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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지 트라이베카 (Angie Tribeca, TBS, 2016-2018)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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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카렐과 아내 낸시 카렐이 제작한 ‘앤지 트라이베카(TBS, 2016 - 2018)’의 파일럿 에피소드가 처음 방영되었을 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위험 신호를 감지했을 듯하다. 수사극의 패러디라는 백 년 묵은 아이디어에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기에 백 년 묵은 코미디 스타일을 그대로 조합하는 것이 콜라에 멘토스를 넣고 여기에 다시 콜라를 들이붓는 효과를 내지 않나 하는 이유에서이다. 근본적으로 슬랩스틱의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2010년대 등장한 어떤 하프-아워 시트콤도 이 정도로 슬랩스틱에 진지하지 않다) 말장난에서부터 분장/소품 기그까지 말 그대로 온갖 코미디 방식을 두서없이 쏟아부은 점 역시 당황스럽다. 이를테면 LAPD의 트라이베카 형사(라시다 존스)가 누드 모델로 변장하여 (물론 이것이 변장의 정의에 맞는지는 차치하기로 하자) 용의자의 미술 수업에 잠입하는 것은 납득은 가지 않아도 있을 수 있는 전개다. 하지만 뒤이어 도망치는 용의자를 추격하던 파트너 가일즈 형사(헤일스 맥아서)가 안마대를 발견하면서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기계체조를 시작하는 장면은 맥락을 떠나 그 결이 조금 다르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이 의도한 모델이 ‘더 네이키드 건(데이비드 주커 외, 1988)’의 프랭크 드레빈인지, ‘디 아더 가이즈(아담 맥케이, 2011)’ 앨런과 테리인지, ‘핑크 팬더’인지, ‘미스터 빈’인지, 아니면 웨이언스 형제들의 논스톱 패러디 마라톤인지 방향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시트콤 거물 마이클 슈어가 비슷한 시기에 뉴욕 형사들 중심의 코미디를 그려낸 ‘브루클린 나인-나인(FOX/NBC, 2013-현재)’가 이미 방영되고 있었다. 비록 서브장르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역시 경찰서를 무대로 한 수사관들 중심의 시트콤 블록버스터가 준수한 코미디와 훌륭한 앙상블로 이미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순항하고 있으니 비교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BOOM! 시간이 지나고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활로를 찾아 나가며 고유의 색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서히 컬트의 지위에 가까워지며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BOOM! 시즌 4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설정을 크게 틀면서 (註1) 자기들 스스로 말아먹고 캔슬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또한 이 작품 스타일 코미디이기도 하다.) 


  잠시나마 상승 무드를 탈 수 있었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슬랩스틱의 비율을 줄이고 고유의 배합비를 찾은 점이 주효했다. 조금 별로인 설정과 의외로 괜찮은 설정이 뒤섞여 있었는데 이야기가 쌓이면서 패턴이 만들어지고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특히 시즌 1의 클리프행어에 이어 시즌 2부터 트라이베카의 순직한 옛 연인인 페퍼 상사(제임스 프랑코)의 미스테리를 시즌 단위 플롯에 간헐적으로 엮어내는 방식으로 연계성을 확보하는데도 성공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건을 어지간하면 언더 커버로 해결하는 이 팀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일 처리 방식이 패러디 장르와 시너지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로써 'JAG (NBC/CBS, 1995 - 2005),' 'CSI (CBS, 2000 - 2015),' 'CSI 마이애미 (CBS, 2002 - 2012),' 'NCIS (CBS, 2003 - 현재),' '캐슬 (ABC, 2009 -2016),' '본즈 (FOX, 2005 - 2017)' 등의 금세기 TV 수사극과 '하와이-파이브-오 (CBS, 1968 - 1980),' '스타스키와 허치 (ABC, 1975 - 1979),' '마이애미 바이스 (NBC, 1984 - 1990)' 등 20세기의 상징적인 TV 수사극, 그리고 '리썰 웨폰(리처드 도너, 1987),' '에어플레인! (데이비드 주커 외, 1980),' '다이 하드 (존 맥티어넌, 1988),' '비버리 힐즈 캅 (다니엘 패트리 주니어, 1984),' 심지어 '양들의 침묵(조너선 드미, 1991)' '터미네이터(제임스 카메론, 1984)'까지 전방위적인 패러디가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옴니버스 TV쇼의 오래된 전통을 되살려 에피소드마다 게스트 스타를 출연시키는 방법도 그 중량감으로 인하여 강력한 반전 카드가 되었다. 빌 머레이, 캐롤 버넷, 존 햄, 나탈리 포트만, 아담 스콧, 노아 와일리, 리사 쿠드로, 사라 챌크, 키건 마이클-키, 에드 헬름즈, 리지 캐플란, 아나 오티즈, 로즈 번, 캐서린 한, 마야 루돌프, 미셸 도커리, 콘스탄스 짐머, 대니 푸디 등의 릴레이 깜짝 출연은 시청을 멈출 수가 없게끔 만들었다. 더구나 제임스 프랑코, 헤더 그레이엄, 태런 킬럼, 그리고 크리스 파인은 트라이베카 형사의 숙적 역할로 시즌/시리즈에 걸쳐 여러 차례 등장하기까지 한다. 


  물론 이 쇼가 네 시즌이나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당연히 타이틀 롤을 맡은 라시다 존스에게 있을 것이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린 ‘파크 앤 레크리에이션 (NBC, 2009-2015)’에서도 드러났듯 그녀는 부드럽지 않아 보이는 코미디도 부드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워낙에 코미디언 출신 배우들로 채워졌던 공원관리부에서는 부득이한 상황이었는지 몰라도 그 능력이 이렇게 본인이 리드하는 상황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특히 헤일스 맥아서와 바비 카나바일의 거칠고 투박한 피지컬 코미디와 제어 번즈의 샤프한 캐릭터 코미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균형을 잡아낸 역할은 초창기 삐걱거리던 쇼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던 결정적 비결이기도 했다.    

 

(2020년 02월)

 

(註1) 무대를 20년 뒤로 옮겼고 LAPD가 아닌 특수유닛으로 바꾸어 밴을 타고 전국을 돌며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트라이베카 형사의 파트너 가일즈 형사 역할의 헤일스 맥아서가 하차했고 대신 두 사람의 23세 아들(?) 역할로 바비 카나바일이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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