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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돌솥비빔밥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7.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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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 돌솥비빔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껏 내가 서울의 맛집이라는 맛집을 돌아다니며 검열한 어떤 돌솥비빔밥보다도 맛이 좋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그 집의 상호는 잊어버렸지만 위치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제주공항에서 빠져나와 쭉 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용두암쪽으로 빠져서 제주은행과 피자에땅을 지나 왼편으로 바다를 두고 달리면 라마다 호텔과 이마트가 보인다. 그 앞에 편의점 지에스 25가 있는데 바로 그 뒷편 골목으로 들어간다. 좌우로 음식점이 빽빽하고 즐비한 골목이지만 여기서의 즐비하다는 개념은 서울과는 좀 다르다. 말하자면, 그냥 거기 있다는 정도다. 그 후미진 골목 안으로 한 오 분쯤 걸어 들어가면 크게 간판을 내건 식당이 하나 보인다. 그 집이 아니다. 그 다음 집이다. 앞 집보다 훨씬 작고 메뉴도 적고 심지어 깨끗하지도 않지만 맛은 다음 집이 더 훌륭했다. 지금 말하는 돌솥비빔밥의 '그 집'이란 바로 그 '다음 집'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집 돌솥비빔밥은 타기 직전에 나온다. 그게 일품이다. 받는 순간에 홀랑 뒤집지 않으면 바닥이 먹지 못할만큼 까맣게 타서 눌어 바닥에 붙는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돌솥이 나오기가 무섭게 법석을 떨어야 한다. 아래 깔려있던 밥을 위로 잽싸게 피신시키고 위에 있던 밥을 아래로 내려 열기의 진격을 막는다. 채로 썰린 당근, 오이, 양파, 버섯, 알맞게 잘려진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 고르게 다져진 쇠고기, 군침 돌만큼 뽀얀 계란 후라이 등의 비빔 연합군이 합세한다. 그리하여 눌어붙느냐 (팀 비빔밥?) 식어버리느냐 (팀 돌솥?)의 천하를 건 대결이 기어이 펼쳐지고야 마는 것이다.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기가 막힌 꿀맛이다. 필경 돌솥의 초기 온도 T1, 쌀밥의 초기 온도 T2, 돌솥의 열전도율 kp, 쌀밥의 평균 열전도율 kr, 돌솥으로부터 직접 열을 전달받는 쌀밥의 부피 V1, 간접적으로 열을 전달받는 쌀밥의 부피 V2 등을 고려하여 공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 틀림 없건만 아주머니의 무심히 권태로운 미소와 진작에 위험수위에 이른 위생관념은 그럴 가능성이 단 일퍼센트도 없음이 확실하다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한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나는 5일 내내 아침으로 돌솥비빔밥만을 먹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물리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 집 돌솥비빔밥의 맛은 각별했다. 서울로 돌아오고서도 종종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돌솥비빔밥 때문에 다시 제주도까지 날아갈 수야 없지 않은가.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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