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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바비큐 구출 대작전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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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는 유용한 가축이다. 먹이는 주는대로 뭐든 잘 먹으며 분뇨는 퇴비로 사용할 수 있다. 번식력은 끔찍하게도 빠르다. 우리 인간들의 어려운 용어로 돼지는 자본 회수에 용이한 동물이라 정의된다. 가축 중 도체율이 가장 높은 것 또한 돼지다. 도체율이란 도살 전 무게에 대한 도살 후 무게의 비율을 말한다. 역시 우리 인간들의 어려운 용어로 돼지는 단위 사료 소비량에 비해 단위 체중 증가량이 탁월한 동물이라 정의된다. 심지어 돼지는 뚱뚱하고 둔한 아이들을 놀리는데 적격인 이름으로 그 쓸모를 자랑하기도 하였다. 고기는 또 어떤가. ‘돼지’는 이미 ‘고기’라는 말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동물이다. 우리는 돼지의 다릿살, 안심, 등심, 삼겹살, 볼기살, 채끝살, 항정살을 먹는다. 물론 머릿고기와 족발도 먹는다. 구위도 먹고 쪄서도 먹고 튀겨서도 먹고 찌개를 끓여서도 먹고 순대를 만들어도 먹는다.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을 제외한 농장의 다른 모든 돼지들이 식용이었던 까닭 또한 여기에 있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돼지에는 또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돼지의 네 다리에 줄을 묶고 사방으로 당겨 찢어 죽이려는 행위에는 우리 마을에 자리 잡으려는 군부대를 원천 저지하려는 깊은 평화의 염원이 담겨있다. 군부대가 자리 잡으면 정말 선하고 제일 순수하고 최고 순박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우리 마을은 저 바닥의 새끼돼지처럼 갈래 갈래 찢어져 널부러지고야 말 것이다. 이 참을 수 없는 폭력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새끼 돼지를 네 방향에서 잡아당겨 찢었다. 자본 회수의 관점이나 도체율의 관점은 물론, 나아가 평화를 사랑하고 내 고장을 사랑하는 결연한 마음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가장 적합한 동물도 돼지인 것이다. 이로써 3관왕, 얄짤없는 3관왕이다. 이만수처럼 안현수처럼 고승덕처럼 3관왕이다. 정말 돼지만한 가축도 드물다. 그들의 쓸모있음을 소리높여 찬양하자.


