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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위민 킬 (Why Women Kill, Paramount+, 2019~2021)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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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TV에는 길티 플레져를 선사하는 쇼가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그런 쇼를 몇 개씩 가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주 어김없이 챙겨보기는 하지만 남들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기에 어쩐지 조금은 망설여지는 그런 쇼들. 아마 주로 리얼리티 쇼가 해당하겠지만 (당연히) 스크립트가 있는 쇼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숀다 라임즈의 쇼들도 그런 면으로 악명이 높았고 라이언 머피 사단 역시 그 자체로 파워하우스이다. 가끔 그들이 제작하는 쇼를 보고 있으면 영화 ‘분노의 폭발 (Blown Away, 스티븐 홉킨스, 1994)’에 등장하는 제프 브리지스의 대사가 생각난다. “넌 크리에이터가 아니야. 넌 역겨운 괴물일 뿐이야.” (註1) 물론 그러고도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또 보고 있기는 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마크 체리의 작품들이 가정 먼저 떠오른다. 문자 그대로도, 비유적으로도 '길티 플레져'라는 표현이 맞는다. 물론 그에게는 나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대성공을 거둔 ‘Desperate Housewives (위기의 주부들, ABC, 2004~2012)’가 방영 초기 기독교 단체의 십자포화를 맞으며 생긴 낙인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재평가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복수의 (영리하고 멋진) 여성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주변에 복수의 (바보 같고 덜 떨어진) 남성 캐릭터들을 배치하는 구도를 이미 1980년대부터 반복해 왔다. 그가 처음 작가로 데뷔하였던 작품부터가 네 싱글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트콤 ‘더 골든 걸즈 (NBC, 1985~1992)’와 그 스핀-오프인 ‘더 골든 팰리스 (CBS, 1992~1993)’였고, ‘위기의 주부들’ 이전에도 ‘The 5 Mrs. Buchanans (CBS, 1994~1995)’라는 다섯 주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미스테리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註2). ‘위기의 주부들’은 사실 리드 액터가 없는 구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는데 2000년대 초반 TV 세계의 평균을 감안하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모험적이고 또 앞서가는 시도였다. 실제로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들만으로도 쇼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역시 ‘Devious Maids (Lifetime, 2013~2016)’를 제작하여 깜짝 성공을 시켰는데 이때도 네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것도 백인 부촌 베버리힐즈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하우스 메이드를. 이 또한 TV에 대대적인 히스패닉 웨이브가 밀어닥치고 인종 이슈가 촉발된 시점을 따져보면 상당히 앞서간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체리의 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에피소드 단위 구성과 시즌 단위 구성을 아주 부드럽고 유연하게 동시에 달성하는 기술이다. 즉, 시즌 단위에서 보면 이야기가 시리얼라이즈드 형태로 흘러가는데 에피소드 하나씩을 보면 그 자체로 완성된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다. 일례로 ‘위기의 주부들’을 보면 어느 한 편의 에피소드가 ‘정직’을 주제로 한다고 할 때 여러 캐릭터의 독립된 스토리라인에 위치한 ‘정직’과 연관된 이야기가 한 편 안으로 다 모여서 들어온다. 또한 전지적 관점의 나레이터가 존재하여 콜드 오프닝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마지막 장면에 다시 돌아와 그 에피소드에서 벌어졌던 연관된 사건 내용 정리와 주제에 대한 총평을 이루어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아마 어린이 교육용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그렇게 깔끔하게 앞과 뒤를 연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그 당시 전체 시즌 단위 플롯에서 어긋남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가끔은 의문스러웠다. 평화로운 교외 위스테리아 레인의 주부들의 빨래통 안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있듯이, 전혀 진지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그의 쇼 뒤에는 항상 어마어마한 수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초대형 코르크판이 숨어있을 것만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스트리밍 시대 그의 첫 번째 작품인 ‘와이 위민 킬’은 CBS All Access를 위해 제작되었고 나중에 그 후신인 Paramount+에서 시즌 2가 이어 방영되었다. 이번에도 다수의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이야기를 직조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세 여성의 공간은 통일하되 시대를 분리한 것이다. 즉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저택 하나를 두고 1963년과 1984년, 그리고 2019년에 살았던 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어째서 여자가 살인을 하게 되는가. 방법은 전작들에서 이미 제시되었던 소재들을 남편의 외도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것인데 시대를 나눈만큼 해당 시대에 부합하는 소재들을 끌어 왔다. 화려한 데코레이션의 세트와 어두운 소재, 그리고 냉소적인 코미디의 조합은 여전히 독특하다. 다른 어떤 쇼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형이라 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귀환에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註3). 장면 하나하나를 잘라 놓고 보면 전작들에서 좋았던 순간들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쉽게도 허점이 많아 예전 같은 완성도가 나오지 않는다. 일단 다소 산만하다. 1963년과 1984년, 그리고 2019년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등장하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형식은 야심차기는 하나, 21년 (혹은 25년)의 간격을 둔 총 세 개의 타임라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싱크가 자연스럽게 맞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에피소드 하나에 이 3개 시간대 사이클이 6-7회씩 돌아가다 보니 특유의 빨리 치고 빠지는 속도전이 지닌 장점과 단점이 모두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부 허술한 순간에는 거의 ‘웹 드라마’ 정도의 저렴한 느낌마저 들어 깜짝 놀랐다. 


