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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릴 에메이 <Move On: A Sondheim Adventure>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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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달착지근한 칵테일 같다. 프랑스 혈통과 언어에 녹아있는 특유의 멜로딕한 요소와 재즈 사이의 궁합은 역사적으로 이미 검증이 된 것인데 여기에 집시 음악을 반 테이블스푼, 보사노바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섞으면 바로 이 매력적인 조합이 만들어진다. 처음 인디 레이블을 통해 데뷔 앨범을 발표하였을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비단 그녀의 이름을 바르게 발음하는 방법만이 아니었다. (시릴 애매? 서릴 에이메? 서리얼 에매이?)

  사실 재즈는 (자유도라는 본래의 특성과는 다르게) 거의 문제 은행에 가까워졌다. 특히 보컬 재즈로 한정하면 더더욱 그렇다. 유명 작곡가의 에이 리스트를 재해석하는 송북 컨셉트의 앨범을 말하자면 엘라 피츠제랄드와 사라 본의 시대 이후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백여 년 전 천재적인 작곡가들의 업적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새로운 송북도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새로운 재료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상징적인 인물들이 등장했던 시기도 이제 얼추 반 세기 전. 모두가 경쟁적으로 연주하고 다시 부르며 재창조와 재해석이 거듭되어야 스탠다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인데 장르 자체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며 이런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다면 새로운 송북의 등장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인가? 에메이의 이번 앨범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유명 곡들의 재해석한 송북 앨범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 골든 에이지 이후에는 손드하임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손드하임 송북’이라고 하니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항상 손드하임 송북 앨범이 존재했음에도. 손드하임 뮤지컬의 사랑받는 넘버들을 다시 부르는 것은 스테이지 스타들이나 크로스오버 가수들에게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클레오 레인의 1987년 앨범 <Cleo Laine Sings Sondheim>, 바바라 쿡의 2001년 라이브 앨범 <Barbara Cook Sings Mostly Sondheim>, 그리고 맨디 파티킨의 2002년 앨범 <Mandy Patinkin Sings Sondheim> 등의 사례가 그렇듯. 송북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쓴 사례로는 줄리 윌슨의 1987년 앨범 <The Sondheim Songbook>도 있다. 그렇다면 왜 ‘손드하임 송북’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일단 재즈가 아니라는 점이 있겠다. 많은 경우 그의 시그니쳐 곡들은 드레스 혹은 수트를 입은 퍼포머들의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 공연을 연상하게 한다. 지난 2017년 주디 콜린스가 <A Love Letter to Steven Sondheim> 앨범을 통해 시도한 포크로의 번역 정도를 제외하면 그 범주를 벗어나는 사례가 드물다. 따라서 에메이의 이번 접근법은 충분히 주목할만하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원곡보다 빠른 템포를 가져가면서 곡에 따라 보사노바, 라틴 리듬, 샹송, 심지어 스무스 재즈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도입하여 한 번도 본 적 없는 해석을 내어 놓는다. 아카펠라로 탄생한 ‘When I Get Famous (스티븐 손드하임, Clime High, 1952)’를 시작으로 ‘Take Me to the World (스티븐 손드하임, 1966)’’Love, I Hear (스티븐 손드하임, 1962),’ 그리고 ‘Marry Me a Little (스티븐 손드하임, 1978)’로 이어지는 탁월한 초반부 선곡이 특히 훌륭하다. 같은 맥락에서 아기자기한 멜로디에 바탕하는 ‘So Many People (스티븐 손드하임, 1978)’이나 ‘With So Little to be Sure of (스티븐 손드하임, 1978)’ 역시 잘 어울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상징적인 곡들에서는 (특히 어두운 발라드들의 경우에는) 약간의 어려움과 미세한 부조화가 느껴지기도 하여 굳이 모두가 고르는 곡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조차도 앨범의 완성도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설적 작곡가께서 이 앨범을 상당히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아이메는 이 앨범의 ‘Marry Me a Little’ 트랙으로 62회 그래미 어워즈에 노미네이션되는 영광을 얻었다.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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