  일곱살 김유석(Kim, You Suck)은 쓰던 기사를 멈추고 안경을 벗었다. 어쩐지 눈이 더 침침해오는 것 같았다. 검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빙빙 돌려 문지르며 과연 어떻게해야 이 사태를 멈출 수 있는지 차근차근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시간의 시작은 지난 2월. 우리 동네 안보리에 미군부대가 이전 오기로 결정되면서 논란은 시작되었다. 결정에 관여할 수는 없었고 결정을 통보만 받은 안보리 주민들은 서둘러 ‘안보리범주민대책회의’라는 것을 조직했다. 의식 있고 의지 있는 주민들에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것을 종용하고, 의식 없고 의지 없는 주민이라도 밥 주고 간식도 줄테니 가급적 참여하기를 권장하는 호소문이 마을 곳곳에 뿌려졌다. 이장 아저씨는 이례적으로 마이크 테스트(보통은 이런 식이다 - "아아, 하나 둘, 하나 둘, 청추운을 돌려다요")조차 생략한 긴급 대주민 담화를 긴급 시행했다. 최선을 다해 말로 설득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최선을 다해 물리력으로 막아내고, 그래도 안되면 최선을 다해 드러눕자는 내용의 진지하고 결연한 내용이었다. 이처럼 안보리 사람들이 미군 부대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는 군부대는 위험하고 무섭다는 것. 둘째는 군부대는 시끄럽다는 것. 셋째는 군부대는 시끄러워질 잠재적 요소(환경 오염 및 부대 인근 군특수 상권 형성 등)가 다분하다는 것. 물론 이같은 이유가 너무 유치해 보인다는 주장도 있었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정답이고 정곡이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첫 집회에는 87명이 참가했다. 우리 안보리 주민들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였고 나름 진지한 항의였다. 하지만 관계자들에겐 결국 '복날 개 짖는 소리'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안보리범주민대책회의’에서는 조금 더 강한 어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심지어 처음엔 시위 자체에 반대했던 온건파들조차 소리 높여 지도부의 결단을 요구했을 정도였다. "이게 다 우리가 우습게 보여섭니다" 라고 주장한 것은 청년회장 강건신(Gang, Gun Sin) 아저씨였다. 이장보다 열두살 어린 강씨 아저씨가 차기 이장 자리를 노린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자신의 입지를 굳힐 절호의 찬스로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나이 많고 결단력이 없는 이장에 비해 과감하고 행동력 만땅인 모습으로 젊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를 원했을 것이다. 명실상부한 ‘강건신 라인’으로 통하는 청년회 미화부장 최돈호(Choi, Don-Hoe) 아저씨가 그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금처럼 해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시위 한두번 하지만 쟤들은 시위 한두번 본답니까?" 젊은 축들을 중심으로 동조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맞습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통하지도 않을 겁니다." “강력한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세상 천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새롭고 강력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언론의 이목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끼 돼지를 네 방향에서 당겨 산 채로 찢어 죽이는 퍼포먼스는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다. 과연 어른들이 말하는 '참신함'에 부합하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제안한 사람마저 자기가 말해놓고도 흠칫 놀랄 정도였으니 '강력함'에 있어서야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돼지인가. 그것은 우리 안보리만의 고유한 지역색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안보리의 절반이 넘는 가구가 바로 양돈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논리가 되겠다. 

① 안보리는 실상 돼지로 먹고 사는 마을이다. 
② 돼지가 우리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③ 그만큼 소중한 돼지의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것은 우리 마을의 결연한 의지와 다름이 아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말이 되지 않는 소인가. 말이 소인가, 소가 말인가. 그런데, 왜 말도 소도 아닌 돼지가 희생되어야 하나. 



*



  그렇게 한 마리의 새끼 돼지는 졸지에 비명 횡사하는 운명을 맞고야 말았다. 6월 30일. 두번째 집회에서의 일이다. 당시 어른들은 동네 아이들이 절대 바깥에 나오지 못하도록 광에 몰아 넣고 밖에서 문을 잠궈버렸다. 돼지의 자식은 찢어 죽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 자식만큼은 그 광경조차 봐선 좋을 것이 없다고 여긴 '인간 어른'들의 깊은 배려였다. 어른들 소망대로 현장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득실거렸다고 들었다. 특별 선발된 힘 좋은 장정들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줄을 당기는 동안, 네 다리가 각각의 줄에 묶인 새끼 돼지 ‘알렉스’는 필사적으로 온 몸을 비틀어 저항했다고 한다. '꽥', 이나 '꽤액', 혹은 '깩깩'에 해당할 높고 거친 울음소리에 몇몇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이 보고 말해준 얘기다. "공중에서 폭죽 터지듯 뻥 하고 터졌다니까" 따위의 과장이나 "완전 피바다였어" 따위의 조악한 묘사도 잊지 않았다. 동네 고딩 형들 수준이 그렇다. 어릴 때는 꽤 똑똑했다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 수록 둔하고 멍청해지는 것은 안보리 사람들의 고질병이다. 성장판과 함께 사고력도 닫히는 것이 우리 마을 아이들의 운명이다. “너희도 지금은 똑똑하지만 멀지 않았다. 길어야 십년 안에 저 형들처럼 될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꺼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우리들이다. 


  그건 그렇고, 참, 새끼 돼지 ‘알렉스’. 