  이후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3개 시간대를 오가는 포맷은 시즌 2에서 철회되었다. 대신 1949년 캘리포니아 교외 마을의 ‘가든 클럽’을 중심으로 한 가정주부들의 파워 게임을 다루는 내용으로 이동한다.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해)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평범한 주부와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부잣집 부인을 중심으로 한 ‘스몰-타운 미스터리’에 30-40년대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요소를 분위기를 더한 것이다. 시즌 1의 연장선 상에서 1940년대로 무대를 옮겼다고도 볼 수 있지만, 주된 내용이 부부 사이의 사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머더 미스터리에 있다는 점에서 쇼의 성격이 상당 부분 달라진 셈이다. 또한 다수의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두 여성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형식과 내용이 모두 달라졌음에도 좋은 점은 시즌 1과 비슷하고 나쁜 점도 시즌 1도 비슷하다. 뜻밖인 것은 이후 Paramount+가 이 쇼의 리뉴얼을 결정했다가 다시 캔슬하기로 결정을 하며 다음 시즌 제작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마크 체리의 쇼가 리뉴얼 번복 사태를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종영된 ‘Devious Maids’의 사례는 아직까지도 TV 역사상 가장 황당한 캔슬 사례 중의 하나로 거론되고는 한다. 특히 직전 시즌의 피날레를 주요 캐릭터 실종이라는 클리프행어와 함께 마무리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1997년의 ‘Lois & Clark: The New Adventures of Superman (ABC, 1993~1997)’과 함께 회자될 만 하다 (註4). 전통적인 방송사들과 다르게 Paramount+와 같은 스트리머는 더 좋은 쇼를 위해 비워줘야 할 타임 슬롯이라는 개념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 말 그대로 다다익선인데, 일단 궤도에 올라 뷰어쉽을 확보한 쇼를 두고 굳이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할 이유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나마 이 작품은 앤솔로지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이 갑작스러운 종영으로 지난 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야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 크리에이터인 체리가 제작하는 쇼들이 두 번 연속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이런 운명을 맞게 되는 결과는 다소 뜻밖이다.

 

(2022년 12월)

 

(註1) 정확한 대사는 "You’re not a creator. You’re a sick freak, is what you are." 이다.

(註2) 제작자 경력 초기에 제이미 우튼과 공동 제작한 이 쇼는 뷰캐넌 가문의 다섯 여성, (그러니까 모두 '미시즈 뷰캐넌'이 되겠다) 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벌이는 다툼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 시즌만에 종영되었다.

(註3) 특이하게도 체리가 제작하는 쇼 중 최초로 F워드가 나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註4) 당시 Devious Maids’의 갑작스러운 캔슬을 두고 많은 언론들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히 다른 방송사들처럼 스크립티드 쇼가 충분히 많지 않은 라이프타임 채널이 사실상 에이스 역할을 해 온 이 쇼를 그렇게 성급하게 캔슬한 이유가 있었는지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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