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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학교 보안관 장고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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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아명은 장고셨다. 장고라면 애니메이션 ‘우주 보안관 장고’에 나오는 바로 그 장고다. 나중에 커서 장고처럼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허나 선생은 이름처럼 훌륭하고 용감한 인생을 살진 못하셨다. 한때 나쁜 사람들을 잡는 형사였음에도 그 인생, 이름만큼 빛나지는 못하셨다. 그래서 선생께서는 '학교 보안관'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셨다. 이제까지의 인생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만 두었지만 이제부터의 새로운 인생에서는 뭔가 다를 거라고, 선생은 믿으셨다. 더 이상은 장고(長考)도 없을 것이고, 더 이상은 악수(惡手)도 없을 것이라고.

  선생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침 7시 반부터 순찰을 돌기 시작하여 공식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는 9시 조금 넘어서까지 아이들의 등교를 도우신다. 특히 학교 앞 횡단보도는 선생께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시는 공간이다. 이후 등교 시간이 끝나면 선생께서는 학교 문을 거의 걸어 잠그신다. 행인 및 차량의 출입 통제를 위해서다. 이후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의 하교를 도우신다. 하교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운동장을 관리하여 수상한 외부인들이 아이들의 놀이터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선생께서 하시는 일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일은 아이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괴롭힘, 따돌림, 집단 패싸움, 불량식품 밀매, 기타 등등. 그래서 오늘도 선생께서는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 쓰고 정문 앞에 서신다. 징 박힌 웨스턴 부츠가 눈이 부실 정도다.

  요즘 선생의 주의를 끄는 아이들이 있다. ‘소라게파'라는 조직이다. 보통은 몰려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두고 '조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소라게파'는 조직이 맞다. 누가 봐도 조직이다. 그냥 몰려다니는 초등학생들은 쇠사슬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소라게파'는 쇠사슬을 쓴다. 그러니까 조직이 맞다. 선생께서는 냄새를 맡으셨다. 구린내다. 18년이나 형사 생활을 한 남자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다. '소라게파'는 학교 내 은밀한 뒷거래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학교 안에서 누군가 아폴로를 말아 팔다 걸리면 그 뒤엔 항상 '소라게파' 놈들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 누군가 맥주를 팔다 걸리면 역시 그 뒤에도 언제나 '소라게파' 놈들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 누군가 담배를 팔다 걸려도 아니나 다를까 그 뒤에는 어김없이 '소라게파' 놈들이 있었다. 학교 안에서 누군가 본드를 팔다 걸려도 백이면 백 그 뒤에는 영락없이 '소라게파' 놈들이 있었다. '소라게파'는 교칙이 유린되는 공간 어디에나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즐겨 쓰는 무기마냥, 사슬 같았다. 정교하진 않아도 강하고 튼튼하게 연결된 집단이었다.

 

*

 

  선생께서는 진작에 '소라게파'를 노모초등학교의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셨다. 언제고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선생 특유의 높고 강인한 의기로 녀석들을 응징할 예정이셨다. 그리고 1989년 4월 29일. 드디어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1학년 5반 역세권이는 '소라게파'에게 쫀드기 232개를 빚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1학년 짜리 꼬마가 두 달도 되지 않아 232개의 쫀드기를 외상으로 먹을 수 있었나 싶지만 여기엔 '소라게파'의 흉악한 수법이 숨어 있었다. '소라게파'는 학기 초 신입생들에게 쫀드기니, 꾀돌이니, 오란다니, 아폴로니 하는 것들을 거의 공짜나 다름 없이 나눠주었다. 그러다 두세 번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돈을 받았는데 운송비 명목이었다. 조금 더 아이들이 중독되어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리는 시점이 되면 본격적으로 마진을 남겨 장사를 시작했고, 아이들의 주머니가 비어가자 후하게 외상을 주었으며, 차츰 적절한 밀당을 통해 공급을 조절하며 중독의 강도를 극대화시켜 나가는 영리한 전략을 취했다. 1학년 5반 역세권이의 경우도 처음에는 그냥 거저 손에 들려준 쫀드기 몇 쪽을 씹어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중독이 시작되자 ‘맛쫀드기’에 ‘신흥맛쫀드기’에 ‘녹차웰빙쫀드기’까지 섭렵하지 않고는 견딜 재간이 없게 되었다. 그러더니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할아버지의 토종 지리산 호박꿀을 훔쳐다 재워놓고 발라 먹는가 하면 요즘 애들은 구경도 못해봤을 연탄불까지 장만하여 구워먹는 등 앞뒤 분간이 안되는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 세권이는 쫀드기 232개에 해당하는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는데 그 액수가 무려 98,765원에 이르렀다. 당연히 초등학생인 세권이에겐 그만한 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라게파'는 세권에게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라"는 인류 역사 그 자체와도 같은 소름끼치는 제안을 던졌다고 한다. 세권이 그 제안을 거절하자 녀석들은 쇠사슬을 휘드르며 덮쳐왔고 세권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그 방향으로 멀리에  하필 선생께서 계셨던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생께서는 한 눈에 3학년 2반 촉탁직이를 알아보셨다. ‘소라게파’를 이끄는 두목. 소라게 같은 녀석. 챙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낮게 중얼거리셨다고 한다.

