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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7. 11. 11.

본문

  우리 가계가 기울어진 건 순전히 ‘델리바게트’ 때문이다. 우리 빵집 바로 앞에 ‘델리바게트’가 생기면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손을 쓸 방법이 있진 않았을까? 어쨌든 지금은 늦었다. 늦어도 너무 늦어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델리바게트’는 매출 규모 4천억 수준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다. 현재 전국에 667개 지점이 있고 올해 안에 12개 지점이 더 개설될 예정에 있단다.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로 굴지와 저력의 대기업 체인들조차 있는 지점을 부러 줄인다는 요즘이다. 이런 판국에도 한 달에 한 개꼴로 지점을 늘려 나간다는 점만 보더라도 얼마나 돈독이 오른 놈들인지 짐작 가능하다. 작년 성장률이 19.8%. 한마디로 고속성장세에 있다는 뜻이다. ‘델리바게트’는 '데일리식품'의 3세 박유범 (Park, You Bum) 대표가 인도 유학을 다녀와서 런칭한 브랜드 베이커리다.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그들의 노하우를 빌어와 국내 제과제빵업계에 신선한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겠다나 뭐라나. 몇 년 전인가 조간신문 한 귀퉁이에서 그의 가열찬 출사표를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 바닥에 거대 자본이 밀려든 것이 비단 하루 이틀 이야기도 아니거니와, 불란서나 이태리라면 모를까 인도에 다녀와서 베이커리를 런칭했다는 사실이 솔직히 우습기도 했고, ‘델리바게트’라는 이름이 지하철의 좋은 친구 ‘델리만주’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꽤나 만만해보이기도 하는 등 솔직히 크게 긴장해야 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달라졌다. 그 놈의 ‘델리바게트’는 대기업 특유의 물량 공세로. 저그족 콜로니 늘어나듯 확장세를 뻗쳐나가더니만, 우리 가게에서 과거에 팔았고 현재 팔고 있으며 미래에 팔 예정인 빵 종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전국 667개의 체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666호점이 하필 우리 가게 바로 옆에 생겼다. 수사의 차원에서 '옆'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 바로 딱 붙어서 생겼다는 말이다. 진짜로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가게와 이웃하고 있단 말이다. 같은 업종의 점포 바로 옆에 점포를 내는 것이 과연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혹은 상식적으로 옳은 일인가, 혹은 빌어먹을 상도덕 뭐시기와는 상관 없는 일인가. 여러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궁금하다고 마냥 궁금해할 상황은 아니었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이 빌어먹을 게임은 시작되었고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옆집에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생기고 나서 줄어든 것이 있다. 우리 가게 빵 판매량, 손님, 매출, 순 매출, 수익, 순 수익, 수면 시간, 내 머리숱, 기타 등등. 반면에 늘어난 것도 있다. 화, 짜증, 혈압, 스트레스, 주름살, 흰머리, 전기세, 수돗세, 가스 요금, 술 값, 기타 등등.

