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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이 사랑받는 시대를 이해하는 방법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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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골, 우리말로는 빗장뼈, 영어로는 clavicle, 풀어 말하자면 '가슴 상부에서 어깨에 걸쳐 거의 수평으로 위치하는 뼈',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괜히 백과사전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한 설명을 접할 수 있다. 

가슴 가운데 있는 흉골과 견갑골을 잇는 S자 모양의 긴 뼈로 인체에서 가장 먼저 골화한다. 상지골과 견갑골을 거쳐 흉골에 연결시켜 상지대(上肢帶)를 이루는 뼈의 하나이다. 그 안쪽 끝은 흉골과 흉쇄관절을 만들고, 바깥쪽 끝은 견갑골의 견봉(肩峰)과 견쇄관절을 만들어 연결한다. 이들 관절은 비교적 잘 움직여 견관절에서 상완골의 운동을 돕는다. 상완 신경총과 쇄골하 혈관을 보호하고, 어깨 운동을 할 때 지렛대 역할을 한다. 말/소/개 등의 경우에는 퇴화되어 있다.

  솔직히 그동안 쇄골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대상처럼 여겨져 왔다. 쇄골, 어째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뉘앙스부터가 심난하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쇄골은 교통사고 상해보험의 '보상한도액수'를 따지거나, 부상당한 운동선수의 선수생명을 카운트 (엄밀하게는 디스카운트) 하거나, 혈액 투석을 하는 경우에 도관을 어디에 삽입하느냐를 결정하거나, 또는 이와 비슷한 크기의 우울감을 안고 있는 문제들에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주워 들은 바에 의하면 쇄골은 법의학적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내측쇄골이라는 것이 가장 나중에 붙는 뼈이기 때문이란다. 흉골과 연결되는 쇄골에 얇은 조직층이 자라고, 그것이 결국 뼈의 전체를 매끈하게 덮게 되는데, 그때가 18세에서 25세 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존 도우(신원미상) 시신의 쇄골이 둥글고 울퉁불퉁하다면, 아직 조직층이 형성되기 이전인 미성년자라는 뜻이 된단다. 마찬가지로 이 또한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나 쇄골골절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초래하는 비극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라고들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쇄골이 골절되어 수술을 했다면, 수술 후 최소 4주에서 6주까지 굉장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까 무거운 것을 들어서도 안되고, 길을 걸을 때도 팔이 다른 곳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하며, 잠을 자면서도 팔을 함부로 놀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완전히 뼈가 다시 굳기까지는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고들 한다. 아는 사람 중에도 이 불행한 사태의 경험자가 있는데,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쇄골의 '쇄'자만 꺼내어도 기겁을 한다. 그만큼 쇄골은 약하기도 약하지만 일단 한 번 부러지고 나면 보통 골치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기야 운동선수들이 가장 예민해하는 부분 중의 하나도 바로 쇄골이어서 특히 럭비처럼 격하기 짝이 없는 운동은 장비 중에 어깨와 쇄골만 덮을 수 있는 패드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 쇄골이 요즘들어 심심치 않게 각광을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신문의 사회/스포츠 섹션에서 불행한 소식에나 할애되던 쇄골이 이제는 문화/패션의 섹션으로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으며, 의료업계에서는 종전까지 쇄골과 관련된 이슈를 독점해오던 정형외과의 아성을 성형외과가 위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쇄골이 미(美)의 관점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제 사람들은 목덜미와 그 아래쪽을 깊숙이 드러낸 젊은 배우나 가수의 사진을 보면서, 그 또는 그녀의 쇄골이 매력적이라고 앞다투어 말한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따라서 이제 '어떤 쇄골이 예쁜 쇄골이냐'는 것은 상당히 예민한 문제가 되었으며, 그런 아름다운 쇄골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아무래도 뼈의 모양을 가지고 신체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기는 머쓱한 관계로, 신체의 외부와 내부에 엉거주춤 걸쳐있는 쇄골에 대한 관심은 미의 기준이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내적인 아름다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핀트는 틀렸을지언정) 어느 정도 부합하는 면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뼈의 모양에서도 아름다움을 따지게 생겼으니, 이제 골상학(骨象學 : 두골의 형상으로부터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추정하는 학문)이 다시금 엄연한 학문으로 자리 잡고, 접골원(接骨院)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것도 시간문제인지 모르겠다. 

  물론, 쇄골을 아름다움을 따지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이를테면 한의학적인 시각에서 쇄골은 목과 몸통이 연결되는 부위인 동시에 대부분의 경락(經絡)들이 지나가는 자리이기에, 쇄골의 상태와 건강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쇄골은 그냥 수많은 뼈중에 하나다. 그런데 자기 것도 아닌 남의 그것에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고, 또 그렇게 쇄골이 바싹 드러나는 사진만을 노골적으로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어째 오싹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누군가 "그 사람은 견갑골(肩甲骨)이 마음에 들어" 또는 "그의 판상골(板狀骨)에 반해버렸어" 라며 남의 그것들이 보이는 사진을 모으기라도 한다면, 분명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혹여 당신이 그런 식으로 각종 (남의) 뼈에 유난히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머시니스트(The Machinist, 브래드 앤더슨, 2004)'에 나왔던 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사진을 모아볼 것을 권한다. 그 영화에 출연할 당시의 그는 무려 30 킬로그램 이상 감량한 상태로 의과대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뼈로만 이루어진 '인체 해부모형'에 아주 얇은 살가죽을 하나 뒤집어 씌운 몰골이었으니까. 쇄골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종류의 매력적인 뼈다귀가 드러날 것은 물론이다.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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