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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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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델리아 오웬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18)’ 원작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노학자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설명에 호기심이 일었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에 이어 제 2의 베스트셀러 조작단으로 명성이 드높은 리즈 위더스푼이 강력 추천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대에 부합했던 부분은 아름다운 습지 자연에 대한 묘사와 야생에 고립된 주인공 카야의 성장 이야기, 그리고 머더 미스터리로의 적절한 구성이었다. 반면 다소 의외였던 부분은 뜻밖에 도사리고 있는 서던 고딕의 기운. 그리고 꽤나 당황스러웠던 몇몇 장면의 구체적 묘사 때문이었다 (역시 필력은 할머니들이?) 지하철에서 읽다가 얼굴이 붉어져 황급히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이윽고 몇 년이 흘렀고 (무릇 베스트셀러 조작단의 다음 임무는 대개 박스오피스 조작단이기 마련이고, 리즈 "헬로 선샤인” 위더스푼이 이걸 그냥 지나갈 리 없으므로) 정해진 수순처럼 영화화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공 카야 역에 데이지 에드가-존스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그녀가 스타덤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던 미니시리즈 ‘노말 피플 (BBC/Hulu, 2020)’이 남긴 스트레스와 심리적 내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먼저 과연 60년대 노스캐롤라이나 시골 여자애가 저런 코와 저런 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거의 모든 배우가 남부 악센트를 구사하는 이 작품에서 그녀 혼자 영국 악센트를 간신히 드러내지 않는 정도에 만족하는 점도 이질감을 키운다. 사실 원작의 ‘마쉬 걸’ 카야는 이렇게 말끔하고 도회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카야는 단지 조금 더러운 옷에 맨발로 다닐 뿐 그냥 평범한 여자애처럼 보인다. 이런 부분은 지극히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이 캐릭터의 독창성이 희석되어버린 원인일 수도 있다. 그녀가 마을 사람들에게 왜 배척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홀로 야생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웠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땅히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야 하는 외로움의 정서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홀로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과 동물적 생존 전략을 체득한 과정은 거의 희미해지고 예쁘게 꾸민 오두막에 살며 동물과 식물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소녀의 모습과 두 동네 남자아이와의 엇갈린 사연만을 남긴 이 필름 어댑테이션은 충분하지가 않다. 전반적으로 조금 더 어두운 분위기였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특히 중반부 영 어덜트 모드로 넘어간 이후에는 간혹 소꿉장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물론 그런 점을 제외하면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소설과 영화 사이의 이식 프로세스를 감안하면 소설의 내용을 재배열한 점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선택이다. 그리고 (기이할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는 카야의 머릿결만큼이나)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게 되는 법정 장면도 머더 미스터리의 클라이맥스로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원작의 의도 역시 정확하게 전달한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 밀턴 변호사 역할을 맡은 노배우 데이비드 스트라세언의 관록이 정말 멋지다. 습지 자연을 화면에 담아내는 방식 역시 시각적 다양함이나 압도적인 위압감은 부족하지만 빛과 어둠을 적절히 활용한 영상미가 상당히 아름답다. 원작이 그러하였듯, 영화 역시 여름 시즌 박스오피스에서 3위로 데뷔하며 14주간 순행하며 북미 9천만 달러라는 예상 밖의 깜짝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다시 한번 '헬로 선샤인' 조작단이 위엄을 자랑하는 이 순간, 아이러니한 것은 영화의 흥행이 불러낸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였던 작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양아들이 1995년 잠비아에서 코끼리 밀렵꾼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각종 위법 행위가 동원되었고, 끝내 그들의 작전 중 살인 사건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2010년 The New Yorker 지의 기사로 자세히 세상에 알려졌다 (註1). 그리고 2018년 원작 소설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던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무래도 ‘#1 New York Times Bestseller’라는 책표지 상단 문구의 무게보다 ‘Now a Major Motion Picture’라는 스티커의 무게가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흥행 영화의 원작자'라는 더 높은 지위를 얻게 된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해당 사건에 대하여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며 아는 바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재 그녀와 이혼한) 전 남편과 그녀의 양아들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였다고 알려졌다. 최근 출판된 The Atlantic 지의 후속 기사에 따르면 잠비아 경찰 당국은 아직 수사를 완결한 적이 없으며 작가가 주요 증인으로 질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확인해주었다고 한다 (註).

 

(2022년 11월)

 

(註1) "The Hunted," Jeffrey Goldberg, The New Yorker, March 29, 2010.

(註2) "Where the Crawdads Sing Author Wanted for Questioning in Murder," Jeffrey Goldberg, The Atlantic, July 12, 2022 [주의: 이 기사는 원작 및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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