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골리앗 (Goliath, Amazon Prime, 2016~2021)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11. 24.

본문

  데이비드 E. 켈리가 법정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반세기가 넘는 텔레비젼 법정 드라마 시대의 영광과 쇠락의 마지막 증인으로 그는 ‘해리스 로(NBC, 2011~2012)’의 불운한 종영 이후 한동안 새로운 작품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값이나 그간 쌓아올린 에미상 트로피 수를 감안하면 그가 제작하려던 작품들 중 엎어지는 케이스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대적인 추세를 감안하면 그가 다시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TV 시리즈를 만들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게 보였다. 실제로 그는 이제 리안 모리아티의 '빅 리틀 라이즈 (HBO, 2017~2019)’와 C.J. 박스의 ‘빅 스카이 (ABC, 2019~현재),’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Audience, 2017~2019),’ 그리고 또 리안 모리아티의 ‘나인 퍼펙트 스트레인져스 (Hulu, 2020~현재)’ 등 성공한 크라임 스릴러 베스트셀러의 어댑테이션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대부분을 성공시키며 화려하게 재기하는 중이다. 어쩐지 그의 본령과는 조금 멀어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와중에 등장한 ‘골리앗(아마존 프라임, 2016~2021)’의 네 시즌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마지막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 사이 이행기를 상징하고 있는 느낌이다. 원래 그의 스타일에 가까운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거대 로펌 ‘쿠퍼맨 앤 맥브라이드’의 기명 이사였다가 (거의) 바닥까지 추락한 알코올 중독 변호사 빌리 맥브라이드가 외로운 늑대처럼 거대한 악의 제국에 차례차례 맞선다는 스토리.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데이비드 E. 켈리의 주제다. 켈리의 인물들은 언제나 골리앗에게 덤벼드는 일종의 다윗이었다. (바비 도넬, 유진 영, 엘레노어 프루트, 지미 밸루티, 앨런 쇼어,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데니 크레인,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앨리 맥빌,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존 케이지, 그리고 해리엇 콘.) 또한 캐릭터를 서사보다 우선시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면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리하게 밀고 나간다. 과연 이 철저한 앙상블 중심의 시대에 빌리 맥브라이드는 낯설 정도로 독보적인 원톱 공격수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우리 모두 기억하다시피 마지막으로 그랬던 때는 제임스 스페이더와 키퍼 서덜랜드와 휴 로리와 마이클 C. 홀이 에미 남우주연상을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거의) 바닥까지 추락한 주인공이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다양한 인물들을 모아 자신만의 사단을 만들어 통쾌한 역전극을 이뤄낸다는 설정 역시 여러 차례 반복했던 것이다. 주제 면으로는  리갈 저스티스와 도덕, 그리고 양심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그대로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고 빠지는 날렵하고 위트있는 대사는 생생하다. 가장 무거운 순간에도 약간의 유머감각을 남겨놓는 성향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미세하게 달라진 부분도 있다. 일단 코미디의 기운을 덜어내고 크라임 스릴러의 색을 대대적으로 입힌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불가피하게) 에피소드 단위가 아닌 온전한 시즌 단위 이야기 구성을 취한다. 드물게 동부(대개는 보스턴)를 떠나 서부로 무대를 옮겼고 주인공 빌리는 흡사 웨스턴 와일드 건맨처럼 보인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의는 마지막에 거드는 수준이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아니나 다를까 스릴러에 가깝다. (요즘 아론 소킨이 TV 시리즈에서는 그러하듯) 첫 시즌만 직접 뛰고 이후에는 총괄 제작자로만 남는 모습도 실은 낯설다. 스타 크리에이터/제작자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상당수의 텔레플레이를 직접 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공동 크리에이터인 그와 조나단 샤피로가 한 발 물러나며 발생하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나비 효과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나타난다.

  그렇지만 빌리 맥브라이드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그 역을 맡은 빌리 밥 손튼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더불어 빌리의 네메시스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한데, 시즌 1의 윌리엄 허트, 시즌 2의 마크 듀플라스, 시즌 3의 데니스 퀘이드, 시즌 4의 J.K. 시몬스로 이어지는 화려한 악역 라인업 역시 근래 찾아보기 힘든 무게감이다. 패티 솔리스-패퍼지안(니나 아리안다), 브리트니 골드(타니아 레이몬드)를 비롯한 조연 캐릭터들이 빌리와 이루는 궁합도 훌륭하다. 캐릭터 구성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만큼 애써 만들어놓은 팀 구성을 그저 단 네 시즌으로 마치게 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예전의 데이비드 E. 켈리라면 빌리 맥브라이드 사단을 다른 작품에서 다시 등장시키기도 할텐데, 이미 원작 베스트셀러가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돌리는 요즘의 그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21년 11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