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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축농소년 이야기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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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강(體腔) 안에 고름이 괴었답니다. 부비강(副鼻腔) 점막에 염증이 있대요. 누렇고 끈적끈적한 점액이 코에서 물처럼 흘러나와요. 어째서 콧구멍은 아래로만 달려 있는 것일까요. 위로 달려 있으면 콧물이 흘러내리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이런 바보. 그러면 비 올 땐 빗물이 들어가고 눈 올 땐 눈물이 들어가잖아!) 또 어째서 콧구멍은 두 개가 달려 있는 것일까요. 하나만 있으면 한 줄기만 막으면 될 텐데 두 개나 있으니 두 줄기를 막아야 하잖아요. (이런 바보. 그러면 하나만 막아도 숨을 쉴 수가 없잖아!)


  나는 축농소년이었어요. 끊임없이 코에서 콧물이 흘러 나왔지요. 그게 언제 시작되었냐면 말이에요. 여덟 살 때였어요. 일곱살때까지는 괜찮았거든요. 여덟 살이 되고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코에서 콧물이 흘러 나왔어요. 그건 덜 떨어진 꼬맹이들이 칠칠 맞게 흘리고 다니는 그런 콧물이 아니었어요. 저 멀리 고름나라의 고름시 고름구 고름동에 거주하는 고름 계의 권위 있는 석학이 무릎을 탁 치며, '옳다구나. 네가 바로 고름이로구나' 라고 할 만큼 그건 정말 고름이었어요. 바나나를 밟아 으깬 듯 누르딩딩한 색깔이었고, 지구의 중력도 어쩌지 못할 만큼 강한 점도를 가진 채 천천히 흘러내렸지요. 때때로 습기 찬 날에는 십 년쯤 묵은 탄산 음료처럼 거품을 보글보글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그 점성이 얼마나 강했던지 친구들 중 더러는 그게 콧물일거라 감히 상상하지 못했어요. 기차가 어둠을 헤치며 은하수를 건너듯 빠져나 온 콧물이 인중을 향해 내려오면 그들은 말했죠. 
- 너 코에 그거...... '돼지표 본드'아냐? 
  물론 돼지표 본드는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그들도 차츰 그게 돼지표 본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주기 시작했지요. 그래요. 진실은 언젠가 통하는 법이니까요. 과학적 관찰 및 실험을 수행한 결과 '그것'이 돼지표 본드마냥 점성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되었거든요. 본드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묽었고, 구체적 개념의 접착력이 아니라 그냥 끈적끈적한 단순 점력이었죠. 딱풀 대신에 쓸 수는 없었을 거란 얘기입니다. 다행히 맛을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랬다면 가끔 엄마가 구워주는 조기의 (물론 간이 잘 배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짭조름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겠지요. 또한 감히 냄새를 맡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랬다면 뭔가가 극도로 응축되어 있는 지독한 향기를 경험할 수가 있었을 거에요. 본드 냄새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아주 유독한 냄새였겠지요. 아무튼 그랬다는 말입니다. 


*


  국민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괜찮았는데 국민학교에 다니고부터 축농증이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했어요. (누가 뭐래도 나는 논리적인 소년이었거든요.)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아, 나는 국민학교를 다닐 운명이 아니구나, 몸이 제도권 교육을 안 받는구나, 자기가 알아서 거부하는구나, 그러나 도리가 없었죠. 누가 뭐래도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이었는걸요.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좀처럼 존중하지 않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한탄하면서 나는 매일 아침 등굣길에 올랐습니다. 