*

  ‘델리바게트’가 신경 쓰이는 건 영업 시간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퇴근하고 텔레비견을 보다가 그들의 광고가 나오기라도 하면 다시금 혈압이 올라갔다. 누가 거대 자본의 프랜차이즈 아니랄까봐 그들은 텔레비젼 광고도 공격적으로 내보냈다. 몇 시간에 서너번씩은 나오는 듯 했다. 텔레비젼은 커녕 지하철 무가지에도 광고 한 번 실어보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는 TTL인지 OTL인지 아무튼 완전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일. 아주 만약에라도 그들처럼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문제다. '델리바게트'의 광고 모델은 요즘 최고의 상종가를 올리고 있는 12인조 걸 그룹 ‘담보 대출 이자 폭탄'이다. 반면에 우리가 끌어올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사람은 글쎄. 풍천 장어 아가씨? (물론 여기가 풍천이 아닌 이상 그녀의 인지도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역시 다소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델리바게트' 광고의 TV용 1차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예쁜 방 안에 둘러 앉은 소녀들이 문득 엄습해오는 출출함과 허기에 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친다. 치킨과 피자 등 고열량 식품을 들먹이는 물성 없는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철저히 묵살당한다. 바로 그때다. 등에 베이지색 날개가 달린 귀엽고 깜찍한 금발 여아가 창문을 열고 날아 들어와 뜬금없이 바게트를 내민다. '올레! 너 짱 귀엽구나.' 우울해 하던 소녀들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급기야 신바람이 난 소녀들은 막춤을 추기 시작한다. 차차차, 룸바, 삼바, 자이브, 파소 도브레, 살사, 메링게, 쿰비아, 스윙, 왈츠, 퀵스텝, 탱고, 폭스트롯, 블루스, 브레이크, 테크노, 발레, 심지어 탈춤에 사자춤에 곱사춤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벌어진 춤판 사이에서 카메라는 서서히 페이드 아웃. 그리고 운명처럼 극적으로 떠오르는 찬란한 흘림체의  브랜드 로고 (’Delhi Baguette’)와 정체 불명 악센트의 외국인 음독. (두엘리 부아그에뜨?) 그 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뭐 이따위 광고가 다 있어?) 두번째 보았을 때는 그냥 웃었다. 허나 세번째 보고 나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가 살랑살랑 마음을 부비부비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정체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그 놈의 광고를 네번째 보고 나니 나마저도 쟤네들 빵을 사먹고 싶어졌다. 다섯번째 보고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훌륭한 30초 예술에 비하자면 비하면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나 심형래나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물론 소위 아이돌 여자애들은 '관리'상의 이유로 절대 빵 같은 걸 먹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야식으로는 더더욱. 그것도 바게트 종류는 더더욱. 저런 아이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어른들에게 '관리' 당하는지에 대한 기사를 어디에선가 본 것도 같다. '델리바게트'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게시판에 소비자 의견을 남긴 적이 있다. 다른 의도는 아니고 순전히 소비자 주권의 실현 차원에서다.

태클은 아니지만, 갠 적인 생각으로는 광고 좀 유치한 것 같네요;;

  악의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자신을 가급적 선량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누리꾼들의 애용 표현 ('태클은 아니지만'), 향후 예상되는 혹은 불의의 반박으로부터 자신을 무한 쉴드 치기 위한 누리꾼들의 기초적 방어 스펠 ('갠 적인 생각으로는') 직설을 희석하기 위해 살짝 발을 빼는 ‘같네요’ 신공과 세미콜론의 남발. 완벽한 조합이었다. 누구도 666호점 바로 옆 빵집 주인이 쓴 의견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인터넷 익명성의 유일한 장점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혹 나의 키보드 워리어질을 비겁하다고 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천만의 말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체 그 누가 나를 욕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윗이고 저들은 골리앗이다. 다윗에게 골리앗과 정면대결을 강요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골리앗에게는 골리앗 나름의 전략이 있고 다윗에게는 다윗 나름의 전략이 있는 법이다. 

  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델리바게트'의 텔레비전 광고가 풀린지 불과 3개월만에 초등학생 아이들의 93.2%가 바게트를 인도빵이라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코리아리서치, 한국갤럽, 설탕시럽, 와인드업 등 유수기관의 리서치 결과다. 9시 뉴스에도 소개되었다. 광고는 소비자 '관리' 차원의 문제다. 관리의 힘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심지어 우리 아들까지도 이렇게 물을 정도니 말 다했다.
- 아부지, 바게트면 인도빵 아닌가요?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정말, 찬란한 브레인의 소유자다.
- 이 무식한 자슥아. 그러고도 빵집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 그럼 어디 빵인데요?
- 불란서다. 불란서.
  아드님께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 프랑스도 아니고 불란서라니……. 흠, 그것이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 일이로군요.
  말을 말자. 역사적으로 서구에 강탈당하는 입장이었던 인도가 거꾸로 그들에게 뭘 좀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단 사실이 조금 신선하기는 하지만 (물론 동아시아 끝의 어떤 나라에서 그렇게 믿어지고 있을 뿐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세익스피어도 에펠탑도 아닌 '바게트'라면 과연 후대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

