 날을 꿈꾸며 일하지/ 비록 때론 멀게만 느껴질지라도/ 나는 그 날을 꿈꾸며 일하지/ 우리 사랑이 모든 고난을 물리칠 그날을 (Working on a Dream)“ 버락 오바마의 등장과 맞물려 미국 사회에 살아나기 시작한 꿈과 희망의 전언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정녕 불가해한 것은 그의 송라이팅 능력이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감각이 살아있다. 죽은 선율에 가오만 잔쯕 넣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팔딱팔딱 용트림치는 상쾌한 패기가 느껴진다. 어쩜 슬럼프 한 번 없이 이렇게 곡을 잘 쓸 수가 있을까. 많은 노장들이 쇠락한 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스스로의 문법에 갇히고 마는 것과 비교할 때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한 일이다. (200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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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 릴리 알렌

Lily Allen 의 두번째앨범 <It's Not Me, It's You>
2009년 02월 (Capital/Parlophone)

  나이는 스물 셋이지만 이빨 드리블은 예순 먹은 엘튼 존과 맞먹는단 1985년생 릴리 알렌. 마이 스페이스 일촌만 40만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케이트 내쉬, 케이티 페리, 걸스 어라우드 등과 끊이지 않는 설전을 통해 대중음악계에는 친구보다 적이 많은 무서운 소녀. 10대 때 일찌감치 엑스터시와 코카인 중독을 선행학습하였으며, 아기를 가지고서야 겨우 담배를 끊었고, 아기를 가지고도 알코올 중독에서는 헤어나오지 못한 문제아. 술 처먹고 올 나잇 띵까띵가 놀다가 파파라치랑 시비붙어 싸우는 철없는 파티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카톨릭이라고 빡빡 우기는 가련한 영혼. 조목조목 뜯어보면 꽤 귀여운 얼굴인데 하는 짓은 사냥철 아닌 때에 엽기 투성이요, 차림새는 가히 안드로메다 3과 2분의 1번 출구인데다가 입만 벌리면 F워드가 속사포로 쏟아져나오니, 그건 그렇고 이 놈의 지지배 공연중에 뻐끔뻐끔 담배 태우는 건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람.

  이 모든 것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단정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굿 캅'이 있으면 누군가는 '배드 캅'을 해야하는 것처럼 포지셔닝으로의 악동 이미지를 구축했을 가능성, 엄연히 존재함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허나 그런 단정이 영 상쾌하지만은 않은 것은 그녀의 음악 때문이다. 즉 릴리 알렌은 자신이 몰고 다니는 이슈, 부러 만들어내는 노이즈와 상당 부분에서 부합하는 음악을 써낸다. 많은 경우 음악으로 만든 좋은 이미지를 사생활이 망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녀의 경우 막장 사생활을 음악으로 변호받는 반대 방향의 기작에 가깝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마냥 철부지처럼 보였는데. 지지배, 노래를 들어보니 그래도 제법 어른스러운 구석도 있네. 'The Fear'와 같은 통찰이 가능하리라고, '22'와 같은 고민이 가능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별일 없이 사는 건 아니었군요. 머리에 꽃단 미친 파티 걸이 발랄뻑쩍하게 외치는 'F- You'에 그런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거군요. 그래서 망아지들은 그렇게도 우르르르 헐떡헐떡 헬렐레 하악하악 침질질 꺼이꺼이 중얼중얼 피시시식 힝힝거렸던 것이로군요. 오오! 그러니 간간히 넘나드는 방종과 장난조차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평단이 그녀에게 대체로 긍정적인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 또한 이 때문이리라. 시장 또한 그녀의 난장에 흥미를 표했다. 고향인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차트 1위, 아일랜드에서는 3위, 미국에서는 빌보드 앨범차트 5위를 차지했다. (200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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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에스프레소: 아델

Adele 의 첫번째 앨범 <19>
2008년 03월 (Columbia)

  왜 그녀를 자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비교하는가? 둘의 공통점이라면 국적, 학연, 그리고 나이보다 노숙한 얼굴을 가지고 있단 정도일텐데. 그건 그렇고, 정말로 해 넘겨 스물 한 살이 맞아요? 과연 존 메이어(최우수 남성 팝 보컬상, 1977년생)가 “누나”라고 불러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1988년생 아델은, 방긋 웃었다. 제 5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여성 팝 보컬상과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의 석권. 알짜배기만 골라 챙겼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야 없다. 음반을 녹음하고 발표하는 모든 이들의 꿈을 갓 스물의 소녀가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이룬 것이다.