- 오야를 잡으면 나머진 찌그러지기 마련이지.

  '소라게파'가 쇠사슬을 애용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대장인 3학년 2반 촉탁직이네 아버지가 한때 제철왕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철왕'이 아니라 '한때 제철왕'이었던 이유는 탁직이의 아버지가 흉악한 부하 놈에게 뒷통수를 맞아 목숨도 잃고 회사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직이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또한 언젠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의미에서, 철로 만든 무기만을 쓰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조직의 '디폴트 무기'도 쇠사슬이고 '서브 무기'도 쇠사슬이다. 뿐만 아니라 녀석의 오른팔 이름은 양상철이며 왼팔 이름은 철사장이다. 대개의 경우 '소라게파'의 표적이 되는 애들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에 속하기 마련이다. 철을 훔쳤거나 철이 덜 들었거나. 철을 훔친 것까진 그렇다고 치더라도 철이 덜 든게 무슨 죄가 될까 싶지만, 남성미 넘치기로 유명한 '소라게파' 놈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맞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철 들지 않은 남자는 남자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이 놈들은 혹시나 몸에 철분이 부족할까봐 매일 아침마다 임산부용 철분제 훼마틴을 먹는다는 소문마저 있다. 1학년 5반 세권이는 철을 훔친 게 아니라 돈을 빚진 셈이지만 과격한 조직 놈들에겐 둘러치나 메어치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세권이가 달려오는 쪽으로 선생께서는 몸을 날리셨다. 허리춤에서 표창을 꺼내 던지셨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표창 중 하나는 선두에서 달려오던 '소라게파' 놈들 중 하나의 머리에 맞았고 다른 하나는 다리에 맞았다. 또 다른 하나는 허리에 맞았고 또또 다른 하나는 가슴에 맞았다. 그렇게 몇몇이 자빠지며 선두 열이 와해되자 추격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 사이 선생께서는 재빨리 세권의 손을 잡아 끌어 등 뒤로 보호하셨다. 앞을 막고 서셨다. 그래봐야 가까스로 한 박자를 벌었을 뿐이다. 벌써 번쩍 하고 쇠사슬이 날아왔다. 선생께서는 특유의 날랜 몸놀림으로 피해가며 표창을 던지셨다. 놈들 중 여럿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선생께서는 몸을 돌려 세권에게 소리치셨다.

- 달려, 임마. 뒤돌아보지 말고. 

