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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엑스콘: 전과자는 괴로워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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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엑스콘(ex-con, 전과자)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드십니까? 무섭다. 험악하다. 나쁜 사람이다. 뭔 일을 저지를지 몰라 두렵다. 가급적 피해야겠다. 맞습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으로의 고충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꿀릴 거 없는 깨끗한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전과의 낙인까지 따라다닌다면? 아마 여러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실겁니다. 믿기 어려우시다고요? 믿으세요. 

  여기 알키큐래스(Alkickurass) 교도소. 방금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벤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알키큐래스는 알카트래즈 버금가는 삼엄한 경비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만큼 과거 벤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물론 죄를 지었으니까 교도소에 있었겠습니다만,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본래 교도소 생활이라는 것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끔 만드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여러가지 이유와 계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의 수감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이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었던 것 또한 그를 변하게 만든 한 가지 이유입니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기어이 눈물을 보입니다. 이제 철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이 정직한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입니다. 지금은 희망에 가득차 있어보이는군요. 허나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과연 그는 사회에 잘 적응하고 무난히 직업을 구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요? 생각만큼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벤는 그리웠던 집으로 달려갑니다. 무려 1,000여일만의 귀가입니다. 참으로 길고도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들어갈 때는 훨체어에 앉아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두 다리로 힘차게 걸어나왔습니다. 몇몇 남자들이 검은색 벤츠를 몰고 와서 그를 태워갑니다. 알고보니 예전에 그의 밑에서 일을 하던 남자들이라는 군요. 벤의 집은 교외에 있습니다. '가보시 힐즈'라는 동네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슨무슨 힐즈, 하면 부촌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만, 어찌된 일인지 가보시 힐즈에는 벤네 패밀리보다 더 잘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대강 어떤 수준의 동네인지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저기, 가족들이 맨발로 뛰어나오는군요. 그의 출소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성대한 파티를 준비해두었답니다. 아! 저기 가신들도 맨발로 뛰어나오는군요. 그의 출소를 목 빠지게 기다렸던 가신들 역시 성대한 파티를 위해 없는 형편에도 조금씩 돈과 비용을 모았다는 후문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그를 둘러싸고 환호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두부를 권합니다만 그는 한사코 거부합니다. 두부를 먹을만한 잘못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부를 먹을만큼 징역을 오래 살지도 않았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랍니다. 농담일까요? 진담일까요? 그동안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것은 확실하군요, 벤. 1분 후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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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이 두부를 먹는 대신에, 두부만큼이나 새하얀 유니폼을 갖춰입은 쉐프들과 전문 파티시에들이 소박한 밥상을 준비합니다. 접시 위에 쥐꼬리만큼 담긴 푸아그라를 보아하니, 그동안 벤의 가족들이 정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만큼 어렵게 지내왔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어허, 물러서지 못해!" 저런, 벤의 막내 아들이 신선한 상어 지느러미를 넘봤다가 첫째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군요. 돌아온 벤를 위해 특별히, 아주 쥐똥만큼만 구해온 모양입니다. 아이는 캐비어같은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벤의 둘째 부인이 아이를 달래 방으로 들어갑니다. 사실 아이는 둘째 부인이 배 아파 나은 자식이지요. 그런 난장을 바라보는 벤 역시 안타깝단 표정입니다. 씁쓸하게 일본식 젓가락을 들어 딱 두 점 뿐인 참치 대뱃살을 입에 밀어 넣습니다. 너무도 초라한 환영회에 목이 메인 가신들은, 기어이 그들의 위스키 잔에 눈물을 블랜딩하고야 맙니다. 아무튼 파티는 파티입니다. 자, 이제 모두 다같이 잔을 들어 건배! 박수가 쏟아집니다.
- 어쨌든 축하해요, 벤.
- 당신이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 밤낮으로 보스만 기다렸어요.
  네. 그렇습니다. 벤에게는 가족이 있고, 또다른 가족으로 가신들도 있습니다.

