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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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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놀라진 않았다. 단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다. '9.11 테러' 이후 재난영화는 한결같이 '아래로부터의 공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로부터의 공포'가 더 이상 미덥지 못해서다. 백주 대낮에 제국의 심장부가 습격당했고, 상징이 붕괴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봤으며, 시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른 채 공포에 떨었다. 이것이 바로 그게 바로 오늘의 미국에 (그리고 국제 현실에)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고 그들 스스로를 예민하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 과거 '안보 장사'로 한 시절 잘 벌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인디팬던스 데이 (롤랜드 에머리히, 1996)''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 2004)'처럼 위협의 실체는 무엇이고 무엇인데 조만간 참고 기다리면 국가와 영웅들이 우릴 구원해 줄테니 걱정말라는 이야기는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너와 나, 혹은 우리의 피부에 거칠게 밀착하는 고통만이 진짜다. 경찰도, 군인도, 국가도, 그 밖의 어떤 시스템도 구원자의 역할을 해 줄수는 없다. 과학도, 논리도, 언론도, 소문도, 그 어떤 설명도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다.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공포의 실체가 괴수든 외계인이든 상관 없는 이유다. 


  가장 먼저 그 두려움의 기저를 정확히 파악해낸 것은 역시 영리한 리메이크작 '우주전쟁(스티븐 스필버그, 2004)'이었다. 그에 앞서서 (우연히 소 뒷걸음질 치다가 맞아 떨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조엘 슈마허, 2002)'도 비슷한 기작으로 핵심을 파고 들었다. 최근 스티븐 킹의 단편을 영화화한 '미스트(프랭크 다라본트, 2007)' 역시 안개 속에 공포의 실체를 은닉하는 기가 막힌 장치를 통해 이 범주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J. J. 에이브람스와 매트 리브스는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더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 (다니엘 미릭 & 에두아르도 산체스, 1999)'의 기법으로 유튜브 세대의 코드에 맞는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것 뿐이다. 말하자면 발빠르게 실행에 옮긴 아이디어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유튜브 시대의 재난영화'라는 표현은 배급사도 써먹고 너도 나도 써먹어서 식상하지만 식상해도 어쩔 수 없는 타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일례로 롭과 허드 일행이 보이는 디지털 캠코더를 향한 과도한 집념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목숨이 간당간당한데도 캠코더는 꼭 쥐고 뛴다. 고로, 절로 익스트림 핸드헬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제일 먼저 캠코더 따윈 던져버렸을 것이다.) 한국영화 '괴물(봉준호, 2006)'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괴물을 만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그것을 찍는 일이다. 심지어 괴물이 자기에게 달려드는 순간조차도. 순간,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현실에선 영화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영화는 다시 그 현실을 반영한다. '클로버필드'의 진짜 매력은 바로 그런 아이러니로 완성된다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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