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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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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 또한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인데 그조차 삼키는게 더럽고 역해서일까. 그들 중 더러는 버릇처럼 입 밖으로 침을 뱉어낸다. 뱉어도 될 곳을 따로 가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데나 침을 뱉는다. 자기네 집에서도 그럴까. 거실 바닥에도 뱉고 주방에도 뱉고 침대 위에도 뱉고 책상에도 뱉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길이니까 그런 거겠지. 길은 내 것이 아니니 더러워지던 말던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겠지. 반면에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디더라도 절대 뱉어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말 뱉어야겠다고 여기면 화장실을 찾거나 휴지에 뱉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그것이 정말 남다른 윤리의식의 결과든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이기심에 발로이든 그들은 함부로 길에 침을 뱉어선 안된다는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허나 그렇다고 그들이 깨끗한 거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뱉지 않더라도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침을 뱉어내며 공동의 거리와 공동의 세상을 하나의 타구(唾具)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건 자유의 범위를 심각히 벗어난 행동이다. 아울러 상식적으로도 스스로를 위해, 또 그리고 남을 위해서 마땅히 삼가야 할 행동이다. 함께 사는 세상, 이라는 공허한 구호을 무조건 강요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그걸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 세상에도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더러는 버릇처럼 입 밖으로 침을 뱉어낸다. 실제 길에 침을 뱉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습관성이다. 뱉어도 될 곳을 따로 가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무데나 침을 뱉는다. 가족 간의, 혹은 연인 간의 대화 중에도 그럴까. 부모 자식간에도 그럴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니까 그런 거겠지. 실체가 없는 공간이니까 그런 거겠지. 내 것이 아니니 더러워지던 말던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겠지. 역시 여기에도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디는 한이 있어도 절대 뱉어내지 않는 사람들이 (혹은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허나 그렇다고 그들 또한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뱉지 않더라도 입 안에 고인 침을 못 견뎌하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침을 뱉어내며 공동의 인터넷 세상을 하나의 타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황이다. 사실 악플은 진작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젠 단순한 문제를 넘어 꼬르륵, 깊숙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년,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는 동안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세련된 의견 나눔을 보기가 어려웠다. 추악하고 역겨운 비난과 모욕이 훨씬 많았다. 발길이 많이 닿는 공간일수록 더하다. 포탈은 진작에 가래침으로 덕지덕지 도배되며 역한 냄새를 피워올렸다. "전 인터넷을 오래해서 그런지 어지간한 글엔 상처받지 않지만요." 따위의 고백은 이제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름이 좀 알려져 이유없이 욕을 먹는 일도 겪는 유명인들이나 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주위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푸념이고 한숨이다. 왜 인터넷이 정신 단련의 차원으로 이용되고 있는가, 스스로 IT 강국이라 칭하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가 어째서 그런 수준 밖에 되지 않는가, 진실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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