  자, 이제 이 이야기의 까다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보자. 내게는 ‘델리바게트’를 미워할 권리가 있다. (당연하다. 이 프랜차이즈 골리앗은 우리 가게와 벽을 하나 두고 ’델리바게트' 666호점을 내었다.) 그렇다면 그 점포의 점주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를 원망하는 감정은 일면 타당해보인다. 빵집 바로 옆에 빵집을 하겠다고 덤벼든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델리바게트' 666호점의 점주를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거대 자본의 ‘의지’이니까.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적이 있고 드러나지 않는 적이 있다. 대개 분노는 전자를 향하지만 열쇠는 후자가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 남자와 나의 차이란, 이미 투항했느냐 아직은 용케 하지 않았느냐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델리바게트' 666호점의 점주는 사실 호감가는 인상을 가진 중년 부부다. 우리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도 하나 있다. 당연히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가게의 매출 그래프가 음의 기울기를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밤마다 벽을 치면서 원망했다. 내력벽이니 망정이지 장식벽이었으면 진작에 뚫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내력벽이니 그래도 안심이지 장식벽이었으면 언제 저들이 벽을 부수고 우릴 집어 삼킬지 몰라 매일을 걱정 속에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들이 개업떡을 들고 우리 가게에 들어섰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정말 깡 좋은 자식들이라고 생각했다. 빵집 바로 옆에 빵집(지들이 뭐라 부르든 간에)을 내면서 그 집에 떡을 돌린다는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으로 만원인 관중석에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들어가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보통 담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부부가 잘 지내보자고 말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는 척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온 몸으로 호감을 내뿜는 가족에 대고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또 고독한 싱글 파파인 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한다. 아들에게도 친구가 필요할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같은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닌텐도 게임기로 테니스도 치고. 물론 세상에 하고 많은 사람들을 두고 경쟁 사업체의 점주들과 우정을 쌓으려는 생각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지만. 쇼윈도 너머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단란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 함 사귀자고 해볼까?

  산수 숙제를 하던 아들이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 보았다.

  사실 작년 여름 '델리바게트'에서 나를 찾아와 점포를 넘기길 제안했다. 지점장 자리는 보전할테니 '델리바게트'의 관리 감독 아래서, '델리바게트'의 영업 원칙에 따라, '델리바게트'의 빵을 사고 팔라는 얘기였다. 그 편이 내게도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겠느냔 얘기였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빵집이 애엄마와 함께 시작했던 가게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거절을 했기 때문에 그 남자에게 공이 넘어간 것이고, 그 남자 역시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단지 저항과 투항 중 투항으로 결론이 났을 뿐이다. 글쎄, 과연 그걸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 남자는 본사에 가맹비, 보증금, 기획관리비, 인테리어비, 이벤트비, 기타등등비 등을 납부했을 것이다. 그 남자는 '델리바게트'지만 또 '델리바게트' 그 자체는 아니기도 했다. 어차피 모든 것은 '관리'의 문제다. 그리고 어차피 선택은 둘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관리 하거나, 아님 관리 당하거나.

*

  '델리바게트' 666호점 개설 후 한 달.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우리 가게를 '관리'하였으나 결과는 참담할 뿐이었다. 900원짜리 곰보빵 판매량은 전월 대비 24.3%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 문제는 곰보빵 성적이 그나마 선전한 축에 속한단 사실. 크림빵은 전월대비 31.8%, 단팥빵은 33.2%, 슈크림빵은 34.6%, 크라상은 38.7%, 우유식빵은 42.5%, 옥수수식빵은 43.9%, 바게트는 48.8%, 케이크류는 49.3%가 덜 팔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장 길 복판에 뛰어 나가 미친 놈처럼 차차차, 룸바, 삼바, 자이브, 파소 도브레, 살사, 메링게, 쿰비아, 스윙, 왈츠, 퀵스텝, 탱고, 폭스트롯, 블루스, 브레이크, 테크노, 발레, 탈춤, 사자춤, 곱사춤까지 땡겨보고 싶은 충동이 우글우글 들끓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나의 억울함과 프랜차이즈의 횡포를 조금이라도 알아주지 않을까 ("야, 저기 대로 복판에서 춤추는 남자말야. 자기 빵집 옆에 바로 '델리바게트'가 생기는 바람에 미쳐버렸대. 완전 불쌍하지 않니?"). 이럴 줄 알았으면 판매량을 컴퓨터로 관리하지 말 걸 그랬다. 몰랐으면 그냥 모르는대로 지나갈 것을, 괜히 알고나니 혈압만 더 오른다.