  아침부터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는 순간까지 하루 종일 코에서는 누런 분비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휴지를 가지고 다녀야 했어요.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나 특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시험시간이나, 혹은 그 외의 어떤 특별한 상황을 미리 대비하여야 했거든요. 덕분에 아침마다 휴대용 크리넥스를 챙기느라 야단법석을 떨어야 했지요.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좋은 점도 있었지요. 우리 반 여자애들이 그걸 좋게 봐주었거든요. 네? 아니요. 코에서 돼지 표 본드가 나오는 거 말고요. 항상 크리넥스를 가지고 다닌다는 게 말이에요. 또래 남자애들답지 않게 매너 있고 깔끔해 보였다나요. 이유야 어쨌거나 매너 있고 깔끔하게 보인다는 건 좋은 일이죠. 아무렴요. 그렇고 말고요. 물론 그 크리넥스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반 여자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코를 푸는 남자애보다는 크리넥스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애들이 차라리 조금 나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애들은 결코 휴지가 없음으로 하여 벌어지는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죠.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곤 했거든요. 아마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해 본들 소용이 없을 거에요.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거든요. 하필 그런 날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점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코로 밀려나오는 법이죠. 이런 걸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던가요. 콧물이 코에 가득 들어차서 굉장한 속도로 맹렬히 흘러내리고 있는데 닦을 수도 없고 풀어낼 수도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미치고 팔짝팔짝 뛰고도 남아 다시 미칠 일이죠. 게다가 그게 밀도며 점도가 좀 높습니까. 돼지 표 본드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은 될 겁니다. 그런 게 코를 틀어 막고 있으니 숨쉬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지요. 

  그래서인지 나는 코가 아닌 입으로 숨쉬는 법을 자연적으로 터득했어요. 반대로 문제도 생겼죠. 코로는 숨을 잘 못 쉰다는 거에요. 사람이란 쓰는 만큼 진화하고 아니 쓰는 만큼 퇴화하는 법이랬지요. 말 그대로 용불용설이랄까요. 덕분에 이비인후과에서는 참 좋았어요. 코를 까 뒤집어 치료하던 의사 선생님이 '입으로 숨쉬세요'라고 할때, 저는 별로 어렵지 않게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은 채 입으로만 공기를 들이마시고 입으로만 공기를 내뱉을 수 있었거든요. 반대로 치과에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지요. 코로 숨쉬세요, 잘못하면 약물 다 목으로 넘어가요, 코로 숨쉬세요, 잘못하면 깨진 이빨이 목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어요, 코로 숨쉬세요, 거즈가 자꾸만 안으로 밀려 들어가잖아요, 제발 코로 숨쉬세요, 입으로 숨쉬지 마세요, 코로 숨 못 쉬어요? 제발 좀 코로 숨쉬세요, 제발, 제발, 제발, 오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코로 숨쉬세요. 

  그래도 입만으로도 충분히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고밀도의 점액이 양쪽 콧구멍을 틀어 막은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겠죠. 그래도 답답하기는 했어요. 좌우 네 개 동에서 흘러온 점액으로 가득 찬 코는 언제나 묵직했으니까요. 마치 '아가미 없는 물고기'라도 되어버린 느낌이었죠. 숨이 막힐 적마다 깊고 푸른 물 속을 바둥거리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상상했지요. 그 바다색을 닮은 물고기의 눈하며 번뜩거리는 비늘과 날렵한 지느러미와 하늘거리는 꼬리를 상상했으나 아가미만은 그릴 수가 없었죠. 그 물고기는 정말로 아가미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코를 풀었어요. 고름이란 좋든 싫든 어쨌든 몸 밖으로 빼내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크응, 흐응, 크으응, 흐으으응, 크르릉, 흐르릉.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코 밑이 헐었고, 애들이 나를 '크응흐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그래도 어떡해요. '아가미 없는 물고기'로 사느니 '크응흐응'이라고 놀림당하는 편이 낫죠. 일단 풀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는 했으니까요. 물론 아주 잠시만이었지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체강의 어느 깊숙한 곳에서 또다시 누렇고 진득한 것이 밀려 나와 금방 코를 채웠거든요.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으니 이거야말로 불치병인가 싶었어요. 그러다 점액의 점성, 콧구멍 내벽과의 표면 장력, 지구의 중력, 여러 가지 요소의 종합 결과 밖으로 서서히 흘러나오게 되면 또다시 아이들은 외쳤죠. 야, 거기 돼지표 본드…….