  불쌍한 ‘알렉스’는 동덕희(Dong, Duck-Hee)네 돼지다. 안보리에 통통한 새끼 돼지는 집집마다 있는데 왜 하필 더희네 돼지가 제물이 되었는지는 미스테리한 일이다. 어떤 어른도 속 시원하게 그 점에 대하여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무작위 추첨의 결과라고는 하는데, 어떤 어른도 그런 식의 독박을 용납하진 않을 것이다. 어른들 사회의 생리가 그렇지 않은다. 우리 중 몇몇은 덕희 아버지가 ‘안보리범주민대책회의’로부터 돼지 값 외에도 얼마 더 얹어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을 했다. 물론 덕희는 그럴리 없다며 펄쩍 뛰었다. 덕희가 ‘알렉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았기에 아이들은 더이상 입을 놀리지 않았다. 문제의 퍼포먼스 이후 집회까지 끝난 다음에야 우리 아이들은 풀려났다. 득달같이 현장으로 달려간 덕희는 아직 검붉은 자국이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아스팔트 위에서 오열했다. 덕희네 아버지가 "저 새낀 내가 죽어도 저리 설피 울진 않을껴"라고 궁시렁거리건 말건, 서럽게 땅을 치면서 곡을 했다. 덕희는 그 모든 게 순전히 자기 탓이라고 했다. 남의 집 돼지들처럼 흔하고 막된 이름을 지어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괜히 멋지게 ‘알렉스’라고 붙였다가 사단이 났다는 것이다. 돼지들에게 ‘똥똥이 원’, ‘똥똥이 투’, ‘똥똥이 쓰리’, ‘똥똥이 포’, ‘똥똥이 파이브’란 이름을 지어줬던 3통 2반 유소민(You, So Mean)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애꿎은 ‘알렉스’가 졸지에 네 조각인지 여덟 조각인지가 되었지만 관계 당국에서는 ‘안보리범주민대책회의'의 항의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하여간 철없는 어른들이다. 이에 ‘안보리범주민대책회의’에서는 내일 오후로 계획된 시위에서 한 마리의 새끼돼지를 더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다. 만만치 않게 철없는 어른들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코 돼지를 한 마리 더 찢어 죽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렇다. 백번 양보해 한번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이미 안 먹히는 게 입증된 충격 요법을 다시 반복하여 무의미한 희생을 반복한다는 것은 영구, 맹구, 그리고 땡칠이도 하지 않을 짓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을 회의에서 압도적 가결로 통과된 내용이다. "한번 더 찢자!"는 함성이 서라운드로 마을 회관을 메아리쳤다. 순간 일곱살 김유석은 장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불쌍한 돼지 하나 더 찢어죽인다고 꿈쩍도 않던 관계 등국이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 돼지는 과연 누구의 돼지이며 누구의 피와 살인가. 돼지가 우리 마을을 먹여 살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가. 모두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 광증은 전염되는군. 
  일곱살 김유석의 옆에서 여섯살 박유범(Park, You Bum)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 형님, 난 폭력에 맞서기 위해 이렇게 폭력을 행하고야마는 어른들의 모습이 슬프다. 
- 그러니 불통이 더 큰 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다음 제물을 누구네 돼지로 할지 열띤 논의를 시작하였다. 다 큰 돼지 아닌 새끼 돼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찢기 손쉬워서가 아니다. 종돈(種豚)은 목숨과도 같은 종돈이고, 그 밖의 다 큰 돼지는 팔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또한 인간 어른들의 비정한 논리다. 엄숙하게 회전 다트판이 무대로 옮겨졌다. 직경이 무려 1미터 50센티에 이르는, 우리 안보리의 중대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애용되는 물건이다. 마을 내 태어난지 10개월이 되지 않은 새끼 돼지 일흔두마리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졌다. 이장님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 어깨를 풀었다. 모든 것이 '원 샷 원 킬'로 결판나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다. "돌려라! 돌려라!" 모두의 합창 속에 다트판이 돌려졌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운명의 그 곳을 향해 단 한 발의 핀이 날아갔다. 퍽. 꽂혔다. 꿀꺽. 침을 삼켰다. 청년회장이 다가가 여전히 돌고 있는 다트판을 확인한 뒤 엄숙하게 선언했다. 
- 영예의 당첨은 ‘바비큐’에게 돌아갔습니다! 
  ‘바비큐.’ 여섯살 박유범이네 돼지다. 영예의 당첨은 개뿔. 


