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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주의와 금메달 우선집계에 관하여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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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에서 국가별 메달집계를 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선 원칙적으로 공식적인 '국가별 종합메달순위'란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떤 나라들은 우리처럼 금-은-동 순으로 정렬을 시키고, 다른 어떤 나라들은 미국 언론들처럼 메달의 총합계 순으로 정렬을 시키는 차이가 발생한다. 흔히 전자는 '금메달 우선집계,'. 후자는 '메달 총합계'라고 표현한다. 

  두 방법에는 엄연히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니 둘 중에 어느 쪽이 옳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한번쯤은 현재의 '금메달 우선집계'에서 '메달 총합계'로 시선을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총합계 방법이 금-은-동 사이의 엄연한 질량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한 한 끝 차이로 배제되는 4등의 피와 땀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 지적에는 선수 개인과 선수단이 대표하는 국가의 차이가 간과되고 있다. '매달 총합계'는 선수 개개인의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선수 개개인이 손해 볼 것도 없다. 선수 개개인의 영광은 국가별 메달집계 방식과 무관하다. 

  국가별 메달집계는 올림픽 폐막때까지는 사실상 임시적 중간 기록에 불과하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선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은 한 마디로 비공식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메달집계방송이라는 것을 내보내고 그 차이를 강조한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 그리고 은메달과 동메달의 차이, 동메달과 순위권 밖의 차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데 과연 금메달 하나는 은메달 하나보다 압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요컨대 압도라는 표현은 은메달이 무려 열개여도 금메달 하나와는 못 바꾼다는 교환 관념을 말한다. 동메달이 무려 백개여도 금메달 하나와는 못바꾼다는 교환 관념을 말한다. 가령 우리는 흔히 아틀란타 이후로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고전하고있다는 표현을 많이들 한다. 베이징 올림픽 중계방송 내내 텔레비전에 의해 반복 주입된 정보 역시 종합 10위를 차지한 아틀란타 이후로 하락세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흥미로운 것은 우리 선수들은 내내 꾸준히 많은 메달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서울 올림픽이 안방에서 벌였던 잔치였던 것을 감안하자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한국의 선수단은 놀라운 성장으로 총계 30개에 수준의 메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아틀란타에서는 바르셀로나보다 고작 메달을 두 개 덜 얻었을 뿐이고 시드니에서는 오히려 아틀란타에서보다 메달은 한 개 더 얻었다. 이런 셈법에 따르면 아테네 선수단의 성적이 서울 올림픽 이후 가장 좋은 것이 된다. 그럼에도 ‘아틀란타 이후 부진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선수단은 부진을 떨치겠다는 듯 이번만큼은 올림픽 종합 순위 10위를 차지하고 돌아오겠단 의지를 결연하게 발표한다. 이 발언들의 배경은 '금메달 우선집계'다. 그래서 슬프게도 이 모든 것은 금메달의 문제가 된다. 역사상 가장 많은 15개의 은메달을 얻고도 1개의 금메달을 더 그리워했던 아틀란타는 이 코미디의 정점이다. 이런 셈법 하에서 이런 목표가 있는 한 우리의 '금메달 환대'은 어쩔 수가 없는 문제다. 선수들의 '금메달 집착'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못말리는 ‘금메달 증후군’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집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자면 이해를 못할 일은 아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의 성적은 총체적 개념의 순위로 간명하게 전달되야할 필요가 있는데, '메달 총집계'는 당연히 많은 선수를 파견하여 많은 종목에 출전하는 나라에게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령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중국선수단이 639명, 미국선수단이 596명인데 반해 한국선수단은 5분의 1 정도인 134명. 지금도 이 정도인데 당연히 예전에는 그 격차가 훨씬 심했을 것이다. 이처럼 적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다윗의 나라가 많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골리앗의 나라와 맞짱을 뜨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굳이 인재론의 대가 이거니 오빠에게 그 정답을 여쭤볼 필요도 없다. 당연히 소수의 난 놈들을 부각하고 밀어주는 것이다. 우리처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니 믿을 건 인재밖에 없다는 둥, 잘 키운 인재 하나가 사천만을 먹여살린 둥, 강박이 심한 나라에서 늘상 존재했던 희망이다. 그래서 '금메달 우선집계'의 선호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금메달 우선집계'도 굉장히 이상한 셈법이다. 가령 마이크 펠프스같은 (범지구적으로) 난 놈이 인터넷 가상국가 라도니아 국적으로 올림픽에 나간다고 해보자. 선수단의 규모는 마이클 펠프스와 개인 트레이너, 그리고 라도니아국 임원을 합쳐서 달랑 세 명. 그렇다고 허더라도 이 놈 혼자가 수영 8개 종목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8개쯤 쓸어담으면 '금메달 우선집계'시 라도니아는 종합 10~12위 부근이 된다. 반면에 '메달수 총합계'로 따지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종합 30위권 밖으로 밀려난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포함된 이야기지만 사실 과거의 우리나라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그런 효과였을지 모른다. 금메달 하나에 종합 30위권 안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그런 효과다. 총 6개의 금메달을 얻은 LA 올림픽에서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을 자부했던 것처럼, 열두개의 금메달을 얻은 서울 올림픽에서 '세계 4위'라는 찬란한 수사에 환호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는 나라다. 선수단의 규모가 백명이 넘고 한번의 올림픽에 평균 30여개의 메달을 따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정도 규모에 이르면 금메달 우선집계를 따르던, 메달 총집계를 따르던 종합순위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테네 올림픽의 결과를 기억해봐도 그렇다. 집계방식에 따라 영향을 받을만한 나라는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헝가리, 브라질처럼 십위권 중후반대의 국가들이다. 한국은 어느 쪽을 택하든 변함없이 종합 9위이다. 그러니 '메달 총집계'가 더 손해라는 편견도 사실상 더는 설득력이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메달 총집계'를 따르는 경우 대한민국은 아틀란타에선 종합 8위, 시드니에선 종합 10위로 각각 두 칸씩 높은 순위를 받게 된다. 서울 올림픽과 같은 예외적 경우가 아니면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왜 '금메달 우선집계'를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특히 우리처럼 매번 '금메달 병'이 논란이 되는 나라에서 말이다. 최민호와 왕기춘의 비극이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이 곧 '1등 > 2등 > 3등'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은메달에 그쳤습니다"와 같은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타파하려면, 동메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타파하려면, 이제는 ‘메달 색깔에 따라서’가 아니라 ‘메달 자체’를 존중하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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