  내게는 가방을 챙기는 것 말고 수업이 끝났을 때 해 야할 일이 하나 더 있었어요. 하루 동안 코를 풀어낸 휴지를 가져다 버리는 일이었죠. 그건 너무 남사스러운 일이라 모든 아이들이 집에 가기를 기다렸다가 은밀하게 처리하고는 했지요. 나는 코를 풀고 나서 그걸 책상 서랍 안에 넣었어요.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좋겠지만 코를 풀 때마다 일어나서 수업 중에 돌아다닐 수는 없었거든요. 솔직히 책상 서랍 안에 처박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죠. 코를 풀 때 휴지는 구겨지며 그 안에 내 몸에서 빼낸 점액들을 품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그게 서서히 말라요. 그렇게 말라붙으면 휴지가 딱딱해지죠. 또 다른 휴지가 그 위에 쌓이죠. 다시 말라서 딱딱해지고. 또 쌓이고 마르고, 또 쌓이고 마르고, 종종 내가 눌러대니까 더욱 밀착해서 쌓이고, 결국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야구공보다는 조금 크고, 배구공보다는 조금 작은, 그러니까 정확히 정구 공만해져 있게 되지요. 돼지 표 본드로 휴지를 일일이 붙여가며 둥글게 뭉친 다한들 이렇게 될까요. 매일 오후 남모르게 하나의 정구공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며, 그때마다 나는 인체의 무한한 신비에 대해 생각했답니다. 하룻동안 내 몸에서 흘러나온 콧물의 양은 정말 굉장했거든요. 먹은 게 모두 코로 간 다한들 그만큼이 나올 수는 없었을 거에요. 

*

  '돼지표 본드'와 '크응흐응'으로 이어지는 친구들의 놀림 공세는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특히나 어린 마음에. 그런데 바로 그 즈음에 그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겁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편의상 아무개라고 해두죠. 아무개 또한 나처럼 축농증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는 축농증 때문에 나처럼 고통받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는 자신의 축농증을 즐겼거든요. 맞아요. 즐겼다고요. 나는 세상에 축농증 따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지요. 그는 말했죠. “축농증은 축농증일 뿐이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말이야 쉽죠. 그렇지만 잘 안 되는걸 어떡해요. 산을 보고 물을 보듯 축농증도 관대히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별로 어렵지 않아 하더라고요. 정말로 그는 축농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이와 메텔을 태운 ‘은하철도 999’처럼 어둠을 헤치고 노란 점액질이 동굴을 빠져 나오면 그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게의 집게처럼 이용, 좌우에서 코를 힘있게 눌러 주었죠. 그 결과, 두 개의 동굴 벽이 밀착되면서 흘러나와야 할 것들이 마땅히 흘러나오고야 말았는데요. 집게발 가득 끈적끈적 엉겨 붙은 '것'들을 그는 별로 괘념치 않고 공중에 휘휘 털어버렸지요. 그건 뭐랄까……, 정말 더럽고, 정말 놀랍고, 정말 더럽게도 놀라운 일이었어요. 