*


  여섯살 박유범이네는 본디 새끼돼지가 스물두마리나 있었다. 양돈 농가 치고는 결코 많은 수가 아니지만 그래도 세마리 남은 지금에 비하자면 지극히 황송한 수준. 이는 순전히 급전이 필요했던 유범이 아버지가 야금야금 팔아치우다보니 벌어진 사단이다. ‘바비큐’는 그 남은 세마리 중 하나인데, 돼지 바베큐를 염두에 두고 언젠가 잡아먹을 생각으로 지어낸 이름은 아니다. 덕희네 ‘알렉스’에게 자극받은 유범이가 "우리 돼지에게도 멋들어진 양놈이름을 붙여주겠다"며 고심 끝에 결정한 퍼스트네임 '바브'에 미들네임 E와 (여기서 E는 Edward이다) 라스트네임 큐(Cue)가 결합하여 완성된 이름이다. 바브 E. 큐 (Barb E. Cue). 즉, 다시 말하자면 큐씨 가문의 나머지 열 아홉 마리는 (레디 큐부터 수지 큐까지) 모두 시장통에서 현찰 박치기로 거래되어 유범이네 아버지의 도박 밑천이 되었다는 뜻이다. 여섯살 박유범은 일곱살 김유석을 찾아와 분통을 터뜨렸다. 
- 형님, 이게 뭐랍니까. 왜 우리 ‘바비큐’가 개죽음을 당해야 하느냐고요. 
-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지역 신문에 보낼 특집 기사를 다듬고 있었다. 
  그러나 유범이는 코웃음을 친다. 
- 요새 누가 신문을 읽는답니까. 그리고 내일 오후면 ‘바비큐’는 장조림이 되어있을텐데. 
- 장조림이라니? 갈가리 찢길텐데 오히려 떡국 고명에 가깝겠지. 확실히 이름 잘못 지어줬단 생각은 안드나? 
- 그렇고 보니 그렇습디다. 발음이 요리처럼 들리는 이름은 빼고 갔어야 했어요. 아파트도 4층은 돌려 말하잖습니까. 


  마침 덕희가 도착했다. 동덕희도 여섯살이다. 정신 나간 어른들의 시위 퍼포먼스 탓에 ‘알렉스’를 잃어야했던 덕희는 유범이의 아픔에 가장 깊이 공감해줄 수 있는 아이였다. 물불 가리지 않고 ‘바비큐’를 구하러 나서겠다고 유범이가 선언했을 때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것도 그래서 덕희였다. 그래서 이렇게 셋이 뭉쳤다. 일곱살 김유석, 여섯살 박유범, 여섯살 동덕희.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비큐’를 구해내겠다고 결의했다. 
- 형님, 난 말입니다. 나라에서 꼭 이전시키겠다는 부대를 우리가 꼭 막아야하나 싶습니다.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 부대 이전으로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봐야 멀쩡한 아기 돼지가 백주대낮에 대로에서 열거형을 당하기야 하겠습니까. 
- 그건 모르는 일이다만, 네 말이 일리가 있다. 엄정한 항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다. 
  셋은 세부 계획을 논하기 시작했다. ‘바비큐’는 안보리 마을 회관 3층 취조실에 묶여있다고 들었는데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물샐틈 없는 청년회의 경비요 둘째는 레이져 동작 감지 센서다. 안보리처럼 시골의 작은 마을에 왜 취조실씩이나 필요한지, 레이져 동작 감지 센서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또한 아이들로는 알 수 없는 어른들 세계의 비밀이었다. 다만 아이들은 알았다. 

ⓐ 취조실 문을 연다. 
ⓑ ‘바비큐’를 꺼낸다. 
ⓒ 취조실 문을 닫는다. 

  결코 이런 식으로는 전개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세대답게 아이들은 계획을 조금 더 극적으로 다듬었다. 