  애엄마와 빵집을 시작한 것은 2000년의 여름이었다. 국가 경제 붕괴의 와중에 덜컥 구조 조정 대상자에 포함되었던 것이 생각지도 않았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때까지는 단 한번도 내가 장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전자회사에서 휴대전화 하드웨어 디자인을 하던 남자가 빵집 주인이 된다는 건 글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의 애기 동자, 왕꽃 선녀식의 전개다. 회사는 당시에 날 자르며 회사 사정 어렵다, 어렵다 노랠 불렀다. 하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다. 수익이 십년 내내 양의 기울기였던 걸 보면 망할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 싶다. 어김없이 신입사원 채용도 매년 이루어졌다. 그러니 좀 이상한 일이란 말이다. 당시까진 수요가 크지 않았던 휴대전화도 지금은 국가의 근간이란들 무방할 기세다.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는 휴대전화 사용자가 100명당 57명 수준이었는데 2009년에는 100명당 98.4명이 되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2000만명 이상의 새로운 소비자가 생긴 셈이다. 더구나 단말기 교체주기는 우리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1등이라고 하고 그런데도 점점 더 짧아져 가는 추세다. 시장성을 놓고 본다면 지난 십년 간 브라질 삼바축제와 비슷한 분위기였단 뜻이다. (헐벗은 무희들이 진동모드의 휴대전화 마냥 몸을 흔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그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날 자른 그 회사에선 이후 48개의 신상품 모델이 런칭되었다. 그러고보면 사람 자르면서 회사 사정 어렵다, 어렵다 하는 말이 참 미스테리하지. 그때 사장님(놈)이 늘 하시던 말이 "위기는 곧 기회다"였는데, 위기일수록 정신 똑똑히 챙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뭐 그 따위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너 잘 났으니 짱 먹어라. 

  그리고 지금 두번째 위기. 우리 빵집 바로 옆의 '델리바게트' 666호점. 살인적인 성장세의 프랜차이즈 윈도우 베이커리. 다윗 옆의 골리앗. 우리 가게가 이 동네에서 장사한지도 어언 십년인데, 바로 옆에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생기고 났더니 갑자기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불과 한 달만에 사람들이 빵을 덜 먹게 되었다고? 당연히 아니다. 오컴의 면도날. ’델리바게트’가 문제다. 단순히 심증만으로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근래 들어 단골 손님으로 여겼던 몇몇이 요즘 통 들르지 않게 되었는데, 믿을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그들 중 상당수가 '델리바게트' 666호점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뻔질나게. 이래도 더 증거가 필요한가? 

  하지만 그렇다고 한탄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두 손 놓고 멍 때리다가 당할 생각도 없다. 업력 10년. 몰개성을 근간으로 하는 프랜차이즈의 공세에 당당히 맞설만한 고유의 개성과 철학과 역사가 갖춰지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깨끗하게 인정한다. 전자회사를 다닌 남자에게 장사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휴대폰만 만지던 남자에게 바게트는 만만치 않은 존재다. 단골을 빼앗긴들 대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원래 우리 가게의 힘이 그만큼 밖에 되지 않는 것을.
- 아들아, 우리 가게가 중차대한 위기를 맞았구나.
- 상황이 안 좋은가요?
- 그렇다.
- 어느 정도로 안 좋은가요?
- 추석 연휴와 토요일 개천절이 겹친 기분이다.
- 그것 참, 무서울 정도로 상큼한 일이로군요.
  반격이 필요했다. 쥐 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아니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 새끼를 무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

  두 달이 지났다.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생긴 이후로.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가게 빵 판매량의 하향세는 완연했다. 끔찍한 내용에 비해 너무 예쁜 그래프라 눈물이 났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옆집이 선수를 쳤다. 명실상부한 요즘의 대세, 인기 절정의 12인조 걸 그룹 ‘담보 대출 이자 폭탄’의 사인회를 가진 것이다. '델리바게트' 666호점에서. (그럼 저 여자애들은 싸인회를 666번 가진거야? 아니면 그냥 여기만 특별히 찾아온거야?) 빵이랑 걸그룹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멍청한 동네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선거날 투표소보다 더 북적이는 것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심한 작자들. 저런 인간들을 한 동네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내가 칠푼이 팔푼이다. 그러나 발 등에 불 떨어진 것은 내쪽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즈음 이미 나는 악순환의 소용돌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빵이 덜 팔리는만큼 덜 만들었더니 덜 만드는만큼 덜 팔리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곰보빵이 일찍 떨어진 날에는 꼭 곰보빵을 사러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단팥빵이 일찍 떨어진 날에는 꼭 단팥빵을 사러 왔다가 허탕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날 곰보빵과 단팥빵을 평소보다 많이 만들면, 어김없이 두 가지 모두 평소보다 덜 팔려서 재고가 왕창 쌓이게 되었다. 남는 건 모자라니만 못했다. 우리끼리 먹어 치우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다. 삼시 세끼 빵만 먹어도 여전히 빵은 남아 돌았다. 밤이면 밤마다 벌어진 재고 처리의 와중에 나와 아들의 체중은 각각 5킬로그램씩 늘었다. 어제 아침에 구운 빵을 오늘 아침에 버려야 하는 기분을 아는가. 방부제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하는 내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한단 것은 실로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일찍 문을 닫아야 하는데 옆집은 보통 자정까지 영업을 했다. (자정까지? 정말이다.) 그에 맞춰 경쟁하려다보니 우리도 자정까지는 불을 켜놓고 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자정에도 뭔가 빵이 남아 있어야 했고 그러다보니 폐점 때 괜히 버리는 빵이 늘어갔다. 나는 비교적 양심적인 장사꾼이어서 남은 대부분을 빵을 폐기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종종 다음날 진열분에 섞어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꽈배기나 뭐 그런 따위의 내구력이 강한 빵 말이다.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그걸 알아챈 손님이 나왔다. 십년 단골 중의 하나였다. 그는 내게 실망감을 표했다. 며칠 후 믿을만한 정보통은 그가 '델리바게트' 666호점에서 목격되었음을 전해주었다. 