  뿐만 아니었어요. 내가 하룻동안 내 몸에서 흘러나온 콧물의 양과 인체의 신비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그래? 나도 항상 그게 궁금했는데. 얼마나 나오는지 한번 재어보자. 그는 숟가락으로 과학실의 문을 따고 비이커를 꺼내어 왔어요. (아, 정말 비이커였다는 말입니다.) 나보고 하래서 싫다고 했더니 자기가 하겠다더군요. 그때부터 그는 콧물이 나올 때마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짜내어 비이커 안에 담았어요. 끈적끈적거리는데 그게 어디 쉬웠겠어요.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열 손가락을 모두 동원해야 했지요. 비이커 안에는 누렇고 흉물스러운 액체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서도 색깔이 조금 더 진한 부분이 있었고 색깔이 조금 더 연한 부분이 있었죠. 또한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액체상태인 부분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덜 액체상태인 부분이 있었죠. 아무개는 말했죠. 날이 건조하면 마를 수도 있으니 습도 조절을 해야겠어. 그는 음식을 보관하는 밀봉 상자의 바닥에 물에 적신 휴지를 깔고, 그 위에 비이커를 넣었습니다. 누런 점액들은 얼마나 점성이 강한지 비이커를 흔들어도 여간 해서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비이커가 콧물의 독성 때문에 새카맣게 타버리지나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죠. 그렇게 아무개가 흘려낸 콧물은 며칠에 걸쳐 차곡차곡 비이커에 쌓였습니다. 

  첫날은 500 밀리리터, 다음날은 450 밀리리터, 그 다음 날은 무려 600 밀리리터였습니다. 그와 나의 병세, 아니 축농증세가 비슷하니 나도 그만큼 나왔을 것입니다. 불과 삼 일이면 1.5리터 콜라 페트병이 가득 찰 만큼 나온다는 이야기이겠네요. 정말 더럽게도 끔찍한 일입니다. 또한 더럽게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개는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그는 절대로 축농증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두 개의 콧구멍에서 흘러내려오는 두 줄기의 누런 점액질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니 친구들도 아무개을 놀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숨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동정과 연민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 명예와 속세적 영달마저 초연했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모아 콧물을 짜내고 휘휘 공중에 털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점심시간 이후의 봄바람이 한없는 무료함을 몰고 올 적이면 그는 손으로 풀어낸 콧물을 휘휘 돌려 위로 힘껏 던졌습니다. 철퍽. 천장에 노란색 무늬가 생겼습니다. 잠시 후에도 철퍽. 또 하나의 무늬가 생겼습니다. 또 철퍽. 이번에는 조준이 조금 빗나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천정에 누우런 무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때때로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는 몹시도 추운 날이 와서 아무래도 공부하기가 싫어질 적이면 그는 풀어낸 콧물을 조용히 책상 아래로 가져갔습니다. 교육 예산의 부족과 세월의 풍파를 맞아 썩어 문드러지기 직전인 나무 책상의 아랫부분에 그것을 쓰윽 문지렀습니다. 쓰윽. 잠시 후에도 쓰윽. 또 쓰윽. 건조한 날씨에 말라 부스러진 그것들은 노란 먼지가 되어 흩날렸습니다. 

*

  시간이 흘렀습니다 - 시간이 흐르거나 말거나, 아무개와 나의 축농증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삼 년 만에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갔고 다시 삼 년 만에 졸업하였습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죠. 중학교 삼 년에 고등학교 삼 년이 원래 정상이니. 하지만 우리가 결코 정상적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망할 놈의 축농증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축농증을 부끄러워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개은 전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난 그런 아무개가 참 부러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축농증을 즐길 수 있다니요. 축농증이 초래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고려할 때, 어지간한 정신적 수양을 닦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입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축농증 때문에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아주 억세게 운 없는 어느 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수업 중이었는데 폭발하듯 콧물이 터져 나왔지요. 마치 그건 뭐랄까… 활화산 같았습니다. 난 서둘러 가방을 뒤져 크리넥스를 찾았지요. 그런데 없는 거에요. 금방 나는 울상이 되었지요. 그 순간에도 진득한 질감의 콧물은 동굴을 빠져 나와 아래로 아래로 무섭게 진군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콧물이 인중을 타고 윗입술 고개를 넘도록 당황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숨이 가빠왔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지요. 어렵사리 화장실에 가서 휴지라도 끊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벌떡 일어나기 무섭게 선생님의 (피도 눈물도 없고 콧물마저 없기로 유명한 윤리 선생님의) 몽둥이가 날아왔지요. 아차! 수업시간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급박한 상황이라면 좀 봐주셔도 좋을 텐데. 윤리 선생님은 본 척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을 진행하더라고요. 아! 매정한 양반. 