"물론 수감 생활을 견디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만 바라보고 저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동안 절 기다려줬던 이 사람들이야 말로 저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가족들은 물론이고 여기 이 친구들까지 모두 제가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입니다. 정말 잘하고 싶어요. 한번만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멋지게 해낼 자신이 있어요."
(Ben Crobbery, 가명, 46세, 올 2월 출소)


  벤이 집에서 보내는 1,000일만의 밤입니다. 천일이라면 세헤라자데가 천하의 쪼다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기 시작해서 시마이지을 때까지에 해당하는 정말 우라지게 긴 시간입니다. 그는 침실까지 따라온 가신들을 물리고 오래간만에 전용 자쿠지에 들어갑니다. 그 자쿠지가 전용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습니만 너무 더럽고 추잡하고 역겨우니 여기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지요. 알아봐야 구역질만 나는 이야기입니다.
- 여기 와인 한 잔만! 케이프 멘텔 카베르네소비뇽으로!
  마야가 달려옵니다. 그녀는 벤네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라고 하는군요. 마야는 항상 토가를 입고 일을 합니다. 벤에게 토가에 대한 환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토가는 고대 로마의 남성들이 입었던 옷으로 여성들은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벤이 알키큐래스 교도소에서 거친 옵하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고와는 상관없이 원래부터 변태 기질이 다분했음을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야는 케이프 멘텔 카베르네소비뇽을 욕조 옆에 사뿐히 내려놓고 벤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춥니다. 에스키모들의 인사와는 별 상관 없는 이유로 코를 비빕니다. 무대의 커튼이 열리듯 토가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예, 그렇습니다. 마야는 벤의 가사 도우미이자 숨겨둔 애인입니다.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극도로 영리한 방법이지요. 그녀가 지난 3년간 벤네 집을 떠나지 않았던 까닭은 그의 세번째 아내가 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이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자쿠지탕의 뜨겁고 강한 거품만큼이나 혈액순환을 극도로 촉진시키고 남음이 있지만, 방송에 내보내기는 적절하지 않으니 이쯤해서 접어두기로 하지요. 오늘은 오래간만에 아마도 양털 이불만큼이나 부드럽고 달콤한 꿈을 꾸겠죠? 1분 후 돌아옵니다.

[텍스트광고] 중고 웨딩 드레스 팝니다. 딱 한 번 입었었고요. 실수였어요.

  다음날 아침, 벤은 일찌감치 아르마니 정장을 차려입고 인근 차량국을 찾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비싼 넥타이핀도 달았습니다. 확실히 교외에 살면서 도심의 일자리를 구해 출퇴근하기란 자가용 없이는 굉장히 고생스러운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이력이 없는 그가 직업을 찾으려면 일단 운전면허는 되찾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나 운전면허를 재발급 받고 싶다는 그의 말에 담당 직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듯 어깨를 으쓱 들어보입니다.
- 당신은 애초에 면허가 없었어요.
- 이런! 그러면 어떻게하면 좋습니까?
- 일단 신청을 하시고요. 필요하다면 연수를 받으세요. 그리고 필기 시험과 실기 시험을 치면 됩니다.
-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죠. 젊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은 한두달이면 따기도 하던데.


  어쩔 수 없이 그는 기사를 고용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공부를 시작해서 시험을 통과하고 면허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한적한 교외 지역에서 자가용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음 날부터 그는 낡은 노란색 프로쉐 718 박스터를 타고 직장을 구하러 다닙니다. 물론 운전은 기사 사비에 오나시스(Xavier Onassis)가 하고 그는 뒷좌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있지만요. 벤의 깊은 생각을 깨울까 사비에와 포르쉐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달립니다. 어쨌든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요. 벤.