  수도세 절감 차원에서 하루에 세 번하던 매장 청소를 한 번만 했더니만 일주일만에 바퀴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생겨난 바퀴벌레는 다시 하루에 세 번 매장청소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매장 곳곳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컴배트 제로'를 놓았더니 다음 날 방송국의 ‘불만 제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찾아왔다. 위생 문제에 대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로는 제로인 그들은 내가 숨겨둔 '컴배트 제로'를 싸그리 찾아내었다. 그들이 바퀴벌레를 찾아낸 것도 아닌데 ‘컴배트 제로’만으로도 똑같은 이미지 타격이 왔다.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나는 우리 가게가 원래 그런 가게는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옆집에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생기고 경쟁을 하려다보니 전기 및 수도세 아끼고 남은 빵도 아껴 팔아야 했는데 재수 없게도 그걸 알아챈 단골이 나오고……. 말을 하다보니 점점 더 내 무덤을 파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재수 없게도"라고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면초가임을 직감했다. 무릎꿇고 잘못했노라 애원했다. 제발 방송만큼은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비양심 불량 업자들이 세상 천지 널리고 널렸는데, 어쩌다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 내가 왜 ‘불만 제로’의 한 꼭지를 장식하게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통곡을 했다. 방송에는 애원하는 장면이 나가지 않았다. 눈물 콧물 찔찔 흘리는 찌질한 모습이 전국방송을 타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진행자는 "다신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신 업주님들의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짧은 논평을 남겠다.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세콤인지 캡콤인지 세스코진 쿠스코인지를 불러다가 해결책을 마련해달라 주문했다. 졸지에 해충박멸 전문가들의 관리를 받는 점포가 되면서 매월 지출해야 할 돈만 더 늘어났다.

  걸 그룹 ‘담보 대출 이자 폭탄’ 멤버들의 싸인점포(벽면에 소녀들이 마카펜으로 직접 벽면에 싸인을 했다는 거다)가 된 옆집에 대응하고자 나는 조카딸의 친구의 고향 친구의 팔촌 언니를 급히 상경시켰다. 13대 풍천 장어아가씨로 선발되었다는 열아홉 처자다. 아시다시피 남자 손님들은 알바생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예쁜 알바생은 곧 매출 급증의 비결이란 말씀. 멀리 있을 아이돌의 바래져가는 싸인을 가까이 있는 꽃미녀가 못 이길 까닭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자란 시각 의존적 동물이 아닌가. 허나 막상 서울에 도착한 그녀를 만난 나는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장어 아가씨라면 당연히 사람의 얼굴을 하고 몸매가 장어처럼 늘씬하였기에 선발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반대로 장어의 얼굴을 하고 몸매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절대 외모 비하적 발언이 아님을 밝혀둔다) 연유를 묻고자 나는 조카딸에게 전화를 넣었는데 조카딸은 다시 자기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넣었다. 조카딸의 친구는 고향 친구에게 전보를 쳤고 고향 친구는 팔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말이 어떻게 번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어 아가씨는 내가 자길 두고 "장어처럼 생겼다"라고 운운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맹세한다) 울고 불고 난리치는 그 애를 간신히 달래 케이티엑스 타고 내려가라며 10만원을 쥐어주느라 괜히 생돈만 날렸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풍천행 케이티엑스는 없잖아!)

