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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데이 <21st Century Breakdown>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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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들어 익숙한 밴드의 경우 고정된 기대치가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이 친구들의 영역이고 한계로구나, 하는 것을 대강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곡보다는 구곡이 좋고 신보를 들으면 대개는 만족하지만 안 들어도 간절히 아쉽지는 않은 그런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 '그린 데이'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에 데뷔했으니 이미 뭐 속속들이 충분히 피차 알건 다 아는 사이고, 어차피 펑크는 펑크요 그린데이는 그린데이였다. 심지어 놀자판 음악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왔던 그들이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04년 발표한 7집 'American Idiot'. 그냥 저냥 듣고 넘기던 그들이 어느 샌가, 이제 모두 용사되어 오! 돌아온 것이다. 장대한 록 오페라 'American Idiot'의 뜨거운 무대를 딛고 선 남자들은 예전의 그 철부지 악동이 아니었다. 혹시 얘네들이 우리 시대의 'Queen'이 아닐까 싶은 아닌 밤 중에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U2'와 나란히 무대에 올라도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은 이상한 순간이 찾아왔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이 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시의 삽질이 이들의 각성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자고로 고담시이기에 배트맨도 탄생하는 법.

  일단 전작과 이번 작품 '21st Century Breakdown'을 통해 그들은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는 밴드임을 증명했다. 분명 의미있는 성과다. 황량한 현대사회를 한 편의 서사시로 빚어내겠다는 야심, 결과를 떠나 그런 패기만만함이 참 마음에 든다. 미국사회의 부패를 노래했던 전작과 연결되는 다음 무대로 더없이 적절한 작업이다. 이야기는 크리스챤과 글로리아라는 젊은 연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3막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각각의 막이 분노-환멸-허무의 싸이클로 구성되는데, 일단 전 곡의 작사를 맡아 지휘한 리드 보컬 빌리 조 암스트롱의 눈부신 재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다음 상찬은 그 탁월한 연출을 가능케 한 밀도 있고 재기 넘치는 사운드의 힘에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확실히 연출력이 좋다. 열정적인 폭주 뿐만이 아니라 이젠 힘의 배분까지도 자연스럽다. 전작에서의 성과가 당시에 혹시, 잠깐, 어쩌다 미쳤었던 건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급기야 69분의 숨가쁜 질주가 끝나고나면 긴장이 탁 풀리고 온 몸에 힘이 쫙 빠질 지경. 과연 듣는 것만으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로써 그들은 한 때의 악동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보다 단단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대표 앨범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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