  아델은 성숙한[노숙한] 외모와 걸맞는 성숙한[노숙한] 감수성을 지녔다. 음색의 밀도와 탄성에 관한 찬탄이야 아무리 퍼부어도 아깝지가 않을 것이나, 보다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운문 자체에서의 표현력이다. 빈티지라면 에이미 와인하우스로도 충분하다. 파워 보컬이라면 차라리 더피를 들을 것이다. 아델이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끝내 감수성이고 표현력이다. 좋은 사운드, 좋은 가창력, 그 밖의 무수한 기계적 척도로는 분석될 수 없는 서정의 힘으로 그녀는 존재한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노래 잘하는 머신(Machine)들은 많지만 그녀처럼 진짜 단백질 냄새가 나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36.5도의 반박하지 못할 체온으로 그녀는 존재한다. 무서운 신예 디바 레오나 루이스, 작년 내내 빌보드를 뒤흔들었던 케이티 페리, 재기에 성공한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그래미의 목전에서 GG친 것도 그녀의 그런 면모까지 압도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대개 소녀들의 시장 공략법이 우유로 떡칠을 한 '라떼'나 '카푸치노'의 부드러움이라면, 아델은 여지없는 에스프레소다. 짧고 강하게, 그리고 진하게 밀어붙인다. 9기압 압축의 강렬한 마력에 혀 끝이 얼얼할 정도다.

  데뷔 앨범 <19>가 뜻하는 열아홉은 앨범 녹음을 마친 나이. 실상 대부분의 곡을 그 이전에 썼다는 점을 상기하자면('Hometown Glory'는 열여섯에, 'Chasing Pavements'는 열여덟에) 뭐랄까, 재능을 타고 났다는 건 이럴 때는 쓰는 말일테다. 재능이 없으면서 이런 걸출함을 자력으로 만들어 낼 확률이란, ① 장동건이 아카데미에서 연기로 상을 받을 확률, ② 비가 그래미에서 음악으로 상을 받을 확률, ③ 조갑제가 곱게 늙을 확률, ④ "비비디 바비디 부"를 외친다고 그 놈의 경제가 저절로 살아날 확률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할 것이다. 과연 지금 이 순간, 니가 아니면 싫으네 좋으네, 여자의 직감으로 아네 마네, 오빠가 나쁘네 마네, 울렁울렁 징징(Gee-ing?)거리고들 있는 우리의 열아홉 먹은 가수애들과 열아홉 먹은 가요 소비자애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물론, 그건 그 애들의 책임이 아니다. 자기들이 자기들 머리 속의 십대 이미지에 맞춰 시장을 만들고, 그에 맞춰 장사판을 벌여놓은 어른들의 잘못이지. 더구나 그것은 비단 가요판만에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나는, 너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열아홉살에 자신의 분야에서 그만한 깊이와 통찰을 갖춘 존재였던가? 모두 함께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두 손 놓고 "비비디 바비디 부"만 목이 터져라 외쳐본들 그녀와 같은 '물건(절대 그녀의 중성적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이, 'Chasing Pavements'와 같은 걸출한 곡이 저절로 떨어질리는 만무할 것이다. (200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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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크리스마스: 브라이언 맥나잇

Brian McKnight 의 크리스마스 앨범 <I'll Be Home for Christmas>
2008년 10월 (Warner Bros.) 

  베스트 알앤비 남성 보컬 노미네이션 전문가수 브라이언 맥나잇이 친한국적인(그가 우리나라를 좋아하는지는 알 길 없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은가) 가수라는 사실은, 우리가 2000년대 들어 드물게 가요 명곡으로 인정하는 몇 곡 중 하나인 김범수 ‘하루(2000)’의 주요 멜로디가 브라이언 맥나잇의 ‘Last Dance(1999)’ 도입부와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높은 싱크로율을 기록한다는 점에서부터 능히 짐작이 가능하다 (하광훈 아저씨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거예요?). 그만큼 브라이언 맥나잇은 굳이 ‘Back At One’의 초메가 히트를 복기하지 않더라도 조선 간장, 아니 조선사람 감성에 부합하는 싱어 송라이터였던 것 - 그런 그가 데뷔 이래 두번째 캐롤 음반을 발표했다. 첫번째는 최고 상종가를 치던 2001년, 유니버셜 레코드에서 발표한 ‘Bethelehem’. 그렇다면 과연 그 때의 앨범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그는 말한다. “당시에는 그게 좋은 계절 앨범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십년 전 아티스트들이 판을 만들던 방식 그대로 도전했다 (註1).” 일면 타당하게 들리는 설명이지만 캐롤의 클래식이라는 것이 언제나 문제은행처럼 문제 풀을 두고 돌아가는 것인지라 색다른 선곡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리스트 업은 예상했던 그대로다. 전세계 오빠들 코 묻은 돈을 싸래로 훑어 가는 이빨빠진 강강새 깜찍이 요정 코니 탤버트의 선곡 결과와 별 차이가 없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 관건은 색다른 편곡, 혹은 색다른 해석력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텐데 우리로서는 빅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왕창 동원하고도 알앤비 삘(흔히 우리가 그렇게 오해하기 쉬운)이 부담스럽지 않을만큼만 탈색된 형태로 완성된 것이 오오, 심히 만족스러울 수가 있는 부분이리라 여겨진다. 예컨대 ‘Christmas You and Me(이 앨범의 유일한 신곡이다)’를 보라. 듣는 순간 거부할 수 없이 몰아치는 “이건 너무 조선스러운 발라드가 아닌가”의 탄성. 문제는 이 앨범이 우리나라에 발매될 계획이 없다는 것인데, 덧니 사이로 발음이 줄줄 새는 코니 앨범도 마구마구 라이센스하면서 왜? 이해가 안간다. 우리 브라이언 옵하 무시하나효? 명색이 7장의 플래티넘 앨범에 2천만장의 세일즈를 찍은 알앤비 레전드린데. 하긴 요즘엔 구글에 Brian Mc까지 치면 브라이언 맥파든이 먼저 나오긴 하더라. 하지막 아직 실망은 이르나니 그의 신보 9집이 2009년 초에 발매될 예정이다. 여느 때와는 다른 메세지를 담은 새로운 앨범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스스로는 미래 음악 인생의 롤 모델로 마빈 게이를 꼽았다. 이거, 이만저만 기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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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년대 쇼: 배리 매닐로우