  예상치 못한 선생의 등장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3학년 2반 촉탁직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둘러싸고 뭉개버리라는 뜻이었다. 선생께서는 최선을 다해 날아오는 사슬을 피하셨다. 이따끔 반격도 하셨다. 선생의 정교한 표창에 적지 않은 놈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표창이 바닥났을 때 선생께서는 미처 어깨를 향해 날아오는 사슬을 피하지 못하셨다. 선생은 어깨뼈가 부서지는 것을 소리로 듣고 고통으로 느꼈다. 순간적으로 숨도 쉬기 어려운 통증에 선생께서는 입술을 깨무셨다. 조각난 어깨뼈는 몸 안을 빙하처럼 떠다녔다. 차갑고 무거웠다. 선생의 왼쪽 어깨였는데 선생께서는 아픈 쪽이 어느 쪽인지 분간조차 하지 못하셨다. 두 번째 사슬이 선생의 오른팔을 감고 들어왔다. 세 번째 사슬이 선생의 왼쪽 다리를 감고 들어왔다. 네 번째 사슬이 선생의 오른쪽 다리를 감고 들어왔다. 놈들은 서로 반대 쪽으로 사슬을 잡아당겨 선생을 넘어뜨렸다. 흙바닥을 뒹글며 선생께서는 반격의 기회를 모색하셨지만 숫적으로 워낙 열세였다. 선생께서는 두 다리로 일어 서지 못하셨다.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버둥거리는 것이 선생께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3학년 2반 촉탁직이 다가왔다. 드르륵 드르륵 이 가는 소리를 내며 씹던 쫀드기를 선생의 얼굴에 뱉었다. 여기까지가 선생께서 기억하시는 전부다. 

 

*

 

  선생께서는 3일만에 부활하셨다고 한다. 부활이라는 표현이 조금 그런 이유는 깨어나고도 온 몸이 부서질 듯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1학년 5반 역세권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선생께서는 최선을 다해 ‘소라게파’를 저지했지만 기껏해야 몇 분을 벌었을 뿐이다. 놈들은 예상보다 많았고 예상보다 강했다. 역시 역세권이는 사라진 상태였다. 부모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에서는 유괴를 의심했다. 인근을 서성거린 낯선 남자가 있었단 제보에 바탕해 추적에 나섰다. 번지 수를 잘못 짚었다. 선생께서 나서야만 했다. 학교 보안관이 해야할 일이었다. 학교 보안관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학교 보안관의 임무란 첫째도 둘째도 아이들의 안전이다. 선생께서는 삐걱거리는 몸을 끌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소라게파’의 아지트를 수소문하셨다. 많은 아이들이 ‘소라게파’의 보복에 겁을 내고 질문에 대답하기를 피했다. 1학년 5반 역세권이와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몰래 털어놓지 않았다면 끝내 찾아낼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기특한 그 아이.

- 같이 가요. 아저씨.

-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 같이 가자고요. 혼자 가면 위험해요.

  그 마음이 귀엽고 기특해서 선생께서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하지만 이건 말이야. 아저씨가 할 일이다.

- 숙명인가요? 일종의?

- 밥벌이란다. 일종의.

  선생께서는 보안관실로 향하셨다. 본관 지하 1층 영선실과 보일러실 사이에 있는 5평짜리 공간이었다. 금고를 열어 열쇠를 꺼냈고, 열쇠로 서랍을 열어 소방망치를 꺼냈다. 소방망치로 비상유리를 깨고 젓가락을 꺼냈고, 다시 젓가락을 무기고 문고리에 찔러넣고 쑤셨다. 오래된 건물이라 잘 먹히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백발백중이었다. 한 5분 진땀을 빼니 거짓말처럼 떨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신속히 들어가서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들었다. 가져갈 수 있는 만큼은 다 가져갈 참이었다. 혼자 몸으로 쇠사슬로 중무장한 '소라게파'를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아니,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 없을 것이었다. 선생께서는 만약을 대비해 안부를 남겨야 겠단 생각이 드셨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전화기를 드셨다. 하지만 기억나는 번호가 없으셨다. 전화번호부로 들어갔다. 가족이 없고 친구가 없으시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어쩌면 인생이 원래 그렇게 슬픈 것이었다.