"고맙습니다. 이젠  저도 떳떳하게 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를 하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사람들 반응이 차갑습니다. 동네에서도 절 보면 수근 거리는 주민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에게 보여줄 겁니다. 전 정직한 사람이고 안전한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반드시 증명해보일 겁니다. 지금도 돈을 대주겠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훨씬 쉬운 길이 많지만 전 당장 큰 일을 벌이기보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땀흘려 해내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여러분도 저를 응원해주세요."
(Ben Crobbery, 가명, 46세, 올 2월 출소)

  그런 벤의 바람과는 달리 취업의 과정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어디 한 번 따라가봅시다. 포르쉐에서 내려 그는 23번가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갑니다. 운전기사 사비에가 레스토랑 직원과 발렛 파킹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는 레스토랑의 오너와 면담을 시작했습니다.
- 무슨 일을 할 줄 아나요?
-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 전과가 있네요.
- 그래요. 하지만 전 달라졌어요. 
- 알겠습니다. 검토해 본 후 다시 연락을 드리죠.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면접의 결과도 비슷합니다. 단지 그의 경력이 부족해서일까요? 레스토랑 홀 매니져에도 경력이 필요한 걸까요? 모든 면접 담당자가 그의 앞에선 전과가 채용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이미 전과자 여럿을 직원으로 데리고 있고, 그들 모두가 사회에 훌륭히 적응하고 있다고 말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벤의 생각은 달라 보이네요.

"그 외엔 다른 이유가 없어요. 제가 교도소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사람들 반응이 차가웠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이 제 과거를 염려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아요.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도 참 힘드네요. 이제 어떻게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과연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나 할까요?"
(Ben Crobbery, 가명, 46세, 올 2월 출소)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법률적 책임을 다했음에도 여전히 차별적 시선이 이들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인권위원회의 ‘전과자에 대한 차별 인식 조사’ 결과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약 88.6%의 시민들이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과자에게도 일반인과 똑같은 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도 84.4%입니다. 현상을 묻는 첫번째 항목보다 상식을 묻는 두번째 항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더 적다는 사실이 해괴하지만 일다 접어두기로 합시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 세번째 질문 ‘채용 때 전과 경력고려는 부당하다’는데 동의하는 시민이 절반 수준인 44.9%에 그쳤다는 사실입니다.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사범죄 발생시 의심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64.3%가 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노스사우던 대학의 피트니스건강관리학 및 허브아로마테라피학과의 드류 P. 위너 (Drew P. Wiener) 교수의 분석을 들어봅시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전과자에게도 인권은 있는데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 하지만 유사 범죄 발생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과거를 감안하여 수사할 필요가 있고 때문에 이들을 채용할 때에는 당연히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고용주의 입장이다.’ 바로 이게 우리 사회의 분위기라는 겁니다. 증거요? 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Drew P. Wiener, 실명, 51세, 피트니스건강관리학 및 허브아로마테라피학과 교수)

  하지만 드류 P. 위너 교수의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 고용주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는 ‘채용 때 전과 경력고려는 부당하다’는데 54.4%나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말 고용주들보다 고용주 아닌 시민들이 예비 피고용자의 전과 경력을 더 염려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형사 사법 종사자들의 인식도 독특합니다. 이들은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다는데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채용 때 전과 경력고려는 부당하다’는데는 단 28.0%만 동의하였습니다. 100명 중 72명이 채용 때 전과 경력은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들 TV시리즈 ‘화이트 칼라(USA Network, 2009~)’의 대인배 피터 버크 요원에게 한 수 배우셔야겠군요.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이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벤은 과연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1분 후 돌아옵니다.

[텍스트광고] 회원제 키스방 (VJ 특공대에 방영된 집)
 

  벤는 사실 사업가였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취업하기에 좋은 경력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전과자가 된 이유 또한 그런 사업 경력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교도소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인물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말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전과자라고 모두가 위험한 인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흉악범이 아닙니다. 연쇄 살인범이 아닙니다. 아동성폭력 따위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살짝, 아주 살짝 숫자들을 애무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시켰을 뿐이고요.

