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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vs 빌리 홀리데이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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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앞서 그 사운드트랙을 먼저 접하는 것은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과거를 기억해보면 영화를 보고 음악이 마음에 들면 비로소 음반가게에 가서 사운드트랙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하지만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의 일반화로 이제는 영화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바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심지어 영화에 속해있는 부분으로 기능하는 속성마저 희석된 느낌이다. 다만 이렇게 사운드트랙을 먼저 접하는 경우, 영화에 대한 인상 일부까지 미리 결정되어 버리는 현상이 동반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효과는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주 드물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확률도 역시 존재한다. 바로 리 다니엘스의 신작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vs 빌리 홀리데이’와 같은 사례가 그렇다. 앤드라 데이가 재능있는 가수라는 점을 누가 부정하겠느냐만은 그녀가 부른 빌리 홀리데이 노래로 채워진 사운드트랙은 분명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단지 빌리 홀리데이라는 높은 기준 때문만은 아니라 고유의 창법이나 음색을 모사하는 부분에서의 다소 작위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앞서 전기 영화 ‘Lady Sings the Blues(시드니 J. 퓨리, 1972)’에서의 다이애나 로스와 최근 연극 ‘Lady Day at Emerson's Bar and Grill’에서 오드라 맥도날드가 이 어려운 미션을 훌륭하게 성공시켰음을 복기하면 더욱 그러하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뚜렷한 연기 커리어가 없다시피 한 그녀가 정작 노래보다 연기쪽에서 더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 조 샐다나가 니나 시몬으로 분하며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알차게 말아먹은 사례를 기억하면 (물론 프로덕션 과정에서의 불운이 겹치긴 했지만) 이건 꽤 놀라운 일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작품이 단순한 전기 영화로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을 조명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가수로의 완벽함보다 인간으로는 완벽하지 않음에 배점이 높은 이 난이도 있는 미션 앞에서 (누구 말마따나 빌리 홀리데이가 경험한 일은 역사상 어떤 대중 가수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크되 작으며 강하면서도 연약한 존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기에 이 84년생 R&B 가수는 그저 의아한 선택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 예상은 보기좋게 틀렸다. 앤드라 데이는 자신의 예명을 따온 ‘레이디 데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스크린 위에서 재현하는데 성공하였고 어느 유명 배우 못지 않게 충분히 한 편의 작품을 이끌어 갈 동력과 에너지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오히려 이 작품의 약점은 막연히 변수처럼 보였던 그녀가 아니라, 온전한 상수라고 생각했던 다른 곳들에서 (물론 리 다니엘스의 연출과 수잔-로리 파크스의 스크린플레이를 포함한) 터져나왔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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