  미술실로 가는 복도는 언제나 으슥했다. 별관 뒷편으로 외진데다가 좁고 창 밖이 바로 뒷산이어서 그러했다. 낮에도 형광등을 켜놓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말할 것도 없다. 밤 같은 낮이다. 언젠가 미술 담당 최선생은 "이 길이 꼭 미술 전공자들의 미래같아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미술이고 마술이고 일단 볕은 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어느 학교에서든 미술실은 약간의 주술성을 담보로 하는 공간이다. 밝은 데서 보면 아름답지만 어두운 데서 보면 찝찝한 각종 명화들을 비롯하여 밝은 데서 봐도 오싹한 석고상, 트라이포드 괴물처럼 버티고 선 한 무리의 이젤, 남몰래 미세하게 변할 것만 같은 부자연스러운 그림들, 결정적으로 묘하게 이상한 기운이 곳곳에 서려있는 공간. 그래서 ‘소라게파’와 같은 불량 학생들이 이 곳을 아지트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선생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표창을 던졌다. 한꺼번에 세 개. 날아간 곳곳에 아이들이 뒹글었다. 동시에 선생의 바로 옆으로 쇠사슬이 허공을 치고 뱀처럼 사라졌다. 사슬이 흩고 간 자리엔 눈송이가 날렸다. 혹은 화산재 같기도 했다. 곳곳에 소라게처럼 숨어있던 ‘소라게파’ 놈들이 하나둘씩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진회색 바지에 엷은 검정색 스트라이프가 새겨진 와이셔츠. 여기에 털이 복슬복실한 싸구려 조끼와 화투판으로 쓰면 딱 좋을 두툼한 마이만 걸치지 않아 그들은 너무 교복처럼 보이지 않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제도권 교육과 학교에 구속받지 않겠다는 자유로움으로 충만한 그들의 옷차림은 범상치가 않다. 전술한 그 와이셔츠는 상부 3개 단추 및 하부 1개 단추가 제 들어갈 구멍을 찾지 못해 공중을 방황하고 있으며, 오로지 중앙 2개 단추만이 제 짝에 맞는 구멍에 들어가 와이셔츠 앞부분의 좌편과 우편을 힘겹게 연결하고 있다. 또한 그 진회색 바지는 큼직한 통짜였던 과거를 깨끗히 청산하고 처절한 다이어트를 감행, 다리가 간신히 들어갈 만큼 줄여져 언뜻 바지가 아니라 마치 타이즈처럼 보인다. 아랫도리는 타이트하게 끼워입고 윗도리는 날개처럼 너풀너풀 걸쳐놓은 그들을 부르는 다양한 용어가 있다. 불량학생, 깡패, 일진, 양아치, 날라리, 질풍노도, 장외인간 등. 상기 용어들은 각기 다른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미세한 어감과 세밀한 차별성, 그리고 풍부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절대 혼용하여 사용할 수는 없지만 선생께서는 과감히 그 차이를 무시하기로 하신다. 선생의 높은 의기에 따르자면 이런 놈들은 그냥 잉여학생들이다. 학우를 괴롭히고 돈을 빼앗아 유흥비로 탕진하는. 쫀드기니, 꾀돌이니, 오란다니, 아폴로니 하는 것들로 학우들의 건강을 망가뜨리는. 이런 놈들이 잉여인간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잉여인간이겠는가. 

  3학년 2반 촉탁직이가 껌을 짝짝 씹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소라게파’의 두목. 표창을 쥔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지만 선생께서는 간신히 던지지 않고 인내하셨다. 1학년 5반 역세권이를 구해내어야 하므로. 학교 보안관의 임무란 첫째도 둘째도 아이들의 안전이다. 촉탁직이가 ‘어이 형씨 돈 좀 나눠 씁시다’ 라고 말했다. 역세권이가 ‘소라게파’에 빚을 진 쫀드기 232개에 해당하는 원금과 이자를 대신 갚으라는 얘기였다. 어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어른을 협박하고 자빠졌는가. 크게 노한 선생께서는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  한 푼도 없다. 

