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잉 (Trying, Apple TV+, 2020~ ) B평
낙농콩단

트라잉 (Trying, Apple TV+, 2020~ ) B평

by 김영준 (James Kim)

  처음 ‘트라잉’이 데뷔하였을 때, 그저 또 하나의 대안형 가족 시트콤 중의 하나가 등장했다는 생각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그러니까 전통적 가족 코미디가 해체되고 남은 자리에 대거 들어섰던 실험적인 작품들과 같은 계보에 있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변형된 형태의 (유사) 가족과 그리 호감가지 않는 캐릭터들의 다소 와일드한 좌충우돌. 이 계보에 대하여 말하자면 ‘You are the Worst (FX, 2014~2019),’ ‘Married (FX, 2014~2015),’ ’Difficult People (Hulu, 2015~2017),’ 그리고 ‘Catastrophie (Channel 4, 2015~2019)’ 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잉’의 첫인상 역시 비슷했다. 무대가 되는 북런던의 캠던 타운이 젊고 자유분방하고 대안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남녀 커플은 (이런 유형의 영국 TV 쇼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대단히 매력 있는 타입은 아니었고 초반부 일부 사건들은 조금 무모하고 과장되고 도가 지나치기도 했다. 

 

  제이슨(레이프 스폴)과 니키(에스더 스미스)는 결혼하여 아이를 갖고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 도시의 젊은 남녀이지만 아이를 갖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침내 체외수정조차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은 입양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론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새롭거나 인상적인 소재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결혼 계획조차 없는 동거 중의 이 커플에게 당장 난임이 가장 시급한 문제처럼 다루어지는 부분 역시 (시청자에 따라서는) 어색하게 받아들일만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라잉’은 초반 오프로드에서의 덜컹거림을 비교적 빠르게 정돈해 나가면서 어느 정도 밸런스를 찾아나갔고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에 고유의 색깔을 확보하고 현실성을 갖추는 데 성공하였다. 입양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이들 커플이 입양의 조건이나 절차에 대해 알아가고 그 기준을 맞추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과정이 서서히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가령 첫 시즌에서 니키와 제이슨이 입양을 희망하는 다른 부부들과 함께 모임을 갖는 에피소드나 입양 패널 심사를 받는 에피소드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일 것이다. 이들 커플은 직업과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다른 부부들과 비교하여 초라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과장하기도 한다. 또한 입양 자격 증명을 위한 전문가 패널들의 질문과 지적에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이 이들의 이해할 수 없었던 성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니키와 제이슨의 사연은 이들이 자연적으로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시작되지만 입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후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적 맥락을 드러내기도 한다. (알고보니) 입양 또한 충족하여야 하는 조건이 있고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제이슨은 어학원 강사이고 니키는 렌터카 회사 콜센터 직원인데 이들에게 입양은 체외수정과 매한가지로 어렵고 체외수정과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들의 액센트가 다른 입양 희망 부부들이나 입양 패널 심사의 전문가들의 액센트와는 다르게 들린다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실에 텔레비젼이 없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남 프랑스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부부, 입양아에게 방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넓은 잔디 마당과 트리하우스까지 줄 수 있는 교외 지역의 부부. 비단 그런 사람들과의 경쟁이 가능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 커플의 절망적인 고백과도 같이) 입양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어쩌면 경쟁 자체가 옳은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또한 과거에 비해 ‘평범한 가족’을 이루는 꿈이 더 어려워진 시대의 단상이다. 실상 2000년 이후 대안적 가족 코미디가 TV에 등장하고 유행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는 중산층의 해체이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지적일 수 있다.

 

  ‘트라잉’의 깜짝 성공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들은 입양의 자격 조건을 맞추기도 어려운 경계에 있었다.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를 지우고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식탁 매트와 식기 세트, 다리미와 다리미판을 장만해야겠다는 이들 커플은 한없이 나이브하지만 긍정적인 힘이 있다. 아이를 갖고 가족을 이루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변화하여 희생하는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서로를 변화시키고 부모들과 친구들과 이웃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거대한 나비 효과를 일으켜 마침내 만만치 않은 현실을 돌파하는 기적을 이루어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비슷한 부류의 대안적 가족 코미디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어느 순간 TV에서 사라진 행복의 바로미터를 되살리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머로 에피소드를 거듭하며 점점 더 좋은 시리즈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1). 초반부에는 다소 짜증스러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이 커플도 갈수록 사랑스러운 부분이 드러난다. 실제로 두 주인공을 연기한 스폴과 스미스는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 사태(?) 이후로 그런 환상은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이 둘만큼은 현실에서도 꼭 이런 모습으로 톡탁거리며 지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2025년 06월)


(1) 입양을 준비하여 심사를 받는 과정을 다루었던 첫번째 시즌이나 입양아가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을 이루는 내용을 다루는 두 번째 시즌, 그리고 초보 엄마 아빠인 이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을 다루었던 세 번째 시즌까지가 쇼의 최초 기획에서 예정되었던 이야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24년 여름에 방영된 네 번째 시즌은 6년 후로 이동하여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다섯 번째 시즌도 곧 방영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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