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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파일: 나는 믿고 싶다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2008)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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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팔할이 '엑스 파일(The X-File, FOX, 1993-2000)' 덕분이었다. 크리스 카터와 멀더와 스컬리와 대머리 부국장님이 없었다면 나는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전체조회와 애국가 제창과 교장훈화와 국민체조로 시작하는 빌어먹을 월요일 아침을 나는, 오매불망 23시 05분만 기다리면서 버텨냈다. 빨리 커서 FBI 스페셜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놈들은 어떻게 드라마 한 편 보려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당시 '엑스 파일'은 우리 미스테리 매니아들에게 '트윈 픽스 (ABC, 1990-1991)'와 더불어 TV 생활의 원투펀치를 삼을 만한 작품이었고, '문성근의 그것이 알고싶다'와 더불어 본방 사수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엑스 파일'의 진정한 매력이 단순히 시답잖은 미스테리에 있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외계인은 단지 이야기 구성을 위한 떡밥이다. 캐비닛에 들어가야 마땅할 기인 및 기행의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실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외계인의 존재 여부는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여동생이 있는) 폭스 멀더에게나 중요한 일이지 우리에게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외계인보다 무서운 지구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오웰적 뉘앙스를 발견하는 순간! 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놀라울만큼의 절대 마력으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누군가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사회, 분리와 정제를 거쳐 알맹이가 빠진 채 전달되는 진실, 혹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동원되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미끼, 천상 인문학도라는 여자애가 "지금은 모르지만 광우병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형태가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같은 천상 외계문을 구사하는 세상에서, 팩트를 알고 싶어하는 다중의 열망은 '엑스 파일'에 이르러 비로소 수면 위로 등장하였다. 그 유명한 선언과 함께 말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어요."

  무려 202시간 분량에 이르는 찬란한 역사 위에 '극장판'이라는 이름으로 104분짜리 영화 한 편 얹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는가. 당연히 모든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엄습하는 허탈감을 고스란히 설명해내긴 어렵다. 첫번째 극장판 '엑스 파일: 미래와의 전쟁 (롭 바우먼, 1998)'이 워낙 실망스러웠기에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정도이지, TV 시리즈의 크리에이터 크리스 카터가 직접 나섰음에도 분명 40분짜리 에피소드 하나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아직 이 작품을 영접하지 못한 과거의 동지들에게 차라리 104분 동안 '프린지 (FOX, 2007~ )' 두 편을 보길 권하고 싶을 정도다. 과거 TV 시리즈때야 이런 맥빠진 에피소드가 있더라도 쓸쓸히 새우깡 혹은 감자깡 혹은 양파링 봉지를 쓸쓸히 치우며, "다음 주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을꺼야"라며 위안할 수 있었지만, 무려 7년만의 후속작이자 10년만의 극장판이니 이젠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돌아온 스멀커플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요즘은 이렇게 이름 한 자씩 따서 커플을 명명하는게 유행이더군요). 이성적이었던 스컬리는 이상해졌고, 감성적이었던 멀더는 감정적이 되었다. 그러고보면 중년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감소하고 에스트로겐 분비가 증가하는 반면, 중년 여성의 경우엔 에스트로겐 분비가 감소하고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한다는 주장은 아마도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한다. 신기하게도 스컬리 요원의 피부는 과거보다 더 뽀얗고 팽팽해졌다. 하마터면 구글에 '스컬리 성형'이라고 쳐볼 뻔 했다. 어쩌면 스컬리피케이션 (Scarification)이라도 받았나보다 (註1). 반면 오십을 목전에 둔 멀더 요원 이마 주름살은 중원에서 길을 물어야 할 정도로 깊어졌다. 어쩌면 캘리포니케이션 (Californication)이라도 받았나보다 (註2). 아무튼간에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쉽다. 분명 어딘가에 아직 더 남은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크리스 카터, 멀더, 스컬리, 대머리 부국장님, 부디 다시 돌아오시라. 누구 말마따나 손을 씻더라도 마지막으로 크게 한 판만 하고 씻어주시길, 진심으로 간절히 부탁드린다.

 

(2010년 02월)

(註1) ① 난절법(亂切法): 치료 혹은 미용(문신 등)을 목적으로 피부를 긁어내는 방법, ② 혹평(酷評)
(註2) 엑스 파일 이후 데이비드 듀코브니는 쇼타임의 '캘리포니케이션 (Californication, Showtime, 2007-2014)'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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