  정말 한 푼도 없지야 않겠지만 그런 녀석들에게 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있어도 안 준다. 선생은 고집이 대단한 분이어서 백 번을 물어봐도 대답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 그러자 개 중에 조금 머리 좀 크고 싸움 좀 하겠다 싶게 생긴 녀석이 앞으로 나선다. 비열하다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손에 든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다. 어떤 못된 깡패 영화나 못된 깡패 드라마를 보고 따라하는 것이 분명한 실로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에 선생은 크게 녀석들을 꾸짖으려 하지만 갑자기 그 녀석이 빨아들였던 담배연기를 후우우하고 뱉는 바람에 선생께서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끼신다. 소라게파 놈들은 너도 나도 한 마디씩 던진다. 아저씨 정말 한 푼도 없어? 이 아저씨, 꼼수 부리는 것 같은데? 뒤져서 나오나 볼까? 뒤져서 나오면 뒤지게 맞을줄 알아. 아저씨가 자기가 정말 보안관인 줄 안다면서? 진짜야? 요즘 세상에 보안관이 어디있어? 서부 영화에나 나오는 거 아니야? 아저씨 원래 정체는 뭐야? 경비 비슷한 건가? 아니면 소사 아니야?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들의 비웃음은 미술실의 습기찬 벽을 타고 울렸다.

 

*

 

  선생께서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칠십 평생을 되돌아 본다.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불의와 싸워왔다. 학교 보안관이 되기 전, 선생께서는 강력반 형사였다. 일종의, 사회 보안관이었던 셈이다. 70년대 서초동 국민은행 앞에서 어느 아줌마 소매를 치고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끝까지 쫓아가서 때려 눕힌 기억이 새롭다. 슬쩍 소매만 쳤다고 주장하는데 아줌마 지갑이 왜 그 녀석 품에서 나왔을까. 아줌마는 그 날 은행에서 만기된 적금을 찾아 나오는 길이었는데 하이에나같은 소매치기 놈이 그걸 날치기했다. 그 일로 선생께서는 한 집안의 가계를 구하셨다. 80년대 한 여성을 인신매매단으로부터 구해내셨던 일화도 떠오른다. 그 무렵 기승을 부리던 인신매매단은 봉고차를 몰고 다녔다. 으슥한 밤길에 혼자 다니는 여성을 덥쳐 봉고차에 밀어넣고 부르르르릉, 그대로 냅다 출발하는 수법이었다. 우연히 그 몹쓸 광경을 목격한 선생께서는 칼 루이스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서 단신으로 막 봉고차를 막아섰다. 범인들은 깜짝 놀랐지만 본디 차는 사람때문에 멈추는 법이 없기에 선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일로 성깔이 발동한 선생께서는 몸을 피하기는 커면 달려오는 봉고차에 대고 짱돌을 던졌다. 앞유리를 박살내자 놈들이 떼로 튀어나왔다. 인신매매범이 아니라 인신매매단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선생께서는 4 대 1의 격투를 벌였다. 때린만큼 맞기도 했지만 그 일로 선생께서는 한 여성의 인생을 구하셨다. 이제 1학년 5반 역세권이의 인생을 구할 때다.

- 아이를 데려와라.