Barry Manilow <The Greatest Songs of the Eighties>
2008년 11월 (Arista)

  드디어 배리 매닐로우의 ‘다시 부르기’ 작업이 1980년대까지 왔다. 한때는 콧대 높은 싱어 송라이터의 존심 때문에 스캇 잉글리쉬의 ‘Brandy(1971)’를 리메이크한 ‘Mandy(1974)’를 앨범의 머릿곡으로 삼길 거부했던 양반이 (허나 ‘Mandy’가 없었으면 지금의 매닐로우도 없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커버 앨범을 줄줄이 내겠다고 아리스타와 계약하고 나선 것이 의아했지만, 이쯤 되니까 브랜디가 맨디가 되고 왕년의 청춘 스타였던 그의 숱이 참 드물어진 것만큼이나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의 재해석 작업은 1950년대에서 출발한다. ‘The Greatest Songs of the Fifties (2006)’ - 1943년생인 그에게 50년대의 스탠더드 명곡들은 유년의 음악이었을 것이다. 이 앨범으로 그는 1979년 ‘One Voice’ 이후 27년만에 빌보드 앨범차트 톱 텐 진입을 선물받더니만 곧이어 가뿐하게 정상까지 밟는다. 생애 첫 빌보드 앨범 차트 넘버 원의 영광. 그래서일까. 여세를 몰아쳐 60년대 명곡들을 재해석한 ‘The Greatest Songs of the Sixties (2006)’를 같은 해에 발표한다. 맞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너무 무리하셨다. 그래도 빌보드 앨범 차트 2위까지 올라간다. 커버가수로 활동한 1991년 'Showstoppers' 이후 가수로는 내내 부진한 성적만을 거두었던 그에게 2006년은 정말 마술같은 한 해였을 것이다. 이어 2007년에는 그의 전성기였던 70년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The Greatest Songs of the Seventies (2007)’를 발표했다. 명곡들 사이에 자기 히트곡을 여섯 곡 살짝 끼워넣는 귀여운 센스까지 발휘하신다. 이 앨범 역시 4위까지 올라갔다. 자, 그리고 이제 80년대까지 왔다.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튼의 전설적 듀엣곡을 커버한 '"Islands in the Stream'을 시작으로 저니의 'Open Arms', 벤 모리슨의 'Have I Told You Lately',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웸의 'Careless Whisper', 리처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화려한 라인업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통산 7천 6백만장의 앨범 세일즈를 기록하고 불후의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 원 세 곡에 톱 텐만 여덟 곡을 보유했던 그에게 이 커버 시리즈 몇 장이 얼마만큼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이냐를 논하기는 어렵다. 허나 언제나 그랬듯 배리 매닐로우 형님의 매력은 이지-리스닝의 원칙에의 충실함이다. 요즘 어린 것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다듬어진 모기 소리로 밀고 나오는 이 때, 너무 투박하고 완전히 꾸며지지 않은 예순 다섯, 젊은 형님의 날 목소리는 문자 그대로 노래의 본질이다. 별 일 없는 한 내년쯤 아마 그는 90년대 명곡으로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이미 영국의 도박사들을 중심으로 어떤 곡이 신보에 포함될지 뜨거운 내기가 붙었다 (농담이다). 나는 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과 마이클 볼튼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에 걸겠다. 셀렌 디온의 'Power of Love'나 엘튼 존의 무난한 발라드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도 가능성이 있다. 혹은 그들의 다른 히트곡이라도.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는 바로 그 아리스타에서 태어난 명곡이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추측한다. 환갑이 넘어 뒤늦게 보이즈 투멘의 'End Of The Road'는 무리겠으나 브라이언 맥나잇의 'Back At One'정도라면 살짝 탈색된 형태로 기대해봄직 하지 않겠나. 뭐, 아님 말고.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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