  "다음은 오십칠 페이지.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생명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명 존중은 인간 존엄성의 믿음에서 나오며 도덕성의 기본이다. 인간 존엄성에 밑줄. 그리고 도덕성의 기본에 별표 두 개. 이 문장을 통째로 외운다. 알아 듣겠나?" 

  제자가 숨이 막혀 이토록 괴로워하는데 생명이 신성하니 마니 인간 존엄성이 어쩌고 저쩌고……. 그 사이 콧물은 윗입술 고개를 부드럽게 넘어 좌우로 퍼지며 입술과 입술 사이의 오목한 공간을 향해 전 방위적으로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고, 몇몇 아이들이 텔레비전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저를 보고 웃었어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괴로웠어요. 그 옛날 베수비오 화산 남동쪽에 있었다는 폼페이를 떠올렸다면 좀 과장이 지나칠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정말로 그런 기분이었어요. 폼페이에 가면 말이에요. 코를 틀어막은 채로 화석이 된 사람의 상이 전시되어 있대요. 지금이야 굳어있지만 그땐,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다른 일도 있었죠. ‘돼지표 본드’라는 별명은 고등학교 때까지 따라왔는데 덕분에 나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죠.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돈을 빼앗았어요. 그들은 축농균이 옮을지도 모른다면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요.) 항상 일회용 비닐 장갑을 낀 채로 날 때렸어요. 그 돈에 코가 묻었을지도 모른다며 돈도 장갑을 낀 채로 낚아채어 갔지요. 난 돈을 빼앗기는 것보다 그들이 날 때릴 때, 그리고 돈을 빼앗을 때, 항상 장갑을 끼는 게 싫었어요. 일회용 비닐 장갑을 볼 때마다 어쩐지 더 외로워졌거든요. 일회용 비닐 장갑은 그들과 내가 다른 종류의 동물임을 의미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차피 사람이란 따돌림을 당하든 아니 당하든, 싸움을 잘하든 못하든, 남의 돈을 빼앗든 말든, 코에서 돼지 표 본드를 닮은 고름이 나오든 말든, 똑같이 63퍼센트의 수소와 25퍼센트의 산소와 9.5퍼센트의 탄소와 1.4퍼센트의 질소와 0.31퍼센트의 칼슘과 0.2퍼센트의 인과 그 밖의 염소, 칼륨, 유황, 나트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그들은 날 못살게 굴었을까요. 
  축농증만으로도 난 충분히 힘들었는데 반면 아무개는 그래도 비교적 잘 버티는 것 같았어요. 그는 워낙 축농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죠. 나쁜 아이들이 둘러싸고 위협을 해와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어요. 대담하게도 킁, 하고 오른손 검지와 엄지 사이에 코를 풀어낸 다음에 그걸 휘둘렀지요. (마치 홍콩 영화 같았다고나 할까요?) 세상 어디에도 무서울 게 없는 나쁜 아이들도 아무개의 그 필살기에 만큼은 두 손을 번쩍 들었지요. 그의 콧물이 묻기라도 할까봐 이리저리 피하기에 바빴으니까요. 멋졌어요. 참말로 멋졌어요. 한번은 아무개가 왼손과 오른손 양쪽에 모두 코를 풀어 풍차처럼 돌린 적이 있었는데요. 라만차의 풍차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돈 키호테가 창을 곧추세운 채 달려들어가는 듯 했어요. 아이들은 마스크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죠.