  3학년 2반 촉탁직이는 고개를 모로 젓는다. 건들거리던 녀석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시큼한 호르몬의 냄새가 더욱 강하고 진하게 그를 덮쳐왔다. 선생께서는 욱신거리는 허리와 종아리와 어깨의 고통을 잊고자 이를 깨무셨다. 선생께서는 귀신 잡는 해병 출신이다. 그 독하다는 해병대에서도 독종 중의 독종으로 이름이 높았다. 닉네임 살모사.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언뜻 이름만 들어도 자던 애들이 벌떡 일어났다.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고작 저런 애송이들한테 휘둘릴 인물은 아니다. 쇠사슬이 날아온다. 선생께서는 몸을 꽈배기처럼 돌려서 피하신다. 온 몸의 근육이 아우성을 친다. 다른 방향에서 다시 쇠사슬이 날아온다. 재빨리 팔로 쳐버린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 선생께서는 반격을 시작하신다. 표창 몇 개를 뿌려 길을 낸다. 얼결에 거리가 가까워지며 ‘소라게파’ 놈들은 순식간에 근접전의 상황에 놓여버렸다. 선생께서는 어깨를 뒤로 한껏 빼서 주먹을 내밀어 ‘소라게파’ 한 녀석의 턱을 제대로 맞추었다.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이래뵈도 학교 앞 펀치 기계에서 숙련된 주먹이다. 선생께서 대학생 시절 학교 앞 게임랜드에서 펀치 기계에 달려들면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그걸 바라보았다. 탁, 탁, 타다다다다닥, 쾅하면 또 신기록이었다. 남학생들은 모두 질투 어린 시선으로 입 주변 근육을 실룩거리며 그 자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인근 백 킬로미터에서 최고의 핵주먹이라고 통했다. 두세놈이 더 그 뜨거운 맛을 보았다. 몇 시간은 정신을 잃을만큼 아찔한 맛일 것이다. 다시금 날아오는 주먹을 쳐내고 팔꿈치를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미술실을 울렸다. 뒤이어 귀에서 기습하려는 녀석의 발등을 징 박힌 부츠로 밟아버리셨다. 팔꿈치를 뒤로 휘둘러 그 녀석의 턱을 맞추었다. 다시 한 번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소라게파’ 녀석들은 쇠사슬을 쓸 수가 없었다. 선생께서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자기편을 피해 쇠사슬을 휘두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뭔가 가슴에 와 닿았음은 선생께서는 깨달으신다. 아니나 다를까 쇠사슬이다. 자기편이 맞던 말던 휘두르기로 마음을 먹은 듯 하다. 두목인 촉탁직이가 그렇게 지시했을 것이다. 잠시 선생께서는 숨을 쉬지 못하신다. 가슴이 얼음 송곳에 스친듯 얼얼하고 고통스럽다. 뒤이어 무릎 뒤쪽으로 날랜 뭔가가 날아 들어 왔다. 역시나 쇠사슬이다. 무릎이 휘청하고 꺾이니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마지막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선생께서는 깨달으셨다. 이윽고 한쪽 팔이 사슬에 감겼다. 중심이 무너지니 상대를 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직전에 얻어맞은 만큼을 보복하듯 선생을 구타하고 일사분란하게 물러났다.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등판과 마치 남의 것처럼 느껴지는 팔뚝을 부여잡고 버텨보지만 이내 선생의 다른쪽 팔마저 사슬에 감긴다. ‘쇠사슬파’의 주특기. 사지를 감아버리는. 선생께서도 한 번 당한 적이 있는 바로 그 방법.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 번째 사슬이 선생의 왼쪽 다리를 감고 들어왔다. 네 번째 사슬이 선생의 오른쪽 다리를 감고 들어왔다. 놈들은 서로 반대 쪽으로 사슬을 잡아당겨 선생을 넘어뜨렸다. 흙바닥을 뒹글며 선생께서는 반격의 기회를 모색하셨지만 숫적으로 워낙 열세였다. 선생께서는 두 다리로 일어 서지 못하셨다.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버둥거리는 것이 선생께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치 운동회날 줄다리기를 하듯이 ‘소라게파’ 놈들은 사슬을 힘 모아 당긴다. 사지가 벌어지며 선생께서는 공중으로 떠오른다. 만약 이게 영화 속 한 장면이고, 또 만약 카메라와 카메라맨이 있어, 뒤로 서서히 빠지면서 자신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 무리의 악마들을 담는다면 꽤 그럴듯한 씬이 될 것이라고 선생께서는 생각하신다. 마지막에 선생께서는 자신이 구해낸 영혼들의 얼굴과 구해내지 못한 영혼들의 얼굴을 떠올리신다. 그리고 1학년 5반 역세권이를 떠올리신다. 학교 보안관으로의 마지막 임무.

 

*

 

  선생의 아명은 장고셨다. 애니메이션 ‘우주 보안관 장고'에 나오는 바로 그 장고 말이다. 나중에 커서 장고처럼 훌륭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학교 보안관'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며 선생께서는 이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 이제까지의 인생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만 두었지만 이제부터의 새로운 인생에서는 뭔가 다를 거라고, 더더 이상은 장고(長考)도 없을 것이고, 더 이상은 악수(惡手)도 없을 것이라고.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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