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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워킹 (Chaos Walking,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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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럴 마케팅의 귀재 톰 “스포일러 얼랏” 홀랜드가 주연을 맡은 이 속마음 누설 대소동의 가장 큰 문제는 그다지 정교하지 않아 보이는 설정에 있다. 영 어덜트 사이언스 픽션(YA Sci-Fi)이라는 정체불명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자기들이 구현한 세계에서 자기들이 세운 규칙에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실패한다. 이 작품 역시 생각의 흐름을 외부로 여과없이 누설하는, 소위 ’노이즈’라고 부르는 남성들에게만 나타나는 원인 불명의 증상에 대하여 (오! 분명 그건 증상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명쾌한 설명이나 누구나 납득할만한 원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이상한 규칙이라도 일관되게 준수하기만 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규칙의 범위와 용도를 사건 전개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외까지 두는 치명적인 우를 범한다. (이 작품에서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는 부분은 딱 한 가지다 - 평생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춘기 소년은 주랜더처럼 생긴 소녀를 보고도 즉각 짝사랑의 열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 그 와중에 (누가 영 어덜트 소설 원작이 아니랄까봐) 십대 청소년이 아닌 성인 인물들까지 모두 십대 수준의 지성과 감성을 장착하고 십대 수준의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은 짜증스러움을 넘어 딱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스크린플레이의 초안을 찰리 카우프만이 작업하다가 (정말? 그럴리가?) 갑자기 손을 떼고 여러 다른 작가들의 손을 거쳐 떠돌다가 결국 ‘카오스 워킹’ 트릴로지의 원작 소설가인 패트릭 네스가 직접 나서서 마무리했다는 소문부터가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징조였던 것 같다. (최종 크레디트에도 네임드들은 다 사라지고 네스와 크리스토퍼 포드라는 사람 단 두 사람만이 올라가 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 작품이 더그 라이먼의 신작이라는 점이다. ‘본 아이덴티티(더그 라이먼, 2002),’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더그 라이먼, 2005),’ ‘엣지 오브 투모로우(더그 라이먼, 2014),’ 그리고 ‘아메리칸 메이드(더그 라이먼, 2017)’의 이 노련한 감독은 대략 1억 2천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는 이 블록버스터에서 전에 없던 실책을 남발한다. 라이온스게이트가 이 작품에 상당히 집착했다는 소문을 고려하면 원작 소설에 어떤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요소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영화만 놓고서는 짐작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근미래의 원시성, 지구와 닮은 미지의 행성, 첨단 기술을 봉인한 농경 부족 사회 등의 주요 설정이 활자에서 영상으로 옳겨지는 과정에서 묘하게 어긋나며 되려 장르적 요소들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느낌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베로니카 로스의 ‘다이버전트’ 시리즈,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시리즈, 제프 벤더미어의 ‘서던 리치’ 시리즈 등 최근 히트작들과 유사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도 뚜렷하게 필적할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왓 위민 원트(낸시 마이어스, 2000)’의 젠더-스왑드 리메이크 버전인 (다시 말해 남자의 속마음을 듣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왓 맨 원트(아담 생크먼, 2019)’와 비교해야 할 것만 같은 순간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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