*

  시간은 다시 흘렀습니다. 축농증은 낫지도 않는데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습니다. 아무개와 나는 드디어 스무 살이 되었어요. 계산해보니 그간 우리가 흘려온 콧물의 양이 일인당 2천하고도 190리터에 이른더군요. 아무개와 나는 같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콧물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여전히 가방 속에 크리넥스를 챙겨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했어요. 이젠 대학생이었으니까요. 그 무렵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여자친구를 만날 때 콧물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하듯 솟구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다소곳이 앉아있던 그녀는 깜짝 놀라 화산재에 뒤덮여 화석이 되어버린 폼페이 시민들처럼 굳어버리겠지요. 어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할는지도 모릅니다. 내 코에서 흘러나오는 그것이 어디 보통 콧물입니까? 저 멀리 고름나라의 고름 시 고름 구 고름 동에 거주하는 고름 계의 권위 있는 석학이 무릎을 탁 치며, '옳다구나. 네가 바로 고름이로구나' 라고 할 만큼 정말 고름인걸요. 밥맛도 뚝, 살맛도 뚝, 하고 떨어질 만큼, 수십년을 견지해 온 인생관마저 단박에 바꿔버릴 만큼 보기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고름인 걸요. 물론 따지고 보면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나에겐 여자친구가 없었으니까요. 아무개는 언제나 나보다 용감하게 한 걸음 앞서 달려갔던 녀석답게 여자친구를 만들었지요. 콧물의 급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릅니다. (뭐 나름의 방법이 있었겠지요.) 향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콧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각종 남사스런 애정행각까지 벌인다는데,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그냥 소문인가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제 정신인 여자라면 3일마다 1.5리터 페트병을 채울 만큼 나오는 진득진득한 누런 액체에 기겁하지 않을 리가 없지요. 안 그래요? 

  그로부터 일년 뒤, 우리는 나란히 국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무개와 나는 우리의 이 지독한 축농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던 그도 그때만큼은 고민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축농증을 대단한 병이라고는 할 수 없기는 합니다. 허리 디스크 등에 비하자면 대단하지 않은 병이라고도 할 수 없고요. 일상 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떤 면에서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만큼 일상 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다는 점에 우리의 고민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신체검사 때는 우리 둘 다 통과를 했지요. 두 번째 군의관이 축농증이나 기타 코 질환에 대해 물었을 때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넘어갔거든요. 결과는 내가 2급, 그리고 아무개가 1급이었습니다. 엉뚱하게도 매년 체력장 때마다 학교 밖으로 공을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키 196 센티미터 몸무게 93 킬로그램의 매우 건장한) 애들은 4급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이 되는데 왜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는 현역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3일마다 1.5리터씩 콧물을 뽑아내면서 어떻게 무사히 군복무할 수 있을지 눈 앞이 캄캄하기도 했고요.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다시 한 번 신체검사를 받았어요. 그때도 군의관이 물었죠. 이 중에 축농증이나 기타 코 관련 질환이 있는 사람 있습니까? 나는 살짝 망설였지만 아무개는 용감하게 손을 들었죠.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군의관에 눈에서 불꽃이 팝콘 튀기듯 번쩍 튀겼던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축농증이야? 그럼 콧구멍이 썩어 문드러져야 하는데 맞습니까? 썩어 문드러져서 쉴새 없이 고름이 흘러나와야 하는데 맞습니까?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해야 하는데 맞습니까? 썩어 문드러진 고름이 폐로 넘어가 숨쉬기도 어려워야 하는데 이것도 맞습니까? 정말 자네가 이만큼 썩어 문드러졌습니까? 그만큼 썩어 문드러진 사람이 정말 있다면 앞으로 나오도록 하십쇼.” 대충 그런 내용이었어요. 우리는 너무 놀라서 가슴을 쓸어 안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우린 축농증으로 고생했을 뿐이지 몸과 마음까지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았으니까요. 그저 축농증이 있느냐는 질문에 축농증이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었거든요. 그제서야 우리는 군의관이 정말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신기한 것은 그 날을 기점으로 우리의 축농증이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의사들이 수술이 아니고서는 방법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 그 불치병이 말이지요. 마치 딸꾹질을 멈추게 할 때 깜작 놀래 키는 것처럼, 축농증 또한 '깜짝 놀람'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아무개와는 훈련소에서 나오며 다른 부대로 배정을 받았는데 제대를 하고 만나니 그 또한 축농증이 완치 되었더군요. 비결을 물었더니만 배정 받은 부대에서 아무개의 선임으로 있던 사람이 콧물 줄줄 흘리며 다니는 아무개의 꼴이 보기 싫다며 호된 기합을 주었다는 거에요. 콧물 한 방울 흘릴 때마다 연병장 백 바퀴, 뭐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는 그때마다 들어야 했던 욕설과 교묘한 구타가 더 참기 힘들더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나니 더 이상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듯 콧물이 흘러나오지 않더라는 말입니다. 스물하고도 몇 해 동안을 그리도 끈덕지게 괴롭히더니만 그렇게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는 거에요. 

