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팩스 (K-Pax, 2001) B평

  우주는 팽창하고 붕괴하고 다시 팽창하며 결국 다시 붕괴한다. 프롯(케빈 스페이시)은 지구 세상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자기가 케이팩스라는 지구에서 1천 광년 떨어진 미지 행성에서 왔다고 믿는 뉴욕 한복판의 이 남자는 일상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세상의 정확하고 건강한 좌표를 일깨워 준다. 그가 과대망상증에 걸렸다고 믿던 정신과 의사 마크(제프 브리지스) 마저도 그의 유쾌한 낙천성에 서서히 동화되어가고 그로부터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냐는 것이 아니다. ‘정말’ 리트머스 시험지냐는 것도 아니다. 이 시험지에 반응하여 나오는 가시적 결과다. 따라서 프롯이 외계인이냐의 여부와 캐이팩스의 실존 여부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어느 별에나 가장 자연스러운 개체의 모습이 있고 지구에서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기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다는 프롯의 고백은 (진짜든 가짜든) 외계인을 다룬 영화 역사상 가장 번뜩이는 재치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영리하고 세심한 수식에 기반한 인간적 연결(Connection)에 대한 강조는 보다 객관적이고 보다 낙관적이며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선물해준다.

(200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