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리시 이야기 (Lisey's Story, Apple TV+,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11. 2.

본문

  ‘리시 이야기’의 영화 혹은 TV 어댑테이션은 많은 사람들이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진짜로!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여전히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 같다. 더 믿어지지 않는 점이 있다. 그 분이 텔레플레이를 직접 쓰셨다. '다크 타워'의 영화 어댑테이션 같은 끔찍한 사태는 없을 거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더 믿어지지 않는 일이 있다. (드럼 롤, 플리즈!) 줄리안 무어가 리시 랭던역을 맡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바라오던 드림 캐스팅이 정말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연기하는 리시가 정말 멋지고 완벽할 거라는 예상마저 보기 좋게 들어 맞았다. 원작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대로다. 언제나 그렇지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같은 순간에 표현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고 리시의 기억과 추리에 의존하는 이 이야기의 까다로운 특성을 감안할 때 이 캐스팅으로 거의 절반은 완성된 셈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라 생각한다. 물론 그 밖에도 좋은 점이 많다. 우선 다리우스 콘지가 촬영감독이다. 다리우스 콘지가 ‘부야문’을 담아낸다면 매혹적이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스콧 랭던을 연기한 클라이브 오웬도 멋지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베이비러브’라고 속삭일 때마다 그 소름끼치는 섹시함에 할 말을 잃을 정도다. (리시의 언니) 아만다 역할을 맡은 조앤 앨런은 (리시의 여동생) 달라 역할을 맡은 제니퍼 제이슨 리의 이름값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데인 드한이 연기한 사이코패스 짐 둘리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섭다.


  물론 기다림이 길었던만큼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먼저 원작의 길이와 여덟 편 분량의 미니시리즈라는 형식 사이의 궁합이 약간 아리송하다. 약간 짧은 것 같으면서도 약간 긴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이다. 한편 스콧의 유년기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점도 활자에서 브라운관으로의 이식에는 맞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원래 각색이 까다롭다는 평가받던 작품 중 하나이니 아무래도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스티비 삼촌이 그렇게 하셨으면 응당 그렇게 하여야 맞는 것이리라.) 애플 TV 플러스가 스티븐 킹의 대본과 J. J. 에이브람스의 제작에 적극 투자를 하였던 상황에 비하면 여덟 편 전체의 연출을 맡은 파블로 라라인의 무게감도 의문을 남긴다. 이 칠레 출신의 감독이 좋은 평가를 받은 장편 영화들을 내어 놓았지만 네임드 영화 감독들이 TV 시리즈물로 돌아와 연출을 했던 사례들에 비할만한 화제성과 파괴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영어권으로 한정하면 영화가 이제 한 편 (조만간 두 편)이고 이번이 첫 영어권 TV 시리즈 연출 데뷔이다. J. J. 에이브람스의 나쁜 로봇 사단이 워낙에 여러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손대면서 말아먹은 프로젝트도 은근히 많다보니, 그럼에도 파블로 라라인이 그나마 선방을 한 것인지 아니면 스타 감독 혹은 감독들로 배치했으면 이 이상의 결과도 가능했을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본래 ‘리시 이야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 사이의 내밀한 공유에 있다. 함께한 경험은 추억의 형태로 각자의 경험은 동화의 형태로 융화되며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고 새로운 법칙을 만들며 심지어 새로운 언어까지 빚어낸다. (그래서 모든 사랑에 빠진 이들은 작가나 다름 없는지도 모르겠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새로운 세계는 그들만의 소중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마치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남들이 개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오컬트 작가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 강력한 공유의 힘은 삶과 죽음으로 갈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그들은 함께 하지 못함에도 함께하는 방식으로 위기와 고난에 대처해 나간다. 마지막으로 확인하였던 내용이 맞다면 옛날에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라고 불렀다.

 

(2021년 11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