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바비 (Barbie, 202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4. 4. 11.

본문

  라이언 고슬링의 말이 다 맞다. 그레타 거윅은 제 96회 아카데미 어워즈 ‘베스트 디렉터’에 노미네이션을 받아야 했다 (다만 위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마고 로비도 마땅히 노미네이션을 받아야 했다 (역시 위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쉽지만 대진운이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고슬링 본인은 노미네이션을 받으면 안되었다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훨씬 나은 후보들이 있다. 최소 열 명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화제작 ‘바비’에 대한 이야기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작품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그것이 과연 훌륭한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다. 의문 부호를 남게 하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작품을 한 단계 끌어올릴만한 정교함이나 대단한 깊이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토이 스토리 (존 래시터, 1995)’와 마가렛 애트우드의 우아한 하이브리드를 기대했지만 결과물은 테미스키라 (Themyscira)를 무대로 하는 ‘금발이 너무해 (로버트 루케틱, 2001)’‘허슬러 (로렌 스카파리아, 2019)’의 만남이다 (註1). 만약 다른 소재의 영화라면 당장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반응부터 나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만큼 문제의식과 대안도 함께 진화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만하다. 만약 지금이 1983년이라면 ‘바비’는 당장 혁명적 컬트의 반열에 올라야 할 작품일 것이다. 만약 지금이 2003년이라면 ‘바비’는 꽤 영리한 풍자극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2023년이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충분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이 변화해 나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반 이후 치명적인 궤도 이탈, 즉 남성과 여성을 반으로 나누어 '제로섬 게임'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은 이 작품의 장점마저 퇴색시키는 아쉬운 선택이다 (젠더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용어만 무려 64개에 이르고 심지어 계속 늘어나는 중이라는 이 시대에?) 나쁘게 말하면 이는 당장 관객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소재의 힘을 과신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대에 맞는 메세지를 담아야 한다면 응당 그 사이 변화한 시대를 반영한 조금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2024년 04월)

 

(註1) 테미스키라 (Themyscira)는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원더우먼의 고향 섬나라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국가이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