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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슈 (Bosch, Amazon Prime, 2014~2021)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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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초기 라인업 중의 하나인 ‘보슈’는 마이클 코넬리의 메가 히트 프랜차이즈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에 바탕한 수사물이다. ‘로 앤 오더 (NBC, 1990~2010)’와 ‘더 와이어 (HBO, 2002~2008)’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에릭 오버마이어가 제작을 주도하였고 원작자 마이클 코넬리도 직접 참여하였다. 특히 해리 보슈 형사 역에 타이투스 웰리버를 캐스팅한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많은 팬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 심연 속에서 악마와 마주한 적이 있는 남자의 얼굴. 확실히 웰리버의 외모는 그동안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보슈 형사의 이미지와 상당히 가깝다. 심지어 이제는 신작을 읽으면서도 저절로 웰리버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의 목소리가 듣게 될 정도이다 (다만 그 결과 이전에 오디오북을 녹음하였던 딕 힐과 렌 카리루는 졸지에…)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작품 자체는 많은 측면에서 기대에 어긋났다. 아마존 프라임의 또 다른 전략적 자산이었던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Amazon Prime, 2018~현재)’ TV 시리즈가 냉전 시대의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에 맞게 갈음을 한 것에 반하여 ‘보슈’는 오래된 수사물의 포맷 그대로를 복원하였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초기 방영시 평가가 엇갈렸던 원인은 원작 팬들조차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방위적 재조합이었다. 특히 두 세권의 장편 소설 내용을 합쳐서 한 시즌으로 만드는 전략이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가령 첫 번째 시즌은 ‘에코 파크 (마이클 코넬리, 2007)’와 ‘시티 오브 본즈 (마이클 코넬리, 2002)’를 중심으로 ‘더 콘크리트 블론드 (마이클 코넬리, 1994)’의 내용을 섞어 넣었다. 두 번째 시즌은 ‘더 라스트 코요테 (마이클 코넬리, 1995)와 ‘트렁크 뮤직 (마이클 코넬리, 1997)’ 두 작품을 묶었다.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스토리라인을 하나로 융합하는 난이도도 물론 만만치 않겠지만 실은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시너지가 있는지도 실은 의문이다. 가령 누군가 ‘말로’라는 제목의 TV 시리즈를 만드는데 ‘깊은 잠 (레이먼트 챈들러, 1939)’과 ‘리틀 시스터 (레이먼트 챈들러, 1949)’를 중심으로 ‘킬러 인 더 레인 (레이먼트 챈들러, 1935)’의 일부를 가져와 합쳐 한 시즌 분량의 TV 쇼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우려한 대로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서로 다른 작품 사이의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덜컹거린다. 긴장감이 한창 올라가던 중에 갑자기 한 발 물러서 빠져나와 다른 케이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일이 왕왕 벌어지기 때문이다. 크게 성공한 베스트셀러에 바탕하여 확실히 검증된 이야기를 안고 들어가는데도 쉽게 불이 붙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첫째는 실리적인 이유이다. 처음 이 쇼가 제작되던 시점에 해리 보슈 시리즈는 이미 열일곱권의 장편 소설이 출판된 상태였으므로 굳이 한 권을 한 시즌으로 일대일 대응하여 제작할 이유는 없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역사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조차 방영 기간은 평균 6년 내외였다. 그나마도 시리즈 후반부로 가면 서서히 시청률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지금은 그 속도가 더 빨라지는 추세이다. 설령 이 쇼가 성공하여 장수한다고 가정하여도 종래에는 원작 컨텐츠의 절반도 활용하지 못할 거라 계산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여러 권의 이야기를 한 시즌에 몰아 넣어서라도 초기에 기선을 제압하여 성공한 쇼로 안착시키겠다는 아주 생각이 틀렸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다만 지금은 과거와 같이 일 년에 한 시즌 24편의 에피소드를 방영하는 스케줄이 아니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시간 분량 에피소드 열 편이면 장편소설 두 권 내용이 들어가기에 결코 넉넉하다고는 볼 수 없다.


