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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리어 (The Courier, 2020)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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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작 이해 당사자인 3국의 정보 기관은 당시 이 남자를 ‘스파이’로 보아야할지 아니면 ‘배달부’ 혹은 ‘배달 파트너(?)’로 보아야 할지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지 모르겠지만) 한국 개봉명을 정한 사람들은 이미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래도 괜찮은 건지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자.

 

  오늘날 냉전 시대 첩보물은 여간해서는 하이-옥탄 스릴러로 완성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물론 냉전이 더이상 유효한 코드가 아니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시대적 변화에 기인한 상대적 체감 속도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어두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며 손에서 손으로 봉투를 전달하는 방문 수령과 대면 접촉의 에피소드들은 이제는 완전히 다른 별에서나 있었던 이야기처럼 들린다. 물론 그런 중에도 서서히 끓어오르는 미덕을 훌륭하게 살린 사례들이 있어 왔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그 방향으로 접근하는데 큰 관심이 없는지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펌핑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거나 어쩌면 최소한으로만 유지한다. 그렇다고 진짜 스파이가 아닌 평범한 민간인 사업가가 얼결에 유사 스파이로 겹벌이에 나선다는 상황을 (분명 상당히 유혹적인 코미디 재료처럼 들린다) 가벼운 톤으로 다룰 생각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지나치게 진지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단조롭다. 레이첼 브로스너한이 미시즈 메이즐의 톤을 버리지 못한 초반 몇 장면을 빼고는 심지어 거슬리는 부분조차 없다.

 

  그런 고집스러운 인내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결실을 맺는다. 당대의 공기를 성공적으로 불어넣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적어도 마지막은 거의 진공 상태에 가깝게 완성되었다. 적절한 무게감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했던 것이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환기와 맞물려 상당한 효과를 본다. 그리고 그 결과 신기하게도 이 유사 스파이 소동은 유사 존 르 카레의 경지에 잠시 근접하는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꼭 이렇게 어려운 경로를 취해야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것이 오늘에 이르러 이런 소재를 품위있게 다루는 몇 가지 남지 않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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