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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일 (Argylle, 2024)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4.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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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고백할 이야기가 있다. 그간 매튜 본의 트위스티드 마인드 혹은 ‘킹스맨 (매튜 본, 2014; 2017; 2021)’ 시리즈에 하도 진절머리가 난 탓에 그의 신작 ‘아가일’에 대한 기대치는 거의 바닥에 근접한 상태였다. 이 새로운 스파이 액션물에서도 만화적 설정과 만화적 연출이 반복될 것은 자명해 보였고,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닌데) 그러한 과정에서 어김없이 논리적 위기를 자초하다가 결국 무논리로 탈출하는 루틴은 고치지 못할 것 같았다. 가장 뜨거운 팝스타 두아 리파를 전면에 내세우고 액션을 가득 장착한 화려한 트레일러 역시 의심을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파이 소설 속 사건이 현실에서 똑같이 일어나면서 작가가 위험에 빠지는 설정이 그나마 아주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정도.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초반부는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는데 설정상 소설과 현실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고약하게 폭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캐스팅 자체도 효과적으로 기능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일단 픽션 속 스파이가 헨리 카빌인데 현실 속 스파이가 샘 록웰이라는 상황은 정말 마음에 든다. 일찍이 ‘컨페션스 오브 데이저러스 마인드 (조지 클루니, 2002)’에서 보여주었듯 이런 상황에서 록웰은 존재 자체로 블랙코미디를 완성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또한 겁 많은 스파이 소설 작가 엘리 콘웨이를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연기하는 부분 역시 더없이 적절하다. 스파이 세계와 거의 백만 광년은 넉넉히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순한 이미지의 외모도 외모이지만, 이미 ‘쥬라기 월드 (콜린 트레보로우, 2015; J. A. 바노아, 2018; 콜린 트레보로우, 2022)’ 트릴로지 등 여러 작품에서 드러났듯이 그녀의 겁먹은 표정과 실존적 비명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따라서 하워드는 의도치 않게 스파이 세계에 휘말려 들어간 (실제로는 스파이 세계와 전혀 상관이 없는) 문필업 종사자의 당혹스러움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이고, 록웰이 그런 그녀를 (보호 명목으로) 납치하여 다음 챕터를 쓰도록 종용하는 난데없는 ‘미저리’적 순간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준다. ‘킹스맨’의 속편들이 어느 지점에서 실패하였는지를 복기하자면 이런 스타트는 상당히 괜찮은 것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 꽤 괜찮은 스타트를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전개다. 무엇보다 트위스트가 너무 잦다. 다 필요한지도 사실 모르겠고 지나치게 뒤집기를 거듭하다 보니 동력은 떨어지고 내용만 점점 더 엉성해진다. 제작비를 무려 2억 달러를 털어 넣었다는데 거의 심정적으로는 텔레노벨라에 가까운 순간이 있다. 그 결과 초기 설정의 장점과 성공적 캐스팅이 지난 에너지마저 망가뜨린다. 그리고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다. 전작들의 불꽃놀이, 나노젤, 에이전트 위스키, 냉각 스프레이에 필적하는 뒷목 잡는 일도 벌어진다. 매번 용의 머리를 그리기 시작해서 뱀의 꼬리로 끝나는 것도 신통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는 사실 조금 어렵다. 이 작품의 참담한 박스오피스 플롭은 매튜 본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트위스티드 마인드를 이제는 조금 건설적인 방법으로 조합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202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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