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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La Fleur du mal, 200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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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로드 샤브롤의 요리를 맛나게 음미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종이와 연필을 준비해 쓱싹쓱싹, 가족 인물간의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의 인물들은 겉으로는 한없이 평화롭고 안락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심각하게 어그러져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적 관계를 실선으로, 심리적 긴장을 점선으로 각각 표시하여 가족 관계도를 완성하면 아뿔싸,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함을 깨달을 수가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샤브롤판 중산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해체 직전의 고요함. 이번에도 그가 사랑하는 모든 제반 요소들이 기꺼이 한 자리에 모여 보글보글 끓어 오른다. 

  무대는 삼대가 모여사는 재혼 가정이다. 시의원에 출마하는 아내 (나탈리 베이)는 나치에 협력했던 가문의 어두운 비밀을 폭로하는 익명의 전단을 받고 남편 (브누아 마지멜)은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내에게 컴플렉스를 느낀다. 한편 남편의 아들 (베르나르 르코크)과 아내의 딸 (멜라니 두티) - 의붓 남매는 은밀한 사랑에 빠진다. 이모 할머니 (수잔 플롱)는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과한다. 아이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두근거리고 남편은 다른 유전자의 딸에게 흑심을 품는다. 웃어서는 아니되겠으나 스물스물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러니까, 코미디다. 비극의 징후는 끈적하고 흉물스럽게 뒤섞여 평화로운 일상을 잠식한다. 이론은 상상 이상으로 간명해 보인다. 첫째, 나쁜 피는 유전된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둘째, 원죄는 세대적 반복을 피하지 못한다(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셋째, 죄의식의 해소 또한 세대적 반복을 경험한다(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는데>와 <그럴지도 모르는데>이 만나 이루는 창백한 욕망의 전시회에 이들이 대처하고 반응하며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샤브롤 특유의 태도는 무표정하나 격렬하다. 마치 이 모든 소란과 난리법석이 단순한 우연의 연쇄가 아닌, 어쩔 도리가 없는 '계급적 속성'에서 스며나온 결과물이라고 속삭이는듯 하다.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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