"세상에 사업하는 양반들 중에 분식집 한 번 안 차려본 사람 있습니까? 다들 하는데 저만 안 하면 바보죠. 저는 운이 없었던 겁니다. 시범 케이스로 걸린 겁니다. 자산 수십 조원짜리 회사들도 공공연하게 벌였던 일입니다. 그 놈들한테는 찍 소리도 못하면서 저만 붙잡고 반사회적 범죄 운운한 것이 사실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반사회적 범죄가 뭔가요? 살인마, 성범죄자, 이런 놈들에게 곧바로 사형 때리나요? 아니죠. 인권이 어쩌고 저쩌고 갖은 위선은 다 떨죠. 저요? 솔직히 돈 좀 떼어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자리 창출로 그만큼 좋은 역할도 했습니다. 한참 잘 나갔을 때 연매출 10억불 이상이었습니다. 엄연히 국가 위상에도 기여했다는 얘기죠. 항상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정말 나쁜 나라입니다. 규제는 더럽게 많은데다가 바리새인보다도 위선적인 새끼들이……."
(Ben Crobbery, 가명, 46세, 올 2월 출소)   

  당시 벤이 벌였던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사업 분야 진출을 위한 가상의 기구를 만들어 재원을 차입하면서 부채를 싸그리 부외처리 하였고요. 각종 프로젝트 계약 체결 후 장기간 발생할 수입을 몽땅 현재 가치로 할인하여 계상하였지요. 뿐만 아니라 투자자산을 임의로 평가해 뻥튀기를 거듭했고 반면에 실패한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은 장기에 겅쳐 나누고 또 나누어 대손처리를 진행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기쁨은 당장 더하고 슬픔은 천천히 나눔으로써 회사 꼴 솔찬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사조서를 비롯한 모든 관련 문서를 차곡차곡 모아 모기업 산하의 펄프 공장에서 다시 재생공책으로 만들어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해 벤의 회사는 우수 친환경 기업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답니다). 벤는 여전히 판결 결과에 불만이 많습니다. 자기가 번 돈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주주를 농락하고 사회정의를 왜곡한 것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주식 돌려치기, 부당 내부거래, 양도소득세 탈루 등 자잘한 것까지 다 합쳐봐야 회사에 68억 달러 밖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무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안대를 끼우고 링겔을 맞으며 휠체어에 앉아 병든 닭 꼴로 재판정을 드나들며 그는 결심했다지요. '내 다시는 이 썩어빠진 나라에서 사업 안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자기가 대기업의 회장이었으면 절대 징역을 3년이나 구형받지도, 설사 구형받아도 3년을 다 살고 나오지 않았을거라, 어떻게든 감형이나 가석방이나 사면을 받았을 거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한 마디가 의미심장합니다.

"다스베이더가 왜 다스베이더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전 알 것도 같습니다. 이제 촬영은 그만하기로 하죠.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군요."
(Ben Crobbery, 가명, 46세, 올 2월 출소)   

  벤는 가신들을 소집합니다. 그가 한창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던 시절의 임원들입니다. 쪼인트를 까고 빳따를 때리며 새로운 시작을 천명합니다. “정신 줄 붙들어매자. 싸움닭만이 빅 가이들의 게임에서 뛸 수 있다." 잠시 남의 손에 맡겨놓았던 회사를 되찾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연매출 10억불의 영광을 재현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맹세의 상징으로 팔뚝에서 피를 내어 섞어 마십니다. 형제의 결의입니다. 이제 가신들은 벤이 또다시 곤경에 처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죄를 덮어쓸 것입니다. 이들이 총알받이로 나서는 동안에도 벤은 앞만보고 전진하겠죠. 바로 그게 주연과 조연의 차이입니다. 주연은 아무나 하나요? 이런 배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자. 진주홍색 노을을 뒤로 하며 그들은 일렬로 걷습니다. 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선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군요. 수출 효과와 고용 창출과 경제 회복과 국가 경쟁력과 국가 위상과 국가 이미지 제고 등등을 그의 재기를 통해 기대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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