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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리브 (Time to leave, Le Temps qui reste, 2005)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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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잘생긴, 촉망받는 패션 사진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말기 암으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완치될 가능성은 5퍼센트 미만. 분노와 당혹감 속에서 신변을 정리하고 후회스러운 일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서로 상처만 준다. 부모에게도, 여동생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동거 중인 남자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결국 그가 찾아가는 건 할머니다.

- 누구한테 말했니? (So, who have you told?)
- 아무한테도. 할머니한테만 한 거예요. (No one. Just you.)
- 그럼 나한테는 왜 말한 거야? (So why did you tell me?)
-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단 점에선 할머니도 저랑 같으니까요. (Because you're like me, you'll be dying soon.)


  프랑소와 오종의 8번째 장편인 '타임 투 리브'는 결국 자연의 법칙을 성찰하는 영화다. 패션계의 정점에서 화려한 인생을 즐기다가 덜컥 암 선고를 받은 31세 청년 로맹(멜빌 푸포)이나, 초라한 시골집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약을 모두 먹어가며 ‘아주 건강하게’ 죽을 예정이던 할머니 로라(잔 모로)나, 혹은 그 밖의 누구라도 언젠가 한번은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는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 전부다. 할머니와 함께 보낸 며칠을 통해 퀴블러 로스(Kbler Ross)의 5단계(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를 넘어선 로맹은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한다.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정자를 기여해 달라던, 한 불임 부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준해 불임으로 괴로워하는 남녀를, 흔히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동성애자가 돕는다는 설정 또한 관대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혹시 당신 병이 유전되는 병인가요?”라고 묻는 부부의 질문에 “걱정 말아요. 암이에요. 말기 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로맹의 모습은 지상의 어떤 가치에도 얽매이지 않는 한 인간 존재의 숭고한 완성이다. 의학이 이렇게나 발전한 시대에 정자 기여를 굳이 집에서, 굳이 부부와 함께, 굳이 매뉴얼로 해결한다는 부분만 제외하면 흔히 오종의 영화에서 마주하고는 했던 메롱 쿠쿠다스 베베한 궤도 이탈적 전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인' 작품이다. '사랑의 추억(Under The Sand, 2000)'에 이어 특유의 독소를 걸러내고 진지한 주제를 고민하는 오종 영화. '엔젤(Angel, 2007)''리키(Ricky, 2009)'까지 등장한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 돌아보니 과연 새로운 오종의 시대로 접어드는 하나의 변곡점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201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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