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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 베일리 래 <The Sea>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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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린 베일리 래의 노래. 대강 그림은 그려지는데 설명이 안된다. 현상은 있는데 인과를 부여할 수가 없다. 자잘한 말의 무더기는 별무리처럼 스쳐가지만 이내 그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이 나른한 모호함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사전을 뒤지고 뒤지고 또 뒤졌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사전에는 이 미묘함을 정확하고 간명하게 압축한, 소위 클러치 능력이 있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요즘 유행하는 한 대기업 광고의 조어를 빌려왔다. 알파라이징 - 혼합, 조합, 통합, 궁합, 결합, 정합, 반합, 변합, 유합, 교합, 화합, 중합을 모두 포괄하며 심지어 음양오행의 이치까지 싸그리 설명할 수 있는 이상 독특 야릇한 말이다. 경제, 국익 따위처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아무데나 필요에 따라 가져다 비빌 수 있으니 과연 편리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 인지체계를 종으로 관통하는 그녀의 신비로움을 기술하기에도 유용한 면이 있단 말씀.

  그녀의 음악은, 긍정과 부정의 알파라이징이다. 외면과 내면의 알파라이징이다. 기쁨과 슬픔의 알파라이징이다. 미소와 눈물의 알파라이징이다. 희망과 절망의 알파라이징이다. 기대와 실망의 알파라이징이다. 사랑과 이별의 알파라이징이다. 현실과 몽환의 알파라이징이다. 우울과 몽상의 알파라이징이다. 부력과 중력의 알파라이징이다. 정적과 소란의 알파라이징이다. 흐름과 거역의 알파라이징이다. 유음과 비음의 알파라이징이다. 쇠고기, 해삼, 홍합과 찹쌀이 알파라이징하면 삼합미음이 만들어지듯, 알앤비, 재즈, 소울에 그녀가 알파라이징하면 ‘코린 배일리 래’라는 신종 삼합장르가 탄생한다. 이 마술적 미묘함을 몇 마디 부박한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봄에도 싸락눈이 쏟아졌는가 보다. 그녀의 노래가 신기한 것은 쓰린 상처에 알콜솜을 문지르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뿐히 휘발되며 마른 자리를 깊게 남기는 슬픔. 결코 눅눅하지도 결코 질척하지도 않다. 깊게 기뻐하지도 깊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너른 긍정과 관용과 성숙이 없이는 불가능한 슬픔이다. 사실 속세지사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 190만장, 세계 400만장의 앨범 세일즈를 올리며 단번에 거의 모든 주요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영광의 스물 여덟, 남편 제이슨 래를 잃고 실의와 좌절에 빠졌던 비탄의 서른, 그렇게 어렵게 돌아와서도 이런 슬픔, 이런 기쁨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가 어렵다. 데뷔 앨범에서 이미 완성기에 접어들었단 의문의 물음표는 기어이 경탄의 느낌표로 변모한다. 진작에 완성이었음에도 그녀는 더 나아갔다. 깃털보다 가벼워졌고 바다보다 깊어졌다.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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