*

   제대한 뒤 우리는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그게 소위 말하는 ‘제대 후 사회 적응’의 문제인지 아니면 더 이상 콧물이 나오지 않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완치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저 폭력과 강요에 이기지 못해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죠. 아무개는 아무개대로, 또 나는 나대로 병원에 다녔습니다. 이비인후과 병원 말이죠. 의사들은 똑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부비강에, 그리고 그의 부비강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언젠가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은 아니라고.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축농증이 나았으니 좋은 걸까요?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했습니다. 스물하고도 몇 해 동안 미우나 고우나 안고 살았던 것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죠. 한편으로는 축농증이 사라져버린 대신에 어떤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축농증이 내가 겪어야 하는 불행과 어려움을 일정부분 액땜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잖아요. 나보다 축농증에 대해 훨씬 더 명랑하고 씩씩한 자세로 대처하던 아무개의 경우 그 허탈감이 훨씬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마치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느낌이야”라고 섬뜩한 소리를 했죠. 아무개는 축농증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이 어느 정도 공평한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면 축농증이 아무개를 괴롭히고 소모하는 만큼 축농증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것은 그가 그 자신을 규정하는 일종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코에서 시나브로 흘러나오는 누렇고 끈적끈적한 점액은 언제나 놀림감이었지만 그만큼 그를 지켜주기도 했죠. 그가 축농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상 그의 삶에는 조금의 문제도 없었죠. 헌데 축농증이 나아버리자 그 모든 게 사라진 겁니다. 괴로움과 그만큼의 괴롭지 않음이 분명하게 셈이 되어 다같이 날아가버린 거죠.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만큼은 그를 이해할 수가 있었어요. 나 역시 같은 상황을 겪었고 같은 고민을 했었으니까요. 

  나는 그 공허감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물론 시간이야 걸렸죠. 갑자기 텅 비어버린 느낌인데 그게 단박에 메워지겠습니까? 하지만 아무개는 시간이 가도 극복하지 못했어요. 방황했죠. 나는 그의 방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또한 그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축농증 없는 삶을 누리기에도 바빴으니까요. 비로소 놀림 받지 않을 수가 있었고 비로소 따가운 눈초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죠. 더 이상은 코밑이 헐지도 않않죠. 매일 아침 크리넥스를 챙기느라 야단을 떨지 않아도 되었죠. 더 이상은 애들한테 '돼지표 본드'를 만들어 낸다고 놀림을 당하지도 않았고요. 어디서 얻어 맞고 돈을 빼앗기지도 않았어요. 일회용 비닐 장갑을 보며 외로워하지도 않았죠. 내 이름은 더 이상 '크응흐응'이 아니에요. 비로소 친구들이 생겼고 비로소 연애를 하게 되었죠. 데이트할 때 상대가 도망가지도 않죠. 마음도 편해졌어요. 결정적 순간에 코가 말썽을 부릴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숨쉬기도 한결 나아졌지요. 입으로 말고 코로도 숨을 쉴 수가 있으니까요. 코에서 나온 누런 점액이 더 이상 지구의 중력을 따라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건 마치 내가 중력을 극복한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우주인처럼 자유롭게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듯한. 정상인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자 비로소 남들이 뭘 생각하고 앞으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지가 보였어요.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개와 나는 차츰차츰 멀어졌습니다. 그 시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였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못 만났죠. 그 사이에 아무개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동안 나는 공부를 했고 좋은 학점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여 좋은 회사에 들어갔고 평범한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죠. 매년 갑자기 쌀쌀해지는 초가을이 되면 코에서 묽은 콧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긴 했지만 크리넥스로 깔끔하게 닦아내면 그만인 정도였습니다. 언제나 나는 축농증이 다시 생길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이비인후과에도 다녔습니다. 물론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았죠. “축농증이요? 아무 이상 없는데요?” 

