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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디 올드 나이브즈 (All the Old Knives,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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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터키항공 127호 테러 사건 대응의 참담한 실패는 CIA 오스트리아 지부 팀원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고 이후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동료로 또 연인으로 같은 팀에서 일했던 헨리(크리스 파인)와 실리아(탠디 뉴튼)도 사건 직후 헤어졌다. 오늘에 이르러 새로운 정보의 등장은 당시 내부 유출자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뜻밖에 그 혐의는 당시 부지부장이었던 빌 콤프턴(조나단 프라이스)과 그 심복이었던 헨리의 옛 연인 실리아에게로 향한다. 지부장 빅 월린거(로렌스 피쉬번)는 헨리에게 비밀리에 이를 재조사할 것을 지시하고, 그런 연유로 그는 은퇴하여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어 살고 있는 옛 연인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노을이 아름답게 비치는 카멜-바이-더-씨의 멋진 해안가 레스토랑에서 (註1) 다시 만난 남녀는 하루 저녁 동안 환담처럼 보이면서도 환담이 아니고 취조처럼 보이면서도 취조가 아닌 시간을 갖는다. 문답과 회상을 통해 퍼즐을 맞추며 서서히 과거 사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고 차츰 진실에 근접하게 된다. 


  이 몹시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구도에 별로 현실성이 없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일단 냉전 시대 이전 스파이들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CIA가 이런 식으로 일할 것 같지는 않고, 물론 설령 이런 식으로 일한다고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알 방법은 없겠으나, 이 작품의 원작 소설가이자 스크린라이터인 올렌 스테인하우어라고 뭘 알고 있는 건 아니겠다는 강력한 심증이 있다 (註2). 그러다 보니 첩보 스릴러보다는 아무래도 로맨스 드라마에 더 가까운 느낌이며 강점 역시 그런 부분에서 드러난다. 하루 저녁의 이 길고 조용한 저녁 식사 시간 동안 옛 연인 사이 애절한 공격과 담담한 수비의 교대만큼은 꽤 매력적이다. 특히 미련과 회한이 남은 듯 서로를 바라보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기대를 뛰어넘는다. 다만 그들 사이의 정적이고 조용한 공방이 펜싱처럼 날렵하고 우아하게 이어졌으면 꽤 멋졌을 것 같은데 오히려 지구전 모드의 축구에 더 가깝다 보니 (마침 러닝타임도 엑스트라 타임을 합친 축구 경기 시간과 비슷하다) 다소 늘어지는 느낌이다. 구성상의 한계와 덜 다듬어진 대사도 아쉽지만 패를 어설프게 열어 보이는 실수가 가장 치명적이다. 아마 강렬한 뒤집기를 의도했던 느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끝내 만들지 못한다. 어떤 반전도 7분경 자막에 등장하는 번역된 한국판 제목보다 놀랍지는 않다.

 

(2022년 6월)


(註1)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레스토랑 'Vin de Vie'가 정말 존재하는지 여부를 궁금해 하였다고 한다. 몇몇 보도 내용에 따르면 (아쉽게도) 캘리포니아의 카멜-바이-더-씨에 이런 레스토랑이 있지는 않으며 실제 촬영은 영국에 있는 세트장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註2) CIA 요원 밀로 위버 시리즈 등으로 알려진 작품 목록을 보면 마치 CIA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문예 창작 전공자이고 정보 기관과 관련된 뚜렷한 경력도 찾을 수 없다. 최근에는 TV 시리즈 ‘베를린 스테이션 (Epix, 2016-2019)’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로도 활동했는데 이 작품도 CIA 베를린 지부를 무대로 한 첩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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