ⓐ 취조실 환기구 배관을 타고 들어간다. 
ⓑ 루바 창을 분해하고 줄을 타고 내려와 ‘바비큐’를 끌어올린다. 
ⓒ ‘바비큐’를 안고 줄을 타고 올라와 다시 취조실 환기구 배관을 통해 빠져나간다. 


  일곱살 김유석은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 결론은 간단하다. 몸에 줄을 매고 내려가는 거다. 

- 형님, 그런데 그거 안전합니까? 

- 너희 ‘바비큐’가 떡국 올라갈 돼지고기 고명처럼 찢어지게 생겼는데 지금 너희 안전 따지고 있는 거야? 

-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떡국 고명은 소고기 아닙니까?

- 나도 모르겠다. 그런가?

- 아무튼 일단 넘어갑시다. 만약 성공했다고 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하죠? 

- 어차피 어른들은 어느 돼지가 어느 돼진지 잘 모른다. 우리처럼 아기 돼지 얼굴만보고는 구분 못한다. 전자 네임택을 바꿔치기하면 걔가 ‘바비큐’인지 ‘알렉스’인지 ‘마돈나’인지 ‘똥똥이 쓰리’인지 ‘스티브’인지 아무도 모를거다. 유범이 너는 적당한 이름 하나 생각해둬라. 그 이름에 맞춰 덕희는 ‘바비큐’에게 새로 전자 네임택을 심어주고, 그 사이 나는 '안보리 양돈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여 이름을 고쳐놓겠다. 

- 역시 형님이십니다. 유범이 너 혹시 생각해둔 이름이라도 있나?

-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윌버’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붙여줄 거다. 

  일곱살 김유석이 키득거렸다. 

- 그러면 유범이 너는 이름을 ‘샬롯’이라고 바꾸면 되겠다. 샬롯과 윌버. 잘 어울린다.

- 놀리지 마라. 음... 그러면 ‘티파니’로 하면 어떨까 싶다.

- 그거 괜찮다. 어쩐지 고급스럽다.


*


  일곱살 김유석, 여섯살 박유범, 여섯살 동덕희. 이들은 지금 마을회관 3층과 4층의 사이에 있다. 3층도 아니고 4층도 아닌 그 사이인 까닭은 환기구 배관을 통해 움직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리고 몸이 작은 그들이 기어가기에도 공간은 너무 답답하고 좁았다. 일곱살 김유석은 재빠르게 넷북을 다다닥 두드렸다. 

- 여기다. 지도에 의하면 바로 여기가 취조실 바로 위다. 

  유범이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루바창의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 아무도 없다. 저기 ‘바비큐,’ 아니 ‘티파니’다. 

- 아니, 유범아, 저기 느이 돼지있다. 

  유범이가 벌떡 일어나려다 머리를 찧었다. 아이쿠. 

- 쉿! 조용히해라. 걸리면 야단난다. 유범이는 빨리 허리에 밧줄부터 묶어라.

 

  ‘바비큐,’ 혹은 ‘티파니’를 다시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유범이는 막상 떨리는 모양이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보다 못한 덕희가 목소리를 낮춰 타박을 주었다. 

- 야! 느이 돼지 구할 거야? 말 거아? 

- 내려간다. 내려가. 일단 ‘바비큐,’ 아니 ‘티파니’는 살려놓고 보자. 

 

  심호흡을 하더니만 유범이가 자기 허리에 줄을 묶었다. 덕희가 솜씨 좋게 재빠르게 루바창을 분해했다. 유석이는 넷북의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유석이가 엔터키를 누르자 안보리 마을회관은 순간 정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유범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허리에 줄을 묶고 주르륵 아래로 내려갔다. 만약에 대비해 덕희는 배관 바닥에 엎드려 새총을 취조실 문쪽으로 거누었다. 일곱살 김유석, 여섯살 박유범, 여섯살 동덕희. 드디어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바비큐 구출 대작전? 티파니 구출 대작전? 아무튼 구출 대작전.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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