  복안으로 아들을 카운터에 세웠다. 옆집이 남심을 흔든다면 우리는 여심을 흔들 생각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뭣하지만 우리 아들, 꽤 잘 생겼다. 동네 아줌마들이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모른다. 순간 우리 가게가 드디어 앵벌이의 영역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망설이기도 했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예상대로 아들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자 주부 손님들이 다시 우리 가게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전략이 맞아들어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일주일 후 몇몇 여성단체에서 찾아왔다. 장어 아가씨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종업원이나 희롱하는 악랄하고 파렴치한 고용주로 매도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아들도 발견했다. 카운터에 늠름하게 서있는 일곱살짜리 소년을 말이다. 동네 사람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주인 아저씨는 어디가고 어린 소년이 가게를 홀로 지키는 곳이라나 뭐라나. 아동인권단체와 합동조사를 펼치겠다며 나를 압박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눈물이 나이아가라 폭포마냥 쏟아졌다. 사장님, 사모님, 부처님, 예수님, 제발 우리 가게 텔레비젼에 또 나가지만 않게 해주십쇼.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안되는데. 정말 안되는데. 눈물이 펑펑 나왔다. 나이를 먹으니 점점 마음이 여려지는 걸까. 아님 이 황당천만한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걸까.

  이젠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길 복판으로 뛰어 나가 미친 놈처럼 춤을 추었다. 차차차, 룸바, 삼바, 자이브, 파소 도브레, 살사, 메링게, 쿰비아, 스윙, 왈츠, 퀵스텝, 탱고, 폭스트롯, 블루스, 브레이크, 테크노, 발레, 탈춤, 사자춤, 곱사춤까지 덩실덩실. 과거 나의 단골이었고 지금 '델리바게트'의 단골이 된 동네 주민들이 ‘불만 제로’와 ‘긴급출동 SOS’에 동시 출연할 뻔한 남자를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바로 그 때, 낯선 양복쟁이 남자 하나가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 옛날이 좋았죠. 동네 빵집은 기껏해야 동네 빵집이랑만 경쟁하면 되니까. ‘신라면과’ 같은 곳은 여염집에선 함부로 사 먹기엔 부담스러웠고요. 비싸서. 특별한 날에나 먹을까.
- 누구시죠?
- 저는 ‘뚜렛증후’ 창업지원팀의 박유범 (Park, You Bum) 팀장이라고 합니다. 잠깐 어디 가서 차나 한 잔 하면서 얘기 좀 하시죠.
- 싫어요. 전 프랜차이즈의 프자만 들어도 혈압 올라 죽을 것 같은 상탭니다.
- 압니다. 그래서 보자는 겁니다.

  우리는 인근의 커피전문점 ‘할례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팀장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랬다. '델리바게트'와의 경쟁이 설상가상, 접입가경, 우기부기 컴 온 베이베의 상태다. 서울 전역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서울 북동부에서 심각하게 밀린다. 어느 지역에 공세를 퍼부어야 저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지 회의를 거듭한 결과 쌍문동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적격이라는 판단이 섰다. 이 지점의 성장세가 강북 지점 전체에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고로 여기를 제압하여 기세를 꺾어놓으면 '델리바게트'의 북동부 전선에 혈이 끊기게 된다. 방법은 ‘뚜렛증후’ 587호점을 새로 내서 '델리바게트' 666호점과 맞장을 뜨는 것. 문제는 장소와 업주인데, 벽 하나를 두고 바로 붙어있는 우리 가게가 타격을 주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거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특히 그 주인인 내가 '델리바게트'라면 이를 박박 갈고 있는만큼 최선을 다해 피 터지게 싸워줄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내가 동의만 해준다면 가입비를 받지 않고 뚜렛, 뚜렛, ‘뚜렛증후’ 가족으로 받아주겠다는 얘기다. 
-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일종의 대리전인가요? (당신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가맹비 내고 싸우는?)
- 뭐, 그런 셈입니다. 강북 전체의 판세가 이 지역에 달려있대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 하지만 간판만 바꿔 단다고 뾰족한 수가 있나요. 지금 별 짓을 다해도 말림을 극복할 수가 없는데. 
  그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 그게 다 비결이 있답니다. 설마 옆집 부부가 업력 10년의 당신보다 운영을 잘해서 손님을 모은다고 생각하진 않겠죠?
-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델리바게트' 이름빨이라고.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 아닙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왜 잘 될까요?
- 잘 생겨서 잘 되는 걸까요? 운영을 잘 하는 걸까요?
- 아닙니다. 옆집 부부는 당신보다 매장 운영을 잘 하지 못해요.
- 그럼 뭐죠.
- 바로 그게 '관리'의 힘이랍니다.
  오! 오컴의 면도날!
- 당신이 우리 ‘뚜렛증후’ 가족이 된다면 우리가 가만히 손 놓고 있겠습니까? 가족이 당하는데. 이 바닥 최고의 전문가들이 토탈 솔루션으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왜 옆집 남자가 승승장구하는지 알아요? 당신은 하난데 그 남자는 수십 수백의 전문가들을 등에 업고 있었던 겁니다. 그 차이에요. 우리 지원하에 옆집이랑 다시 붙으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겁니다.
- 그럼 실제적으로 제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는 거죠?
- 글쎄요. 그냥 편안하게 관리 당하시면 됩니다.
  편안하게!