  아무개를 다시 만난 건 서른 다섯이 되던 해 가을이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요. 절대 못 견딜 것 같던 그도 어느새 나처럼 평범하게 적응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그 말은 비단 그에게만 유효한 건 아닌 듯 했어요. 나도 그냥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거든요. 어릴 적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했지만 뭔가 특별한 존재일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더럽지도 않고 지저분하지도 않고 더럽게 지저분하지도 않죠.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가끔씩은 꿈을 꿉니다. 아무개와 내가 빨간색 오픈 카를 타고 어느 황량한 사막을 달리는 꿈입니다. 지저분하게 턱수염을 기른 파란 눈의 도적떼가 우리 차를 막아 세웁니다. 우리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차를 세웁니다. 그들이 몰려 옵니다. 우리를 둘러쌉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돈을 내어놓고 귀중품을 내어놓고 차를 내어놓으라고. 아무개가 말합니다. “싫어.” 그는 손을 코로 가져 갑니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게의 집게처럼 이용, 좌우에서 코를 완전히 눌러 줍니다. 두 개의 동굴 벽이 밀착되면서 마땅히 흘러나온 것들을 그는 높이 들어 보입니다. 사막의 이글거리는 햇살이 그의 손 끝에서 번쩍입니다. 도적떼는 깜짝 놀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에 들려 (아니 묻어) 있는 것은. 저 멀리 고름나라의 고름시 고름 구 고름 동에 거주하는 고름 계의 권위 있는 석학이 무릎을 탁 치며, '옳다구나. 네가 바로 고름이로구나' 리고 할 만큼 정말 고름이었으니까요. 그 밀도하며 그 점성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죠. 아무개는 팔을 천천히 돌립니다. 휘휘 돌립니다. 여차하면 니들에게 이걸 날려버리겠다는 심산입니다. 도적들은 서서히 뒤로 물러섭니다. 재빨리 말에 올라타서 줄행랑을 놓습니다. 말 그대로 꽁무니를 빼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환호합니다. 그는 자축의 의미로 손에 풀어놓은 콧물을 하늘 높이 던집니다. 하늘에는 지붕이 없고 천장이 없으니 그게 어딘가에 달라붙어 노랗게 말라갈 일은 없을 겁니다. 사막의 태양에 반짝이고 사막의 거친 바람에 가는 모래처럼 흩어집니다. 우리는 그 무수한 분자들을 뒤로 한 채 차를 몰아 신나는 여행을 계속합니다. 꿈은 거기까지 입니다. 그러나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아무개의 코는 이제 더 이상 하루에 평균 오백밀리미터씩 점액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풀어낸 그것을 천장에 던지지도 책상 밑에 문지르지도 않아요. 가끔씩 흘러나오는 약간의 분비물들은 시트러스향의 깔끔한 크리넥스로 닦아내 버리죠.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뭔가 찜찜하다는 말입니다. 아가미 없는 물고기처럼 말이죠.

(200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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