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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포스터 (Imposter, 200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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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필립 K. 딕의 단편은 영화화하기에 그렇게 풍부한 분량은 되지 못한다. 고작 그만큼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찍어내는 대단한 양반들이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할 뿐인데, 이번에는 게리 플래더가 이 미션에 도전했다. 1953년 단편 '임포스터(Imposter)'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임포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음모자, 협잡꾼, 사칭자.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은 흔히 우주 스파이, 사기꾼 로봇 등으로 번역된다.

 

  이 도전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가장 큰 증거는 이미 도입부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거의 120초에 육박하는 주인공 스펜서 올햄(게리 시니즈)의 구구절절 산만한 나레이션은 거의 소설의 서두를 그대로 카피 앤 페이스트한 느낌이다 (註1). 문제는 원작에는 이런 식의 기술이 없었다는 사실. 그러면 제작진이 그야말로 동아전과식으로 핵심 요약을 정리해 놓았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원작은 '짧을 단(短)'자를 쓰는 단편이고 영화의 러닝 타임은 조금 더 늘려도 좋았을 95분에 불과한데, 어찌 그렇게 조급히 설명을 끝내고 황급하게 시작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영화 자체는 짧은 길이에도 부족한 에피소드에 버거워하는 느낌을 주는데도 말이다. 원작에 없는 내용을 과도하게 만들어 내는 경우도 문제지만 원작에 있는 내용만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경우도 문제다. 특히 이렇게 원작이 짧은 경우에는 더더욱.  

 

  게리 플래터는 이 작품을 만들며 필립 K. 딕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미 영화화된 선례들을 참고 했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스파이로 오해받게 된 과학자가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이 이야기는 동일 작가의 유사 소재라는 점으로만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 자매 영화들과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날카로운 장점을 영리하게 취하지는 못했다. 먼저 난삽한 도입부로 짐작할 수 있듯 구성 요소간 중요도의 균형감각이 부재하다. 곳곳에서 어긋어긋하다. 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액션씬에는 필요 이상으로 긴 시간이 할당되어 있는 반면에, 가장 치밀해야 할  심리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스펜서가 자신이 복제된 인간으로 외계인의 스파이인지, 아니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명백백한 인간 스펜서 올햄인지를 혼란스러워하는 가작 극적인 내면적 갈등을 이 작품에서 그다지 발견할 수가 없다. 이 점에 있어선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1982)'이나 '토탈 리콜(폴 버호벤, 1989)'에 크게 뒤떨어진다. 같은 해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티븐 스필버그, 2002)'가 유의미한 사유점을 살리면서도 성공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로 완성했음을 감안하자면 더더욱 비교가 된다. 흔히 필립 K.딕의 매력은 서술력의 탁월함보다는 화두(話頭)의 탁월함으로 이해된다. 과학기술과 인간윤리의 딜레마 사이에서 그가 던졌던 철학적 의문은 반 세기가 지난 오늘날 더 큰 울림이 되어 공명하고 있다. 

(2003년 12월)

 

(註1) 나레이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파 별, 센토이. 센토이와 항상 전쟁을 하진 않았지만 그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첫 침공 이후 6년이 지난 2050년 우린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늘도 잃었고, 지구를 보호하던 전자 보호돔도 파괴되면서 적 공격에 더욱 치명타를 입었다. 무방비 상태의 도시들을 잃었으나, 정부는 그걸 망각했다. 우리 세계를 지탱하던 민주주의를 잃었다. 센토이와 더 이상의 평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건 그들 목표가 평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표는 지구였다. 결국 지구는 무제한의 전쟁터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장난감 로켓을 만들곤 했다. 나는 우주를 개척하고 신세계를 발견하고 싶었다. 나는 센토이를 본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능력에서 유전적으로 우월했고, 우릴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게 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장난감 로켓을 만드는 걸 그만뒀다.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에 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구원자를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마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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