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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부스 (Phone Booth, 200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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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협은 제비뽑기처럼 무작위다. 전화를 끊으면 그 순간 네 목숨도 끊긴다는 협박은 실상 스투 세퍼드(콜린 파렐)가 아닌 누구에게라도 가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왼편과 오른편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뉴욕의 시민과 뉴욕을 오가는 방문객 중 누구라도 그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감독 조엘 슈마허와 각본을 맡은 래리 코헨은 콜린 파렐을 공중전화박스 안에 몰아넣었고 촬영감독 매튜 리바티크는 넉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빠르고 강렬한 동시 화면 분할을 가능하게 하였다. 원거리의 상대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전화의 편리함은 미지의 상대를 비대면으로 상대하여야 하는 순간 섬뜩한 가능성으로 변용된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목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일찍이 '웬 어 스트레인져 콜스 (프레드 월튼, 1979)'에서부터 '스크림 (웨스 크레이븐, 1996)'까지 공포물에서도 널리 활용되어 왔던 소재이다. 다만 그 무대가 인파로 붐비는 대도시의 한복판일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중전화 대기줄의 타인들이 그의 난처한 상황을 이해할 리 없다. 고로 남자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는 전화를 놓을 수 없고 전화선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고 전화박스를 떠날 수 없다. 두려움의 원천은 어디서 갑자기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이 아니라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를 잘 알고 있는 적이다. 목소리는 남자의 고해를 종용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대도시의 모르는 사람들과 그를 촬영하는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그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질렀고 그중에는 외도와 사기도 있었다. 그는 물론 약간은 비열하고 약간은 비겁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만이 죄인은 아닐 것이고 이 무작위의 공포는 어느 누구도 겨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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