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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 (The Greatest Beer Run Ever,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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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현실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다. 다만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 정말 영화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는 한 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가령 피터 패럴리의 신작인 ‘사상 최대의 맥주 배달 작전’이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동네 친구들에게 미국 맥주 한 캔씩을 건네기 위해 전쟁터로 숨어 들어간 뉴욕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왜? 국가를 위한 희생과 노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어떻게? (이 부분이 기가 막히는데) 그냥 충동적으로 결심하고 무작정 실행에 옮긴 것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특별한 계획이 없었음에도 어떻게든 풀려간다는 사실이다. 전쟁 중인 베트남으로 걸어 들어가고 동네 친구들이 복무하는 부대를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트럭도 얻어 타고 헬기도 얻어 탄다. 그 시점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는 곳에도 다녀온다. 마지막 베트남을 빠져나올 때 정도를 제외하면 비교적 순조롭게 뉴욕으로 돌아왔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시절에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혹은 그 시절이어서 그게 가능했을까? ’그린 북(피터 패럴리, 2018)’의 영광 이후 실화 탐사대로 다시 태어난 감독조차도 믿기 힘들다고 했다. 이 기막힌 이야기의 주인공 존 “치키” 도너휴를 연기한 잭 애프론도 믿기 힘들다고 했다. 감독과 주연이 모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결국 영화로 만든 것 또한 실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 하겠다. 


  단조로운 구성이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것과는 별개로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의 코미디가 대부분 불발탄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곳곳에서 묘하게 핀트가 빗나가고 박자가 어긋난다. 의아하다. 사실 전쟁을 소재로 한 코미디는 어지간해서는 실패할 수가 없는 조합이다. 엉뚱한 캐릭터와 황당무계한 모험의 조합도 딱 맞아 떨어지는 재료다. 충동적으로 맥주를 싸들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모습도, 전쟁터에서 동네 친구를 찾아 맥주를 건네주는 행동도, 설마 그런 이유로 베트남을 돌아다니는 민간인이 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빚어지는 커뮤니케이션 에러도 마땅히 우스워야 한다. 재미있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충분하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김이 빠져있다. 그렇다면 결국 원인은 주인공 치키의 캐릭터와 이 작품의 메시지 사이의 유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시 말해 이 대단한 작전을 감행한 치키의 동기는 너무 모호하거나 혹은 너무 구체적이다. 가만히 따져보면 그는 베트남전에 분명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반전 운동에 나서는 여동생과 대립하기도 한다. 그는 아버지 세대의 미국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며 친구들에게 미국 맥주를 갖다 준다는 무모한 행동의 근거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너희들의 뒤에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려고.) 또한 그는 군 복무 경험이 있으며 친구들의 참전을 독려했던 일 때문에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험의 성격에 비해 의외로 주장과 의견도 확실하고 어느 정도 신념과 판단력도 지녔다. 심지어 이 작전 중 전쟁의 참혹함을 맞닥뜨리며 종래에는 “베트남전이 이전까지 미국이 개입했던 다른 전쟁들과는 다르다”는 사실도 깨달을 능력도 있다. 그러니까 (조금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정신 나간 모험을 정당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는 캐릭터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만에 하나 그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모델로 하지 않은 가공의 캐릭터였다고 한다면 누구도 이런 상태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가령 희화화된 극단적인 반공주의자이자 방구석 군사 전문가로 무서운 소명 의식을 갖고 맥주 배달에 나선다거나 완전 반대로 극단적으로 순박한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로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해 맥주 배달에 나선다거나 (뭐 하긴 둘 다여도 상관없다) 하는 식이어야 그나마 이 스토리라인이 공감을 얻고 비로소 코미디가 동작하기 시작했을 듯하다. 이것이 잭 애프론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의 짐 캐리나 제프 다니엘스가 그 역할을 연기한다고 상상해보면 뭔가 크게 다른 느낌이다. 


  사실 피터 패럴리의 초기 커리어는 동생과 함께 연출한 코미디 영화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바보 코미디의 비중이 상당했다. (짐 캐리나 제프 다니엘스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덤 앤 더머(패럴리 형제, 1994),’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패럴리 형제, 1998).’ ‘미, 마이셀프 앤 아이린 (패럴리 형제, 2000),’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2001),’ ’스턱 온 유 (패럴리 형제, 2003),’ ‘바보 삼총사 (패럴리 형제, 2012),’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덤 앤 더머 투 (패럴리 형제, 2014)’ 까지. 그 시절 동생쪽이 웃음 담당이었거나 어느 형제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법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패럴리와 같은 베테랑이 시종 코미디 뇌관을 찾지 못하는 것도 뜻밖이다. 어쩌면 아이티인, 아니 뉴질랜드인이 다시 한 번 다른 이들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작품의 운마저 억제하는 널리파이어(러셀 크-립토나이트?)로 특유의 거북스러운 슈퍼파워를 발휘했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들지만, 뭐 증거는 없다 (註1)

 

(2022년 10월)

 

(註1) TV 시리즈 'Heroes (NBC, 2006~2010)'에서 아이티인이라는 캐릭터는 주위에 있는 다른 히어로의 능력을 무력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여러 슈퍼히어로 코믹스에도 이런 유행의 캐릭터나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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