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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200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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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정교한 작품이다. 언뜻 균형이 맞지않아 보이는 첫인상과는 딴판이다. 이 작품은 크게 세 단계의 사건 진행과 엇갈리게 삽입된 '플러스 원'의 보조 이야기로 구분된다. 첫째는 준비의 부분이다. 두 여대생이 짐을 챙기고 돈을 꾸고 호텔방을 예약하여 낙태 시술업자와 접촉하는 모든 과정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협상의 부분이다. 업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부터 시술이 끝나고 업자가 퇴장하기까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셋째는 수습 및 처리의 부분이다. 예상과 달리 불과 몇 시간만에 ‘빠져나온’ 아기를 처리하려 동분서주하는 결말부의 장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새삼스럽게도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이 감히 웃지못할 아수라판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낙태 당사자 가비타(로라 바실리우)가 아닌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라는 점이다. 단순히 관찰자라는 뜻이라기엔 그녀가 떠안은 짐이 너무 크다.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가비타를 대신하여 준비, 협상, 수습의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혹은 개입할 수 밖에 없는) 그녀야말로 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이라해야 옳을 것이다. 때문에 두번째 파트와 세번째 파트의 사이에 삽입된 (실질적으로 전개의 맥락를 이탈한) '플러스 원'에서 오틸리아가 남자친구네 가족과 대면하는 작품의 외연을 ‘그녀들의 운수 나쁜 날’에서 ‘당대 루마니아의 처참한 공기’속으로 확장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방금 애를 지운 친구가 걱정되어 안절부절 못하는 오틸리아를 사이에 두고 의대생 남자친구 아디의 부모님과 친지들이 벌이는 식탁의 대화 속에는 만만찮은 하루를 보낸 그녀를 구원할 손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은 0.25점의 부가 점수로 환산되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옳고 그름의 정답이 정해져 있으며, 그녀들은 어쩔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인간이다. 끝끝내 오틸리아는 구토를 하고야 만다.

  이렇듯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은 작품 안에서 실체로가 아니라 도시의 곳곳에 배인 차갑고 탁한 공기로 존재한다. 인구증가를 위해 임신 중절을 금지한다는 독재자의 '계획 경제'는 도리어 그 틈바구니에 추악한 욕망만을 기생케할 뿐 이미 존재하여 살아 숨쉬는 인간 존재들을 보호하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그녀들은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도록 내몰린다. 가비타는 단 한번도 절반의 책임을 지닌 남자의 도움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틸리아는 어째서 가비타의 연대를 위해 그렇게 큰 희생을 지불하는가? 이 질문의 답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요 13초간 오틸리아의 뒷모습을 소리없이 비추는 욕실 장면과의 접점이 아닐까 한다. 숨조차 자유롭게 마시고 뱉기 어려운 견고한 현실을 섬세하게 내파하는 오틸리아의 다짐 - "우리 앞으로 오늘 일은 다시 이야기하지 말자." 그러나 지치고 허기진 그들 앞에 잔혹한 세상은 내장 요리와 간 요리를 가져다준다.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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