  또 한 가지 고려할만한 부분은 타임 라인의 재설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코넬리는 작품 속 시간적 무대를 집필/출판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가져가는 편이었다. 많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들에서 (이를테면 리 차일드의 ‘잭 리쳐 시리즈’와 같이) 출판 순서와 타임 라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해리 보슈 시리즈는 상당히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문제는 워낙 장수 시리즈였다보니 쇼가 시작하던 시점에 이미 해리 보슈 연대기의 길이가 20여 년 이상 벌어졌다는 사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안은 (코넬리와 마찬가지로) 방영 시기와 극 중 시간적 배경이 거의 따라가도록 사건을 재정렬하는 것이었다. 즉, 첫 번째 시즌은 2014년에서 2015년 2월에 걸쳐 공개되었는데 극 중 무대 역시 2014년으로 추정된다. 2006년을 무대로 하였던 ‘에코 파크’ 원작을 기준으로 보면 약 8년쯤 뒤로 이동한 셈이다. 이후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 몇 개월씩의 간격을 두고 이야기가 이어져 2021년에 공개된 마지막 시즌은 2020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원작의 해리 보슈는 1950년생이고 ‘에코 파크’ 사건 때 50대 중반이었으므로 1962년생 배우인 타이투스 웰리버가 2014년에 ‘에코 파크’ 사건을 다룬다고 하면 어느 정도 계산이 맞기는 맞는다. 하지만 전체 타임라인을 약 10년 정도 일제히 뒤로 보내는 이 선택은 몇 가지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해리 보슈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베트남전 기억의 트라우마, 포스트 로드니 킹 시대로 인종 갈등이 극에 달했던 90년대 LA의 공기, 그리고 보슈와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는 LA 경찰국의 경직된 관료주의 등을 액면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게 된다 (註1). 일례로 극 중 보슈는 경찰로 25년을 일했으며 9/11 이후 재입대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슈를 만든 경험과 기억이 온전히 적용될 수는 없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원작 소재의 일부에 제약이 걸리거나 퇴색되는 부분이 있다 보니 원작 두세 편을 묶어 사실상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이러한 원작 재조합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해결되기는 한다. 여전히 원작과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가 아쉽고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아니, 키즈민 라이더는 도대체 어디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자리가 잡히고 오히려 시리즈 후반에 이르러 더 괜찮아지는 부분도 있다. 때문에 이렇게 가까스로 영점을 잡아놓고 종영 아닌 종영을 선택한 아마존의 독특한 결정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일곱 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종영을 하는데 동시에 ‘보슈: 레거시(아마존 프리비, 2022~현재)’라는 새로운 스핀-오프 쇼를 새로 런칭한다. 보통 ‘레거시’가 제목에 들어가 좋은 추억으로 남은 사례가 없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 제작할 쇼를 왜 종영하였느냐는 부분에 위치하는 듯 하다. 특히 ‘아마존 오리지널’이라는 상징적 브랜드를 포기하고 ‘프리비 오리지널(Freevee Original)’이라는 한 티어 낮은 신생 브랜드를 부여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註2). 이 스핀 오프는 타이투스 웰리버와 일부 주변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며 보슈가 LA 경찰에서 은퇴하고 사립 탐정으로 활동하는 2015년 이후 원작들에 바탕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큰 맥락에서 연장선상에 있지만 묘하게 다른 분위기와 거듭 끼어드는 중간 광고, 그리고 해상도 차이 (없다고 하는데 꼭 있는 듯한 느낌이다) 때문에 어쩐지 정말 한 티어 낮은 쇼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23년 04월)

 

(註1) 사소하게는 전자기기에 대한 부분도 있다. 원작의 보슈는 거의 ‘컴맹 아저씨’ 컨셉트였고 휴대전화가 나온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캐릭터였다. (물론 아주 최근작에서는 지금은 아이폰으로 편리하게 재즈 연주를 감상하시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타임라인을 10년 정도 뒤로 미루면 이 고집이 자연스러워 보이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TV 쇼에서는 한 시즌 후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註2) 최근 아마존의 전략은 뜨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마존 프라임 TV’이 있고, IMDB를 인수한 다음에 만든 ‘IMDB TV’가 있는데 이것을 ‘프리비 오리지널’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리브랜딩하였으며, 또 MGM을 인수한 다음에 스트리밍 플랫폼 ‘EPIX’를 ‘MGM+’라는 그래도 꽤 그럴듯한 이름으로 리브랜딩하였다. 프라임 회원의 경우 아마존 프라임 TV는 무료이지만 IMDB TV는 프라임 회원이 아니어도 무료이되 대신 광고를 포함하고 있고 MGM+는 프라임 회원이라도 추가 구독 비용을 지불해야만 볼 수가 있다. 라이센스 관련 딜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이쯤 되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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