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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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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 맥케이의 신작 ‘돈 룩 업’이 과학적 오류로부터 그리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이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표면상 내용인 소행성 충돌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실질적 내용인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읽을 때조차 엄격한 과학적 내용에 바탕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소행성 충돌과 기후 변화를 연결하는 알레고리가 생각만큼 아주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위치한다. 언뜻 꽤나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 구도는 하나씩 상세하게 파고들어 따지고 보면 볼수록 놀라울 정도로 아귀가 맞지 않아 감탄스럽다. 동등하지 않은 층위의 전혀 다른 기작으로 구성되는 두 사건을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려다 보니까 시간이 갈수록 이음새가 벌어지는데 그 간극을 억지로 좁히려다 보니 무리수에 무리수를 거듭하는 결과만 빚어지는 것이다. 눈부신 올스타 캐스팅도 이 부정합의 아포칼립스로부터 영화를 구원해내지 못하며 심지어 민디 교수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배우가 엉뚱한 배역에 들어가서 엉뚱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느낌마저 준다.


  물론 이 아수라장에 화끈하게 불을 붙인 것은 아담 맥케이의 코미디 스타일이다. 최근작들을 놓고 보면 그는 (a) 직설적인 팩트 체크에 기반하여 이목을 끄는 동시에 (b) 논리적 공백마다 엉뚱한 곳으로 주의를 분산시킴으로써 의도한 메세지를 전달할 동력을 획득하여 왔다. 그러나 애당초 에둘러 빗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 작품의 얼개로는 그런 성공 전략을 재현할 수 없다. 체크할 팩트도 인용할 발언도 발췌할 문헌도 없는 가상의 이야기를 종전과 비슷한 톤의 풍자극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가상의 적을 상정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은 간편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이분법으로 이어진다. 정계, 학계, 언론계, 경제계 등을 한통속의 무슨 일루미나티인양 그려내는 의도적인 묘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과정에서 다소 고의적인 몰아가기와 역시 극적인 과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 속 ‘돈 룩 업’과 ‘룩 업’을 둘러싼 분열적 사회 현상과 비슷한 문제를 한편으로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코미디가 다시는 윌 페럴과 함께하던 시절처럼 부드럽게 기능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어떤 의도도 고의도 과장도 선동도 전혀 밉지 않게 느껴졌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파급력있는 형식을 바탕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하였다는 긍정적인 면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엘 고어와 그레타 툰베리 이후 처음으로 기후 문제를 화젯거리로 만들었다는 성과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트렌딩으로의 기능 외적으로는 여전히 실망스러운 점이 많다. 부분적으로는 매력적인 순간도 없지 않지만 다 연결해 좋고 보면 영 이상한 감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오래된 표현을 빌어오자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서는 패배한 결과라고나 할까. 정말 이것이 최선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두 가지 앞선 작품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같은 해 개봉작이자 나란히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받은 ‘듄(드뇌 빌뵈브, 2021)’은 기후 문제에 대한 우아한 은유이기도 하다. 둘째, 이 작품에서 드물게 괜찮은 부분인 마지막 만찬 장면은 ‘멜랑콜리아(라스 폰 트리에, 2011)’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사실은 거의 완벽한 버전의 ‘돈 룩 업’이 이미 10년 전에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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