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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Angel, 200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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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젤'은 감독의 전작 '스위밍 풀(프랑소와 오종, 2003)'의 시대극 버전 짝패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1957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만큼 오종의 작품치고는 지나치게 얌전한 편이 되겠지만, 원작의 어느 부분에 매료되어 그가 영화화를 결심했는지는 대강 짐작이 가능하다. 다름 아닌 '창작이란 욕망의 함수'라는 점이다.

  '스위밍 풀'에서 여류 소설가 사라(샬롯 램플링)는 줄리(루디빈 새그니어)를 관찰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을 (혹은 자신의 내면을) 관찰당하고 또한 줄리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해소한다. 가령 사라가 창을 통해 줄리의 정사장면을 훔쳐보다가 눈이 마주치는 장면은 사라가 줄리를 훔쳐보듯 줄리 또한 사라가 지켜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와 소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기저를 드러내는 작업은 시대극인 '엔젤'에 이르러 가난한 소녀의 꿈꾸기로 변주된다. 식료품집 딸로 태어난 엔젤(로몰라 가레이)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상류사회에 진입하고 싶어하고 그 방법으로 상상 속의 화려한 삶을 소설로 옮겨낸다. 그리고 이 통속연애물의 히트를 통해 스스로 화려한 삶을 손에 넣게 된다.

  엔젤은 자신의 천재성을 못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부정하고, 타인의 취향과 타인의 비평을 부정하고, 가난한 출신을 부정한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자기애라기 보다는 강한 방어기제다. 실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결핍 투성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마저도 소설처럼 꾸며냄으로써 컴플렉스를 벗어나고자 한다. 즉, 그녀의 소설은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왔지만 그녀는 그것이 화려한 저택의 가장 내밀한 방에 틀어박혀 만들어 낸 것임을 들키고 싶지 않아한다. 그 결과 어디까지가 식료품집 딸 엔젤의 진짜 인생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녀의 소설 속 이야기인지가 어느 순간 허물어진다. 이를 통해 오종은 다시 한번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결핍의 경계를 치밀하고 유려하게 조망한다. 그리고 뜻밖에 우아하기까지하다. '사랑의 추억(프랑소와 오종, 2000)'을 기점으로 그의 악동 기질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에 그는 꽤나 진지해졌고 훨씬 깊어졌다. 예전처럼 앞으로 나서 적극적으로 도발하는 대신에 두터운 커튼 뒤에 숨어 조용하고도 은밀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놀랍고 또 신기한 변화다.

(200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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