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딥 워터 (Deep Water,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4. 7.

본문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장부책이 알고리즘 추천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면 아마도 ‘나를 찾아줘 2’라는 한국 개봉명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작품은 외관상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병적이고 뒤틀린 싸움을 묘사하는데 모든 러닝타임을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아주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시간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묘하게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 의외의 흥미로움을 준다. 고전 치정극에서부터 최신 교외 스릴러까지 뒤섞여 있고,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사이 어딘가에 갇힌 듯하며, 어느 순간에는 미국 영화스럽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유럽 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이 독특한 현상은 작품을 둘러싼 배경에 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어쩐지 익숙했던 느낌은 원작 소설, 즉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의 1957년작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 결과, 둘째, 원작과 60년에 가까운 시간 차이를 보정하여 현재 시점의 루이지애나 작은 마을로 옮기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예스러움과 새로움이 뒤섞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곤 걸(한국 개봉명: 나를 찾아줘, 데이비드 핀처, 2014)’과 같은 최근 성공작들의 요소가 반영된 까닭도 있다. 사실 ‘곤 걸’의 작가 길리언 플린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영향을 받아왔음을 여러 차례 고백해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있어서는 먼저 영화화된 ‘곤 걸’의 영향을 나중에 영화화된 ‘딥 워터’가 받아들이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벤 에플렉은 위화감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남편역을 독점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비디오 시대 하이엔드 R등급 영화의 거장이었던 에이드리언 라인의 20년만의 컴백작이라는 예상치 못한 요인이다. 그 시절 ‘나인 앤 어 하프 위크 (에이드리언 라인, 1986),’ ‘페이탈 어트렉션 (한국 개봉명: 위험한 정사, 에이드리언 라인, 1987),’ ‘인디센트 프로포절 (한국 개봉명: 은밀한 유혹, 에이드리언 라인, 1993),’ 그리고 ’언페이스풀 (에이드리언 라인, 2002)’등 미성년자가 감히 대여할 수 없는 작품들로만 어머어마한 족적을 남겼던 그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돌아와 스트리밍 서비스(훌루)를 통해 신작을 공개한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20년 이상이 지난 그의 전성기 스타일과 두 젊은 스크린 라이터의 어댑테이션 사이에는 ‘언페이스풀’과 ‘맬컴 앤 마리 (샘 레빈슨, 2021)’만큼의 넓은 간격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 두 방향 모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과 부합하지 않고, 그 결과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미스테리가 지워진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아내 멜린다(아나 데 아르마스)의 바람기에는 남편을 자극하기 위한 일종의 게임으로의 요소와 당장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질병 증상으로의 요소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이에서 균형이 너무 일찍 무너지는 탓에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내내 휴화산처럼 인내하는 남편 빅(벤 에플렉)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 역시 원작 소설에서만큼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와중에 난파할 뻔한 작품을 가까스로 구해내는 건 그들의 어린 딸 트릭시을 연기한 여섯살 그레이스 젠킨스이다. ‘올해의 브루클린 프린스’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장 노미네이션을 받아 마땅하다. 저 멀리는 부부싸움의 전설 ‘레볼루셔너리 로드 (샘 멘데스, 2008)’부터 가까이는 '곤 걸,' '맬컴 앤 마리,' 그리고 이 작품까지 결혼을 두렵게 만드는 일련의 공포특급 컨텐츠들이 있지만 (나중에 DVD 메가팩으로 묶어 팔아도 될 듯하다) 그런 중에도 이렇게 깜찍한 아이들을 볼 때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는 듯 하다.

 

(2022년 04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