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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폴리스맨 (My Policeman,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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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발표된 베이선 로버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마이클 그랜디지의 두 번째 영화 ‘마이 폴리스맨’은 1990년대와 1950년대의 영국 브라이턴을 오가며 세 남녀의 특별한 인연을 조명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딘 마틴의 노래 ‘Memories Are Made of This (1955)’ 내용처럼 한 소년과 한 소녀가 남편과 아내가 되었지만, 사실 이들의 기억 속에는 자리가 하나 더 있다. 


  1957년 브라이턴. 경찰관 톰(해리 스타일스), 박물관 큐레이터 패트릭(데이비드 도슨), 그리고 교사 매리언(엠마 코린)은 흔한 청춘 연애소설의 한 대목처럼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아주 잘 어울리는 3인조이지만 (여느 러브 트라이앵글이 그러하듯이) 영원히 그 순간을 유지할 수는 없다. 흔히 그러하듯 홍일점인 매리언을 두고 갈등이 빚어질 것 같으나, 뜻밖에 이 작품에서의 엘리자베스 베넷은 '나의 경찰관'이 되시겠다. 그는 패트릭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결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매리언과 결혼한다. 사회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위한 선택이다. (영국에서 동성애는 1967년까지 불법이었고 더구나 그는 사회 질서 유지 및 풍기 단속의 임무가 있는 경찰관이었다.) 자연히 톰과 매리언의 결혼은 행복한 결혼생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혼 이후에도 톰과 패트릭의 만남은 지속되고 결국 비밀스러운 관계가 드러나며 세 사람 모두의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사실 이 작품은 1957년이 아닌 그로부터 약 40여년 이후인 현재(1990년대)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다. 메리언(지나 맥키)은 남편 톰(라이너스 로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쇠약해진 패트릭(루퍼트 에버트)을 찾아 데려와 자신들의 집에 머물게 한다. 이제 패트릭은 의사소통조차 자유롭지 않다. 톰은 패트릭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여기며 말 한마디 건네지도 않는다. 이 두 남자를 지켜보는 매리언이 사실 내러티브의 주체다. 플래시백을 통해 1957년 이후 몇 년 동안의 사건들로 연결되는 과정 또한 그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설정은 다분히 문학적이고 어떻게보면 연극적이기도 하다. 약 4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시간대가 병렬을 이루며 여섯 배우가 세 인물의 청년기와 노년기 사이를 각각 나누어 연기한다. 현재(1990년대)는 과거를 돌아보고 속죄하기 위한 추가 시간이고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과거(1950년대)가 정작 이 이야기의 주요 사건이 집중되는 무대이다. 세 인물의 경찰관, 박물관 큐레이터,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적 성격 또한 이미 각자의 배경과 상이한 관점을 드러내는 설정이다. 한 남자는 커스토디안 헬멧에 푸른 제복을 입고 사회를 단속하는 직업을 가졌다. 다른 한 남자는 정장에 베스트를 받쳐 입고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향유하며 대중에 전파하는 직업을 가졌다. 한 남자와 결혼한 (그리고 다른 한 남자와 친구이기도 한) 여자는 지적 호기심은 왕성하지만 평범하고 보수적인 학교 선생이다. 억압적이었던 시대의 짓눌린 공기는 브라이턴의 무채색 풍경과 영국 해안 지역 특유의 흐린 날씨에도 드러나 있다. 과거(1950년대)에서 밝고 화창한 날씨는 단 두 번 등장한다. 초반부 군 복무를 마치고 경찰관이 되어 브리스턴으로 돌아온 톰이 매리언과 만나는 바닷가 장면. 그리고 결혼한 톰과 패트릭이 이탈리아 출장을 핑계로 베니스에서 (그래서 날씨가 좋을 수 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비밀스러운 일탈을 벌이는 장면.

 

  다만 마냥 가슴 아픈 이야기로만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의 어려움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느냐만은 그 외에는 공감할만한 근거가 별로 제공되지 않는다. 법의 테두리를 논하기 이전에 도덕의 영역도 있지 않은가. 매리언과의 결혼을 이용하며 두 남자가 이중 생활을 합리화하는 행동은 무책임하게 보인다. 그들의 무모한 행동을 납득할만한 충분한 근거나 세밀한 논리적 흐름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필름 어댑테이션을 위해 내용을 추리는 과정에서 세부적인 정보들이 어느 정도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듯 하다. 이러한 문제는 40여 년의 간격을 둔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다시 청년기 인물들과 노년기 인물들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문제를 야기한다. 여섯 배우들은 비교적 각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만 (이 라인업에서의 ‘와우 팩터’는 데이비드 도슨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 팝의 슈퍼노바, 아니 슈퍼스타 해리 스타일스의 연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물론 있는 그대로도 ‘잇-보이’로의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대 위에서의 폭발적 매력과는 전혀 다른 무색무취의 모습으로 일관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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