*


  애엄마에게 약속했던 것이 두 가지 있다. 좋은 아빠가 되겠다. 우리 빵집을 지켜내겠다. 그동안 비교적 꽤 잘해오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칫 나머지 하나도 어기게 될까봐 두렵다.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한 가지 약속을 어긴 셈인데, 절대 그런 일이 벌어져서야 안될 것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나는 ‘뚜렛증후’의 가족이 되었다. ‘뚜렛증후’ 587호점의 지점장이다. 매출은 (거짓말처럼) 예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델리바게트' 666호점이 예전 기준 나머지 20%만큼의 빵을 더 팔고 있진 않을테니 사실상 이 동네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더 많은 빵을 먹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너무 신기한 일이라 이유를 분석해봐야겠으나 사실 귀찮다. 문득 지금의 백중세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불만 제로’와 ‘긴급출동 SOS’로 텔레비젼에 두 번이나 나올 뻔한 남자가 운영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뚜렛증후’의 간판이 걸려있으니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 그런거지, 뭐. 어느새 화와 짜증이 줄어들고 잠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다시 머리숱이 늘어나고 주름살과 흰머리가 줄어들었다. 본사에서는 내게 직접 카운터를 보지 말기를 권했다. 대신 최저 임금으로 알바생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동네 최고 인물로 소문이 자자한 신상중학교 2학년 영이를 포섭하는데 성공했다. 옆집 알바생과 격이 다른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카운터를 보니 남성 손님들이 슬슬 우리 가게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본사에서는 내게 전면에 나서지 말고 푸근하고 관대한 매니져의 이미지를 유지하며 '관리'만 하기를 요구했다. 안경도 하나 보내주었다. 요즘 화제인 '조인성 안경'과 같은 모델이라고 했다. 한결 인상이 부드러워보인다고 알바생 영이가 말해주었다. 아들도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한편, 12인조 걸 그룹 ‘담보 대출 이자 폭탄’은 '델리바게트'와의 텔레비젼 광고 계약이 끝나자  ‘뚜렛증후’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엄연히 경쟁 관계에 있는 브랜드임에도 말이다. 거 참, 상도덕도 없는 지지배들. 하기야 그건 그 아이들이 먹어야할 욕이 아니다. 그 아이들을 '관리'하는 어른들이 먹어야 할 욕이지. 새로운 텔레비젼 광고가 전파를 타자 사람들은 쉽게 예전 광고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참 단순한 세상이다.

  옆집 '델리바게트' 666호점의 점장 부부와는 요즘도 적절한 친교 및 정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가족은 우리만 보면 살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 안에 월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거나 정말 호감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보고 웃는 걸로 보아서는 그 집이 우리 때문에 장사가 안되지는 않는 것 같다. 갑자기 빵을 더 먹기 시작한 이 동네 사람들 덕분이다. 이유를 분석해보긴 귀찮다. 편안하게 관리나 당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모든 일이 느리지만 분명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매월 주어지는 운영비 상납과 판매 할당량, 가끔씩 찾아오는 인테리어 요구만 없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일곱살 아들은 알바생 영이에게 푹 빠졌다. 여덟살이나 어린 자기를 남자로 생각해줄지 모르겠다며 끙끙 앓고 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아줘야 한다고 난리다.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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