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 19.

본문

  남자의 야망에 불을 당기는 세 마녀의 예언이 그와 그의 아내를 권력의 추월 차선으로 인도하여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보이는 것은 1948년 오손 웰스 버전 이래로 드물게 미국인 배우들이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고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유지한 스코틀랜드 무대의 이야기에서 맥베스와 맥더프 등 주요 캐릭터의 상당수를 흑인 배우들이 맡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설정이 하나 있다. 극 중 로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마치 노부부처럼 보인다는 (이 부부로 분한 어워드 레벨의 파트너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각각 60대 후반과 60대 중반의 배우들이다) 사실이다. 이제까지 주요 작품에서 맥베스의 옷을 입었던 배우들을 복기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존 핀치는 20대 후반에, 오손 웰즈와 숀 코너리는 30대 초반에, 이언 맥켈런과 마이클 패스벤더는 30대 중후반에 로렌스 올리버와 앤소니 셔는 40대에 각각 맥베스로 분했다. 루즈 어댑테이션이기는 하지만 2007년 루퍼트 굴드의 피바디 수상작에서 60대 후반의 패트릭 스튜어트가 맥베스에 해당하는 인물을 맡은 적이 있기는 하나, 이때에도 레이디 맥베스에 해당하는 인물은 당시 30대 후반의 케이트 플릿우드였다. 다시 말해서 로드 앤 레이디 맥베스의 60대 조합은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택이다. 따라서 맥베스는 위엄 있으나 혈기 왕성하지는 않고 (던컨 왕과 비슷한 연배다) 레이디 맥베스도 간악하지만 그렇게 계산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반면 벤쿠오와 맥더프 등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종전 설정에서 크게 차이가 없어 이들은 심지어 한 세대쯤 뒤의 인물들처럼 보인다. 이런 연유로 자식 없음을 한탄하는 맥베스의 그 유명한 독백도 전에 없던 느낌으로 다가온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데코레이션도 없다시피한 던시네인의 맥베스 캐슬 세트 구성 역시 이에 부합하는 쓸쓸하고 조금은 쇠락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코엔 형제의 조엘 코엔이 동생 에단 없이 솔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또한 현대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고전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도 사실상 처음이다. 물론 셰익스피어 어댑테이션은 조엘 코엔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완전히 시대에서 이탈하여 모티브만 남기지 않는 이상은 쓸 수 있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다. 실제로 이 작품 역시 원문에서 대사를 조금 잘라내거나 생략하거나 조금 변용하는 정도이고 (보통 다들 그러하듯이) 4막과 5막에 이르러서야 약간의 자유도를 활용하는 정도이다. 이 와중에 새로움은 뜻밖의 고전 호러의 느낌에서 만들어진다. 일단 1.37 대 1의 흑백 화면과 극도로 미니멀한 세트가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탓도 있지만 원작의 전개를 거의 유지하되 살짝 늦추면서 의도적으로 구성한 장면들이 슬그머니 호러의 유산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까마귀 떼 혹은 그에 상응하는 환상의 반복된 등장이지만, 이 대목에서 이 작품의 진정한 비장의 무기는 세 마녀와 성 밖의 노인 등 1인 다역을 맡은 연극배우 케이틀린 헌터다. 작품의 시작과 함께 기괴한 목소리와 도무지 사람의 몸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동작으로 원작에서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세 마녀들의 모습을 홀로 연출해내는 놀라움을 행한 그녀의 연기는 단숨에 이야기를 초현실의 영역으로 몰아넣는다. 지상의 법칙으로 설명 불가능한 어떤 다른 차원의 사악하고 고약한 악의가 개입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미 호러는 시작부터 완성되어 있는 상태다. 


  코엔 형제는 셰익스피어 어댑테이션과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감독들이지만 그렇다고 이제까지 그들이 만들어온 작품들이 셰익스피어적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웨스턴이나 크라임 스릴러의 외형 속에 다분히 신화적 비극을 염두에 둔 설정을 녹여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역시 신화 속 다양한 이야기에 밑바탕을 두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도 연결고리는 항상 있었다. 구체적으로 맥베스의 비극을 한정한다면, 자신의 모럴 코드를 어긴 선택에 스스로가 잠식되어가는 결과로 이어지는 ‘파고(코엔 형제, 199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엔 형제, 2007)’등의 요소들을 먼저 거론할 수 있을 듯하다.

 

(2022년 1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